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와 비슷하게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동료들은 다 유명 감독이 돼 있다.” 후루카와 다쿠 감독이 웃음을 띠며 건넨 이 한마디는 의미심장하다. 이 ‘유명 감독’들에는, 41년생 동갑내기로 일본애니메이션의 시대가 열리던 60년대 중반 함께 출발선에 섰던 미야자키 하야오와 린 타로가 포함된다. 하지만 40여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제각각 다른 고지에 이르러 있다.그 중 후루카와 다쿠는 “늘 혼자 투계장 같은 스튜디오에서” 독립애니메이션을 고수해왔다. 후루카와 다쿠는 일본 독립애니메이션의 2세대 감독. 60년대 일본 독립애니메이션을 개척한 구리 요지와 마찬가지로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꾸준히 실험적인 작업을 해왔다. 이번 SICAF에서도 상영된 그의 작품들은, 자유로운 실험과정을 짐작게 한다. 74년작인 <페나키스티스코프>는 19세기의 동화(動畵) 장치를 응용해 18개로 분할된 그림을 동시에 보여주며, 78년작 <모션 루미네>에서는 사람의 관절 위치대로 종이
단편 <상경 이야기>의 후루카와 다쿠
-
선이 가는 얼굴에 긴 손가락, <가발제작자>의 정밀한 인형 세상을 빚어낸 감독답게 슈테픈 셰플러(33)는 섬세한 인상의 독일 청년이다. <가발제작자>는 영국아카데미와 안시, 올해 오스카 단편애니메이션상 후보까지 각종 영화제 수상권을 오르내리며 화제를 모았던 인형애니메이션. 흑사병이 돌아 시체가 쌓여가는 중세의 마을, 전염될까 두려워 병든 이웃이 죽어나가도록 외면하지만 결국 자신도 죽음을 맞는 가발제작자의 이야기다. 지난해 부천영화제에도 <페스트>란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는 이 작품은, 표정이 섬세한 인형들의 연기와 정교한 세트에 고딕풍의 양식미와 ‘진짜 같은’ 숨결을 품은 수려함으로 셰플러를 영화제 단골손님 목록에 올려놨다. 이번 SICAF에도 작품과 함께 단편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초대됐다.실사영화 이상으로 사실적인 <가발제작자>의 연출은 셰플러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세상의 이목을 끈 것은 애니메이션이지만, 셰플러는 독일 바덴-뷔르텐베
<가발제작자>의 슈테픈 셰플러
-
“일본에 노래 하나가 있는데요. 사람들이 사람을 물건으로 본다는 거예요. 누가 횡단보도를 가다 넘어져도, 그 사람이 물건처럼 보이기 때문에 일으켜 세워주지 않고 그냥 간다는…. 요즘 애니메이션도 사람을 물건처럼 다루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싫어서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7월21일부터 일본에서 상영중인 ‘건강한 애니메이션’ <아리테 공주>가 SICAF에 초청, 상영됐다. 감독 가타부치 수나오는 경쟁장편부문의 심사위원까지 맡아 서울을 찾았다. <아리테 공주>는 보는 사람마다 “공주님은 어디 계시지?” 하고 묻게 되는, 전혀 공주 같지 않은 어느 공주의 이야기. 성탑에 갇혀 살다 사기꾼 마법사에게 시집보내진 어린 공주가 마법사에게서 탈출하여 늘 꿈꾸던 대로 세상을 몸소 체험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대지에 발디디고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가 소녀의 목소리를 통해 힘있는 감동으로 다가오는, 매우 따뜻하고 진실한 작품이다. 자극적인 요소라곤 전혀 없는
<아리테 공주>의 가타부치 수나오
-
