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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연습을 거치고 나면 필요한 동작을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아도 동작은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된다.” 파울로 코엘료의 <아처>에 나오는 문장이다. 도쿄올림픽의 열기가 막 가신 이때, 여름의 무더위도 한풀 꺾인 모습이다. 차분하게 읽어볼 만한 책 5권을 소개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8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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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얼굴 1895> Lost Face 1895
이지나 / 한국 / 148분 / 2020년 / 한국영화사는 음악영화사다 2021
1910년 8월 말, 한 노인이 한성의 천진사진관을 방문한다. 명성황후의 사진에 관해 묻는 노인에게 사진사는 왕비의 사진은 없을 거라 답한다. 극의 배경은 다시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명성황후와 고종, 흥선대원군의 갈등이 그려진다.
영화 <잃어버린 얼굴 1895>은 2013년 초연한 이후 최근까지 꾸준히 사랑받아온 동명 뮤지컬의 공연 실황을 담았다. 명성황후의 사진이 한장도 남아 있지 않다는 데서 상상력을 이어간 이 작품은 명성황후 외에도 ‘휘’와 ‘선화’란 인물을 창조해 극을 이끌어간다. 공연 특유의 생동감은 부족하나 현장에서 보기 어려운 배우들의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진’이란 소재를 액자 프레임으로 물성화해 무대 장치로 적극 활용하는 점이 특징이며 영화, 드라마로 활동 범위를 넓혀가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추천작] 이지나 감독, '잃어버린 얼굴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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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의 락커, 하나의 밴드> We Are the Thousand
아니타 리바롤리 / 이탈리아 / 79분 / 2020년 / 국제경쟁
밴드 푸 파이터스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 한곳에 모였다. 열렬한 팬 파비오의 바람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천명이 푸 파이터스의 <Learn To Fly>를 함께 연주하고, 해당 영상을 포스팅해 너바나의 드러머이자 푸 파이터스의 리더인 데이브 그롤을 이탈리아로 초청하는 것이 목표다. 음악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고, 기어코 뮤지션과의 만남까지 성사시키고야 마는 팬들의 애정과 집념엔 감탄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하나의 사운드로 밀집해가는 천명의 뮤지션의 전경을 담으면서도, 줌에 개별 멤버들의 스토리까지 놓치지 않고 담는다. 팀의 일원이 되어 연주했던 팬들은 이제 단순히 관객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Rockin’ 1000’이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들의 열정이 빈틈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추천작] 아니타 리바롤리 감독, '천 명의 락커, 하나의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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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옛날이여~.” 이젠 영화 팬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 배우 발 킬머에 대한 다큐멘터리 <발>(Val)을 보고 혼자 중얼거린 노랫말이다. 지난 8월 6일 미국 내 한정 극장 상영과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스트리밍을 동시에 시작한 이 작품은 팅 푸와 레오 스콧이 공동 연출한 그들의 데뷔작이다. <발>에는 어릴 적부터 홈 비디오를 습관적으로 촬영해온 발 킬머의 가정사는 물론 오디션 테이프, 리허설 현장, 무대와 촬영장 뒷모습 등 방대한 자료 화면이 들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 몇해 전부터 인후암 투병을 하며 미소년 같던 목소리를 잃고 자막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거친 소리로 어렵게 말하는 현재 모습이 더해졌다. 그의 최근 모습은 찬란했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광대가 있다”라는 킬머는 아직도 활기찬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고, 자서전을 집필하며, 후배 배우들을 위해 연습 공간을 마련해주고, 팬들과 사인회를 가지며 열심히
[뉴욕] 인후암 투병 중인 배우 발 킬머의 삶 다룬 다큐멘터리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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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라는 각진 상자에 자루처럼 유연하게 담기는 음악. ‘상자 속 자루 음악’을 꿈꾸는 3인조 국악그룹 상자루에는 한때 기획팀 멤버이자 영상 홍보 담당이자 전통음악 비전공자인 네 번째 멤버가 있었다. 상자루의 산티아고 순례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상자루의 길>을 찍은 박철우 감독이다. 그는 상자루와 장단을 맞춰 전통의 의미를 골몰했으며, 창작의 여정을 함께했다.
상자루를 향한 감독의 애정 고백이자 진심 어린 편지이기도 한 영화 <상자루의 길>은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 음악영화의 오늘 - 한국경쟁’ 섹션에 초청되었다. 박철우 감독에게 그 마음의 출처를 물었다.
-영화 시작과 함께 안내문이 나온다. 폭력적인 언어, 육식 및 반 환경적인 행위를 경고하고 장애인 관객의 접근성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문구를 신경 써서 삽입한 이유가 있을 테다.
