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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곱슬곱슬한 사람들이 모여 국물용 멸치 대가리를 따고 있다.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서 ‘언니네 국수’를 꾸려가는 이들은 점심 장사를 마치면 인간의 몸에 들어간 악귀를 사냥하는 ‘카운터’로 활동한다. 고등학생 소문(조병규)은 어느 날 머리가 곱슬곱슬해지는 일을 겪고 국숫집에 불려왔다. 후천적 곱슬머리는 저승과 연결되어 그 힘을 받은 이들의 공통점이란다. 악귀 잡는 일을 함께하는 동료가 되라니 소문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카운터 도하나(김세정)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필요한 말만 하고, 가모탁(유준상)은 입이 거칠다. 리더 추매옥(염혜란)이 이들을 대신해 쭈뼛거리는 신입의 이름을 참 많이 불러준다. 바로 앞에 두고도 ‘소문아, 소문이 너는, 소문이가’ 하는 식이다. 처음엔 군더더기 대사가 아닌가 싶었는데, 지긋한 목소리로 자꾸 불러주니까 가끔 눈물이 핑 도는 기분이 든다. 소문이 처음 출동한 날, 가정 폭력이 벌어지는 반지하 방 창문을 바로 뜯고 들어간 덕분에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피해자 곁에 머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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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거주하는 바비(빅 포니)는 기타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싱어송라이터다. 음악에 전념하고 싶지만 현실에선 그저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할 뿐이다. 어느 날 바비는 한국에서 공연 계획이 있다는 동료 빌리의 이야기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 그리고 빌리가 속한 밴드의 로드 매니저가 되어 함께 투어를 떠난다. 한국에 도착한 바비는 오래된 아빠의 사진 속 장소를 헤매다 어렵게 홍대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버스킹을 하던 이나(임화영)를 만난다. 바비와 이나는 즐겁게 공연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이나가 갑작스럽게 해외로 떠나면서 바비 혼자 한국에 남겨진다.
<뮤직 앤 리얼리티>는 자신의 정체성과 음악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주인공 바비의 변화를 조명한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한국이란 나라에서 비로소 음악이란 세계를 마음껏 누비게 된 바비의 행복감이 영화 전반에 잘 드러나 있다. 영화 곳곳에 <비긴 어게인> <원스> 등 기존
영화 '뮤직 앤 리얼리티' 자신의 정체성과 음악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주인공 바비의 변화를 조명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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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달빛이 산란하는 시간, 낮에는 인간 세상에 섞여 살지만 밤이 되면 세상을 구하러 다니는 늑대인간들이 출동한다. 주인공 프레디(손선영)는 아버지이자 늑대인간의 우두머리인 플래시아트(이승행)를 8살에 잃고, 슬픔을 뒤로한 채 늑대로 변신할 날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14살의 밤을 맞은 프레디, 고대하던 카리스마 늑대로 탈바꿈하나 싶었는데 그만 푸들이 되고 말았다.
늑대인간 무리는 푸들에게 우두머리를 맡길 수 없다며 배척하고 프레디는 리더의 자질을 입증하기 위해 잃어버린 가문의 보물을 찾아 나선다. 익숙하지 않은 몸으로 모험을 시작한 프레디에게 개의 눈높이로 마주하는 세상은 낯설고 무섭기만 하다. 다행히 유기견 배티(원에스더)가 나타나면서 프레디는 다양한 존재와 화합하는 법을 배운다.
