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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웹툰을 원작으로 한 SBS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는 미성년자가 담배 대신 은단을 사다준 성인 남성에게 키스하는 장면, 오피스텔 성매매 현장 묘사 등으로 시청자 민원이 6천건을 넘었다. 이명우 PD는 “우려와 거리가 먼 가족드라마”라 밝혔지만, 방송 이후 ‘가족드라마 맞냐’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4회까지 시청한 결과, 가족드라마의 요소는 충분하다. 주인공 정샛별(김유정)을 고용한 편의점 점주 최대현(지창욱)의 집은 극중 가장 생활감 있는 공간이고, 엄마 공분희(김선영)와 아버지 최용필(이병준)은 일상의 리얼리티를 두텁게 쌓아간다.
연출자의 말은 논란의 방패막이일까? 정해진 목적지로 가는 포석일까? 실은 나는 그 ‘가족드라마’를 우려한다. 내면에 상처를 지닌 샛별이 단 한번 바른말을 해준 남자에게 반해 저돌적으로 대시하고 연애와 결혼을 거쳐 가족 안으로 흡수되고 일손이 부족하던 가족은 가용 노동력을 확보하는 전개 말이다. 어린 여성의 결핍을 성인 남성을 통해 채우
'편의점 샛별이', 편의점 며느리가 될까 불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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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의 서진에게서 잔뜩 짐을 싣고 힘겹게 걸어가는 노새가 떠올랐다. 측은했다. 그러다, 참 나와 닮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어 말풍선을 지웠다. 아내가 <씨네21>을 읽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폐허 위에 짓는 집
손원평 감독은 다시 한번 놀이공원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침입자>는 어린 오빠가 여동생의 손을, <아몬드>는 엄마가 아들의 손을 놓친다는 차이가 있다 해도, 이 두 작품 모두는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했던 누군가가 가족에게로 돌아오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족이 ‘시간을 공유’하는 사이라면, 그 시간을 잃어버린 그들은 온전히 가족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동일하지만, <침입자>는 <아몬드>보다 가족에 대해 훨씬 더 비관적인 느낌을 준다. <아몬드>가 희생과 공감의 힘을 빌려 가족을 복원하려는 시도로 끝맺는다면, <침입자
'침입자'가 가족에 대해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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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이 그간 영국의 방송·영화산업계가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데 소홀히 했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예 12년>으로 흑인 최초로 오스카상을 거머쥔 감독이자 터너상을 수상한 스티브 매퀸은 지난 6월 21일자 <옵서버>를 통해 “영국은 흑인, 아시아계, 소수민족(Black, Asian and Minority Ethnic, BAME)을 대변하는 데 미국보다도 훨씬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방문한 친구의 영화 촬영지에서, 여전히 BAME 노동자를 많이 볼 수 없어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힌 그는 “내가 미국에서 3편의 영화를 찍는 동안 영국은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정말 치욕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영국의 방송·영화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700여명의 BAME 노동자들 역시 문화부 장관 올리버 다우든에게 편지를 보내, 주요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그간 미디어의 ‘
[런던] 영국 방송·영화계, 인종차별 반대 및 문화 다양성 확보 목소리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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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하이큐!!> 시리즈 등을 만든 프로덕션 I.G가 제작한 세편의 짧은 애니메이션이 한 작품으로 묶였다. 제49회 시체스국제영화제, 제18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제43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 초청된 이타즈 요시미 감독의 <피그테일>, 일본의 조로구모 설화를 변용한 가이야 도시히사 감독의 <거미 소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등의 장편을 연출한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킥 하트>는 모두 각기 다른 작화와 스토리로 개성을 뽐낸다. 뚜렷한 컨셉을 밀고 나가는 유연한 상상력만이 세 작품의 공통점이다. 서정적인 화법으로 재난 이후의 고독을 그려낸 <피그테일>은 표제작의 가치를 증명하며, <거미 소녀>의 크리처 디자인, <킥 하트>의 펑키함도 즐길 만하다.
'피그테일: 피그테일과 거미 소녀 그리고 레슬링' 프로덕션 I.G가 제작한 세편의 짧은 애니메이션이 한 작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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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야생 숲에 숨어 있던 한 소년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에 체포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초능력을 깨닫게 된 소년 에릭(냇 울프)은 신에게 선택받은 삶의 혼란을 주체하지 못하고 힘을 오용한다. 영화는 유능한 심리학자 크리스틴(이븐 에이커리)의 도움으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힘을 차츰 체화해나가는 에릭의 적응기를 그린다. <모탈: 레전드 오브 토르>는 자신의 능력이 고대 북유럽 신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10대 주인공의 판타지 성장담에 충실한 영화다. 슈퍼히어로물의 쾌감과 액션보다는, 선과 악의 경계에 놓인 인간의 심오한 근원을 질문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호러적 장치를 이식한 지점 또한 흥미롭다.
