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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며 나도 깜짝깜짝 놀랐다.” <애비규환>의 토일(정수정)은 그런 캐릭터였다. 임신 5개월차에 폭탄선언하듯 아직 고등학생인 연인과 결혼을 발표하고, 쪽지 한장 없이 덜렁 짐을 싸서 아빠를 찾겠다며 고향 대구로 떠나버린다. 무턱대고 과감한 사람인가 싶다가도, 들여다보면 속 깊고 상냥해서 매력을 하나로 정의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 배우 정수정과 토일의 만남은 어쩐지 합이 좋다.
걸그룹 에프엑스(f(x))에서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영어면 영어, 거기다 돋보이는 이미지까지 더해져 부족함 없는 일명 ‘사기캐’였던 정수정은,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기점으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한층 더 궁금하게 만들며 진화의 재능까지 증명했다. 그의 첫 스크린 주연작인 <애비규환>은 그간 주어진 모든 시선과 컨셉을 벗어던진 채 맨 얼굴을 드러낸 영화다. 데뷔 시기로 보면 어느덧 10년차 배우지만,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묵밥을 퍼먹는 정수정은 마치 처음 보는
[액트리스] '애비규환' 정수정 - 꾸밈없이, 마음 가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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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규환>에는 세명의 ‘애비’가 있다. 5개월차 임신부 토일(정수정)을 키워준 아빠 태효(최덕문), 낳아준 아빠 환규(이해영), 그리고 토일의 남자친구 호훈(신재휘)이 그들이다. 같이 아이를 키우기로 해놓고 사라진 호훈을 찾아, 두 아빠와 토일, 토일의 엄마 선명(장혜진)은 함께 산을 오른다. 이들은 서로에게 내내 으르렁대다가도 토일이 점찍은 소원 돌을 들어올리기 위해서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힘을 합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한 최하나 감독은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조력을 첫 장편에 담아내 지난 10월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받았다. ‘유교의 폐해’를 외치던 토일이 사랑과 용기로 자신만의 가족을 꾸려가기까지, 최하나 감독은 토일의 곁에서 고민을 함께했다.
-지난 10월 25일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를 가졌다. 관객에게 처음으로 <애비규환>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단편을 만들 때
'애비규환' 최하나 감독 - 조금 모자란 가족이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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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게 달라지지 않아서 오히려 낯선 2220년의 대한민국.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인간(정경호)과 사람으로서 삶을 꾸리고 싶은 인공인간(강유석)이 종일 서울의 뒷골목을 헤매다 서로의 비밀을 맞닥뜨린다. 다분히 현재적인 미래의 풍경으로 두 남자를 불러낸 황승재 감독은 “100년 뒤에도, 200년 뒤에도 술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마치 구전설화와 같은 SF영화 <구직자들>을 만들었다. 전작의 실패라는 깊은 터널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개봉까지 하게 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황승재 감독을 만나 <구직자들>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구세주2>(2009) 이후 오랜만의 연출 복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흥행과 작품성 둘 다 못 잡은 감독으로서 영화산업으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았다. 글을 써도 연출을 맡을 수 없는, 굉장히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러다 인생 뭐 있나 싶어서 2016년부
'구직자들' 황승재 감독 - 일하는 당신은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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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의 한 작고 오래된 서점이 문을 닫았다. 서점을 지날 때나 볼일이 없을 때도 근처에 일이 있으면 종종 들러보곤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결국’이라는 건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은 그 서점이 처음 문을 열었던 십수년 전부터 있었다. 손님이 많진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오래된 습관이기도 해서, 마음에 드는 소박한 상점이나 가게들을 보면 이 가게는 어떻게 유지해 나가고 있을까? 유지가 될까? 벌이가 될까? 하는 걱정이 늘 앞선다.
그런 걱정은 가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방 외진 곳에 들어선 아파트를 보면 한두 가구도 아닌 이 많은 사람이 여기서 무엇을 하며 먹고살까 궁금하고, 싱가포르처럼 작은 도시국가의 만원 전철 틈바구니에서도, 프랑스의 한적한 지방 도시의 밤 골목을 걷다가 드문드문 불이 켜진 집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학문적 연구를 시작했다거나 어떤 통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저 막연
[이동은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어떻게 먹고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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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다 보면 악의와 음모로 작동하는 세상을 개인이 돌파하는 이야기에 익숙해진다. 주인공에겐 경로를 정하는 선택지가 주어지고 맞는 선택에 보상이 따른다. 드라마 바깥에선 성공한 사람의 후일담이 그렇다.
