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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부터 창작물까지 불안과 공포를 독자나 관객이 경험하게 하려고 꼼꼼하게 보여주는 세상에서 강화길 작가는 반대의 길을 간다. 일인칭 시점에서 목소리를 듣게 되는 화자는 현재 상황만큼이나 과거의 경험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데, 그 불안이 무척 타당하다는 사실을 여성 독자라면 누구나 경험으로 알고 있으리라. 집집마다 대대로 여자들만 공유하는 이야기, 아들에게는 비밀로 해온 이야기는 또 어떤가. 아는 것은 힘이라지만, 여자들만 아는 많은 세상의 진실은 힘이 되는 대신 짐이 되곤 했다. 소설가 강화길의 <화이트 호스>는 기억과 불안의 상관관계를 경험하게 하는 <음복>과 <가원>을 비롯해 소설가와 유령의 고딕 멜로드라마 <화이트 호스> 등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이상하게도, 분열하는 순간들에서 웃음이 튀어나올 때도 있고, 기어코 행동하거나 끝내 침묵하게 될 때도 있다. 그 결과를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다른 사람>
<화이트 호스> 출간한 소설가 강화길 - 사랑이 있기 때문에 더 힘든 마음들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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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등을 연출한 김수용 감독이 이만희 감독과 경부고속도로를 지날 때의 일이다. 당시 베트남에서 전쟁영화 <고보이강의 다리>를 찍고 돌아온 이만희 감독은 김수용 감독에게 경부고속도로가 무슨 색깔로 보이느냐고 물었다. 김수용 감독은 카메라의 노출 얘기인가 싶어서 맑은 날엔 하얗게, 흐릴 땐 검게 찍힌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만희 감독은 자기 눈엔 그것이 핏빛으로 보인다며 그것은 베트남전쟁에서 희생된 병사들이 흘린 피 때문이라고 했다. 김수용 감독은 지금은 누구든 할 수 있는 말이지만, 1970년대엔 어림없는 주장이었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박정희 정권은 베트남 참전의 대가로 미국에 장기차관을 경제원조 성격으로 지원받았고, 이중 일부를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으로 충당했다. 당시 전쟁으로 인한 ‘베트남 특수’가 국가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가늠한다면 이만희 감독의 말에 숨은 뜻을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70년, 베트남 현지에서 국군영화제
숨겨진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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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3개월 넘게 셔터를 내렸던 프랑스 영화관이 지난 6월 22일 대대적인 관객맞이에 들어갔다. 이 역사적인 날에 동참하기 위해 영화 전문 채널 <카날플뤼스>는 하루 종일 영화를 단 한편도 상영하지 않았다. 1984년 창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긴장했던 첫주 성적은 관객 85만명에서 100만명 사이. 예전의 6월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스코어지만 재개관 첫주 성적으로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개봉 첫주와 둘쨋주 관객 몰이에 성공한 작품들은 3월에 개봉했다 다시 극장을 찾은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3월 11일 개봉했던 마틴 프로보스트 감독의 페미니스트 코미디 <훌륭한 부인들>은 6월 22일에서 30일 사이 12만5217명의 관객을, 샤를 드골의 전기영화 <드골>은 9만6030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참고로 이 두 작품은 첫 개봉 당시 각각 17만1천명(3월 11~16일)과 59만5197명의 관객(
[파리] '훌륭한 부인들' 흥행 호조… 할리우드 개봉작 부재, 자국영화 배급으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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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의 1부 마지막 장면을 읽고 나면 늘 마음이 미어진다. 진부하지만 이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 ‘극심한 슬픔이 느껴진다.’ 영화도 마찬가지다.‘거짓말쟁이’라는 외침이 들리는 순간,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매번 그렇다. 아마 그건 내가 브리오니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마음은, 이야기의 후반부 등장하는 지난한 속죄의 감정이 아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면서 이해한다고 믿는 바로 그 마음이다. 그래. 거짓말쟁이의 마음.