'모탈: 레전드 오브 토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후 자신의 초능력을 깨닫게 된 한 소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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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모아 감멜)는 어린 시절 물에 빠진 여동생 투바(매들린 마틴)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 다행히 투바는 무사히 구조되었지만 이다에겐 트라우마로 남았다. 세월이 흘러 동생 투바는 전문 다이버가 되었고 자매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예전 그곳에서 다이빙을 시도한다. 어느 날 좁은 통로에서 사고가 발생해 투바가 수심 33m의 바다에 갇힌다. 이다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육지와 심해를 반복하며 고군분투한다.
<딥워터>는 한정된 공간과 제한된 상황을 통해 긴장감을 만들어나가는 심해 탈출 재난영화다. 탈출 액션만큼이나 자매의 관계 개선이나 트라우마 극복에 무게를 실었다는 점이 탄탄한 드라마를 만들어나간다. 반면 명확한 컨셉에 반해 몇몇 허술하게 풀어지는 부분이나 지나치게 답답한 지점이 있어 아쉽다.
'딥워터' 한정된 공간과 제한된 상황을 통해 긴장감을 만들어나가는 심해 탈출 재난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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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바보’ 짱구(서현우)는 어느 날 연락이 끊긴 삼촌 춘배(한사명)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봉투에는 삼촌이 시민운동 동지들에게 쓴 편지 여러 통과 함께, 편지를 잘 전달해달라는 당부가 적힌 편지가 들어있다.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시민운동을 벌였던 삼촌의 활동 전적을 따라 청계천 일대를 헤매던 짱구는 우연하게 장 반장(김대진)과 복순(유지연)을 만나게 되고, 세 사람은 함께 편지의 마지막 주인공 김 선생을 찾아 나선다. 과거를 망각한 채 살아가던 세 사람은 난데없이 도착한 편지를 계기로 과거의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테우리>는 어느새 현대 한국 사회에서 구세대가 된 민주화 세대에게 발견할 수 있는 징후들을 재현한 영화다. <비치하트애솔>을 연출한 이난 감독의 신작이다.
'테우리' 어느새 현대 한국 사회에서 구세대가 된 민주화 세대에게 발견할 수 있는 징후들을 재현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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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두(박원상)는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고등학생 딸 유리(박초롱)를 위해 열심히 택배 일을 하지만 유리가 슬럼프에 빠진 것은 물론 동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인 부녀는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유리는 우연히 만난 다혜(김다예)와 가까워지면서 오히려 다혜의 가출팸 친구들과 가족 같은 사이가 된다. 현두는 가출팸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사라진 유리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불량한 가족>은 여러 자극적인 소재를 버무려 가족애라는 식상한 테마를 전달하려고 시도한다. 안일한 각본과 서툰 연출로 인해 인물들의 감정선은 뚝뚝 끊기고, 이야기 전개는 억지스럽다. 배우들의 노력이 장면과 장면을 겨우 연결할 뿐이다. <섬. 사라진 사람들>의 각본을 쓴 장재일 감독의 첫 연출작.
