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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을 읽으면서 떠오른 음악들을 5곡으로 추린 후, 하염없이 들으며 걷는다. 그러는 동안 천천히 시나리오 속 인물이 어떤 신발을 신고, 어떤 걸음걸이를 가졌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상상한다. 이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나만의 방법으로, 내가 느끼고 표현하는 모든 건‘듣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며 음악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왔다.”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에서 그레이스 역을 맡았던 애비 퀸이 <데일리 액터>와의 인터뷰에서 얘기한 내용이다. 배우가 음악의 도움을 받아 연기하는 건 놀라울 게 없지만 이 정도로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결합시키는 건 분명 드문 일이고, 이건 그가 뮤지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애비 퀸은 정식으로 음반을 발매한 적은 없으나 오랫동안 직접 곡을 만들고 노래해왔다. 어린 시절 기타 한대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Toxic>을 커버해 올린 영상을 보면 (유튜브에서 그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곡
[Music]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음악 - 애비 퀸<Knew You For A Moment>('애프터 웨딩 인 뉴욕'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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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마지막 시즌인가요? 마지막 경기가 될까요? 마지막이라 생각하나요?” 이미 5차례 NBA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시카고 불스와 마이클 조던은 6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1997-98시즌 내내 기자들의 ‘마지막’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 필 잭슨 감독이 불스를 떠나기로 한 1997-98시즌에 붙인 이름도 ‘더 라스트 댄스’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이하 <더 라스트 댄스>)는 1997-98시즌 불스 왕조의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삼아 최고의 스포츠 스타이자 농구 황제이자 전설이자 신이었던 마이클 조던의 선수 시절 삶을 조명한다. 총 10부작 다큐멘터리인 <더 라스트 댄스>는 한국에서 5월 11일부터 매주 월요일 2개의 에피소드가 공개되고 있다. <30 for 30> 등 스포츠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제작·연출해온 제이슨 헤히르 감독과 전화로 만났다.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ESPN>이 1997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제이슨 헤히르 감독 - 불스 왕조의 전설을 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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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 이후 7년 만에 미국 방송사 <TNT>가 드라마 <설국열차>를 발표했다. 지난 5월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모습을 드러낸 <설국열차> 시리즈는 꼬리칸의 반란이라는 최소한의 모티브만 유지한 채 완전히 새로운 개성을 연료로 장착하고 10개 에피소드를 향해 달려간다. 주인공은 일등칸의 접객 승무원 멜라니 카빌(제니퍼 코널리)과 꼬리칸에서 차출된 디트로이트 출신의 전직 형사 안드레 레이튼(다비드 디그스). 두 사람은 열차 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좇으며 각자의 생존을 위해 위험한 결속을 맺는다. 달라진 만큼 궁금한 것도 많은 드라마 <설국열차>에 관해 작품의 쇼러너인 그램 맨슨에게 물었다. 영화 <큐브>(1997)를 쓰고 복제인간을 다룬 SF 드라마 <오펀 블랙>의 프로듀서로 유명세를 탄 그램 맨슨은, 시리즈 전반을 조망하고 매일의 촬영 현장을 관리감독하
드라마 '설국열차' 쇼러너 그램 맨슨 - 인물, 계급, 세계관을 영화보다 세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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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캡처링 대디>(2013)로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차기작 <행복 목욕탕>(2016)으로 제40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한 나카노 료타 감독이 또다시 가족 이야기로 돌아왔다. 나카지마 교코의 소설 <긴 이별>을 각색한 <조금씩, 천천히 안녕>은 아버지가 치매를 앓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그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그 배경에는 대지진이 일어 모두가 숨죽여야 했고, 도쿄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며 다시금 열띤 기대감이 차올랐던 일본의 시간도 함께 흐른다. 세상과 호흡하며 가족의 역사는 씌어지고, 인물들은 가족 안에서 연결되다가도 홀로 싸워야 하는 순간들을 맞닥뜨린다. 나카노 료타 감독은 이번에도 인간이라는 존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넉넉한 마음을 한껏 발휘해 가족의 크고 작은 분투를 사려 깊게 기록했다. 그와 서면으로 나눈
'조금씩, 천천히 안녕' 나카노 료타 감독 - 기억은 잃어도, 마음은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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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희는 지금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이름이다. JTBC 역대 시청률 1위 기록을 경신하고 종영한 <부부의 세계>(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28.4%)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이른바 ‘내연녀’였지만, 시청자들은 캐릭터는 욕할지언정 배우에겐 애정을 표했고 한소희는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스타로 떠올랐다. 그가 연기한 <부부의 세계>의 다경 역시 납작한 표현으로 정의하기엔 훨씬 복잡한 면면으로 비혼·비출산 운동이 부상한 최근 분위기를 상기시킨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가부장제라는 비극을 담은 이 드라마에서, 아버지 여 회장(이경영)의 재력 덕에 자신의 욕망을 찾아갈 수 있는 다경의 결말은 매섭게 현실적이다. 지금 반드시 관찰하고 기록해야 할 이름 최상단에 위치할 배우 한소희를 만났다. 편하게 얘기하느라 인터뷰 내내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묻어나오는 모습까지 무척 매력적이었던 그와의 만남을 꼼꼼하게 옮겼다.