+ 15만매가량의 셀을 썼다는 <메트로폴리스>가 지금껏 일본에 없었던 풀애니메이션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에서인가. 리미티드 방식이 나오기 전인 58년작 <백사전>도 초당 24컷을 보여주는 풀애니메이션으로 알고 있는데.= 맞다. 도에이동화에 들어갔을 당시에는 <백사전>을 비롯해 풀애니메이션이 몇편 있긴 했다. 그땐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이란 말 자체가 없었고, 풀애니메이션이라고 안 해도 다 풀애니메이션이었으니까. 하지만 40년 정도 전 일이다. 그뒤 TV애니메이션 역사가 아주 길었고, 그동안은 풀애니메이션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풀애니메이션은 디즈니처럼 셀 매수를 많이 쓰고 아주 실감나는 액션이 들어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에서 진정한 풀애니메이션은 없었고, <메트로폴리스>는 지금껏 없었던 풀애니메이션이다.+ <환마대전> 에서는 도쿄 시내를 부수고, <메트로폴리스>에서는 지그라트를 산산조각내는 등 파괴의
<메트로폴리스>의 린 타로 감독 인터뷰
-
-
일본 애니메이션 3세대의 합작, 린 타로의 <메트로폴리스>아톰과 아키라가 마주 보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가 <아키라>의 세계관을 만난 <메트로폴리스>는 태생부터 범상치 않았다. 50∼60년대 일본만화와 TV애니메이션을 이끈 데즈카 오사무 원작에, <아키라>의 오토모 가쓰히로가 각본을 쓰고 린 타로가 연출을 맡은 애니메이션이라니. 일본 애니메이션 3세대의 내로라 하는 감독들이 셋이나 연루된 사실만으로도 <메트로폴리스>는 기획단계부터 화제에 오르내렸다. 더구나 온화하고 동글동글한 인상의 ‘아톰’들과 차갑고 염세적인 <아키라>의 디스토피아라는 이질적인 조합으로, 요즘 세대에게는 그리 익숙지 않은 데즈카의 스타일을 어떻게 재창조해낼 것인가하는 귀추를 주목할 만한 실험이었다. 그리고 5년. 오랜 숙성기간을 거친 <메트로폴리스>는 지난 5월 일본에서 개봉됐고, 이번 SICAF 2001의 초청작으
SICAF에서 만난 애니메이션 작가들
-
제1장 유성영화 초기 사운드의 대담한 실험 <우리에게자유를>A Nous la Libert 1931년, 흑백, 95분 감독 르네 클레르 출연 앙리 마샹, 레이몽 코르디1930년대 초부터 르네 클레르가 일했던 토비스 클랑필름의 스튜디오는 교외의 공업지대 근처에 있었다. 잡초와 들꽃이 무성한 가운데 공장의 굴뚝이 솟아 있는 그런 현실의 이미지에서 클레르는 자연과 산업의 묘한 대조를 보았고 그것에서 스토리를 하나 착상해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산업사회에 대한 풍자코미디 <우리에게 자유를>이다.영화는 감옥에 갇혀 있다가 탈옥한 두 친구의 이야기를 경쾌한 목소리로 전해준다. 루이는 축음기를 제조하는 회사의 사장이 돼 있고 다른 친구인 에밀은 거리를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루이의 공장에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재회하게 두 친구. 여기서 에밀은 공장에서 일하는 아름다운 여성 잔의 사랑을 얻으려 애를 끓이고 루이는 자신의 재산을 노리는 갱들의 협박으로 안절부절못한다.&
제3부 아주 특별한 코미디
-
제1장 히치콕, 영국시대를 마감하다 <숙녀사라지다>The Lady Vanishes 1938년, 흑백, 97분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출연 마거릿 록우드, 마이클 레드그레이브앨프리드 히치콕의 영국 시절을 마감하는 영화는 실제로는 <자메이카인>(1938)이었지만 그전 작품을 만들고 있을 때 이미 그는 할리우드의 손길을 받아들이리라 내심 결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시절을 화려하게 마감하는 요약본과도 같은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했는데 그렇게 나온 영화가 바로 <숙녀 사라지다>이다. 실제로도 이 영화는 영국에서 제작된 히치콕의 영화들 가운데 당당히 최고작 대접을 받고 있다.영화는 주인공이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고전적 상황에서 출발한다. 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영국인 여성 아이리스는 같은 기차를 탄 노부인 미스 프로이와 알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미스 프로이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제2부 영화의 신, 불멸의 지문