13살의 브리오니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희곡을 쓰고, 연출까지 겸할 정도니 그 자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이언 매큐언, 이 심술궂은 양반 같으니. 게다가 이 조숙한 소녀는 자신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을 자기 방식대로 재구성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통찰력에 감탄한다. 나는 역시 대문호의 자질을 지녔어! 문제는 이것이 픽션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거짓말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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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그는 경찰이고 아내와 두 아들을 가족으로 둔 가장이다. 거나하게 술에 취한 밤이 지나고 그의 삶이 뒤바뀐다. 이제 그는 초등학교 교사고 아내와 아들이 없는 미혼의 남자다. 남자는 자신을 전자의 인물로 기억하는데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그를 후자의 인물로 여긴다. 남자의 설움은 그 간극에서 비롯된다. 영화가 절반쯤 진행됐을 때 등장하는 형구(조진웅)의 이같은 돌연한 ‘변신’은 영화를 전혀 다른 방향과 색채로 이끌어가며 관객을 혼돈 속으로 밀어넣는다. 이제 형구의 목표는, 그리고 영화의 관심사는 수혁(배수빈)과 이영(차수연) 부부의 사고사나 이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은밀한 비밀이 아니다. ‘왜’ 형구의 삶이 바뀌었는지 혹은 ‘어떻게’ 하면 돌아갈 수 있는지, 다.
경찰이었던 남자가 교사가 되어 끝나는
‘왜’ 혹은 ‘어떻게’에 대한 답을 고민하기 전에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두 가지 직업에 대한 것이었다. 경찰과
'사라진 시간' 속 형구의 삶은 왜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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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비평도 분석도 아니다. <환상의 마로나>에는 그런 작업이 구태여 필요치 않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다시 읽기’ 정도가 어떨까 싶다. 모두에게 한번쯤은 있었고, 있을지도 모를 ‘마로나’라는 이름의 기억을 다시 읽기. 혹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추억을 상상하기. 1997년 9월 30일 <신해철의 FM음악도시>의 마지막 코멘트. “왜 사느냐는 물음에 답하려 철학과에 갔지만 알 수 없었고 생각하지 않고 살다가 음악도시를 그만두는 이제야 그 답을 알았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다.”
너라는 우주를 만나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겨, 최근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의 짧은 편집 영상들을 자주 보는 편이다. <환상의 마로나>를 두고 어떻게 첫걸음을 떼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즈음 <알쓸신잡>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도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고 찌릿
'환상의 마로나'가 풍기는 행복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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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에게 추천한다. Mnet <GOOD GIRL: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가 끝나서 아쉬운 사람, 이제 예능 섭외 1순위는 이영지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모든 걸 내려놓고 웃고 싶은 사람. 지난해, 최종회 방송을 앞두고 제작이 중단되었던 <Target: Billboard-KILL BILL>의 흑역사를 뒤로하고 “(그래요) MBC가 또 힙합했습니다…”라며 조심스레(조심스러운 나머지 홍보가 안됐다) 등장한 웹예능 <본격 국힙 도장깨기 힙합걸Z>의 정신은 Mnet <음악의 신>을 연상케 하는 자조와 자학이다. 브린, 이영지, 하선호로 여성 힙합 크루를 만들겠다는 제작진에게 “Mnet <언프리티 랩스타> 베꼈네”라며 찬물을 끼얹는 것은 다름 아닌 하선호고, 이들의 ‘바지 수장’ 자리에 앉은 슬리피는 다른 프로듀서가 안 나온 이유를 잘라 말한다. “걔넨 비싸.” 화려한 조명도, 살벌한 경연도, 비장한 도전도, 훈훈한 미담도
MBC 웹예능 '본격 국힙 도장깨기 힙합걸Z', 난 슬플 땐 영지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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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화한 음식 캐릭터들이 펼치는 무협 어드벤처물 <맛있는 녀석들>은 기발한 상상력에 꼼꼼한 디테일을 갖춘 아동애니메이션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주인공인 만두 바오는 선조들처럼 멋진 영웅이 되고 싶지만 능력 부족으로 매일 좌절한다. 해군 입대를 꿈꾸던 바오는 실수로 엉뚱한 배에 올라타면서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중국 전통 음식을 캐릭터로 활용하고, 형태와 색채감에 과감한 변주를 더해 눈길을 끈다.
'맛있는 녀석들' 의인화한 음식 캐릭터들이 펼치는 무협 어드벤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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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난 구멍으로 옆집에 사는 여대생 미야이치(후쿠하라 하루카)를 훔쳐보던 히키코모리 쿠로스(스기노 요스케)는 우연히 미야이치가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정체를 들킨 줄 모르는 미야이치는 쿠로스에게 매일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하고, 쿠로스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수락한다. 관음증과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로맨틱코미디로,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흐뭇함을 느끼기보다 미간이 찌푸려질 수도 있다.
