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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PC방과 노래방 업주들이 팀을 짜서 찾아온다. 코로나19로 영업이 금지된 이후부터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죽음을 생각하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버틴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밖에 없다. “죄송합니다. 제게는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 관료제는 그렇게도 도망칠 구멍을 잘도 만들어주었다. 나의 시간은 그들의 고통과 무관하게 재깍재깍 잘도 흘러간다. 그런데 그 고통을 마주한 채 이렇게 별 탈 없이 살아도 정말 괜찮은 걸까? 그렇게 무관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죽음을 맞이해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에 대해 글을 쓴다.
연루의 세계
익히 알려져 있듯이,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삼부작’은 프랑스 국기에 표현된 프랑스 대혁명의 세 가지 가치, ‘자유’, ‘평등’, ‘박애’에 대한 영화다. 하지만 키에슬로프스키는 그 가치를 이상화하기보다는 그 실현을 가로막는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과 ‘세 가지 색 삼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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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은 사람만이 요괴를 불러낼 수 있다. 다섯 번째 극장판인 <극장판 요괴워치: 포에버 프렌즈>는 서민(정혜원)이 사랑하는 엄마를 사악한 요괴인 옥마녀에게 잃으면서 시작된다. 옥마녀에게 누나를 잃은 고귀한과 요괴를 볼 줄 아는 소녀 천송이(박리나)가 서민 앞에 나타난다. 친구가 된 세 사람은 요괴를 불러낼 수 있는 도구인 요괴워치를 손에 넣고, 깜냥이, 접시부기, 터줏동자 등 요괴워치로 불러낸 요괴들과 함께 가족을 되살리기 위해 먼 길을 나선다. 요마계 세상에 모인 온갖 요괴들 덕분에 전편에 비해 이야기의 규모가 화려해졌고, 세 친구가 요괴들과 싸우는 액션 신은 박진감이 넘친다. 소중한 엄마와 누나를 찾아나서는 서민과 고귀한의 여정은 애잔하고 서정적으로 묘사돼 귀여운 요괴들이 요란하게 등장했던 전작과 여러모로 상반된 분위기다.
'극장판 요괴워치: 포에버 프렌즈' 엄마와 누나를 찾아나서는 서민과 고귀한의 여정을 담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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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병을 앓고 있는 미술관 부관장 서리애(전소민)는 거리의 화가 모철우(최정원)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다. 리애는 철우를 강제로 자신의 별장으로 데려와 그림 스무점을 그리면 대가로 1억원을 주겠다고 제안하는데, 철우를 이른바 ‘대작 화가’로 기용해 완성된 그림 위에 리애 자신의 이름을 서명할 계획이다. 그림을 위해 함께 별장 생활을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리애에겐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보인다. <나의 이름>은 1990년대 충무로에서 활동했던 허동우 감독의 15년 만의 감독 복귀작이자 가수 유엔 출신 배우 최정원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의 활력 넘치는 캐릭터로 사랑받아왔던 전소민의 멜로 연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신파 드라마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나의 이름' 1990년대 충무로에서 활동했던 허동우 감독의 15년 만의 감독 복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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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카세트테이프를 매개로 영혼과의 보디 체인지가 일어난다. 판타지와 멜로의 결합에 능한 일본영화의 한 갈래를 충실히 따르는 <안녕까지 30분>은 그 전형성을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면 제법 아련하게 다가올 로맨스영화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꺼리는 취업준비생 소타(기타무라 다쿠미)는 카세트테이프의 한면이 모두 재생되는 30분 동안, 1년 전 죽은 인기 밴드의 보컬 아키(아라타 마켄유)에게 자기 몸을 내어주는 대사건을 겪는다. 아키는 소타의 몸을 빌려 자신의 죽음으로 해체된 밴드 멤버들의 상처를 돌보고, 소타는 덩달아 음악의 세계로 진입하며 새로운 꿈을 좇는다. 반복 재생할수록 테이프가 점점 늘어나게 되는 것처럼 두 사람의 영혼 교환도 영원할 리 없는 것이 서사의 위기를 불러낸다. 밴드 음악을 직접 소화하는 청춘 스타들의 생기만큼은 확실한 작품이다.
'안녕까지 30분' 밴드 음악을 직접 소화하는 청춘 스타들의 생기를 담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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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스트리트 유명 브랜드 몬다는 H&M과 자라 같은 영국 기업이다. 몬다를 이끄는 CEO 리처드 맥크리디(스티브 쿠건)는 패션 리테일 업계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다빈치처럼 협상하고 모네처럼 머니를 갖고 노는 남자라 불린다. 동시에 그는 자본주의의 추악한 얼굴을 상징하는 ‘욕심쟁이 회장님’이다. 영화는 리처드 맥크리디의 자서전을 준비하는 닉이 그의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한다는 설정을 뼈대로, 대처와 레이건식의 자본주의 경제 덕분에 승승장구할 수 있던 리처드의 과거와 그리스 섬을 통째로 빌린 초호화 생일파티가 열리는 현재 시점을 교차한다.