-
제1장 인민주의 코미디 <디즈씨 도시에가다>Mr. Deeds Goes to Town 1936년, 흑백, 115분 감독 프랭크 카프라 출연 게리 쿠퍼, 진 아서링컨과 예수를 섞어놓은 듯한 순박한 주인공들은 악덕 자본가나 정치 모리배 같은 협잡꾼들에게 교묘하게 이용당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사랑, 정직, 성실, 선의, 용기 등의 전통적인 덕목을 무기 삼아 주위 사람들과 관객 모두를 감동시키면서 진실의 승리를 거둔다. 대충 이런 식의 틀을 갖춘 프랭크 카프라의 전형적인 영화들은 종종 ‘인민주의 코미디영화’(populist film comedy)로 불렸다. <디즈씨 도시에 가다>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 <존 도우를 찾아서>(1941)로 이어지는 인민주의 3부작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영화다.작은 마을의 사업가이자 시인이며 자원봉사 소방수에 튜바 연주자인 디즈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친척으로부터 2천만달러나 되는 거액의 유산을 받고
제1부 장르와 작가의 조우
-
서울 시네마테크 6번째 상영회 25일부터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려불멸의 걸작 12편 상영, 강의도 곁들여영화사를 통틀어 베스트 100을 뽑으라면, 도저히 빼놓기가 힘든 공인된 걸작들이 있다. 오슨 휄스 회고전에서 지난달의 올리베이라 회고전까지 5차례 상영회를 열었던 서울 시네마테크는 오는 8월 25일부터 8일간 거장들의 대표작 12편을 `영화사 강의`라는 이름으로 아트 선재센터에서 상영한다. 행사를 책임진 임재철씨를 비롯한 평론가들의 5번의 강의가 곁들여지는 게 이번 상영회의 특징. 자크 타티, 장 뤽 고다르,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의 대표작에서부터 <화이트 히트><빅 슬립>등 좀처럼 보기 힘든 할리우드 클래식까지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편집자상영시간표일시1회2회3회4회5회8.25(토)우리에게 자유를(11:30)빅 슬립(2:00)시민 케인(4:00)숙녀 사라지다(6:30)디즈씨 도시에 가다(8:30)8.26(일)디즈씨 도시에 가다(11:30)
`영화사 강의` 영화제
-
당신이라면, 이런 자신을 쉽게 사랑할 수 있을까? 얼굴에는 주름살이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한 노처녀(혹은 노총각)이고, 비만증은 아니지만 몸은 퉁퉁하며, 손에서는 담배가 떠나지 않고, 간은 늘 알코올에 절어있다. 로맨틱코미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그녀'(르네 젤웨거)는 이 모든 걸 다 가졌다. `사회적 혼기'가 점점 멀어지는 것에 조바심 치기 시작하면,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외모에 먼저 시비를 걸기 마련이다. 브리짓 존스는 32살의 새해를 여전히 홀로 맞아야 하는 자신에게 절망해 또 한병의 보드카를 비워낸다. 그리고는 인생을 제대로 잡아줄 방편으로 일기 쓰기를 시작하더니 첫번째로 다음과 같이 결심한다. `새해에는 술도 끊고 몸무게를 줄여 날씬해진 다음 진실한 사랑을 찾자!'외모나 술·담배에 대한 결심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똑똑하지만 무뚝뚝한 인권변호사 마크(콜린 퍼스)가 그에게 푹 빠지더니, 매끈하게 잘생기고 매너 좋은 출판사 편집장 다니엘(휴 그랜트)
“32살의 새해, 뭔가를 보여주겠어!”
