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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영화인들의 대부 역할을 하던 그가 돌연 세상을 떠난 건 영화계로서 큰 손실이다.”(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좌중을 휘어잡는 ‘큰 형님’의 입담은 언제나 영화계를 한데 묶는 구심점이었다. 1990년대 말 신철, 심재명, 차승재 등과 함께 기획 영화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프로듀서이자 영화계의 대소사를 손수 챙겼던 ‘큰 바위 얼굴’ 이춘연 씨네2000 대표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1살. 영화계의 말에 따르면 지난 5월11일 이춘연 대표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회의를 마치고 서울시 방배동 자택으로 들어가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채 발견돼 서울 보라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사망 전날까지 차기작을 준비하고,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시사회에 참석하는 등 활발하게 일을 한 까닭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영화계에 큰 안타까움과 충격을 남기고 있다.
영화 제작에도 스크린쿼터 연대 운동 등 현안에도 앞장서
1950년 전라남도 신안에서
[추모] 이춘연 씨네2000 대표를 떠나보내며. 김동호, 안성기, 이명세, 박찬욱, 류승완, 김병우 등 영화인들이 기억하는 이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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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연 씨네2000 대표 겸 영화인회의 이사장이 5월 11일 별세했다. 향년 71세.
1951년 전라남도 신안에서 태어난 이춘연 대표는 1980년대에 충무로에 들어와 수많은 한국영화의 제작을 맡아 성공시켰으며, 영화인회의 이사장,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대표 등을 역임하며 스크린 쿼터, 독과점 이슈 등 영화계 내 각종 이슈의 해결사로도 나서 왔던 입지 전적의 인물이다.
이춘연 대표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학과 졸업 후에 1970년대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83년부터 영화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84년 이장호 감독의 <과부춤>을 시작으로 김유진 감독의 <영웅연가>(1986), 박철수 감독의 <접시꽃 당신>(1988), 강우석 감독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등의 영화 기획에 참여하며 경력을 이어갔다.
그는 1993년에 성연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스릴러 장르인 <손톱>을 흥행시킨 이후, 1995년에
한국 영화계의 큰 형,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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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영화를 만들어온 이들의 목소리는 학술적으로만 접근했을 때 간과할 수 있는 지점을 보완하며 연구의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4월 13일 오후 8시(미국 현지시간)부터 열린 라운드 테이블에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박은경 더램프 대표, 임순례·민규동 감독이 온라인으로 참석했다. 이날 창작자 입장에서 학회에 공유한 한국 영화산업의 현황을 이슈별로 정리해보았다.
-전세계에서 소구하는 한국영화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원동연 한국 영화산업이 발전한 것은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관객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투자자부터 배우까지 굉장히 많은 필터링을 거쳐야 한다. 지금 한국 영화시장에 예전의 스크린쿼터 같은 보호 장치가 없다는 것도 역설적으로 한국영화의 퀄리티를 높였다. 필름메이커들이 관객과 직접 소통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부터 더 절박해졌다. 감독들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만 쓰던 시절에도 경쟁력이 있었는데 지금 한국에선 일종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
라운드 테이블 -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박은경 더램프 대표, 임순례·민규동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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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해외 학자들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온라인 콘퍼런스가 열렸다. 4월 12일부터 16일까지 미시간 대학교 남한국학연구소 (Nam Center for Korean Studies) 에서 열린 한국영화산업 ( The South Korean Film Industry) 컨퍼런스는 이상준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 커뮤니케이션과 교수, 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 교수, 조준형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이 함께 조직하고 남한국학센터와 싱가포르 기반의 버추얼 영화 연구소인 아시아영화연구 랩 (Asian Cinema Research Lab) 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주최했다.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미시간 대학교 출판부에서 책으로 편집되어 출판이 예정되어 있다.
