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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보편적인 이야기다. 20년을 함께한 중년의 동성 커플 샘(콜린 퍼스)과 터스커(스탠리 투치)의 삶에 균열이 생긴다. 터스커가 치매에 걸린 것. 한번 시작된 관계의 균열은 점점 더 쪼개져 벌어질 일만 남았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터스커는 샘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여행을 제안한다. 작은 밴을 몰고 잉글랜드 북부를 여행하는 두 사람은 보통의 연인처럼 서로의 가족을 만나고 파티에 참석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터스커는 생기가 넘치고 치매에 걸렸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우주의 별이 폭발하기 직전에 가장 밝은 빛을 낸다는 ‘슈퍼노바’ 현상처럼.
그러나 병증은 점점 심해지고 두 사람은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2021년 봄, 국내 개봉을 준비 중인 <슈퍼노바>는 배우 출신의 해리 매퀸 감독과 극중 인물처럼 20년 지기라는 콜린 퍼스, 스탠리 투치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세사람을 화상으로 만나 영화의 시작에 대해, 샘과 터스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터스커
콜린 퍼스와 스탠리 투치 주연의 '슈퍼노바', 20년을 함께한 동성 커플과 치매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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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정은 부질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와 같은 굵직한 사건을 언급하며 김용진 감독은 ‘그때 신문사가 정도를 걸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전직 KBS 기자이자 <뉴스타파> 대표인 김용진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탐사보도 매체인 <뉴스타파>의 다큐멘터리영화답게, 적확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김용진 감독은 “관객이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언론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나는 숟가락만 얹었다”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면서도, 기자의 질문에 영화의 작은 요소까지 꼼꼼히 짚어주며 답한 김용진 감독과의 대화를 전한다.
-처음에 어떻게 영화를 기획하게 됐나.
=현재 한국 언론 생태계에 대한 고민이 계속 있었다. 마침 지난해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창간 100주년이었고
'족벌 두 신문 이야기' 김용진 감독 - “한국 언론은 본래의 역할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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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복판에 우뚝 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건물. 언론사 사옥이 도심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을 만큼 두 언론사의 역사는 오래됐고 영향력도 막강하다. 이 두 언론사의 화려한 외관을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시작해 정경계로 영역을 넓혀 미디어 재벌로 거듭난 두 신문사의 기원을 파고드는 영화가 개봉했다.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일등신문’, ‘민족정론지’를 자칭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100년 역사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자백> <공범자들> <김복동> <월성> 등 다큐멘터리 영화를 꾸준히 제작해온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다. 방대한 양의 신문 기사, 영상과 당시 기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영화는 두 신문의 과거와 현재를 세세하게 파헤친다.
“언론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 권력이 될 수 있습니다. 언론은 날이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100년 역사 다룬 다큐멘터리 '족벌 두 신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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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이나 피부과에서 꼼짝없이 누워 장시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 복병은 음악이다. 비틀스의 <Yesterday>를 가야금으로 연주한 버전이나,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가슴 아파도>를 피아노 솔로로 편곡한 음악을 반복해서 듣다보면 좋은 의도- 익숙한 팝이나 가요를 어렵게 느껴지던 고전 악기로 편곡하여 두 장르의 화합을 도모하고 확장된 음악적 경험을 선사하겠다- 가 아름다운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재차 깨닫곤 한다.
애초에 대중음악은 클래식과 박자의 강세부터 다를뿐더러 가창곡의 경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감정이나 리듬감에 의해 음의 길이나 음악적 뉘앙스가 크게 바뀌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미묘하면서도 결정적인 요소가 편곡과 연주를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기보 단계에서 제거되기 십상이다. 마치 영어 가사를 한글로 받아 적어 읽을 때 유실되는 발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악기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데, 피아노로
[Music] 《브리저튼》(Bridgerton) OST 세련된 편곡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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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누자면 단골이 될 수 있는 사람과 단골이 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손님으로 어느 가게를 자주 가서 단골의 자격이 충분해졌더라도 주인이 나를 아는 체를 하는 순간, 그곳을 더는 들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누군가는 분명 이런 태도가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 같다.