-
“무서워서 공포영화 못본다. 특히 처럼 갑자기 튀어나와 사람 죽이는 거.” 뜻밖이다. <런어웨이> <비트> <태양은 없다> 등 김성수 감독(40)이 만들어온 영화에는 늘 폭력이 등장한다. 급기야 <무사>에서는 목이 잘리고, 화살이 몸을 뚫고, 칼이 머리에 박히는, 너무나 사실적인 싸움 장면을 쏟아냈다. “찍다 보면 나도 끔찍해서 살짝 외면했다가 오케이 사인 낸 적도 있다.” 물론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글래디에이터>처럼 사실적인 만큼 쾌감을 자극하는 액션 장면들이다. 이야기는 이 `폭력미학'에서부터 풀어야했다.“싸움을 예술적으로 승화하고 관조하게 만들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전쟁의 복판으로 들어가면 혼란밖에 없다. 강자든 약자든 공포심밖에 없고 그 공포심을 없애기 위해 더 잔인해지는. 저 사람이 일어나서 나를 찌를까봐 또 찌르고. 전쟁이 잔인하고 허망하다는 거 보여주면 됐지, 탐닉의 경계까지 가진 않았다.”폭력의
김성수 감독 " 폭력은 허망한 것"
-
고려말인 1375년. 중국에는 명과 원이 전쟁중이고 고려는 명과 친선관계를 맺기 위해 사신을 잇따라 보낸다. 명은 고려를 믿지 못한 채 사신들을 투옥하거나 감금한다. 그중 한 사신단이 명에서 첩자 취급을 받아 귀양길에 오른다. 호송줄에 묶여 사막을 건너던 중 원의 공격을 받아 사신과 명의 호송군들이 모두 죽고, 사신을 호위하러 간 고려의 장군과 무사들은 풀려난다.목적과 명분뿐 아니라 우군과 적군의 구별도 사라진 채 이국땅 한 가운데에 버려진 무사들. <무사>는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이들의 귀향기인 동시에,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그 길로 치닫는 과묵한 검객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영웅연가이다. 이 스케일 큰 이야기를 찍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스태프 300명이 5개월 동안 중국대륙 1만㎞를 횡단했다. 당시의 외교사와 이들의 운명을 연결짓는 대하 사극이 나올지, 호머의 오디세이같은 서사적 로드무비가 나올지 영화계 안팎의 궁금증과 기대가 컸다.김성수 감독이 택한 길은 디테일이
<무사> 죽을지언정 피해갈순 없다
-
차이3 시대냐, 사회냐이러한 측면에서 오리지널과 리메이크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하늘과 땅 차이로 갈린다. 바로 오리지널이 1960년대라는 ‘시대’를 은유했다면 2001년의 <혹성탈출>은 여전히 미국 안에 존재하는 흑과 백의 ‘사회’를 구체적으로 적시한다는 것이다. 68년의 오리지널은 인간사회의 복사판인 원숭이사회에서 자행되는 온갖 야만적인 행위들을 거울에 비춰보임으로써,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진실을 탄압, 은폐하고 거부하는 인간속성과 그것에 바탕을 둔 문명의 허구성을 통박했다. 그리고 그러한 문명의 최후는 모래 속에 파묻혀버린 자유의 여신상이 상징하듯이 비관적이기 그지없다. “결국 해버렸군(여기서 하다는 핵전쟁을 의미함). 이 어리석은 인간들아, 결국은 해버렸어.” 부서진 자유의 여신상 잔해 앞에서 통곡하는 찰턴 헤스턴의 울음 속에는 70년대 첨예했던 무의식의 파편들, ‘핵전쟁의 공포, 나사의 우주 개발에 대한 회의, 슬럼화되어가는 도시, 과학기술에 대한 불신’이 망라되어 있
<혹성탈출> 1968 vs 2001
-
지구파멸의 광시곡인가? 미국문명의 묵시록인가?<벤허>로 스타덤에 오른 찰턴 헤스턴은 원래 <혹성탈출> 속편에 출연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2시간 내내 원숭이들이 설쳐대는 영화에 다시 천쪼가리 하나만을 걸친 채 유인원에게 포획되는 우주비행사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 이윽고 <혹성탈출>의 속편이 제작되자 그는 “자신의 촬영분이 일주일 안에 끝난다면, 그리고 자신의 캐릭터를 죽여서 다시는 속편의 제의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찰턴 헤스턴은 속편에서 핵폭탄을 터뜨리며 그 유명한 대사를 읊는다. “망할 놈의 것들, 다 지옥에나 가라.”30년이 지난 뒤 팀 버튼 감독은 찰턴 헤스턴에게 <혹성탈출>의 리메이크를 찍으며, 그에 대한 오마주로 카메오 출연을 부탁했다. 이제 팔십 노인이 다 된 헤스턴은 그 옛날 핸섬한 우주비행사 역에서 과연 무엇으로 <혹성탈출>과 자신과의 질긴 인연을 마감했을까? 이번
<혹성탈출> 1968 vs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