젊은이들의 창업기를 다룬 tvN 드라마 <스타트업>은 ‘엔젤’이 있어야 돌아가는 드라마다. 엔젤은 ‘스타트업 초기에 자금지원과 경영지도를 해주는 투자자’를 뜻한다. 또한 18살에 보육원에서 자립해 갈 곳이 없던 시절의 한지평(김선호)을 거둔 최원덕(김해숙)도 천사나 마찬가지다. 학생들을 상대로 핫도그를 팔던 원덕은 월세방 전단지 앞에 망연하게 섰던 지평을 자신의 가게에 머물게 했다. 박혜련 작가는 사람이 성장하고 다음 스테이지를 밟는 이야기에 머물 공간, 숨 돌릴 시간을 마련해주는 이의 역할을 크고 중요하게 두었다. 현실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냐 묻는다면, 현실이 이래서 그런 존재가 절실하다고 답하는 드라마다.
원덕의 손녀 서달미(배수지)는 스타트업 육성 공간
<스타트업>, ‘엔젤’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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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4일 집 앞 놀이터에서 실종된 장기 실종아동 최준원양(당시 6살)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야기의 한축엔 아버지 최용진씨와 동생의 실종과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가 큰 첫째딸 준선씨의 관계가 놓여 있다. 또 다른 한축엔 17년 만에 장기 실종 전담팀에서 재수사에 들어가 사건 해결의 희망을 품게 되는 수사 이야기가 있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수상했다.
'증발' 집 앞 놀이터에서 실종된 장기 실종아동 최준원양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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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넛이 탐험선 W를 타고 대산호초 탐험을 떠난다. 이들은 아름다운 산호초로 뒤덮인 호주 대산호초에서 아기 산호 코리를 만난다. 옥토넛은 가시관 불가사리의 공격으로부터 산호초를 지키기 위해 작전을 펼친다. 다양한 해양 생물과 바닷속 생태계를 보여주는 옥토넛 다섯 번째 시즌의 한 에피소드로, 환경오염 때문에 가시관 불가사리 숫자가 늘어나고, 그러면서 바다 생태계가 무너질 위협에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극장판 바다 탐험대 옥토넛: 대산호초 보호작전' 다양한 해양 생물과 바닷속 생태계를 보여주는 옥토넛 다섯 번째 시즌의 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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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후, 바이올렛 에버가든(이시카와 유이)은 길베르트 소령을 그리워하며 ‘자동 수기 인형’이라는 명목하에 대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바이올렛은 길베르트 소령의 거처를 알게 된다.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바이올렛 에버가든> 시리즈의 마지막 극장판이다. 끝을 맺는 작품인 만큼 수려한 작화에 편지의 문체까지 섬세히 공을 들였다. 등장인물들이 망설임 끝에 감정을 표하는 순간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 <바이올렛 에버가든> 시리즈의 마지막 극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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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 인공인간들이 넘쳐나는 2220년의 대한민국. 아픈 아들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인간(정경호)과 새 삶을 살아보려는 인공인간(강유석)은 일자리를 찾아 동행하다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에 실제와 연기가 섞인 대답을 내놓는, 배우와 일반인을 포함한 100여명의 인터뷰가 이들의 드라마 앞뒤로 붙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부문 초청작.
'구직자들'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부문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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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호주에 정착한 3명의 터키 이주민이 있다. 터키 아이스크림 장수 메멧(알리 아타이), 낙타 쇼맨 알리(에르칸 콜칵 코스텐딜) 그리고 사탕 장수 살림. 오스만제국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이들은 마을에서 한순간에 적이 돼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메멧과 알리는 고향으로 돌아가 전쟁에 가담하자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영국 부대에서 나온 웨인 대위(윌 소프)가 이들의 계획을 저지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갈리폴리로 향하는 연합군의 기차를 멈출 계획을 수립한다.
<터키쉬 아이스크림>은 전쟁으로 한순간에 적이 된 호주 속 터키인들의 좌충우돌을 그린 코미디영화다. 극중 인물들은 영어를 잘 못한다. 메멧의 말을 알리가 주로 통역하는데, 그 과정에서 오역이 발생하며 웃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영화는 마냥 코미디만 펼쳐내진 않는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전쟁이 빚어낸 비극의 농도가 짙어진다. 희비극의 중첩으로 짙어진 페이소스를 관객에게 주는
'터키쉬 아이스크림' 전쟁으로 한순간에 적이 된 호주 속 터키인들의 좌충우돌을 그린 코미디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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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에서 청춘의 고독과 우울을 그렸던 이시이 유야 감독이 이번엔 소년의 판타지로 잠수했다. 너무 착해 오죽하면 별명이 예수님인 마치다(호소다 가나타)는 만삭인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며 매일의 밥상까지 책임지는 소년 가정주부다. 버스에선 누구보다 빠르게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주변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겐 어떻게든 가장 먼저 달려가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어서, 지나치게 덜렁대고 실수투성이라는 큰 결점 때문에 자주 엉뚱한 코미디 포인트를 양산해낸다. 마치다는 어느 날 양호실에서 마주친 같은 반의 이시하라(세키미즈 나기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불운한 가정사를 지닌 동급생 소녀의 냉랭한 매력으로부터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한다.
