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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 and Son 1997년, 감독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출연 거드런 게이어 9월8일(토) 밤 10시10분이따금 ‘이 영화를 어떻게 글로 설명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어머니와 아들>이 바로 그렇다. 직접 눈으로 보라는 설명이 최상일 듯싶은 영화. 플롯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배우도 단 두명만 출연할 따름이다. 그런데도 영화엔 시적인 서정과 중독성이 배어 있다.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말을 빌리자면, “소쿠로프의 작품엔 한번 영화를 보면 도중에 포기할 수 없는 마약 같은 효과가 있다. 일본에서도 그의 영화가 상영될 기회가 있었는데, 소쿠로프 영화가 상영될 때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기묘한 집단이 형성되었다. 그의 영화는 어느덧 무서운 ‘습관’이 되어버린 거다.”러시아 출신의 알렉산드르 소쿠로프에게 <어머니와 아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각종 영화제를 통해 그의 명성을 해외로 전한 작품이자, 이른바 ‘초
알렉산드르 소쿠로프 감독의 <어머니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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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디 아더스>가 개봉한 뒤 할리우드 메이저영화사에서 영화 구상 및 제작과 관련해 여러가지 제안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천천히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일을 하고 싶다.”미국 영화잡지 <버라이어티>가 99년에 선정한 `주목할 만한 프러듀서 10인' 가운데 한명으로 꼽힌 재미 한국인 박선민(38·사진)씨가, 자신이 프러듀서를 맡은 <디 아더스>가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됨에 따라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 주연배우 니콜 키드먼 등과 함께 베니스에 왔다. 5년전에 아메나바르 감독의 데뷔작 <떼시스>를 보고 그를 주목해 찾아가 만났던 박씨는 처음부터 <디 아더스>를 함께 기획했고, 영화를 영어 아닌 스페인어로 만들 것을 제안한 장본인이었다. 이 영화의 프러듀서로 화면에 이름이 오르는 세명 가운데, 박씨가 맡은 일은 스페인 스태프와 톰 크루즈를 비롯한 미국 제작자들 사이를 중개하고 연결짓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미국 개봉
베니스영화제 출품 <디 아더스> 프로듀서 박선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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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유럽 영화에 할리우드 제작자가 참가한 영화다. 스태프 대부분이 스페인이고 니콜 키드먼을 비롯한 미국 관계자들이 모두 스페인에 와서 찍었다.”<디 아더스>의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언론에서 이 영화를 그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고 부르는 데 대해 “동의할 수 없으며 사실과도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올해 29살인 칠레 태생의 스페인 감독 알레한드로는 24살에 만든 첫 장편 <떼시스>에서부터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뒤 <오픈 유어 아이즈>(97)에 이어 세번째로 만든 <디 아더스>는 스페인 스태프들이 모여 스페인어로 제작하려 했으나, 그의 전작들에 주목한 미국의 배우이자 제작자 톰 크루즈와 합작하게 되면서 영어로 바뀌었다. 출연진도 따로 내정돼 있었으나 톰 크루즈가 당시 그의 부인이던 니콜 키드먼을 소개하면서 키드먼이 주연을 맡게 됐다.이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독특한 미학적 세계를 드러내는
<디 아더스> 아메나바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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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F>에서는 꽤 많은 외국 식문화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진기한 요리나 요리사를 소개하는 <별난 세상, 별난 요리>나 분야별로 미국 전역의 유명한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있고, 제과나 다이어트 요리 등의 제조법을 소개하는 요리 프로그램도 있다. 심지어 잘 꾸며진 주방만을 소개하는 <뷰티플 키친>이란 프로도 있다. 하지만 이중 식문화 프로그램이 얼마나 다양한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을 꼽으라면 단연 <닥터 브라운의 요리수첩>과 <퓨전 천국>이다.<닥터 브라운의 요리수첩>은 미국 ‘푸드네트워크’(Food Network)에서 로 방송되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요리를 소개하고 만드는 사람은 전문 요리사가 아닌 영화제작자 알튼 브라운. 이 프로그램의 매력은 하나의 요리에 담긴 다양한 정보를 마치 인터넷 웹 페이지를 서핑하는 기분을 느끼도록 아기자기하게 배치한
음식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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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 진행자와 초대손님이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거인들의 저녁식사>. 지인이 왔을 때 “밥이나 먹자”며 옷깃을 잡던 우리네 정을 살린 프로그램이다.“오늘의 요리는 OOO인데요, 재료는 소고기 OO그램….”하얀 앞치마를 입고 단정한 자세로 선 두 여자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이런 말로 서두를 뗀다. 깔끔하게 정리된 주방에서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며 조리를 하다보면 10분 남짓한 시간에 먹음직스럽게 완성된 요리가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오랫동안 보아온 이른바 ‘요리 프로그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요리나 음식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솔직히 드라마나 뉴스처럼 방송사가 많은 신경을 기울여 제작하는 주력 종목이 아니었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중요한 프로그램 사이에 편성돼 완급을 조절하는 ‘페이스 메이커’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몇년 전부터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하더니, 최근 들어서는 구색 갖추기가 아닌, 독자적인 고정 시청자를 확보한
맛을 보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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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델마와 루이스>로 유명한 미국 여배우 지나 데이비스(45·오른쪽)가 지난 1일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웨인스콧에서 15살 아래인 외과의사 레자 자라히(30·왼쪽)와 결혼식을 올렸다고 외신들이 4일 전했다.