<100% 울프: 푸들이 될 순 없어>의 이야기 줄기는 익숙하다. 본래 아버지의 것이었던 왕좌를 아들이 쟁취한다는 이야기는 수많은 선례가 있음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영화는 낯익은
영화 '100% 울프: 푸들이 될 순 없어' 차별과 편견, 동물권에 대한 메시지를 뭉근하게 전달하는 경쾌한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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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기억을 저장한 AI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AI 엔지니어 조지(테오 제임스)는 죽은 아내의 기억을 AI에 주입하여 생전의 아내를 되살리고자 한다. 이내 실험적인 프로토타입으로 J1과 J2를 완성하지만, 조지가 원하는 것은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인간적인’ 모습의 아내이기에 만족하지 못한다. 결국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정신부터 신체까지의 모든 것이 아내와 닮은 J3(스테이시 마틴)를 완성하게 되고, 조지는 함께 뛰고 춤출 수 있는 ‘인간적인’ J3의 모습에 기뻐한다. 그러나 조지의 욕망이 점차 J3를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조지의 세계는 예상치 못한 최후로 향한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성에 주목한 <아카이브>는 AI를 소재로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고유의 생각을 가진 AI를 기계로선 보호하되 인격체로선 존중하지 않는 조지의 태도는 인간성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 반문하도록 만든다. 또한 표정을 알 수 없는 J2를 클로즈업하여 이목구비가 없는 얼굴에
영화 '아카이브' AI를 소재로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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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녀가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며 청소일을 하는 카미유(오드리 토투), 식당에서 일하면서 아픈 할머니를 돌보는 프랑크(기욤 카네), 귀족 출신이지만 긴장하면 말을 더듬는 필리베르(로랑 스토커)가 함께 동거한다. 이들의 관계는 필리베르가 가난한 카미유를 도우면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 사람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 프랑크는 카미유 덕에 할머니를 요양병원에서 데려오고, 필리베르도 카미유의 아이디어로 연극 치료에 성공한다. 카미유 역시 두 남자로 인해 닫힌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다. 특별한 갈등이나 드라마틱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소소한 에피소드에서 일상적인 행복이 전해진다.
안나 가발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은, <마농의 샘>(1986)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클로드 베리의 2007년작이다. 이 영화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 젊은이와 늙은이, 남과 여, 교육받은 자와 교육받지 못한 자 등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마농의 샘>으로 잘 알려진 클로드 베리의 2007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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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여름, 바다에서 혼자 배를 타던 알렉스(펠릭스 르페브르)가 전복사고를 당한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다비드(벤자민 부아쟁)가 그를 구하는데, 이후 다비드의 어머니인 고르망 부인(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의 가게에서 알렉스가 일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진다. 하지만 시작부의 내레이션 목소리가 알리듯 영화 <썸머 85>는 단순한 성장 드라마가 아니다. “죽음이 취미라니,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알렉스의 목소리는 둘 사이에 숨겨진 비밀을 폭로할 기세다. 그렇게 죽음과 사랑, 어머니와 아들간의 관계, 사회적 성장과 성적 발달에 대한 미스터리한 회상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언뜻 <썸머 85>는 청소년기의 첫사랑을 다루는 사실적인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슈퍼 16mm 필름으로 촬영한 화면의 질감은 현실적이고, 다소 평범한 시대극 분위기까지 풍긴다. 그렇지만 대다수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들처럼 이번에도 단순한 장르물이 아니다. 잠재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영화 '썸머 85' 2020년 칸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이며, 오종의 19번째 장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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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실연의 장면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운디네(파울라 베어)는 새로운 상대가 생겼다는 연인 요하네스(야코프 마첸츠)에게 “날 떠나면 널 죽여야 해”라고 응수한다. 살기 어린 말을 내뱉으면서도 운디네의 얼굴은 당연한 운명을 따르는 양 차분하다. 요하네스와의 이별 후 박물관 관광 가이드로 일하던 운디네는 우연히 만난 산업잠수사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와 금세 사랑에 빠진다. 운디네는 크리스토프를 따라 물속을 유영하고, 크리스토프는 운디네에게 도시 개발의 역사를 배우면서 박물관과 호수를 오가는 신비로운 만남이 교차된다.