-<돈꽃>이나
[액트리스] '부부의 세계' 한소희 - 지금은 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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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속 세상에서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엑스트라로 살아가던 소년은 첫사랑을 만나 비로소 자아를 찾는다.‘13번’에서 하루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그는 묵묵히 페이지 한구석에서 도약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어쩌다 발견한 하루>). 배우로서의 로운도 그런 소년이었다. 2016년 SF9으로 데뷔해 다른 8명의 친구들과 함께 무대를 채워가는 동안, 그는 야구부의 까칠한 에이스 투수(<클릭 유어 하트>의 로운), 인기 없는 아이돌 그룹 멤버(<학교 2017>의 이슈), 누나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취업준비생(<멈추고 싶은 순간: 어바웃 타임>의 위진), 입사 동기를 짝사랑하는 인천공항 직원(<여우각시별>의 은섭)을 연기하며 조용히 그러나 성실히 자신만의 페이지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 끝에 로운은 지난 2019년 가을 방영된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 출연하며 누군가의 인생에서 엑스트라에 불과했을 시절을 지나 더 많은
'트롤: 월드투어' 목소리 연기한 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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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를 다녔고 책을 소재로 영상을 만들며 문학을 사랑하는 나는 한때 이과에 몸을 담고 있었다. 과학을 좋아하고 법의학 공부를 하고 싶어 했으므로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문과와 이과 구분이 그때만 해도 향후 진로를 결정하는 거대한 선택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이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미련 없이 이과를 선택했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화학, 수학1, 수학2 등을 숨차게 배우고 있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다시 한번 큰 결정을 내렸다. 문과로 전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예술과 철학을 좋아했다. 하루 종일 수학과 과학만 머리 빠지게 공부하고 있자면 즐거우면서도 숨이 막혔다. 유기화학 단원이 재밌어 죽겠으면서도 미술사 책에서 읽은 내용이 자꾸 생각났다. 파동 단원이 너무 흥미로우면서도 음악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생각들을 충분히 숙고해보기도 전에 배워야 할 분량과 풀어야 할 문제는 산더미처럼 밀려왔
혼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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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상에서 드라마 <부부의 세계>와 <인간수업>을 말할 때 자주 발견되는 표현은 ‘사이다 전개’ 그리고 ‘마라맛’이다. 마라맛은 강하고 자극적인 막장의 ‘매운맛’에서 진화해 어딘가 고급스럽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감상을 맛에 비유하기 시작한 것은 말초적인 자극에 익숙해진 요즘의 창작-소비의 형태를 표상한다. 하이라이트 구간을 인터넷 클립이나 밈으로 흡수하기 좋은 상황에서 화제성을 노리는 드라마들은 이 맛의 지표에 의거한 채 폭력과 가학에 둔감해지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의 하이퍼리얼리즘을 내건 두편의 드라마 <부부의 세계>와 <인간수업>을 보면서 캐릭터 재현과 폭력 묘사에 관한 오래된 질문을 다시 제기하고 싶어진 이유다. 여기에 한국 막장 드라마의 필수 요소처럼 여겨지는 것들- 가부장제와 신자유주의적 부의 묘사, 여성을 향한 멸시 등이 버무려지면 사방에서 폭죽처럼 불편함이 터져나온다. 여기저기, 해로운 것을 장르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
'부부의 세계'와 '인간수업'이 재현하지 말았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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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우지현)은 과거 겪은 어떤 일로 상처를 안은 채 서울역에서 살아가는 홈리스다. 어느 날 그는 굴다리를 지나다가, 굴다리 벽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는 미술 전공생 모아(심달기)를 만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다. 태산은 차 뒷면에 쌓인 먼지로 그림을 그려 모아에게 보여준다. 김나경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인 <더스트맨>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이 가까워지면서 서로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는 이야기다. 특히, 태산이 먼지로 그리는 그림은 보잘 것 없어보이는 존재라도 예술적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영화에 등장하는 ‘더스트 아트’를 보는 눈이 즐겁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내 차례>(2017) <대리시험>(2019) 등 여러 단편영화를 연출했던 김나경 감독은 전작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현재가 소중하니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더스트맨>은 어떻게 구상하게 된 이야기인가.
