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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의 책장 속 책들이 방송에 소개되었다. 그 시작은 회사를 방문한 콘텐츠 제작사 대표님(이라고 쓰고 송은이님이라고 읽는다)에게 라이브러리를 소개하면서부터였다. 회사의 동료들과 10년도 넘게 소복소복 사모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을 보며 감탄하는 대표님에게 각자 책장 속 책들을 보여주면 어떻겠느냐는 나의 오래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자 타고난 방송인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기획이 급물살을 타며 우수한 프로그램으로 뽑혀 펀딩을 받고 편성까지 되고 나니 이야기를 시작한 인간이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말아 생각지도 않게 방송에 얼굴을 비추게 되었다.
돌아보면 데이터 속 사람의 마음을 읽겠다는 무모한 도전을 감히 시작하려는 순간 내가 명확히 안 것은 그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무지를 깨닫고 생각이 깊은 분들을 함께 일하는 동료로 모셔오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들이 읽고 있는 책을 따라 읽는 것이었다. 크지 않은 사무실 곳곳에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마음의 흔적을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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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홀>이라고, 2020년 평론가들이 뽑은 톱10 리스트에 꼭 오른 작품이야.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를 것 같다고 들었어. 근데 <PBS>에서 무료로 볼 수 있어.” “아, 그럼 봐야겠네.” “내용이 보스턴 시청 공무원들의 일상이야. 상영시간은 4시간 반.” “엥? 그걸 어떻게 봐?”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시티홀> 관람을 추천했을 때 친구들의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기사나 리뷰를 써야 하는 평론가들이나 와이즈먼 감독의 광팬이 아니라면 선뜻 내키지 않는 작품일 것이다. 지자체 공무원들의 일상적인 업무를 다룬 다큐멘터리인데, 러닝타임은 미니시리즈 수준이니까. 하지만 속는 셈치고 한번 본다면, 후회할 사람이 거의 없을 듯하다.
<시티홀>은 와이즈먼 감독의 45번째 장편영화로, 2018년 가을부터 2019년 겨울까지 보스턴 시청 공무원들의 일상 업무를 담았다. 관객을 위한 자상한 자막이나 내레이션도 없고, 주인공도 없
[뉴욕] 보스턴 시청 공무원들의 일상 다룬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다큐멘터리 '시티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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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이치(하라다 다이조)는 도쿄와 니가타를 왕복하는 심야 고속버스의 운전사다. 니가타에서 살고 있는 그는 도쿄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애인 시호(고니시 마나미)를 만나 소소한 일상을 보낸다. 어느 날,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그의 곁에 하나둘씩 모여든다. 도쿄에서 취직한 아들 레이지가 집으로 돌아오고, 이혼한 아내가 그가 운행하는 버스에 탄다. 리이치의 딸은 결혼을 앞두고 마음이 뒤숭숭하다.
<미드나잇 버스>는 혼란한 시기에 다시 모인 가족들이 서로 마음을 열고 이해하는 과정을 드린 드라마다. 극적인 사건은 없지만 카메라는 가족 구성원들이 상대의 감정과 생각을 알아가는 과정을 차분하게 담아낸다. 다케시타 마사오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영화 '미드나잇 버스' 떨어져 지내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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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능력으로 인간의 일을 도우며 함께 생활해왔다. 하지만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엘프들은 상처를 입고 지하 세계에 숨어 지낸다. 한편 특별한 능력이 없던 ‘엘피’는 인간에게 손재주를 배우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인간 세계로 떠나고, 제빵사 테오를 만나 그에게 디저트 만드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테오의 뛰어난 능력을 질투하던 동생 브루노의 계략으로 테오의 제과점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다.
<엘프>는 디저트 제작 과정부터 완성된 결과물까지 섬세한 시각적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빚으로 폐업할 처지에 놓인 인간의 현실과 문제를 해결해주는 당돌한 엘프들의 작법이 무리 없이 섞이며 웃음을 자아낸다.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따뜻한 교훈을 선사하는, 설 연휴에 아이들과 함께 보기 좋을 애니메이션이다.
영화 '엘프' 엘프가 있는 제과점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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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이 두려운 10대 소녀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애니메이션. 아버지의 재혼으로 양어머니와 의붓 자매 제니가 이사 오자, 미나는 침대를 빼앗기고 키우던 햄스터 비고마저 동물보호소로 보내야 할 참이다. 미나는 꿈속에서 사람들의 꿈을 연극 무대처럼 꾸미는 드림빌더들의 세계를 발견하고, 제니의 꿈을 조작해 제니가 현실에서도 자신과 비고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한다.
<드림빌더>는 덴마크 애니메이션 감독 킴 하겐 젠슨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잠자며 꾸는 꿈과 현실 사이의 관계를 애니메이션적인 상상으로 만들어냈다. 한국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2017)의 시각특수효과(VFX)에 참여한 토니 징크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다.