<그리드>는 톱숍을 비롯한 유명 의류 브랜드를 소유한 필립 그린 회장이 멕시코에서 열었던 실제 파티를 모티브로 한다. 디자이너와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기업의 이득을 위해 수천개의 일자리를 없애며 기업을 확장하는 패스트 패션 업계의 민낯을 하나씩 들추며 풍자한다. 서민들이 주로 입는 SPA 브랜드가 정작 가난한 노
'그리드' 유명 의류 브랜드를 소유한 필립 그린 회장이 멕시코에서 열었던 실제 파티를 모티브로 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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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마피아로 알려진 ‘알폰소 카포네’는 탈세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는 과정에서 걸린 신경매독으로 불행한 말년을 보낸다. 영화는 48살에 사망한 카포네의 마지막 1년을 담는다. 플로리다 자택에서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살고 있는 카포네(톰 하디)에겐 이젠 내려가는 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 생계를 위해 집 안의 값비싼 물건들을 정리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카포네는 자주 헛것을 보고, 자신을 보살펴주는 가족들에겐 신경질적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그런 그에겐 두 가지 비밀이 있다. 첫째는 숨겨진 아들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카포네에겐 어딘가 묻어놓은 돈다발이 있는데, 동료 조니(맷 딜런)에게만 털어놓은 그 사실이 카포네를 감시하던 FBI 요원의 귀에 들어가면서 수사망이 좁혀든다. 카포네의 망상이 심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가 그의 모든 행동들이 전략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제시함에 따라 상황은 혼란스러워진다.
데뷔작 <크로니클>(201
<폰조>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최연소 감독'이란 타이틀을 가진 조시 트랭크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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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엔지니어 사라(에바 그린)는 유럽우주국 ‘프록시마’ 프로젝트의 대원으로 선발된다. 평생의 소원이었던 우주 비행을 앞두고 있는 사라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어린 딸 스텔라(젤리 불랑르멜)다. 엄마의 부재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스텔라는 사라의 바람과 달리 마음의 상처를 입고, 두 모녀는 점차 어긋나게 된다. 사라는 가슴 한구석에 딸에 대한 애틋함을 품은 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으로 거처를 옮기며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일에서도, 가정에서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는 와중에 사라가 지구를 떠나야 하는 시간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
주인공 사라의 고통은 ‘거리’에서 비롯된다. 지구를 떠나 머나먼 거리의 우주로 향하는 꿈을 이루기 위한 혹독한 준비 과정, 그리고 딸 스텔라와의 마음의 거리를 조절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사라가 견뎌내야 하는 거리의 무게다.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우주영화지만 우주의 화려한 풍경으로 가득 찬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웅장한 볼거리의 자리
'프록시마 프로젝트' 배우 에바 그린의 강인한 존재감이 돋보이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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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경찰서 강력팀 경장인 병수(곽도원)는 절친한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서줬다가 은행 대출금을 받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그 돈을 갚느라 10년간 신혼여행도 가지 못한 병수는 우여곡절 끝에 가족과 함께 필리핀으로 인생 첫 해외여행을 떠난다. 즐거운 여행의 한때도 잠시, 병수는 범죄 조직 킬러 패트릭(김희원)의 범죄에 휘말려 살인 용의자가 되고,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고향 후배이자 현지 가이드인 만철(김대명)과 함께 수사에 나선다. 사건을 해결하고 말겠다는 형사로서의 마음은 저만치 앞서 있지만 의사소통도 쉽지 않고 몸도 따라주지 않는다. 여기에 보증을 서준 죽마고우 용배(김상호)까지 등장하면서 수사는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국제수사>는 <들리나요?> <보통사람> 등을 연출한 김봉한 감독의 신작이다. 필리핀의 자연경관으로 눈이 즐겁고 그 밖에도 카지노, 투계장 등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곽도원,
<국제수사> '들리나요?' '보통사람' 등을 연출한 김봉한 감독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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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미국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 동안 열린 반전시위가 유혈 사태로 번져나가고, 시위 가담자들이 공모 등의 혐의로 기소된다. 1969년, 민주사회학생회의 톰 헤이든(에디 레드메인)과 청년국
제당의 애비 호프만(사샤 바론 코언)을 포함한 7명의 피고인들, 그리고 함께 기소된 흑표당의 바비 실(야히아 압둘 마틴 2세)이 재판정에 선다. “전세계가 우릴 지켜보고 있다”는 시위 지지자들의 외침이
법정 밖에서 울려퍼지지만, 줄리어스 호프만 판사(프랭크 란젤라)는 피고인들을 향한 반감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리처드 슐츠 검사(조셉 고든 레빗)의 날카로운 공격과 윌리엄 컨슬러 변호사(마크 라일런스)의 굳센 방어가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뜻밖의 인물들이 증인석에 들어서며 재판은 점차 복잡해져 간다.