과거 일을 예로 들자면 이런 식이다. 예전 집 근처 편의점에서 늘 비슷한 시각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먹었는데 어느 날 직원이 말을 건넸다. “이 아이스크림 맛있죠? 저도 맛있더라고요.” 대충 그렇다고 쑥스러워하며 대답은 하고 나왔지만 그 이후부터는 다시는 거기에 가지 못했다. 이유는 바로 내 존재를 들켜버린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비밀 요원도 아니고, 부끄러운 짓을 하지도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익명의 ‘손님1’이고 싶은데, 한순간 ‘이 근처에 살고, 매일 특정 아이스크림을 비슷한 시간대에 사 먹는 20대 남자’로
[이동은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단골이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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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다큐멘터리에 대한 책을 쓴다면 김옥영 작가만큼 잘 써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다큐멘터리 감독, PD, 작가 등 생산자를 꿈꾸는 사람에게 그만큼 다큐멘터리 제작 지식과 방법론을 실무적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40년 동안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제작자로서 활동한 김옥영 작가는 다큐멘터리의 이론을 설명하되 한국 다큐멘터리사에서 중요하다 꼽히는 작품들의 장면을 예시로 들며 ‘다큐의 기술’을 설명한다. 사람들은 극영화와 달리 다큐에는 만들어지지 않은 진짜 현실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다큐 속에서 독특한 사건을 발견할 때 그것이 ‘실화’라고 여겨 더 크게 감동받는다.
이 책은 거기서 시작한다. “미디어와 테크놀로지가 발달하고 (중략) 무엇이 진짜 현실인지 구분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 것이다. (중략) 이 시대에 ‘현실’은 어디에 있는가.”(21쪽) 이 질문에 책은 ‘있는 그대로’는 없다고 단언한다. 중요한 것은 결국 감독이 본 것이 무엇인가. 감독
씨네21 추천도서 <다큐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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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쉬운 언어’로 ‘삶의 구체성’을 담은 서정시를 써서 수십년간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시 60편 및 시의 배경이 되거나 계기가 된 이야기를 한데 모은 책이다. 시를 읽고 뒤이어 실린 산문을 읽어가다 보면 한국 현대사와 문화사의 흐름에 몸을 싣는 기분이 든다.
이동원 가수의 구슬픈 노래로도 유명한 시 <이별노래>는 1970년대 태평양화학(현재 아모레퍼시픽)의 사보 ‘향장’에 처음 발표되었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1987년,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생각하며 쓴 시 <부치지 않은 편지>는 고 김광석 가수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부르고 녹음한 노래의 노랫말이기도 했다.
산문집에는 정호승 초기 시의 정수로 꼽히는 <서울의 예수>도 실려 있다.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
씨네21 추천도서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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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여학교 소설들이 현대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억압적인 규율의 틈새로 학생들이 자유를, 그리고 사랑을 갈망하기 때문이리라. 그 갈망에 상상을 입히면 흥미로운 시대물이 탄생한다. <1931 흡혈마전>이 그런 소설이다. 1931년의 식민지 조선, 운 좋게 학업을 지속하게 된 학생 희덕은 현모양처를 키우고자 하는 여학교의 교육 이념을 벗어날 길을 꿈꾼다. 그런 희덕 앞에 새로운 기숙사 사감 계월이 등장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서 작은 마을에 별안간 등장한 소녀 일레븐이 초능력자였던 것처럼 <1931 흡혈마전>의 계월도 심상치 않은 존재다. 그녀는 흡혈귀이고, 사람의 피를 빨기 위해 상대를 기절시키거나 기억을 삭제하는 능력을 발휘할 줄 안다. 우연히 계월의 비밀을 알게 된 희덕은 계월을 쫓아다니고, 그렇게 모험극이 시작된다. 희덕의 모험을 따라가며 독자는 한때 국사 시간이나 혹은 책이나 다큐멘터리 등으로 접한 사료의 조각들이 오밀조
씨네21 추천도서 <1931 흡혈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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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의 전기를 읽을 때 그 시절의 기록 속에서 언급되는 영화, 음악을 찾아보며 독서를 병행하면 재미가 배가 된다. 프랑스 대중문화에서 가장 유명한 연인이었던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의 이야기를 엮은 <두 개의 나> 역시 그렇게 읽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세르주 갱스부르가 브리지트 바르도와 폭풍 같은 사랑에 빠져 작곡한 에로틱한 노래 <사랑해...아니, 난>(Je t’aime...Moi non plus)이 흘러나올 때 그 곡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는 게 너무 흥미진진해 가십의 짜릿함이 느껴졌다. 브리지트 바르도와 세르주 갱스부르가 녹음실 안에서 밀어를 나누며 환상적인 곡을 완성했지만 남녀의 신음이 4분35초 동안 들려오는 이 곡은 발표될 수 없었다. 당시 유부녀였던 바르도의 남편 군터작스가 노발대발하며 곡 발표를 막았기 때문이다. 바르도에게 버림받은 갱스부르가 그 후 만난 여성이 제인 버킨이었고, 곡은 제인 버킨의 목소리로 재녹음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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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두 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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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검은 우유 당신을 우리는 밤에 들이켜네