=크게 두
'더스트맨' 김나경 감독, “먼지처럼 잘 보이지 않는 존재라도 충실히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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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얄궂다. <빛과 철>은 교통사고 가해자의 아내 희주(김시은)와 피해자의 아내 영남(염혜란), 두 여성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는 교통사고의 진실을 추적하는데 큰 관심이 없다. 원하든 원치 않든 두 사람이 부딪히면서 각자의 사연, 감정, 그간 그들에게 있었던 일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영화는 영남과 희주 그리고 둘을 잇는 영남의 딸 은영(박지후) 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게 하면서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계산된 연기가 빛을 발하는 것도 그래서다. 덕분에 염혜란은 배우상을 수상했다. <빛과 철>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고함>(2007) <계절>(2009> <모험>(2011) 등 단편을 만든 배종대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배 감독은 “관객이 영화 속 등장인물과 함께 캐릭터의 마음을 하나씩 알아가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영화는 장기상영을 통
'빛과 철' 배종대 감독 - 타인의 마음을 읽는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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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쟁에 오른 감독들 사이에서 단연 많이 언급된 작품은 조은 감독의 <사당동 더하기 33>(이하 <사당동 33>)이었다. <사당동 33>은 가난한 북한이주민(월남피난민)과 농촌 이주민들이 모여 살던 사당동 주민 정금선 할머니의 4대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1986년부터 녹음기로 정금선 할머니의 목소리를 담았던 사회학자 조은은 1997년부터 카메라를 구해 금선 할머니네 가족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사당동 33>은 당시부터 2019년 11월까지의 기록이다. 그 사이 7살이었던 막내 손자 덕주는 마흔이 되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조은 감독과 함께 작업했던 이들은 성장해 다큐 감독, 방송국 카메라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누군가는 착실한 연구라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시대의 다큐라고 할 수 있는 뜨거운 작품 <사당동 33>을 만든 조은 감독을 전주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전작 <사당동 더하기 22>(이
'사당동 더하기 33' 조은 감독, "이 가족의 생존에 대한 의지와 강인함은 경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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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코스타의 <비탈리나 바렐라>의 한 장면에서, 남편 요아킴의 부고 소식을 듣고 폰타이냐스로 돌아온 비탈리나는 남편과 함께 살던 낡은 집에 홀로 앉아 말한다. “나는 당신이 죽었든 살았든 믿지 않아. 당신의 시체도, 당신의 묘지도, 관도 나는 볼 수 없었어. 정말 땅속에 묻혀 있긴 한 거야?” 이 말을 읊조리는 비탈리나의 육체는 침대에 비스듬히 기댄 채로, 거의 사진처럼 느껴지는 정지된 자세를 유지하며, 간신히 음성을 내뱉고 몸 바깥으로 눈물을 흘려보낸다. 그녀의 눈동자는 무엇을 바라보고, 목소리는 누구에게 전달되는가. 쉽게 생각하면 그녀는 실내 반대편에 위치한 벽과 제단을 쳐다보는 것이고,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뒤늦은 말을 발화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확증하지 못한다. 눈동자의 응시는 리버스숏을 담보하지 않고, 음성은 송신될 수 없다. 요아킴의 시체는 물론 묘지도, 관도 보지 못했다는 비탈리나의 말처럼, 영화는 죽은 요아킴에게 접근하거나 그
'비탈리나 바렐라'가 보여주는 대면과 접촉이 불가능해진 자리의 영화 이미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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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3일 <1917>이 곧 극장 개봉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1월 24일부터 중국의 모든 극장이 문을 닫은 지 정확히 15주 만에 들려온 개봉 소식에 영화계뿐만 아니라 관객도 기대감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앞서 5월 8일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은 4개월 가까이 전면 영업이 중단된 극장 엔터테인먼트 시설의 단계적인 영업 재개를 발표했다. 곧이어사전 온라인 티케팅을 통해 극장에서 대면 접촉을 피할 것, 영화관 내 좌석 이용률은 최대 50%이상 넘지 말 것, 좌석간 일정 거리 유지 그리고 철저한 방역과 실내 환기, 직원들의 마스크 착용 필수 등을 담은 극장 방역 지침을 발표했다. 온라인 티케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에서도 ‘포스트 코로나 할인티켓’을 선보일 예정인 가운데 정부의 이러한 발표로 벌써부터 극장 업계는 관객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다.
4월 29일 영화 정책을 담당하는 국가전영국이 주최한 영화산업 코로나19 대응방안 비디오회의에
[베이징] 코로나19로 영업 중단 4개월 만에 다시 문 여는 극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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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2014년 비가 “지금 어디야 XX놈아 내 전화 빨리 받아라/ 지금부터 내 여자한테 전화하면 죽는다”(<차에 타봐>)라는 노래를 당황스러울 만큼 감미로운 창법으로 불렀을 때? 2017년 “15년을 뛰어/ 모두가 인정해 내 몸의 가치/ 허나, 자만하지 않지/ 매 순간 열심히 첫 무대와 같이/ 타고난 이 멋이 어디가/ 30 sexy 오빠”(<깡>)라고 자랑하며 자만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을 수 없게 만들었을 때? 2018년 주연을 맡은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을 둘러싼 여러 해프닝 및 흥행 실패로 ‘1UBD(엄복동)=17만(총관객수)’이라는 단위가 자리 잡았을 때? 아니면… 6개월 전 유튜버 ‘호박전시현’이 “1일 1깡 여고생의 깡”이라는 제목으로 근육을 형상화한 상의에 체육복 바지 입고 교탁 옆에서 춤추는 영상(누적 조회수 327만)을 올렸을 때?
한 시대를 가진 적이 있으나 어느 순간부터 안타까운 선택을 거듭하
'놀면 뭐하니?', 자아도취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