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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콜렉숀: 익숙한 미디어의 낯선 도전'
2019년에 방영돼 화제를 모은 KBS 다큐멘터리 <다큐 인사이트-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이하 <모던코리아>)를 스크린으로 보는 기획전이 열린다. <모던코리아>는 1973년 창립한 이래로 공영방송 KBS가 축적해온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영상을 활용해 한국 사회의 주요 쟁점을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로, 드라마와 예능, 뉴스 등 여러 장르의 푸티지를 감각적으로 혼합해 호평을 받았다. 작품은 88서울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요구와 통일 문제를 비롯해 해태 타이거즈 흥망, 대우그룹 해체, 삼풍백화점 붕괴, 수능제도 도입과 휴거 소동을 다룬다. ‘KBS 콜렉숀’ 기획전은 온라인으로 상영되지 않으며, 장기상영회를 통해 극장에서만 상영한다. KBS는 전주영화제 초청을 기념해 영화제 기간 동안 KBS 1TV를 통해 <모던코리아>를 재방송할 계획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⑩] 'KBS 콜렉숀: 익숙한 미디어의 낯선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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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Dispatch; I Don’t Fire Myself)
이태겸┃한국┃113분┃2020년┃한국경쟁┃온라인
퇴직을 거부해 ‘면벽 배치’됐던 정은(유다인)은 해안가에 있는 전기 송신탑 수리 하청업체에 파견된다. 서울 본사에서도 그렇고 하청업체에서도 그렇고 정은은 그저 일을 하고 싶다. 하지만 하청업체에 파견되어서도 그녀에게 주어지는 일과 역할은 없다. 본사에서 정은의 월급을 책정하지 않자, 하청업체에서는 직원 수를 줄여야 하나 고민하고, 밤에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기 때문에 낮에 졸기 일쑤인 막내(오정세)가 잘릴 위기다. 노동문제를 단순히 피해자 서사로 그리지 않고 ‘노노 갈등’으로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맥락을 잘 표현한 영화다. <혜화, 동>의 배우 유다인이 서사를 온전히 이끌며 뭉클한 감정과 눈물을 이끌어낸다. 단편영화 <복수의 길>과 <소년 감독>을 연출한 이태겸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⑨] 이태겸 감독의 '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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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던 노련한 배우가 스크린에 등장한 줄 알았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동민(신정웅)이 한밤중에 전화를 받고 술취한 어머니 혜정(김혜정, 노윤정)을 데리러 가면서 겪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혜정을 연기한 배우는 놀랍게도 영화를 연출한 신동민 감독의 친어머니인 김혜정씨다. 감독의 어머니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속에서 직접 연기를 했다는 사실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이 사실은 이 영화의 강렬하고 독특한 매력을 이해하는 데 얼마간 유효한 실마리가 된다. 신동민 감독은 현장에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엄마 같으면 무슨 얘기하고 싶어?”라고 긴밀하게 소통하며 촬영에 돌입했다. 그러면서 배우 노윤정과 비전문배우 김혜정이 각각 해석한 어머니를 뒤섞으며 극영화와 다큐 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탄생시켰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4:3 화면비로 촬영했고, 롱테이크로 시간을 봉인해 인물들의 삶을 관객도 실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여러 영화적 도전 끝에 이따금 예리한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신동민 감독, “어머니 역 배우가 바뀌는 것이 영화적 훼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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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하고 싶지 않은" 주인공 현실은 공모전에 낼 마지막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마감까지 하루 남은 상황, 초조한 현실은 자리에 앉아 시를 쓰는 대신 무작정 집을 나선다. 그는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 영화 <생각의 여름>은 괴로운 과거와 현재를 외면하기보다 정면으로 부딪히기를 택한 주인공 현실의 성장담을 그린다. “할 말이 없어 시를 쓰는” 현실은, 힘겹게 시를 완성한 후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한 내일을 반갑게 맞이한다. <생각의 여름>을 연출한 김종재 감독은 "공모전의 결과보다는 주인공 현실이 변화하는 과정이 중요한 영화"라고 강조하며 말을 이어갔다.
-시를 쓰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이유가 궁금하다.
=심적으로 힘든 상황일 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설은 호흡이 너무 길어서 읽고 싶지 않았다. 반면 시
'생각의 여름' 김종재 감독 - 현실의 꿈, 현실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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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사무직인 정은(유다인)은 어느 날 지방의 하청업체로 파견된다. 송전철탑을 수리하는 하청업체 동료들은 정은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노골적으로 퇴사를 압박한다. 단편 영화 <복수의 길>(2005)과 <소년 감독>(2008) 등 전작에서 이주 노동을 다루었던 이태겸 감독은 <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이하 <파견>)에서도 하청 노동의 비인간적인 구조를 재현한다. “‘파견’이란 제목을 통해 노동 환경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아무리 절망적 상황에 있어도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송전철탑에 압도되었던 정은이 꿋꿋하게 삶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은 이태겸 감독이 이름 붙인 영화의 제목과 닮았다. <파견>에서 낮에는 송전철탑 수리업체 직원, 밤에는 편의점 알바생, 심야에는 대리운전 기사인 막내를 연기한 배우 오정세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수상했다.