한국 영화산업을 연구하는 캐나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영화 및 미디어 연구 분야의 학자들이 모인 이번 학회는 한국영화의 제작, 전시, 배급, 정책, 검열, 공동 제작, 영화제 및 시네필리아, 독립영화, 한류
대한민국 영화산업 주제로 열린 ‘동시대 한국에 대한 관점 2020-21’ 온라인 콘퍼런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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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겸 감독 유준상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계속된다. 그는 지난 3월 단편영화 <깃털처럼 가볍게>의 촬영을 끝낸 뒤 후반작업을 하는 중이고, 네 번째 장편영화 시나리오 초고를 이미 다 쓰고 수정하고 있다. <씨네21> 김성훈 기자가 감독 유준상의 열정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다. 유준상 감독의 영화 <깃털처럼 가볍게>에서 배우로 출연한 것이다. 얼떨결에 초짜 연기자로 유준상 감독의 신작에 합류한 김 기자가 촬영 현장에서 오케이 사인을 받기까지 과정을 지금부터 생생하게 전한다.
“잘 지내? 새 영화를 찍을 건데 네가 출연했으면 좋겠어.” 두달 전 유준상 배우 겸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너에게 배우는 것들>(2016), <아직 안 끝났어>(2018), <스프링 송>(2020) 등 장편영화 세편을 찍은 그는 “네 번째 장편영화에 들어가기 전에 단편영화를 찍으려고 하는데 배우로 캐스팅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번도 연
[스페셜] 김성훈 기자의 유준상 감독 단편영화 '깃털처럼 가볍게' 출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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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 작업은 TV와 많이 달랐나.
변권철 완전히 다르다.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야 했다. TV애니메이션을 볼 때와 디즈니 영화를 볼 때 느낌이 다르잖나. 극장판은 이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 영화관에서 구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영상미를 노려서 제작했다.
이선명 TV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디테일과 캐릭터의 성격, 그리고 표정을 풍부하게 표현했다. TV시리즈 <콩순이>가 10가지 표정을 가졌다면 극장판에서는 그 10가지 표정 사이사이에 해당하는 중간 표정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콩순이>를 오랫동안 작업해온 두 사람이 보기에 콩순이의 매력은.
이선명 콩순이는 정말 그 나이대 아이 같다. TV시리즈를 본 엄마들도 자신의 아이 같은 느낌이라고 하더라.
변권철 콩순이는 남자애 같은 면도 있고 여자애 같은 면도 있다. 밤이는 남자아이, 송이는 여자아이의 전형성을 띤 캐릭터라면 콩순이는 남자아이 부모도 공감할 수 있고, 여자아이 부모도 공감할 수 있는
'극장판 콩순이: 장난감나라 대모험' 이선명 감독, 변권철 스튜디오 모꼬지 대표 - "TV에서 표현 못한 콩순이의 풍부한 표정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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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소리를 지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르르 웃는 게 아이들이다. 어린이는 참으로 시시각각 변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집 안은 어느덧 어린이들에게 호기심 어린 탐험의 장소가 되고, 어른의 눈으로는 어지럽히기에 불과한 행동들은 흥겨운 놀이가 된다.
<극장판 콩순이> 속 다섯살 콩순이 역시 변화무쌍하고 상상력 가득한 그 나이 또래의 모습을 반영한 인물이다. 옆구리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려넣은 돼지저금통을 ‘썬더’라 부르며, 엄청나게 빨리 달릴 수 있는 돼지라고 상상해버리는 아이, 토끼 인형의 귀를 머리끈으로 질끈 묶고 애착인형처럼 끼고 다니다가도 새로운 장난감을 보면 마음을 홀랑 빼앗겨서 부모에게 사달라고 조르는 소녀가 콩순이다. “자꾸 새것만 찾으면 집에 있는 장난감 친구들이 마음 아프지 않을까?”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콩순이를 타이르지만, 아이는 벌써 눈앞의 새 장난감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공상에 빠진다. 어린이란 프리즘을 통과하면
배동미 기자의 '극장판 콩순이: 장난감나라 대모험' 리뷰, 침대 밑 세상으로 떠나는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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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갈래 머리를 한 작고 귀여운 5살 아이 콩순이의 인기는 엄청나다. TV애니메이션 <엉뚱발랄 콩순이와 친구들>(이하 <콩순이>)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총 6기에 걸쳐 제작 방영되었는데, TV 방영분을 유튜브에 그대로 옮긴 <콩순이> 유튜브 공식 채널만 해도 구독자 수가 515만명, 에피소드 최고 조회 수는 7억1천만회에 이른다.
