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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19)에서 가장 낯선 풍경을 꼽으라면, 아마도 트랜스젠더 여성 유이(박정민)와 살인청부업자 인남(황정민)의 9살짜리 딸 유민(박소이)이 단둘이서 파나마 해변에 당도하는 마지막 모습일 것이다. 그에 앞서 펼쳐진 화려한 액션 장면들이 선사하는 익숙한 쾌감과 비교할 때, 트랜스젠더 여성과 어린아이가 ‘가족’이 되어 이국 땅에 정착하는 결말은 정적이지만 강렬한 정서적 체험으로 기억된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관계로 인식되어왔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여성은 자궁이 없기에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양육/훈육하는 데 있어서도 부적합한 신체를 가진 것- 모유 수유가 불가능한 인공가슴에서부터 비규범적인 성 정체성까지– 으로 각인되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트랜스젠더 여성과 아이가 함께 살아갈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자신과 용기가 있을까?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상상하는, 트랜스젠더 여성과 아이가 함께하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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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영화인들이 만들고 있는 어떤 영화든 사람들이 그걸 볼 수 있을 때까지는 완성되지 않는다.” 개봉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어서일까. 전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테넷>을 공개한 뒤 <씨네21>과의 서면 인터뷰에 응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테넷>이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어 무척 흥분된다”고 기뻐했다. <테넷>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통해 비선형적 스토리, 아날로그적 스펙터클, 가족 등 자신의 인장을 아로새기고 변주해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이다. 이 영화는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가 인버전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세상을 파괴하려는 무리를 막는 스파이물로, 전세계에 개봉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관객 사이에서 ‘N차 관람’을 부르며 팬덤 현상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 개봉 첫날인 지난 8월 26일, 그와 주고받은 긴 대화를 공개한다.
-<테넷>은 20년 전 당신이 연출한 영화 <메멘토>의 특정
'테넷'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시간은 영화적 스토리텔링의 비옥한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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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공간도, 여유도 사라져만 가는 코로나19 시대.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서로를 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영화를 만나 다시금 서로를 기억해낼 수 있기를 기원하는 이 문구는 개막작 공모를 통해 먼저 실현되었다. 박광수 집행위원장은 “여성 영화인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서로가 있음을 확인하는 일, 그리고 코로나19 시대의 경험을 아카이빙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1분 내외의 영상 50편을 모집했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공모 2일 만에 조기 마감되며 영화를 통한 연결에 목마른 이들과 공명했다. 뜨거운 반응을 불러온 공식 트레일러 <탈출: Send me out>을 만든 이옥섭 감독 또한 슬로건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좋아하는 뮤지션(황소윤)과 배우(전소니)를 마주 보게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제 관객이 영화와 눈 맞출 차례다. 9월 10일 목요일부터 16일 수요일까지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과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되는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9월 10일부터 16일까지, <씨네21>이 엄선한 추천작 8편과 2개의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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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부터 1956년 사이 출판돼 지금까지 70여년간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2018년에는 넷플릭스가 전체 7개 시리즈의 판권을 2억5천만달러(약 2966억원)에 구매해 여전히 그 가치를 입증받고 있는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그 주인공들의 조각상 14점을 세인트 메리 교회에서 볼 수 있다. 영국 요크셔 지방 베벌리 지역에 자리한 세인트 메리 교회는 영국에서 아름다운 중세 교회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지난 8월 21일 세인트 메리 교회측은 교회의 오래된 외벽조각상들을 사자 아슬란과 흰 마녀, 툼누스 등 <나니아 연대기> 속 주인공들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14점의 ‘나니아인’들은 지난 8월 16일 주교인 앨리슨 화이트에게 축복받았고, 교회 외벽으로 옮겨지기 전까지는 실내에 전시될 예정이다.