-파견 노동에 관한 영화를 만
'파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이태겸 감독, “송전철탑이 곧 정은의 삶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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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 (Bait)
마크 젠킨┃영국┃89분┃2019년┃월드시네마-극영화┃온라인
더이상 필름으로 영화를 찍지 않는 시대지만, 최근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신작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를 포함해 필름 작업이 영국에서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국 작가, 감독 및 프로듀서 데뷔상을 수상해 영국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평가받은 마크 젠킨 감독의 <미끼> 또한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16mm 수동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다. <미끼>는 휴양지가 된 영국의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선택을 한 마틴과 스티븐 형제의 갈등을 그린다. 마틴은 매일 바다로 나가 물고기와 바닷가재를 잡아 마을 사람들에게 팔면서 생계를 꾸리는 반면, 형 스티븐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준 배에 관광객을 태우는 관광 사업을 한다. 외지인에게 집까지 팔아넘긴 스티븐에 대한 마틴의 증오심은 크다. 게다가 주차와 돛에서 나는 소음 문제가 불거지면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⑧] 마크 젠킨 감독의 '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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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This is Cristina)
곤잘로 마자┃칠레┃83분┃2019년┃월드시네마-극영화┃온라인
크리스티나와 수잔나는 학창 시절부터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크리스티나가 별거 중이던 남편과 재결합할 기미가 보이자 수잔나가 이를 강하게 말린다. 화가 난 크리스티나는 수잔나와 크게 다투고 다시는 그녀와 만나지않을 것임을 통보한다. 연락이 끊긴 사이 수잔나는 아버지의 빚을 대신 탕감해주느라 바빴고, 크리스티나는 다른 남자를 만나 새 삶을 시작했다.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남자들을 상대하느라 지친 두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다시 의지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나>는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영화다. <판타스틱 우먼>(2017)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하던 곤잘로 마자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⑦] 곤잘로 마자 감독의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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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자녀 살해 후 자살'(부모가 아이와 함께 자살하는 사건으로 흔히 말하는 '자녀동반자살'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편집자)이라는 안타깝고 불행한 소재를 그린 이야기다. 아빠가 사업을 하다가 큰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면서 선유와 그의 엄마는 혼자 남는다. 둘은 새로운 곳으로 이사한다. 선유는 전학을 가서 학교에 잘 적응하려고 하고, 심리가 불안정한 엄마도 직접 챙긴다. 선유 엄마는 고깃집, 공장을 돌며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과거가 둘의 발목을 붙잡으면서 새출발은 그들의 마음처럼 쉽지 않다. 일본영화학교 출신으로 단편 <바다를 건너온 엄마>(2011)를 만든 정연경 감독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첫 장편 연출작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소감을 말했다.
-이 영화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과거에도 부모가 아이와 함
'나를 구하지 마세요' 정연경 감독, “이 영화를 보고 살아갈 용기와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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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인해 은수는 다리를 다치고 조카 수민은 엄마를 잃는다. 힘든 시간을 겪은 은수와 그의 연인 예원, 수민은 서로를 보듬어주는 단단한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도 잠시 세 사람은 가족의 형태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 <담쟁이>는 은수, 예원을 통해 관객이 동성 커플에 대한 제도와 인식의 한계를 목도하고, 변화의 필요성에 관해 자연스레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뿔뿔이 흩어진 채로 다시 함께할 미래를 기원하는 세 사람을 보노라면 이들이 가족이란 울타리 내에서 다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담쟁이>를 연출한 한제이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어떻게 영화 <담쟁이>를 기획하게 되었나.