'불량한 가족' <섬. 사라진 사람들>의 각본을 쓴 장재일 감독의 첫 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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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성향의 언론사 폭스뉴스사의 여성들이 폭스 케이블 채널을 번성시킨 로저 에일스 대표를 성폭행으로 고발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피해 여성들의 연대를 손쉽게 그려내는 대신, 그들과 거리를 두며 피해자 여성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면면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폭로를 주저하게 되는 역학관계를 조밀히 담는다. 그 결과 세상을 바꾸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심어진 기준으로 판단되는 ‘무결한’ 인간들이 아니라는 당연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명제를 성공적으로 전달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폭로 이후 할리우드가 하비 웨인스타인을 영화계에서 추방시키고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이 전세계로 확장됐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폭스사 여성들의 용기는 한국의 상황과도 단단히 결부되는 시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올해 오스카에서 분장상을 받았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폭스뉴스사의 로저 에일스 대표를 물러나게 한 여성들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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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핼러윈데이 영업이 거의 끝날 때쯤, 한 여성 손님이 바에 들어와 테킬라를 주문한다. 그녀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J(임화영)다. 바 주인은 J에게 말을 걸지만 J는 그를 상대하지 않는다. 바 주인이 가게 정리를 하는 동안, 위급 환자로 위장한 희태(박종환)와 강태(남연우)가 갑자기 바에 들어와 강도로 돌변한다. 바 주인은 그를 막으려다 우발적으로 죽임을 당하고, 당황한 희태와 강태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쎈(이승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쎈은 시체를 처리해주는 조건으로 강태와 모종의 거래를 하고, 백구(박세준)를 부른다. 그러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팡파레>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여러 인물이 핼러윈데이에 한 공간에서 뒤엉키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들이 한 공간에 내몰리면서 긴장감이 차곡차곡 쌓인다. 덕분에 이야기는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다. 등장인물 대부분 ‘나쁜 놈’들인데 그들의 주도권이 뒤바뀔 때마다
'팡파레' 여러 인물이 핼러윈데이에 한 공간에서 뒤엉키면서 벌어지는 소동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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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니엔(주동우)은 불우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거는 10대 소녀다. 가족이라곤 엄마뿐이지만 빚독촉에 시달려 몇달에 한번 잠깐 찾아올 뿐이다. 어느 날 첸니엔은 동네에서 폭행당하는 소년 베이(이양천새)를 도와주다가 도리어 돈을 뺏기고 휴대폰까지 망가진다. 이후 거리의 삶을 사는 베이는 첸니엔에게 은혜를 갚으려 하고, 세상 의지할 데 없는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던 중 첸니엔이 학교폭력의 타깃이 되자 베이는 첸니엔을 지키기 위해 그의 주변을 맴돈다. 하지만 수능을 하루 앞둔 어느 날, 학교폭력 가해 주동자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상황은 점차 복잡해져간다.
<소년시절의 너>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증국상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소년과 소녀의 애틋한 마음을 그린 멜로드라마를 축으로 중국의 학교폭력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효과적으로 녹여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두 사람에게 시련처럼 닥치는 학교폭력의 현실은 혹독할수
'소년시절의 너'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증국상 감독의 두 번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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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과 사랑에 빠지는 데는 1분이면 충분하다. 만약 당신이 여름을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한다면, 혹은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시간은 더욱 단축될 수 있다. 영화는 곧장 눈부신 한여름의 바닷가로 관객을 안내한다. 준비운동 없이 바다에 입수하는 건 위험하지만 오프닝부터 대책 없이 영화에 풍덩 빠지는 경험은 짜릿하다. 빛나는 바다와 중독적인 주제가가 눈과 귀를 사로잡는 오프닝을 통과하고 나면, 그곳에서 꿈을 꾸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청춘들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
히나코(가와에이 리나)는 바다를 사랑하고 서핑을 좋아해 바닷가 마을의 대학에 진학했다. 자취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불꽃놀이 화재로 집이 타버리는데, 히나코를 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소방관 미나토(가타요세 료타)가 히나코를 멋지게 구조한다.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이내 사랑을 시작한다. 함께 파도를 타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생각을 공유하며 눈부신 날들을 보낸다. 야속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작품마다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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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살아있다' 앗! 전기 나갔다
[정훈이 만화] '#살아있다' 앗! 전기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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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의 인기 칼럼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을 연재하는 영화학자 정종화의 책 <조선영화라는 근대>가 출간되었다.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기도 한 저자는 <조선영화라는 근대>에서 식민지 시기 조선영화를 중심으로, 1901년에서 1945년까지 한국의 근대 영화역사를 정리했다. 일제강점기의 대중문화를 지금 평가할 때 항일 혹은 친일이라는 기준만이 사용되기 쉬운데, 이 책에서는 조선영화와 일본영화의 관계성을 중심에 두고 미적 맥락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영화인가 혹은 한국영화가 아닌가 하는, 이 책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을 관통하는 여러 영화들은 관람이 불가능한 작품도 많기 때문에 정종화 연구자의 글이 더 귀할 수밖에 없다. 일제시대에서도 전시체제기에 해당하는 1940년대부터의 영화는 그 이전과 다른 양상을 띠는데, 이는 배묘정의 <정치의 가극화, 가극의 정치화> 같은 연구서와 비교해도 흥미롭다. 공연과 영화 같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조선영화라는 근대> <스티븐 소더버그:인터뷰>, 영화를 읽는 두 가지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