=내가 알고 있음에도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놓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걸 보는 관객 중 누
'상자루의 길' 박철우 감독…전통과 창작, 그 동행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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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는 세계 음악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영화인을 ‘올해의 큐레이터’로 선정해 초청한다. 2021년 ‘올해의 큐레이터’ 섹션의 주인공은 바로 마이크 피기스 감독이다. 마이크 피기스 감독은 자신의 연출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 외에도 작업에 영감을 준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팔로우> <밤의 열기 속으로> <냉혈한> 등 총 6편을 해당 섹션의 상영작으로 선정했다.
8월 14일 메가박스 제천에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상영된 뒤,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가 진행될 예정이다. 해당 클래스는 연출과 음악 작업을 병행하는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작품세계와 음악영화사의 변곡점으로 작용한 작품들까지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제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이자 올해의 큐레이터로 선정됐다.
=한국에 대한 모든 걸 좋아한다고 할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올해의 큐레이터' 마이크 피기스 감독…음악과 비주얼, 텍스트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 좋은 영화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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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시간 달리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미래의 연인을 상상하는 위에전(양우림)은 커로우(계륜미)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그렇지 않다면 커로우가 맹렬히 땀 흘려가면서까지 자전거 페달을 밟아 시하오(진백림)에게 위에전의 속마음을 대신 전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위에전이 시하오에게 보내는 연서에 커로우의 이름을 써 커로우를 곤경에 빠뜨려도 화를 내는 건 잠시뿐, 커로우는 위에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문제는 결국 시하오의 마음이 커로우에게 향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건 어쩌면 사소한 문제일지 모른다. 커로우도 시하오를 좋아하게 됐다면 고민의 크기는 감내할 수준이었을 것이다. 커로우 자신조차 짐작하지 못했던 위에전을 향한 감정으로 인해 고민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져만 간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주인공 계륜미가 처음으로 주연한 <남색대문>은 이미 친숙한 대만 청춘영화들의 원형에 가까운 작품이다. 무려 20년
[리뷰] '남색대문' 계륜미가 처음으로 주연한 대만 청춘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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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한 수련원에서 건물 관리인이 투숙객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 이후 수련원은 폐쇄되지만, 폐수련원에 들어간 사람은 있어도 나온 사람은 없다는 ‘귀문’에 대한 섬뜩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수련원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한풀이 굿을 하던 무당이 갑작스레 목숨을 잃는다. 무당의 아들이자 심령연구소 소장인 도진(김강우)은 어머니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한밤중에 수련원을 찾는다. 한편 호러 공모전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수련원을 찾은 대학생 혜영(김소혜), 태훈(이정형), 원재(홍진기)는 카메라로 수련원 이곳저곳을 촬영하던 도중, 믿기 힘든 기이한 공포를 맞닥뜨리게 된다.
미스터리 공포영화 <귀문>은 참혹한 집단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폐수련원을 찾은 심령연구소 소장과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공포 체험’에 방점을 찍은 영화로, 한국영화 최초로 기획단계부터 2D, 스크린X, 4DX 버전을 동시
[리뷰] '귀문' 집단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폐수련원을 찾은 심령연구소 소장과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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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스(앤디 샘버그)는 결혼식 참석차 캘리포니아 남부의 휴양도시 팜 스프링스의 리조트에 머물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 화창한 날씨, 신나는 음악, 맛난 음식과 시원한 맥주까지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는 나일스에겐 사실 남모를 비밀이 있다. ‘오늘’을 셀 수 없이 반복해서 겪어왔다는 것.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혀 똑같은 하루를 무한 반복 중인 나일스는 오늘이 지나면 모든 것이 리셋된다는 점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난데없는 깽판을 부리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남성 로이(J. K. 시먼스)가 나일스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신부 탈라(커밀라 멘데스)의 언니 세라(크리스틴 밀리오티)가 나일스와 마찬가지로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히게 된다.
신인감독 맥스 바르바코우의 첫 장편 극영화 <팜 스프링스>는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오늘을 살게 된 두 남녀의 달콤씁쓸한 고군분투를 그려낸 SF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리뷰] '팜 스프링스' 영원히 반복되는 오늘을 살게 된 두 남녀의 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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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감독인 아름(박강아름)은 낮에는 보조 요리사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남편 성만(정성만)과 함께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있었던 아름과 달리 가벼운 마음으로 동행했던 성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닫고 금세 지친다. 이에 아름은 주말에만 하루에 한 테이블의 예약 손님을 받는, ‘집에서 하는 식당’을 열자는 아이디어를 내 성만을 도우려 노력한다. 그러나 기쁨은 잠깐, 유학 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현실적인 문제가 부부의 감정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딸 보리가 태어난다.