이들의 교류는 티없이 순정적이고 아름다운 동시에 어딘가 비현실적인 기운을 풍긴다. 그런 위태로움은 길을 걷던 두 사람이 요하네스 커플과 마주치고 운디네가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장면을 통해 결정적으로 심화된다. 이윽고 운디네가 크리스토프와 닮은 잠수부 조각상을 떨어트려 조각상의 다리 한쪽이 부러지면서 비극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운디네는
영화 '운디네' <내가 속한 나라> <피닉스> 등을 통해 꾸준히 역사적 조각을 질료 삼았던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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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레벨 16' 내년에는 탈출해야 할 텐데…
[정훈이 만화] '레벨 16' 내년에는 탈출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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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에 설레는 마음 대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본능이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정신병동 보호사를 짝사랑하는 간호사, <녹두꽃>에서 조선시대 개화주의자를 남몰래 마음에 품은 양반집 아씨를 연기했던 배우 박규영에게 <스위트홈>은 여러모로 새로운 도전이다. 그가 연기하는 지수는 현수(송강)의 집 위층에 사는 베이시스트로, 괴물이 나타나자 악기 대신 야구방망이를 드는 인물이다.
-웹툰에서 지수는 짧은 머리인데, 드라마에서는 긴 염색 모발을 묶은 채 등장한다. 원작과 다른 외모를 탄생시킨 과정이 궁금하다.
=지수는 베이스 기타를 다루는 인물이고, 외적으로도 강해 보여야 했다. 제작진이 머리카락을 탈색하고 색감을 넣으면 좋겠다고 했고, 긴 생머리의 반 정도를 탈색한 뒤 분홍색을 입혔다. 분홍색으로 정한 건 내 의견이었다. 탈색을 처음 해봤는데 5번 탈색한 끝에 분홍색을 입혔다. 왜 핑크였나면 개성이 강해 보일 것 같았고 분홍색 머리는 꼭 한번
'스위트홈' 박규영 - 괴물이 된다면, 눈물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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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홈> 원작 웹툰의 팬이었던 고민시 배우는 차갑고 퉁명스럽지만 발레를 너무도 사랑하는 고등학생 은유를 연기한다. 극중 은유가 그러했듯, 고민시 배우는 발랄함을 내비치며 촬영 당시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었다.
-은유 역으로 <스위트홈>에 합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 오디션을 볼 때 은유 역할만 정해놓고 본 건 아니었다. 윤지수, 박유리, 이은유 캐릭터로 가능성을 열어놓고 각각의 대사를 읽어봤다. 다 들어보신 감독님이 웃으면서 “은유를 하자”라고 말씀하시더라. (웃음) 은유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 매력적인 캐릭터다. 감정을 서툴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만큼 성장하는 모습도 뚜렷하게 보인다. 그런 점들 때문에 은유에게 200~300% 애정을 갖고 몰입했다.
-실제 괴물이 눈앞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연기를 해야 했을 텐데, 그런 점이 어렵진 않았나.
=처음엔 상황에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좀 필요했다. 안무가분들이 크로마키 의상을 입고 연기
'스위트홈' 고민시 - “300%의 애정으로 몰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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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칸 국제영화제가 <화양연화>(2000)를 클래식 부문에 선정했을 때 전세계 많은 영화 팬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화양연화>의 유명한 스코어인 <Yumeji’s Theme>를 신호 삼아 양조위와 장만옥이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는, 마법과도 같은 명장면을 스크린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화양연화>(2000)는 2000년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양조위)과 최우수예술성취상(장숙평 미술·편집감독, 크리스토퍼 도일·마크 리핑빙 촬영감독) 등 2관왕을 차지하며 왕가위 감독을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려놓은 걸작이다.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2위’, ‘<필름 코멘트>가 선정한 2000년대 최고의 영화 2위’, '<씨네21>이 선정한 1995~2008 베스트 무비 3위’ 등 전세계 영화 전문 매체가 선정한 역대 최고 영화 리스트 상위권에 빠짐없이 이
[인터뷰] 왕가위 감독이 직접 말하는 ‘화양연화 리마스터링’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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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대미를 장식할 패티 젠킨스 감독의 <원더우먼 1984>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몇 차례 개봉이 연기되면서 하반기 최고 기대를 안고 있었던 <원더우먼 1984>는 북미에서 극장 개봉과 OTT 서비스(HBO 맥스) 동시 공개로도 화제에 올랐다.