'양과 늑대의 사랑과 살인' 관음증과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로맨틱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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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양 래미(김경희)는 용이 사는 ‘드래곤월드’가 존재한다는 전설을 들었을 뿐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시간여행 중인 부모님이 드래곤월드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알게 된 래미는 친구들과 그곳으로 향한다. 래미를 잡아먹으려 했던 어설픈 늑대 울피(황창영)의 가족도 함께 모험에 나선다. 중국 인기 방송애니메이션을 확장한 작품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쉴 틈 없이 등장시키고, 새로운 미션을 부여하며 아이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래미의 드래곤월드 구출작전' 중국 인기 방송애니메이션을 확장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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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기괴하게 큰 여성의 이름을 알면 그 여성이 쫓아와서 죽인다. 이 괴담을 들은 카나도, 카즈토도 그 여성을 본 뒤 죽었다. 카나의 친구인 미즈키(이토요 마리에)와 카즈토의 형인 하루오(이나바 유우)는 그들의 죽음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해 괴담에 얽힌 비밀을 찾아나선다. <시라이>는 괴담을 들은 사람이 실제로 죽게 되는 과정을 그린 호러영화다. 괴담 특유의 기괴함은 잠깐 서늘할 뿐, 괴담의 저주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진부하다.
'시라이' 괴담을 들은 사람이 실제로 죽게 되는 과정을 그린 호러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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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디오’는 1980년대 중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었다. 1980년 5월, 뉴욕 교민 민승연씨는 뉴스를 통해 광주 소식을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더 많은 교민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박상증 목사와 함께 <오! 광주>를 제작해 배포한다. 일본 <NHK>가 광주를 취재한 영상 <계엄령하의 한국>과 영화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독일 <ARD> 기자인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기로에 선 한국>은 일본과 독일에서 각각 보도됐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광주 영상들을 재편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을 내놓았다.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1980년대 당시 ‘광주비디오’를 제작하고,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상에 알린 사람들을 만나, 광주비디오가 그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려내는 다큐멘터리다.
여러 ‘광주비디오’에서 담아낸 1980년 5월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 5·18민주화운동을 다시 환기시키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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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신회의 간부이자 신세이 흥업의 사장인 야시로(신가키 다루스케)는 어두운 과거로 인해 마조히즘 성향이 있다. 그런 그의 곁에 새로운 경호원 도메키(하타노 와타루)가 함께한다. 도메키는 원래 경찰관이었으나 모종의 범죄 사건으로 복역 후 출소했으며, 그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성 기능 장애를 겪고 있다. 첫눈에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나가는데, 야시로의 어린 시절과 도메키의 가족사 등 각자의 아픈 과거와 상처를 알게 되면서 더 가까워진다.
일본의 BL 만화가 요네다 고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후지TV>의 BL 테마 신규 레이블인 블루 링크스의 2020년 첫 프로젝트다. 원작 만화는 일본에서 150만부의 판매를 기록한 인기 시리즈로, 국내에도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 야쿠자 부두목과 그를 지키는 경호원의 파격적 사랑은 섬세한 묘사와 대담한 표현 사이를 오가며 전개되는데, 그 과정에서의 긴장과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연출
'지저귀는 새는 날지 않는다' 일본의 BL 만화가 요네다 고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극장판 애니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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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제시 아이젠버그)과 젬마(이모겐 푸츠) 커플은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인을 찾는다. 괴짜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중개인 마틴(조너선 아리스)은 그들에게 교외에 있는 ‘욘더’라는 낯선 마을을 소개한다. 두 사람은 마틴을 따라 똑같은 모양의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욘더로 향하고, 그곳에서 거실, 부엌, 침실 등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9호 집’을 구경한다. 그러던 중 마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 찜찜해진 톰과 젬마는 차를 타고 돌아가려고 하지만 아무리 돌고 돌아도 그들이 다다르는 곳은 9호 집 앞이다. 어떤 방법으로도 욘더를 빠져나갈 수 없음을 깨달은 두 사람 앞에 상자가 하나 배달된다. “아이를 기르면 풀려난다”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는 상자 속엔 남자 아기가 들어 있다. 두려움과 좌절감에 휩싸인 두 사람은 아기와 함께 9호 집에서 살기 시작한다.
영화의 제목인 ‘비바리움’은 관찰이나 연구를 목적으로 동식물을 가두어 사육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영화
'비바리움' 공간의 분위기로 기괴함을 극대화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