‘나니아인 조각상’에는 아슬란과 툼누스뿐 아니라 쥐인 리피체프, 날개 달린 말인 레게, 센타우루스인 글렌스톰, 독수리 파사이스, 유콘인 주얼의
[런던] 영국 세인트 메리 교회, '나니아 연대기' 모티브로 한 조각상 14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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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과자를 먹으며 스마트폰으로 SNS를 뒤적거리던 경위 한여진(배두나)이 몸을 일으켜 TV 볼륨을 키운다. 그가 경찰 고위 간부의 비리 뉴스에 반응하는 것은 자신의 직무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2>의 1회에서는 이쪽 귀로 들어와서 저쪽 귀로 빠져나가는 라디오 뉴스들, 망막에 들어와 정보로 취합되지 못하고 금세 까먹게 되는 뉴스 화면의 양이 너무 많았다. 생초보도 드라마를 이렇게 쓰진 않을 텐데. 왜일까?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이번 시즌의 이슈에 접점을 대지 못하다가 인물들의 좌표가 정리되는 2회부터 비로소 자세를 고쳐앉았다. 2년 전 서부지검 비리를 밝히는 특임팀 안에서 공조했던 검사 황시목(조승우)과 경위 한여진은 대검 형사법제단과 경찰청 수사구조혁신단 소속으로 각자 검찰과 경찰의 입장 양 끝에서 재회한다.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공덕동 서부 지검 포장마차는 사라졌고, 달라진 둘의 좌표에 한겹씩 덧씌워지는 장소가 함축하는 메시지는 이
드라마 <비밀의 숲2>, 검경 수사권 조정을 ‘비숲’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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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줄스 윌콕스)는 2차선 도로에서 느리게 운전하며 진로를 방해하는 앞차를 추월한다. 그 이후로 자꾸만 마주치는 차와 운전자.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스토킹하는 남자를 따돌리려고 애쓰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결국 제시카를 붙잡은 남자는 그녀의 약점을 파고들며 교묘하게 괴롭힌다. 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끝없이 쫓기는 제시카의 긴박한 심리가 잘 묘사된다. 문제는 붙잡힌 이후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그 어떤 긴장감도, 신선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제시카를 폭행하는 장면의 묘사가 지나치게 디테일하고, 추격전을 펼치는 후반부는 공간 활용조차 어색해서 영화에 몰입하기가 힘들다. 스릴러영화로서의 서스펜스는 사라지고 제시카에 대한 폭력 신만 남은 작품이다.
'아무도 없다' 제시카의 긴박한 심리가 잘 묘사되었지만 폭력적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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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막내인 샘(소니 코프스 판 우테렌)은 모두가 떠나고 외롭게 혼자 남겨질 미래를 걱정한다. 결국 그는 외로움을 견디는 훈련을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 이 훈련에 누군가가 함께한다. 바로 휴가지에서 마주친 테스(조세핀 아렌센)다. 마냥 밝은 아이처럼 보이는 테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테스는 어머니의 메모를 보고 아버지의 정체를 알아챈다. 아동문학가 안나 왈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테스와 보낸 여름>은 두 소년, 소녀의 성장을 밝고 따뜻하게 묘사한다.
인물 뒤로 펼쳐지는 휴양지의 청량한 색감을 잘 담아낸 작품이며, 다소 거친 편집도 요동치는 두 사람의 감정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고민에 휩싸여 있다가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곧바로 바다에 뛰어드는 두 사람의 순간들이 이 영화를 반짝이게 만든다.
'테스와 보낸 여름' 아동문학가 안나 왈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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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이앤 키튼)는 암 투병 중이다. 그는 연고가 없는 터라 조용히 혼자 생을 마감할 생각으로 실버타운에 입주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활발한 동료 셰릴(재키 위버)의 격려로, 학창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8명의 동료들과 함께 치어리딩 클럽을 결성한다. 그러나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멤버가 다리를 다치고, 그로 인해 치어리딩 클럽의 도전에 제동이 걸린다. 다이앤 키튼 주연의 영화 <치어리딩 클럽>은 죽음을 앞둔 상황일지라도 도전에 한계란 없음을 시사하는 작품이다. 할머니들의 어설픈 움직임도 사랑스럽게 보이게끔 하는 매력을 지녔다. 하이틴 무비 서사를 그대로 따르는 터라 지루한 감이 있다. 하지만 그 중심에 노년 여성을 세우는 설정만으로 얼마나 극이 새롭게 느껴질 수 있는지 여실히 증명한다.
'치어리딩 클럽' 죽음을 앞둔 상황일지라도 도전에 한계란 없음을 시사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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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의 한적한 농촌 마을에서 뺑소니 사건이 일어난다. 그로 인해 7살 보미(이진주)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아빠 두원(이희준)은 분노한다. 현장엔 보미의 할머니 문희(나문희)가 유일한 목격자로 함께 있었는데, 문희는 몇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는 상태라 사건 해결과 관련한 단서를 기억하지 못한다. 두원은 사태의 책임을 문희에게 돌리는 한편 동네에서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강 형사(최원영)의 도움을 받으며 범인을 찾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다 문희가 아무 의미 없이 말하는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사건 당일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는 걸 깨달은 두원은 문희와 함께 범인을 찾아나서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게 된다
<오! 문희>는 농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코믹 수사극이라는 장르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그런 의미에서 완성도 있는 기획영화로 평가 받을 수 있겠지만, 세부적인 지점에서 이 장르에 대한 기본적인 예상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치매 노인에 대한 전
'오! 문희' 정세교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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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왜 마스크 안 썼어? 아침에 네 얼굴 보면 불편하다고 했지.”톱스타 미리가 몸집이 큰 메이크업 아티스트 예지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예지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미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외모를 언급하고 지적하면서 온갖 멸시의 눈빛을 보낸다.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거나, 아파트 입구에서 넘어지는 등 예지의 사소한 행동은 모두 살과 외모로 연결되는 손가락질의 대상이다.