2017년 <몰리스 게임>으로 감독 데뷔했으나 아직은 <소셜 네트워크> <뉴스룸> 등의 스타 각본가로 더 익숙한 에런 소킨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1960년대 말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시카고7인'의 재판 과정을 다룬 법정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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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스돕!” 창복(유재명)의 지시에 따라 태인(유아인)은 천장에 매달린 사람 바로 아래에 비닐을 넓게 깐다. 곧 죽을 사람의 피로 바닥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두 사람이 취하는 사전 조치. 살인을 위한 세팅을 마치자마자 태인과 창복은 현장을 빠져나와 라면 물을 올린다. 구타하는 소리와 비명이 들리지만 듀오는 아무렇지도 않게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한다. 태인과 창복은 조직의 시체를 전담 처리하는 비밀 용역으로, 살인이 일어나기 직전과 직후에 투입돼 시체를 정리하고 암매장까지 책임지는 인물이다.
영화는 두 사람이 언제부터 범죄에 가담했는지, 시체 전담을 수주하는 조직은 어떤 이유에서 살인을 저지르는지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두 캐릭터의 기묘하고 독특한 호흡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만든다. 낮에는 트럭에 계란을 싣고 다니며 수완 좋게 계란 장사를 하던 두 남자는 살인 현장에서 헤어캡, 비옷,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채 시체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프로로 변한다. “다른 생각이
<소리도 없이> '서식지'를 만든 홍의정 감독의 첫 장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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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언힌지드' 그의 분노는 당신을 향한 테러가 된다
[정훈이 만화] '언힌지드' 그의 분노는 당신을 향한 테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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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는 촬영 전에 시나리오를 쓰지 못한다. 아마도 시나리오대로 찍는다면, 그것을 다큐멘터리라고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시나리오 대신 다큐멘터리 현장을 이끄는 것은 자료조사, 기다림, 상호신뢰다. <길 위에서> <노무현입니다> <김군>의 작업에 참여하고 <다큐하는 마음>을 쓴 양희 작가는 다큐멘터리 작업이 “함께하기 위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며 책을 시작한다.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순 없어도 지금 함께할 수는 있으니까, 팽목항에서, 밀양의 철탑 아래서, 폭탄이 떨어지는 분쟁지역에서 카메라를 들고 자리를 지킨다. 짧게는 몇달이지만, 많은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5년, 10년 동안 하나의 이야기 옆을 지킨다. 그리고 감독과 관객의 마음이 맞아떨어지면, 관객도 함께하겠다는 마음에 동참하게 된다. 다큐하는 힘은 거기에 있다.
<다큐하는 마음>은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유통되어 평가받기까지 아홉개의 분야를 택해 그 분야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다큐하는 마음>, 함께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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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부터 10월 12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가 ‘THE SAFDIES: 사프디 형제 특별전’을 개최한다. 현재 미국 인디영화계의 떠오르는 감독인 사프디 형제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최영진 프로그래머는 15년간 활동해온 사프디 형제의 변곡선을 잘 드러내기 위해 학창 시절 이들이 연출한 단편들부터 최근작까지 총 10편을 선별했다. 더불어 사프디 형제가 추천한, “세 번째 사프디”로 불리며 크리에이티브팀 ‘사프디’의 멤버로 활동하는 로널드 브론스타인의 <프라운랜드>도 함께 선보인다. 이번 특별전은 사프디 형제에 관한 최영진 프로그래머의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굿타임>과 <언컷 젬스>를 관람하고 나니 이들이 걸어온 발자취가 궁금했다. 같은 경로로 사프디 형제에게 관심을 갖게 된 관객이 많다는 걸 알게 된 후 특별전을 추진하게 됐다.” 최영진 프로그래머는 영화 관련 자료들과 인터뷰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사프디
‘THE SAFDIES: 사프디 형제 특별전’ 기획한 최영진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프로그래머 - 취향이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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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가 11월 5일부터 11일까지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개최된다
<한국퀴어영화사>(개정판)와 <한국트랜스젠더영화사>도 동시 발간할 예정이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가 한국영화 투자·제작·배급 사업에서 철수한다
올해는 <내가 죽던 날> <조제>까지 배급한다.
인디그라운드가 ‘독립예술영화 튀어오르다: BOUNCE the BALL’이라는 주제로 개관 기념 온라인 상영회와 유통·배급 길잡이를 위한 특강을 진행한다
상영회는 10월 19일부터 11월 29일까지 총 10편의 독립장편영화를 무료로 상영하고, 오프라인 특강은 10월 19일부터 매주 목요일 총 3강으로 진행된다.
인디그라운드가 ‘독립예술영화 튀어오르다: BOUNCE the BALL’이라는 주제로 개관 기념 온라인 상영회와 유통·배급 길잡이를 위한 특강을 진행한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