수많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있지만 콩순이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친구가 된 건 IP의 매력 때문이다. 콩순이는 여동생에게 사랑을 쏟는 엄마에게 서운하고, 매일 장난감이 갖고 싶은 그 나이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콩순이> 시즌2~4를 제작한 스튜디오 모꼬지는 콩순이 IP 소유사인 영실업에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먼저 제안했고, <극장판 콩순이: 장난감나라 대모험>(이하 <극장판 콩순이>)을 제작했다. 2021년 5월 5일 어린이날 개봉한 <
[스페셜] 배동미 기자의 '극장판 콩순이: 장난감나라 대모험' 리뷰와 이선명 감독 · 변권철 스튜디오 모꼬지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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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라는 단어를 요즘 부쩍 자주 듣는다. 내 마음속에서 그간 꼰대란 단어는 ‘얄개’와 동급으로 옛날 청소년 드라마에서 ‘우리 담탱이는 정말 꼰대란 말야!’ 할 때나 쓰이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어 놀랐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말조심하는 친구도 보이고, 꼰대를 증오하는 글도 종종 본다. 온 세상이 꼰대를 적극적으로 미워하는 느낌이다. 그건 꼰대가 늘어서일까? 아니면 세상이 발전하여 더는 꼰대를 참아줄 수 없어서일까? 그보다 일단 꼰대의 정의는 무엇일까?
나는 면전에서 꼰대라는 단어를 들은 적이 한번 있다. 그리 친하지 않은 다양한 나이대의 뮤지션들이 모여서 오래 수다를 떨었던 날이었다. 장소는 우리 집 거실이었고 나는 마음이 편해져서 평소보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앨범 제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 앨범의 제작비를 벌어들일 수 없으면 정규 앨범은 내기 힘들다’였다. 물론 이것은 절대로 정설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일 뿐이
[오지은의 마음이 하는 일] 꼰대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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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XX년 봄. 수업이 끝난 K 대학 강의실에 1학년생 한 무리가 모여 있다. 그들은 이제 갓 친분을 쌓기 시작한 관계로, 같은 학교를 선택한 동기라는 느슨한 소속함과 처음 만난 사이에서 오는 서먹함이 공존 중인 이 시절 특유의 표정을 짓고 있다. 강의 제목은 <고전 한국 SF 문학의 이해>. 방금 막 첫 수업을 마쳤다.
“근데 아까 교수님이 무슨 과제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누군가 묻는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답한다. “작가론 리포트요. 중간고사 그걸로 대체한다고 했어요.” “아 그렇구나. 작가 한명 골라서 작품 읽고 분석하는 거죠?” “그쵸.”