영화 '드림빌더' 꿈을 조작해 현실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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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임무를 마치고 우주 궤도를 돌던 오르비타-4호에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침입한다. 이후 오르비타-4호는 원인 불명의 사고로 지구에 불시착한다. 두명의 우주 비행사 중 한명만이 살아남았는데, 생존자의 회복 속도가 이상하리만큼 빠르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뇌전문의 클리모바(오크사나 아킨쉬나)가 연구소에 도착하고 클리모바는 잠든 우주 비행사의 몸에서 예상치 못한 변화를 발견한다.
<스푸트닉>은 미확인된 외계 생명체가 우주 비행사와 함께 지구에 도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외계생명체를 구현한 그래픽이 뛰어나고,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공생이란 설정이 <에이리언>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그만큼의 위압감은 없다. 긴 타임라인에 비해 긴장감과 볼거리도 부족하다.
영화 '스푸트닉' 잠든 우주인의 몸에서 깨어난 외계 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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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부터 운수가 좋지 않은 애나(말린 애커먼). 그날 밤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카페가 불에 홀랑 타버리고 만다. 풀이 죽은 애나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친구 샬린은 비밀리에 운영되는 여성 전용 파이트 클럽에 그녀를 초대한다. <칙 파이트>는 점점 인생이 꼬여만 가는 애나가 파이트 클럽에서 삶의 의미를 되찾는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 액션 영화다.
주목할 것은 상대방을 녹다운시키는 마지막 한방이다. 이를 슬로모션으로 담아내며 격투의 타격감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한방을 위해 영화가 쌓아야 할 분노의 빌드업은 상대적으로 허술하다. 애나의 분노는 링 밖의 자신의 삶에서 발생하는데 영화는 이를 단편적으로만 다룬다. <바이 바이 샐리>와 <컴 백 투 미> 등을 연출한 폴 레이든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 '칙 파이트' 여성 전용 파이트 클럽에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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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차 타지에 온 이브(루시 드베이)는 클럽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한 남자(아리 보르탈테르)를 만난다. 이브는 매너와 유쾌한 춤 솜씨를 겸비한 남자와 즐겁게 어울리다가 함께 클럽 밖을 나선다. 이브가 남자의 차에 타는 순간 남자는 그대로 이브를 납치한다. 알고 보니 남자는 여성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그 모습을 포르노로 제작하는 살인마였던 것.
영화는 유럽의 동화 <빨간 모자>를 모티브로 차용해 범죄 스릴러에 대입한다. 영화 속 원전의 흔적을 엿볼 수 있지만 <늑대와 빨간 재킷>은 교훈적인 동화보다는 말초적인 유희를 겨냥하는 오락물에 가깝다. 영화는 오로지 추격의 재미에만 기댈 뿐, 개연성을 고려하지 않은 이야기는 끊임없이 덜컹거린다. 더욱이 살인마가 촬영한 납치 영상을 일부 보여주어 관객에게 불필요한 불쾌함을 덧댄다.
영화 '늑대와 빨간 재킷' 동화 <빨간 모자>를 모티브로 삼은 범죄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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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 뉴욕에서 살고 있는 빌리(아콰피나)는 고향 중국에 사는 할머니(자오슈젠)와 종종 통화하며 일상을 공유하고 위로를 주고받는다. 작가의 꿈도, 경제적 독립도 이루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막막하게 보내던 빌리는 어느 날, 할머니가 폐암 4기 진단을 받았으며 살날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음을 전해 듣는다. 당장 할머니에게 전화하겠다는 빌리에게 부모님은 할머니에게는 병에 걸린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며, 내색하지 말라고 한다. 아버지(티지 마)와 어머니(다이애나 린)의 만류에도 고향을 찾아간 빌리는 ‘착한 거짓말’을 하며 할머니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가족들 틈에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실제 거짓말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시작하는 영화<페어웰>은 중국계 미국인 감독 룰루 왕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중국의 도시 창춘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미국 이민 2세대 주인공 빌리의 혼란과 갈등을 통해 가족과 삶, 자아
영화 '페어웰' 아시아계 최초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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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장꼬장한 할아버지 에드(로버트 드니로)는 마트에서 점원과 오해가 생겨 실랑이를 벌이다 발을 다친다. 딸 샐리(우마 서먼)는 걱정된 마음에 자신의 집에서 같이 지내자고 제안하고, 에드는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자기 방을 내주고 지저분한 다락방 신세를 지게 된 손자 피터(오크스 페글리)는 결국 에드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가족들은 모른 채 말이다.