이번 영화는 전편의 배경에서 한참 떨어진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사랑을 잃은 원더우먼은 자신의 장체를 숨긴 채 인류와 함께 살아가는 중에 죽었던 연인 트레버와 재회한다. 과연 이번 영화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어떤 악당이 등장할지 궁금해진다. 전편의 센세이셔널한 성공을 이어갈 수 있을지, 씨네21 기자들의 반응을 보고 영화의 향방을 점쳐보자.
김현수 기자
패티 젠킨스 감독과 갤 가돗의 두번째 협업 <원더우먼 1984>는 전편에 이어 원더우먼이 지향하는 인간의 가치, 삶의 태도를 중시하는 영화다. 21세기에 등장한 꽤 많은 수퍼히어로들이 자기 파괴적인 성격을 지녔거나 트라우마에서
세상을 구할 여성 히어로의 두 번째 활약, <원더우먼 1984> 시사 첫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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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물이 그물망처럼 얽혀 서로의 욕망을 견제하고 각자의 생존을 갈구하는 <스위트홈>에서, 내레이션은 이도현이 연기하는 은혁의 몫이다. 그린홈에서 가장 이성적인 은혁은 중립적인 성격을 갖는 내레이션의 적자다.
-원작과 캐릭터 설정이 달라졌다. 웹툰의 은혁은 서글서글한 면도 있고 무엇보다 ‘오타쿠’ 설정이 강하지 않았나. 드라마의 은혁은 굉장히 이성적인 의대생으로, 웃음기 없이 예민한 인물이다.
=오히려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기존의 것을 따라가지 않고 나만의 것을 창조해낼 수 있으니까. 후반부에 수술하는 장면도 나온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인 만큼 연구도 많이 했을 것이고 수술 신이 허술해 보여선 안됐다. 원래 피가 나오는 영상을 잘 못 본다. 연기를 위해 실제 수술 영상을 찾아 봤을 땐 좀 메스껍기는 했지만 나중엔 적응됐다. 촬영장에 실제 의사 선생님이 와서 바늘 잡는 법과 꿰매는 법 등 하나하나를 알려주셨다.
-상상하며 연기해야 하는 신이 많은 작품
'스위트홈' 이도현 - “욕을 많이 먹을수록 성공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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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좋아하면 울리는>으로 주목받은 송강. <좋아하면 울리는>의 선오와 <스위트홈>의 현수 사이엔 태평양만큼의 거리감이 있는데, 놀라운 속도로 성장 중인 송강은 이질감 없이 사뿐히 극과 극의 캐릭터에 안착한다. <스위트홈>에서 송강은 괴물화가 진행 중인 현수를 연기한다.
-<좋아하면 울리는> 때는 900:1의 경쟁률을 뚫고 선오 역에 캐스팅됐다. <스위트홈>의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이응복 감독님이 <좋아하면 울리는>의 이나정 감독님과 친하다. 두분이서 같이 밥을 먹다가 이응복 감독님이 배우를 소개해달라 했고 이나정 감독님이 나를 추천하셨다고 들었다. 그렇게 감독님과 미팅을 했고, 현장에서 대본을 받아 즉흥연기를 했다. 현수가 몇개의 통장을 들고 가족 장례식장에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었다. 물티슈를 주시면서 ‘이게 통장이다 생각하고 해봐라’ 하셨고 그 상황을 연기했다. 그 모습을
'스위트홈' 송강 - “짝짝이 양말은 내 아이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