<마치다군의 세계>는 남의 사생활을 캐는 데 지쳐 있는 연예부 기자 요시타카(이케마쓰 소스케)의 피로와 염세를 마치다와 대조하면서, 선의로 가득 찬 사람이 지닌 구원의 가
'마치다군의 세계'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에서 청춘의 고독과 우울을 그렸던 이시이 유야 감독이 이번엔 소년의 판타지로 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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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크고 엄청 귀여워요!” <바이러스쿨(VIRUSCHOOL)>의 주인공 ‘아티’ 인형이 밖으로 나서자 거리의 시선이 전부 아티에게로 쏠렸다.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3일간, <인디애니 아트 LAB: 열 가지 공상, 열 가지 공작>(이하 <인디애니 아트 LAB>) 프로젝트가 편집 상점 연남방앗간에서 팝업 쇼룸 이벤트를 열었다. <인디애니 아트 LAB> 프로젝트는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가 10명의 감독을 선정해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선경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사업팀 팀장은 “신진감독에게 경제적 지원과 일대일 멘토링을 제공하는 ‘콘텐츠창의인재동반사업’을 진행 중이었다. 올해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후원을 받아 <인디애니 아트 LAB>이란 확장 사업을 론칭했다. 10명의 감독은 모두 2016년, 2019년 콘텐츠창의인재동반사업의 수료생 중에 선정했다. 쇼룸에 전시된 상품을 통해 애니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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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에 솔직했던 그날 밤 이후, 사건은 무려 5개월이 지나서야 고백된다. 과외선생님과 고등학생 제자로 만난 토일(정수정)과 호훈(신재휘)은 임신 5개월차에 이르러 양가 부모를 찾는다. 커다란 옷을 벗어던지자 이미 안정적인 임신부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딸 앞에서 교사 커플인 토일의 부모가 사색이 된 반면, 레게 문화에 심취한 듯한 호훈의 부모는 당혹스러우리만치 낙관적이다.
영화가 임신 사실을 알아챈 주인공의 충격과 혼란을 가뿐히 건너뛰고, 양가 부모의 반응부터 담아낸 데는 이유가 있다. 나이 어린 부모의 좌충우돌기보다는 임신과 결혼 발표를 매개로 드러나는 가족의 의미에 집중하는 <애비규환>은, 어린 시절에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나선 토일의 여정에 관객이 기꺼이 동참하도록 이끈다. 이혼 후 어려움을 딛고 새 가정을 꾸렸던 엄마 선명(장혜진)과 15년 넘게 친아빠를 대신하기 위해 애써온 태효(최덕문)는 아직 그 마음을 알 길이 없고, 자기 뿌리를 찾으러 고향인 대구로 떠났던
'애비규환' 캐릭터의 힘으로 웃음과 애틋함을 동시에 견인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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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계 소녀 마리엠(카리자 투레)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할 위기에 놓여 있다. 낮은 성적 때문에 실업계 진학을 권유받자 그는 용기 내어 “다른 애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라며 일반계 진학 의사를 밝히지만, 선생님으로부터 “그러기엔 늦은 것 같구나”란 답변을 들을 뿐이다. 생업을 책임지는 엄마 대신 여동생 둘을 돌보고, 고압적인 태도로 구는 오빠 때문에 숨 쉴 곳도,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 마리엠으로서는 삶에 대한 모종의 기회를 박탈당한 기분이다.
좀처럼 마음이 풀리지 않던 마리엠은 우연히 레이디(아사 실라), 아디아투(린지 카라모), 필리(마리투 투레) 일행을 만나고, 학교를 벗어나 거리를 쏘다닌다. 더이상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디서든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마리엠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길에서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때론 백인 아이들의 돈을 뺏는 나쁜 짓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이 학교를 떠났다고 해서 악독한 범죄에 빠지거나, 인간으로서 추락하는 모습으
'걸후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