감독 본인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감독이 품어왔던 결혼에 관한 생각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다큐멘터리다. 주로 서로가 서로를 찍는 홈비디오 방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가난한 유학생 부부이자 새내기 부모의 삶을 아무런 필터 없이 보여준다. 출산이 여성의 몸에 미치는 영향이나 아내의 커리어를 위해 가
[리뷰] '박강아름 결혼하다' 결혼에 관한 생각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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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상우는 졸업을 앞두고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학교에 마련된 실습 기계들의 압도적인 무게감에 짓눌려 애초 잘못 들어온 학교라고 생각했던 상우는 기업체 현장 견학을 다니면서 이른바 ‘버튼맨’이라 불리는, 기술직 중에서도 그나마 편하고 안전해 보이는 직무에 종사하기를 은근히 바란다. 또 직접 선로를 걸어다니며 유지 보수를 하는 사람과 달리 탈것에 실려 편히 이동하는 사람을 보면서 자연스레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구분하게 되고, 자신도 비정규직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정규직에 다다를 수도 있겠다는 체념 섞인 전망을 담담히 말하기도 한다.
<언더그라운드>는 표제가 말해주는 바와 같이 지하철이라는 일상적 모습을 가능하게 하는 비가시적 공간 속 노동자들의 ‘근로’를 특별한 설명 없이 묵묵히 보여준다. 운행을 마치고 열차가 들어오면 노동자들은 바퀴를 떼어내고 부속품은 분리해 보수한다. 선로 정비는 열차가 다니지 않는 새벽에만 가능하기에 야간 근무
[리뷰] '언더그라운드' 지하철이라는 공간 속 노동자들의 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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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천만 배우’ 황정민의 대표작들과 그 유명한 ‘밥상’ 수상 소감 영상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이곳은 그의 신작 <냉혈한>의 제작발표회 현장이다.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뒤풀이까지 마친 정민(황정민)은 매니저의 에스코트를 물린 채 홀로 집으로 돌아가던 중 동네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세명의 청년을 마주친다. 정민은 다짜고짜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 그들과 실랑이를 벌이는데, 문제는 그들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한 납치사건의 범인들이라는 것이다.
리더 기완(김재범)의 주도로 숲속 외딴집에 정민을 비롯한 인질을 가둔 그들은 정민에게 거액의 몸값을 요구한다. 정민은 아직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진짜인지 아니면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의 ‘몰래 카메라’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그런 그에게 한 인질범이 얼굴에 펀치를 날리면서 이런 말을 한다. “이거 진짜야.”
<인질>은 황정민이 ‘진짜’ 황정민을 연기한다는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발적인 설정
[리뷰] '인질'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발적인 장르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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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요트 레이싱: 편견의 파도를 넘다>
감독 알렉스 홈즈 / 왓챠
부모의 이혼, 새아버지로부터 가정 폭력을 겪은 트레이시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떠난다. 렌털 요트의 유일한 여성 선원이 된 그는 바다를 누비며 광활한 자유를 경험한다. 항해를 마친 트레이시는 오직 여성 선원으로 구성된 팀을 꾸려 남성들만 항해가 가능하다는 편견에 맞서려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메이든호’의 선원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며 다른 요트들을 조금씩 앞지르기 시작한다. 스스로 의심하고 불안해하면서도 항해를 멈추지 않는 메이든호의 여정은 결과보다 과정의 의미를 일깨운다.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감독 보니 코헨 / 넷플릭스
미국 국가대표 체조 선수들에게 수십년간 성폭행을 저질러온 의사 래리 내서, 그를 폭로한 체조 유망주 매기 니콜스 그리고 다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자신의 한계에 건강하게 도전하도록 하는 대신 코치들은 선수들을 겁박해 성과를 얻
영화 '그녀들의 요트 레이싱: 편견의 파도를 넘다', 편견에 맞선 메이든호의 여정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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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리듬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전 생애를 낭비한다.’ 내 책상 앞에는 하재연 시인의 <4월 이야기>의 한 구절이 붙어 있다. 이해를 바랄 만큼 내면이 복잡한 편도 아니고, 그저 전 생애를 낭비한다는 대목이 괜히 사무쳐서 붙였다. 시에는 겨울에 만나 한여름에 관해 이야기하다 봄에 헤어지는 이들이 있고, 이제 정말 안녕이라고, 작별의 시기를 알리는 ‘4월의 눈’이 내린다. tvN 드라마 <너는 나의 봄>에도 늦은 봄눈이 내렸다. 강다정(서현진)과 주영도(김동욱).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다른 목련보다 일찍 한겨울에 만개하는 ‘미친 목련’에 관해 이야기하고 ‘미친 봄눈’이 펑펑 내리는 날, 접어뒀던 마음을 펼친다. 이르게 설레는 마음엔 잘못이 없고, 봄눈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미친 짓을 핑계 삼기 좋다.
<너는 나의 봄>은 대사가 많고 대부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말의 합이 맞는 사람끼리 빠르게 주고받는 대화의 리듬으로
tvN 드라마 '너는 나의 봄', 너의 리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