우리는 당신을 한낮에 들이켜네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우리는 들이켜네 당신을 저녁에도 아침에도 우리는 들이켜고 들이켜네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그의 눈은 파랗지
납총알로 그는 당신을 관통하네 정확하게 관통하네
한 남자가 그 집안에 사네 너의 금빛 머리칼 마르가레테여
그는 자신의 사냥개를 우리에게로 몰아대지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을 선물하네
그는 뱀들과 노네 꿈을 꾸네 죽음은 독일에서 온 거장 -<죽음의 푸가> 중에서
시를 읽기 위해 시인의 삶을 알아야 할까. 윤동주의 시를 읽기 위해 그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해야 하는 것만큼 파울 첼란을 읽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아는 편이 좋다. 루마니아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유대인 학교에서 히브리어로 교육받았으나 독일 문학을 좋아한 어머니의 뜻대로 집에서는 독일어를 사용했던 파울 첼란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 생환했다. 시를 쓰기 시작하고는 파리에 정
씨네21 추천도서 <파울 첼란 전집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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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이 지나가면 봄이 온다. 어김없이 봄이 온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과 거리를 두고 지내야 했던 겨울이지만, 봄은 거리를 두지 않고 성큼 다가오고 꽃이 피면 거짓말처럼 지금의 추위는 잊힐 것이다. 다시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사람과 거리를 두고 지낸다 해도,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가까이 둘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바로 독서가 아닐까. 이달의 책 다섯종을 소개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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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는 한국에서는 조금 생소한 도시국가 또는 자치국가가 있다. 매년 수많은 성직자와 관광객이 다녀가는 바티칸시국. 이탈리아 영토 안에는 바티칸시국 말고도 도시국가 형태의 나라가 있는데 바로 산마리노 공화국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있었고 도시국가 개념에 대해 이탈리아인들은 대체로 익숙한 편이다. 로마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도시국가다. 그렇기에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한번쯤 자신의 나라를 갖고 싶다는 꿈을 꿔볼 만도 하다.
1960년대 어느 한여름, 볼로냐대학 엔지니어과를 졸업한 조르조 로사는 어느 영토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만의 영토를 갖고 싶다는 꿈을 꾼다. 120평 정도의 땅,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 영토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려보고 싶었다. 그는 이탈리아 북동쪽에 위치한 리미니에서 배를 타고 12km 떨어진 곳에 자신의 섬을 짓는다. 로사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세간에 입소문으로 전해지던 조르조 로사의
[로마] 실화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 '장미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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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을 미친 듯이 달리기만 했죠. 달려야만 했고, 불안했고…”, “내 페이스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냅다 달렸어요. 전력 질주.” 달리기 얘기인가 했는데 일, 아니 삶에 관한 고백이었다. 4부작으로 방송된 Mnet <달리는 사이>는 데뷔 4년차부터 14년차까지 20대 여성 가수 다섯명이 여행하며 러닝 코스를 함께 달리는 프로그램이다. “달릴 때 숨차면 오히려 속도를 낮춰. 그래도 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니), “저는 늘 앞일을 걱정해서 하루를 망쳐왔어요. 그런데 오늘 달린 산길은 커브가 많으니까 다음에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거예요. 다음 길에 가서야 알 수 있더라고요. 가서 보면 되니까 아무 생각하지 말자” (유아) 등 이들이 달리기를 통해 인생을 배우는 과정이 아름다운 풍광 속에 펼쳐진다.
‘달리기’와 ‘일하기’의 의미가 겹치고, 비슷한 생활 속에서 비슷한 압박감을 느껴온 동료와 가까워진 출연자들은 점점 깊게 담아두었던 얘기를 꺼낸다. “무
Mnet '달리는 사이' - 느려도, 쉬어도, 멈춰도 괜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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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약속한 은서(김가은)와 지상(정재광) 커플은 인사를 드리기 위해 명절 때 집을 찾는다. 대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큰엄마(정영주)는 전을 부치다 말고 장보러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여자들만 데리고 봉고차에 오른다. 이들은 예상치 못한 큰엄마의 행동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외식, 쇼핑, 드라이브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큰엄마의 미친봉고>는 명절 때마다 전을 부치고, 제사를 준비하던 여성들이 부엌을 박차고 나가면서 벌어지는 통쾌한 소동을 그려내는 영화다. 여성들의 반란과 여성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남성들의 무능력함을 교차하는 이야기는 속이 시원하고 통쾌하다. 큰아빠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큰엄마의 사연은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를 따끔하게 꼬집는다.
영화 '큰엄마의 미친봉고' 명절 때마다 제사를 준비하던 여성들의 유쾌한 일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