“혹시 누구로 할 건지 정하신 분 있어요?” 또 다른 누군가가 묻는다. 아마도 남들과 중복을 피해보려는 얕은 수작인 모양이다. 모두가 눈치만 보며 머뭇거리는 와중, 갑자기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든다. “저는 김초엽 할래요.” “김초엽? 그 사람 작품 좋긴 한데 너무 당연한 말만 하지 않나요?” “그 시절엔 그게 당연하지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우주보다 광대하고 더욱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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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인권운동가 프레드 햄프턴의 말년을 담은 전기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를 보고, 다소 거친 비교지만 그의 삶이 유관순 열사의 삶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에 닥친 전쟁 같은 상황에서 한 운동의 리더 역할을 한 위인은 여럿 있겠지만 이렇게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을 나란히 놓고 생각해보면 미국에서 벌어진 전쟁이 조금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는데, 그건 이 모든 일이 벌어진 후에도 그들(흑인-백인)이 계속해서 같은 땅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 또한 많은 복잡한 요소들을 배제한 채 내린 결론이지만 단순히 말해서 우린 다른 땅에서 그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척 살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이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에 프레드(대니얼 컬루야)가 마오쩌둥의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다”는 말을 당원들에게 주지시키는 모습이 나오는 것은 적절하게 보인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가 역사를 구현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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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인물들이 전투를 벌이는데 그 속에 나를 위한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어쩐지 표면적인 투쟁 아래 다른 이야기가 흐르는 것만 같다. 이 두 번째 투쟁에 관해 말하기로 한다. 너무 잘 보여서 보지 못한 그것에 관해서.
시선으로부터의 도피
프랑스의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국기를 어깨에 두르거나 손에 들고 페이스 페인팅한 사람들이 곳곳에 모여든다. 이윽고 커다란 함성과 함께 사람들이 뛰쳐나오고 거리는 온통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인파들로 북적인다. 레주 리 감독은 <레 미제라블> 오프닝 시퀀스에서 월드컵의 응원 열기를 담는다. 그런데 이 풍경 속에서 이들이 흥분하는 원인을 확증할 수 있는 근거로서의 이미지는 단 한컷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 흔한 축구 경기 장면 인서트조차 없다.
오프닝 시퀀스 속 상황으로부터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는 월드컵이 한시적인 이벤트여서가 아니라 이들의 행위가 그것의 목적으로부터 떨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응원의 행위는 모니터
'레 미제라블'의 표면적 투쟁과 또 다른 투쟁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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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남화흥업주식회사 / 감독 임권택 / 상영시간 102분 / 제작연도 1969년
거장 임권택이 흥행영화를 양산하는 직업 감독으로 살았던 시기의 이야기는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다. 1956년 <장화홍련전> 제작 현장에서 처음 영화 일을 접했던 그는 1961년까지 정창화 감독의 연출부에서 수련하다 26살인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감독 데뷔한다. 1960년대 임권택은 주로 사극과 액션, 때로는 코미디 장르를 오가며 진지한 예술적 대상이기보다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영화를 붙들고 있었다. 그는 이때의 자신을 “저질흥행감독”으로 낮춰 부른다.
유현목, 김수용, 이성구 같은 감독들이 문예영화에 집중하던 1960년대 후반, 그는 오로지 흥행 가치에 집중하는 영화를 솜씨 좋게 만들어 충무로 제작자를 만족시키는 감독이었다. 1969년 7편, 1970년 8편, 1971년 7편의 영화를 만든 3년은 양산의 정점이었다. 임권택은 “(처음으로 작가적 자의식을 투영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교감의 문법 '사나이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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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검색해보지는 않지만 소셜 미디어에서 ‘책의 말들’과 ‘겨울서점’ 키워드를 팔로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이고 있다. 어쨌든 책을 쓴 사람으로서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읽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저자로서 느끼는 바도 많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읽고 떠올리는 생각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니. 내가 드러내지 않은 감정까지도 읽어내는 독자들을 보면서 독자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좋은 말만 있는 건 아니라서 흠칫 놀랄 때도 있다. 그 내용이 이해할 수 있는 근거에 기반한 비판이거나 책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일 때는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다. 나를 당황시키는 건 그렇지 않을 때다. 매주 얼굴과 목소리를 드러내고 생각을 이야기하는 직업을 가졌으니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젊은’, ‘여성’이라는 것을 안다.
유튜브 채널을 보지 않고 책부터 읽었거나 책만 읽은 독자들과는 달리 유튜브를 한번이라도 본 독자들은 나의 상을 머릿속에 그린 상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젊은’ ‘여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