<워 위드 그랜파>는 방 하나를 두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가족 몰래 전쟁을 치르는 가족 코미디 영화다. <미트 페어런츠>에서 사위와 싸운 전적이 있는 로버트 드니로는 이번 영화에서 손자랑 싸운다. 그는 헬리캠 등과 같은 첨단 기술을 이용하여 날쌘 손자와 대등한 대결을 벌인다. 둘의 싸움의 재미 포인트는 가족들 몰래 진행된다는 점이다. 마치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듯 샐리와 그녀의 남편 아서(롭 리글)는 영문도 모른채 에드와 피터가 심어놓은 함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웃음을 선사한다. 이들의 싸움은 개인전으로 시작해 팀
영화 '워 위드 그랜파' 방 하나를 사이에 둔 할아버지와 손자의 못 말리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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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침공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외계인 연구로 유튜브에서도 화제가 된 맹봉학 박사가 있다는 벙커에 8명의 인간이 모였다. 정작 이들을 구원할 맹봉학 박사는 보이지 않고, 이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한다. 이런 상황에 첫눈에 반했다며 썸 타는 젊은 남녀도 있고, 제대로 가입신청서 내고 정모도 나와야 멤버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불청객을 배척하는 인간도 있다. 그렇게 각색으로 모인 인간들은 갑작스런 외계인의 벙커 침투 이후 감염자를 색출하는 새로운 미션을 떠안게 된다.
정작 외계인은 나오지 않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재치 있는 아이디어와 유머로 승부하는 SF 코미디로, 스펙터클 없이 배우들의 말싸움으로 장르적 긴장감을 만들고자 하는 패기가 눈에 띈다. 그중에는 존 카펜터 감독의 <괴물>의 가장 유명한 장면을 대놓고 오마주한 신처럼 귀여운 순간도 있다. 제작비 2천만원으로 3일 만에 촬영을 끝낸 프로젝트임에도 오락성을 목표로 삼았다
영화 '이 안에 외계인이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재치 있는 아이디어와 유머로 승부하는 SF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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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제로>는 현대인의 고질병인 스트레스를 먹고 자란 거대 불괴물에 맞선 슈퍼 대디 히어로물이다. 한준수 박사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을 위한 세기의 음료, 스트레스 킬러를 개발한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도심 곳곳에 불괴물이 나타나고 대한민국 전역이 혼란에 빠진다. 불괴물의 습격으로 직장을 잃은 짱돌은 친구인 고박사, 타조와 함께 스트레스 킬러를 모방한 스트레스 제로를 판매하는데, 뜻밖에 스트레스 제로가 불괴물을 물리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스트레스 제로>는 횟집에서 탈출하려는 물고기의 이야기 <파닥파닥>(2012)으로 독특하고 예리한 상상력을 선보였던 이대희 감독의 신작이다. <파닥파닥>이 어른의 눈높이에 어울리는 작품이었던 데 반해 <스트레스 제로>는 좀더 친숙하고 친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스트레스로 인해 괴물이 나타나고 이를 물리친다는 건 단순한 설정이지만 40대 아저씨 3인방을 주인공으로
영화 '스트레스 제로' 스트레스를 먹고 자란 거대 불괴물에 맞서는 슈퍼 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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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산부인과 병원에 한 소녀가 찾아온다. 의사 알도(카롤리 하이덕)는 손님으로 방문한 적 있는 클라라(아비겔 소크)를 알아보고 대화를 나누는데, 클라라는 어쩐지 알도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눈치다. 클라라에겐 아픔이 있다. 부모가 아직 수용소에 있다고 믿는 클라라는, 부모에게 편지로 알도와의 새로운 일상을 공유한다. 그렇게 알도는 부모가 필요한 청소년기 클라라의 아버지가 되어주는데, 둘의 관계를 의심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알도를 괴롭힌다. 그러던 와중 클라라는 알도에게도 자신과 같은 아픔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제목과 영화의 배경에서 드러나듯 홀로코스트 이후를 다룬 영화다.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그 실상을 들여다보는 영화는 많지만, 이 영화처럼 모든 것들이 지나간 ‘그다음’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드물다. 그렇게 떠난 사람만큼 남겨진 사람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보는 영화. 헝가리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홀로코스트 이후,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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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고대하던 베이커리 오픈을 앞두고 사라(캔디스 브라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베이커리 오픈이 무산되며 그 자리에 다른 가게가 들어설 위기에 처하자, 사라의 딸 클라리사(섀넌 타벳),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라의 엄마 미미(셀리아 아임리), 사라의 오랜 친구 이사벨라(셸리 콘)는 사라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로 마음먹는다.
사라의 동창이자 미슐랭 레스토랑 출신 제빵사 매튜(루퍼트 펜리 존스)가 셰프로 합류하며 마침내 베이커리 ‘러브 사라’가 문을 연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이들의 베이커리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민자 손님들을 관찰하던 중에 아이디어를 떠올린 미미는 러브 사라를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을 위한 추억의 빵과 케이크를 파는 ‘고향 같은 베이커리’로 만들자는 제안을 내놓는다.
엘리자 슈뢰더 감독의 첫 장편영화 <세상의 모든 디저트: 러브 사라>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사라를 대신하여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베이커리를 운영하며
영화 '세상의 모든 디저트: 러브 사라' 세상을 떠난 사라의 꿈을 위해 가족과 친구가 뭉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