그런 예지 앞으로 어느 날 몇통의 샴푸와 USB 하나가 담긴 택배 꾸러미가 배달된다. USB의 동영상을 통해 예지는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샴푸통에 담긴 액체, 일명 ‘성형수’에 20분간 얼굴을 담그면 살이 찰흙처럼 말랑해져서 불필요한 살은 떼어내고 셀프 성형할 수 있다는 것. 주저하는 예지에게 영상 속 여성은 속삭인다. “20분이 너무 길다고요? 지금까지 당신이 외모로 고통받은 시간에 비하면 찰나입니다.” 과연 예지가 성형수의 마력을 거부할 수 있을까.
성형수에 얼굴
'기기괴괴 성형수' 외모에 집착하는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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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영화의 성평등 지수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에서 여러 삶을 다루다 보면 이런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것들이 이 시대에 영화 안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 잡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저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배우 겸 감독 문소리)
여성영화인모임이 기획한 인터뷰집 <영화하는 여자들>은 2020년 현역으로 활동하는 여성 영화인들을 고루 인터뷰한 책이다.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로 나누어 인터뷰이를 배분해 1990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 영화산업이 숨가쁘게 성장한 시간을 중계한다. <씨네21> 독자들에게는 수많은 인터뷰 기사들로 친숙할 얼굴을 ‘여성 영화인’이라는 키워드로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1990년대 인터뷰이로는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로 시작해, <씨네21> 전 편집장 안정숙, 영화감독 임순례, 편집감독 박곡지, 영화 마케터 채윤희, 배우 전도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영화하는 여자들>, 한국영화계의 능력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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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실에 처박혀 있던 딱딱한 식빵을 꺼내 토스터기에 넣었다.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그래서 데울 생각도 없었는데 충동적으로 토스터기에 넣어버린 작은 빵 한 조각. 집 안에 고소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자, 나는 약간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부드러운 빵을 한입 베어 무는 상상을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기대. 어떤 충만한 기대감이 나를 에워싸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기분일 때의 나 자신을 잘 안다. 대체로 재미있는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경험했을 때 이렇다. 흥분 상태인 것이다. 훌륭한 작품들을 통해 얻는 감정은 조금 특별하다. 뭘 하지도 않았는데, 그저 뭔가를 봤을 뿐인데, 희로애락의 범위가 확 넓어지니까. 정말 그렇다. 예상치 못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되짚어보기도 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지난 이틀간, 나는 이런 감정을 이끌어내는 좋은 작품을 봤다. 바로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
사실 2화까지는 좀 심드렁했다.
[강화길의 영화-다른 이야기] 오늘과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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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장> 제작 효성영화사 / 감독 한형모 / 상영시간 105분 / 제작연도 1959년
전후 한국영화는 장르적으로 또 기술적으로 나름의 방식을 모색해갔고, 비교적 신속하게 적절한 산업 규모를 형성할 수 있었다. 제작 시스템이 안정되다보니 영화편수도 크게 증가했는데, 1957년 37편이던 제작편수는 이듬해 74편으로 두배가 뛰었고, 1959년에는 111편을 기록하게 된다.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제작편수 100편대에 진입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영화가 1950년대 후반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며 대중성과 상업성을 추구할 때, 그 최전선에 있던 이가 한형모이다. 사회적 센세이션을 일으킨 <자유부인>(1956)으로 영화산업의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어낸 그는, 195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가 어떻게 할리우드영화의 장르 문법과 이에 조응하는 기술력을 받아들이고 토착화해냈는지를 살펴볼 때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장르와 기술을 동시에 고민하다
일제 말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시네마스코프로 완성된 로맨틱 코미디 '여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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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남매의 여름밤' 여기가 너희 할아버지 집이다
[정훈이 만화] '남매의 여름밤' 여기가 너희 할아버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