2년 전 친구들의 소개로 만나 지난해 11월 약혼한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매우 행복하며 여생을 함께 보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혼여행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번 결혼이 네번째인 데이비스는 이전에 레스토랑 운영자, 배우, 감독 등과 결혼했다 결별했지만 자라히는 첫 결혼이다.
데이비스는 1982년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영화 <투씨>로 데뷔했고, 88년 <액시던털 투어리스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92년 <델마와 루이스>로 다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가을 의 시트콤 `지나 데이비스 쇼'에 출연했지만,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낮아 곧 막을 내렸다.
로스앤젤레스/외신종합
지나 데이비스 15살연하와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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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화선> 이후의 제작 계획은.임상수 영화 곧 들어가. 부인이 캐나다에 있어서 거기서 시나리오 작업했는데, 초고 나왔대. 토론토 이민간 송능한은 좀 오래 걸리긴 하지만, 걔가 영화 안 하고 뭐하겠어. 구상은 끝났다고 하고. 김성수도 <무사> 끝났으니까, 조만간에 할 테고.임상수 감독의 신작은 어떤 영화인가요.또, 섹스하는 거래. (웃음) 내가 그랬지. 야, 너는 배울 만큼 배우고 의식있다는 놈이 만날 섹스하는 영화만 하냐. 그랬더니 어, 아직 네편 더 해야 하는데요, 그러더라고. 걸물이야, 걸물. 데뷔하기 전부터 그랬어. 임상수 부친이 영화평론하던 임영씨인데, 나하고도 잘 알지. 그 사람이 나한테 우리 상수 책(시나리오) 썼다, 당신이 제작했으면 좋겠다고 그러더라고. 임상수는 <장군의 아들> 조감독도 해서 나도 알지. 그래서 책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데서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만들었더라고. 내가 전화해서, 야, 너 왜 나한테 안 오고 딴
“안성기는 우리가 늙어서 고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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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흥영화사의 촬영현장에 가면, 거의 어김없이 이태원 사장을 만난다. “회사에 앉아 있으면 궁금증이 나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영화사 대표는 매끈한 비즈니스맨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분위기지만, 이태원 사장에겐 아직도 영화제작자라는 직함만큼 어울리는 게 없다.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과의 멋진 파트너십으로, 5년간 지속된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서편제>)과 칸영화제 경쟁부문 첫 진출(<춘향뎐>)이라는 영광을 모두 안았으니,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성공한 제작자임에 틀림없지만, 이태원 사장의 자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다. 여전히 1년에 영화 한두편 만들면서, 촬영현장에 나와 필름 감기는 소리에 취해 산다. <춘향뎐>에 이어 다시 험한 장정에 나선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촬영현장에서 들뜬 얼굴로 앉아있는 이태원 사장을 만났다.늘 촬영현장에 나와 있는, 요즘 보기 드문 제작자입니다.매번 나오지는 못해
“안성기는 우리가 늙어서 고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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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은 영화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초창기에는 호평 받기에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내러티브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하다, 테크닉이 자체로만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지적인 내용이 지극히 피상적이다라는 세 가지 비판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 비판에 대한 비평적 반응이 쌓이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시민 케인>은 걸작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었습니다. 첫째, 복잡한 내러티브 구조에 대해서는, 복잡하지만 흠잡을 수 없는 스토리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케인을 조명한 <시민 케인>의 내러티브 방식을 케인이라는 인물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받아친 것이죠. 둘째, 고전적인 영화에서는 대개 테크닉보다 스토리가 우위였습니다. 스토리가 아니라 테크닉에 관심을 둘 수 있다는 점은 오히려 <시민 케인>이 고전적인 영화와 구분된다는 인식론적 단절을 인정하게 했습니다. 셋째, 지적 내용이 피상적이라는
영화사를 뒤흔든 걸작, 그 작용과 반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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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구치 겐지는 샘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1950년 후배 구로사와 아키라가 <라쇼몽>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을 때, “위대한 예술은 나이 50은 넘어야 하는 건데 까마득하게 어린 사람이 상을 받다니” 하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그때가 미조구치의 나이 52살 때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상을 받기 위해 착수한 게 <오하루의 일생>입니다. 이 영화는 결국 1952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게 되지요. 그리고 미조구치는 연속해서 <우게츠> <산쇼다이유>를 베니스 출품, 3년 연속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룹니다.미조구치 겐지는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두사람보다 덜 언급되고 덜 연구돼 온 편인데, 그 이유는 그가 서구학자들에겐 유용한 틀이었을 일본 ‘내셔널 시네마’의 범주로 쉽게 포착이 안됐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일본영화와 거의 동의어로 취급됐으며