=시나리오를 쓸 때 영상을 먼저 떠올리고 거기서 시작을 하는 편인데, 처음 떠오른 것이 한 아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
'담쟁이' 한제이 감독 - 모두 함께 벽을 넘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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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유령, 자유인>은 스피노자와 퀴어를 연결시킨 영화다. 잘 알다시피 스피노자는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의 철학을 주장하고 추구한 철학자다. 그런 사상을 실천한 까닭에 유대인 공동체에선 이단자로, 기독교도 사이에서는 무신론자 유대인으로 낙인찍혀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괴물’ ‘유령’ ‘자유인’ 세 챕터로 구성된 이 영화는 성심과 은수, 두 동성커플과 스피노자를 연기하는 배우 성철의 사연을 연결시킨다. 일반적인 서사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 까닭에 각각의 챕터는 인과 관계에 따라 이어지지 않고,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이미지와 관념적인 내용의 자막들이 이야기 곳곳에서 끼어든다. 이 영화는 <아모르, 아모르 빠띠> <스피노자의 편지> 등 단편 작업을 통해 오랫동안 퀴어를 다뤄온 홍지영 감독이 자신의 생각과 세계관을 더욱 확장해 내놓은 첫 장편 연출작이다. 어릴 때부터 시네필이던 홍 감독은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
'괴물, 유령, 자유인' 홍지영 감독 - 스피노자로 읽는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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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Homeless)
임승현┃한국┃83분┃2020년┃한국경쟁┃온라인
갓난아이 우림을 키우는 한결과 고운은 찜질방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얼마 되지않는 전 재산은 부동산 업자에게 사기당했고, 고운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림은 찜질방에서 다리를 다친다. 한결은 배달 대행 서비스를, 고운은 전단지를 붙이며 성실하게 일하지만 우림의 병원비 내기도 막막한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결국 세 사람은 한결이 자주 배달을 가던 할머니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한결은 할머니가 미국으로 여행 가면서 잠시 집을 봐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하지만, 고운은 한결의 말이 어딘가 미심쩍다. <홈리스>는 현세대의 가장 큰 화두인 주거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떤 형식으로든 기성세대에 기대지 않고선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의 절망적인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어렵게 이룬 세 가족의 평화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래성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안정된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⑥] 임승현 감독의 '홈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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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 더하기33> (Daldongne 33 Up)
조은┃한국┃124분┃2020년┃한국경쟁┃온라인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달동네 중 하나였던 사당동에 살던 정금선 할머니 가족을 4대에 걸쳐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7살이던 막내 손자 덕주가 가족을 꾸리고 마흔이 될 때까지 꼬박 33년의 시간을 좇았다. 가난이 뼛속까지 스며들고 핏줄까지 스며들어 증손자 손녀에게까지 고스란히 대물림되는 모습을 담았다. 둘째 손녀 영주가 초등학교 2학년까지 학교를 다녔던 것처럼, 그의 딸 지현과 지선도 중학교 졸업장을 따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고 노래방 도우미로 취업한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 약자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하고 보고하는 작품이다. 사회학자 조은의 다큐멘터리로, 정금선 할머니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그의 다큐 <사당동 더하기22>와 책 <사당동 더하기25>로 나온 바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⑤] 조은 감독의 '사당동 더하기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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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고운의 대사는 영화 <홈리스>를 날카롭게 관통하는 메시지다. 사기를 당한 한결과 고운 부부는 갓난아기인 우림을 데리고 찜질방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두 사람은 배달 대행 서비스를 하고 전단지를 붙이며 성실하게 살지만, 우림의 병원비를 내기도 막막하다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이들의 삶은 조금씩 일그러져간다. <홈리스>를 연출한 임승현 감독은 한결과 고운이 처한 상황을 두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 지적한다.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누구도 관심주지 않은 문제들, 사각지대로 몰린 채 주저앉은 이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임승현 감독의 시선에 관해 물었다.
-어떻게 영화 <홈리스>를 기획하게 되었나?
=<홈리스>는 단국대 영화콘텐츠 대학원을 졸업하며 제작한 작품이다. 그동안 나는 공포 영화 위주의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작품을 준비할 때에는 우리의
'홈리스' 임승현 감독 - 시선 밖의 인물들에게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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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네 아들은 등록금만 내면 개나 소나 다 나오는 데 나온 주제에.” 상견례 장소에 먼저 도착한 엄마 오복(정애화)은 가족들 앞에서 예비 사위를 깎아내린다. 하지만 막상 예비 사돈까지 모두 모이자 그는 “듬직하니 참 좋네요”라며 상찬만 늘어놓는다. 가족들 앞에서는 한없이 괄괄하지만, 타인 앞에서는 그저 좋은 의견만 표현할 수 있는 여성. <갈매기>는 어머니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취해야 하는 진실한 이중성에 주목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복은 상견례를 마치고 기분 좋게 시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가 성폭력 사건에 휘말려 피해자가 된다. 오복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발생하고 가족들도 동요한다. 세상 모든 어머니가 “지겨운 현실을 벗어나 어디로든 떠나고 싶지만 계속 육지 주변에 살아야 하는 존재”처럼 보였다는 김미조 감독은 그래서 영화의 제목을 <갈매기>라고 지었다. 첫 번째 장편 작품으로 전주영화제 한국경쟁에 초청된 김미조 감독을 만나 우주에서 가장 복
'갈매기' 김미조 감독 - 외로운 갈매기 같은 성폭력 생존자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