회화성과 음악으로 빚어낸 영상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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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사>1375년 원말 명초. 명에 파견된 고려 사신단은 간첩혐의를 받고 명의 포로가 된다. 귀향길에 올라 사막을 가로지르던 행렬 앞에 나타난 원의 기병들은 명의 군대를 몰살하고 고려인을 노아준다. 김성수 감독, 안성기, 정우성, 장쯔이 출연, (주)싸이더스 제작 상영시간 154분박평식 페킨파 감독이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를 찍었나? ★★★심영섭 역작 대작 노작, 그러나 2% 부족한 범작 ★★★유지나 비장미 넘치는 스펙터클! ★★★☆홍성남 험한 원정을 마친 야전사령관, 그러나 존 포드가 되진 못했다 ★★★■ <길로틴 트래지디>프랑스령 섬, 생 피에르. 만취한 선원 닐은 어리석은 내기 끝에 동네노인을 살해하고 참수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이 작은 섬엔 단두대가 없다. 결국 닐은 대위 쟝의 감시 아래 단두대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쟝의 아내인 마담 라는 닐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 출연, 상영시간 112분박평식 죄와 벌,
무사/ 길로틴 트래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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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와 퍼즐맞추기가 스릴러의 기본적인 요소들이라면 <세이예스>에 붙여진 ‘비극적 스릴러’라는 카피는 뭔가 아귀가 안 맞는 느낌이다. 덕분에 스릴러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이 영화를 본 관객은 다소 당황할 수밖에 없다. 대신 <세이예스>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미덕도 많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덤프트럭을 이용한 카신은 그동안의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며, 후반부를 붉게 물들이는 하드고어는 <텔미썸딩>을 능가할 만큼 잔혹하다. 작가인 여혜영은 말한다. “이 영화의 키워드는 공포였어요.” 감독인 김성홍 역시 같은 견해를 피력한다. 제작자인 황기성의 언급은 그러나 이와 다르다. “스릴러에 멜로를 가미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하나의 장르로 영화를 구분짓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여혜영의 표현에 따르면 “오랜 세월 매달려 죽도록 고생했던” 작품이 관객의 외면을 받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부산 출생의 여혜영은 본
질투가 낳은 공포, 공포가 낳은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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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극장을 하야카와라는 사람이 2년 했지. 아마 그 사람이 특무기관에 한자리가 있는 모양이에요. 극장 버스도 있고, 권총도 가지고 있고. 서장들도 꼼짝도 못합디다. 그런데 그때 순사가 극장에 나와서 검열을 했거든. 그러니까 하야카와가 “이것도 예술품인데, 이거를 순사가 나와 검열한다니 이러는 법이 있느냐. 다른 데서 해주시오” 그래서 24년 봄부텀 경찰부 보안과에서 검열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고 몇해 후인지,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성이 되니까 총독부로 욈겨졌지요.하야카와가 2년 있다가 동경으로 가버리고. 어느날 이갑성 선생(민족대표 33인 중 하나이며 당시 명륜동에서 경상공업사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하고 있었다.- 필자)께서 나를 찾아오셨어. 아마 그 극장에 자주 오셔서 내가 해설하는 걸 보셨던 모양이야. 오시더니 차상무라는 이 선생 처남이 극장을 해봤으면 한대. 그래 내가 이 선생님을 모시고 조선극장 소유주 니시무라 지점장(당시 조선극장의 소유권은 요코하마 해상보험주식회사 경성지
영화인에게 발길질하는 악질형사 투서했다 1년 옥살이했지 - 성동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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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집 근처에 낡은 동시상영관 하나가 있었고 그 극장 주변이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까닭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학교가 끝나면 늘 그곳으로 가 친구들과 어울렸다. 해질 때까지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했고 어떤 날은 우리끼리 돈을 모아 극장 안으로 숨어들곤 했다.
극장 입구에서 표를 받던 아저씨 덕분이었다. 그는 손님들이 뜸한 날이면(아마도 장사가 잘 안 되는 영화가 걸려 있었을 듯한) 극장표 대신 코흘리개들이 모아온 돈을 받고 우리를 슬쩍 극장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어린 나는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극장 안으로 들어가 온종일 영화를 보곤 했다. 내 인생에서 영화보기는 이런 식으로 시작했다. 그 나이에 보아서는 안 될 야한 영화에서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구석도 이해 안 되는 어려운 영화까지 무분별하고 무차별하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양으로 보면 행운스러운 시작이었고 질로 보자면 지극히 엇나간 시작이었으리라. 아무튼 그런 시작 탓이었는지 중·고
이소룡, 내 어린 시절의 삽화, <정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