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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의 카메라>의 한 장면에서 서점에 들른 영화감독 소완수는 동행한 클레어에게 책의 한 부분을 읽어달라고 요청한다. 프랑스어를 모르는 소완수는 클레어가 짚어주는 손을 주시하면서 그녀가 낭독하는 발음을 따라 한다. 그는 이해하지 못하는 생경한 단어를 한 음절씩 끊어 읽는다. 틀린 발음을 말하면 클레어가 정확한 어투를 교정해준다. 단어의 의미를 인지하고 문장을 발음하는 감각의 차이는 불가피하게 두 사람의 말과 몸짓에 시차를 생성하고 그들을 낯선 지각의 공간으로 데려다놓는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에세이집 <이게 다예요>를 읽는 이 장면을 매혹적으로 비치게 하는 것은 두 사람이 읽는 텍스트의 내용 때문이 아니다. 게다가 소완수가 에세이의 문장을 시의 구절로 오인할 만큼 텍스트의 위상과 성격은 숨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특정한 규칙을 가르치는 과정에 있다. 카메라는 클레어가 단어를 말하고 발음을 교정하는 절차를 특별하게 포착
홍상수 감독의 27번째 장편 '소설가의 영화': 영화의 픽션적 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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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복지식당> 속 재기(조민상)는 장콜을 타지 못한다. 장애 5급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장애 1급인 병호(임호준)에게 거듭 신세를 지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병호와 사이가 갈라지면서 더는 장콜을 탈 수 없게 된 재기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한겨울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2019년 7월 장애등급제가 폐지됐다고 하나 이는 절반만 진실이다. 1~6급으로 나뉜 장애등급제는 사라졌지만,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기존 1~3급)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4~6급)으로 이원화됐다. 그리고 여전히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 재기는 장콜을 탈 수 없다.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중 보행상 장애가 있는 사람만 장콜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휠체어 탄 사람은 이동권이 크게 제약된다. 대부분 버스에는 계단이 있어 휠체어 탄 사람은 탑승할 수 없다. 국토교통부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라 5년마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2022년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 장애인 없는 매끄러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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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민인 두 감독이 장애인 영화제작 워크숍을 통해 만나 성사된 영화다. 강사인 서태수 감독이 참가자인 정재익 감독이 쓴 여러 장의 수필을 읽은 것이 계기였다고.
정재익 어머니가 위독하셔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5급 판정을 받은 내가 지원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없었다. 장애인 기관과 단체에 호소도 해보고 결국 청와대 신문고에까지 글을 썼지만 답변은 부실했다. 오랫동안 너무나 화가 쌓인 상태였고, 그 이야기를 썼다.
서태수 정재익 감독이 그렇게 힘들어하던 상황에서 한 친구가 장애인영화제작 워크숍 상영회에 초대를 한 것이다. 그때 정재익 감독이 워크숍 1기 수료를 마친 분들의 영화를 보고 놀랐던 것 같다.
정재익 그 친구는 나보다 상태가 더 안 좋은데 영화를 만들었더라.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서태수 이후로 정재익 감독님이 아주 적극적으로 내게 제작 의지를 어필하셨다.
정재익 무조건 덤벼보자는 마음이었다. 1년 동안 집에만 있다가 나온 터였다.
'복지식당' 정재익 감독, 서태수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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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을 둘러싸고 ‘담판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2022년의 암울한 현실을 빗대어 바라본 영화, <복지식당>을 소개한다. 자전적 이야기를 옮긴 정재익 감독과 그와의 협업을 자처한 비장애인 서태수 감독을 만났다. 이들은 “장애인콜택시가 도착하지 않아 로케이션을 이동할 때면 언제나 감독이 현장에 가장 늦게 도착하는” 촬영기를 들려주었다. 진보적 장애 언론 <비마이너>를 만들고 있는 강혜민 편집장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장애인 단체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담긴 장애인 이동권의 현재를 바라봤다. 2001년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고로 장애인 1명이 사망한 이후 20년 넘게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와 권리 투쟁이 이어져왔지만 요즘만큼 관심이 집중된 적은 없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누군가가 정치적 여론전을 조작하는 동안 영화는 이야기와 이미지, 그리고 감정을 통해 삶의 구체적인 맥락을 전하고 있다.
'복지식당'과 함께 장애인 권리 투쟁의 현실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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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보리차 대회’라는 요상한 이름을 가진 콘테스트가 있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2022년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이하 한대음)에서 최우수 포크-노래 부문에서 수상한 것을 기념해서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의 <보리차>를 부르거나 재창조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대회인데, 주최측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스티커나 컵, LP음반 등을 걸고 참가를 독려했고 기념 컵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나 역시 어느새 그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다.
마침 한대음 수상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같은 시기에 천용성 보컬 버전의 <보리차> 음원이 공개되었다. 기존에 발표된 <보리차>는 강말금 배우가 보컬을 맡았는데, 천용성 보컬 버전이 발매됨으로써 음역대가 다양한 참가자들의 참여가 가능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 용성씨 버전의 반주 트랙에 노래를 시도해보았으나 생각보다 음역대가 낮아 강말금 배우가 부른 음계를 바탕으로 콘테스트에 참여했다.
출전 자격에 제한은 없었지만 아무리 내가 피지컬로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보리차가 식기 전에 빨리 봄날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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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기자의 프런트 라인]
쓴소리를 하자면 너무 많은 영화들이 관성에 기대 습관처럼 대충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는 돈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최소한의 퀄리티와 창작자의 의도를 보장하기 위해, 자본은 중요하다. (궁핍하고 소소한) 현실을 이야기로 옮기기 위해선 실은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걸 <파친코>를 보며 새삼 절감한다.
평범한 건 귀하고 드물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이야기에 둘러싸여 있다. 가공된 이야기 속에는 흔치 않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비범한 인물들이 시련을 뚫고 나간다. 일상의 심심한 시간들은 대체로 뇌리에 머물지 못하고 씻겨 내려가기에 마치 비어 있었던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흔하디흔한 평범함들이 다른 형식으로 표현할 땐 귀하고 비싸진다. <파친코>의 1, 2, 3, 7화를 연출한 코고나다 감독의 전작 <콜럼버스>(2017)의 오프닝에는 모더니즘 건축의 후원자였던 어윈 밀러의 저택이 나온다. 어윈 밀러는 말
'파친코'가 달성해낸 특별한 평범함을 고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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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전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한 소식이 있었다. 게임엔진 회사 유니티가 피터 잭슨 감독이 설립한 시각효과(VFX) 제작사 웨타 디지털을 16억2500만달러에 인수한다는 발표였다. 정확히는 웨타 디지털의 툴과 파이프라인, 기술, 엔지니어 인력을 인수한다는 것인데 영화와 드라마 방면의 VFX 최고 기술력을 지닌 웨타와 게임엔진 회사의 노하우가 만나면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유니티가 발표한 <에너미즈>라는 데모 영상의 퀄리티를 통해 앞으로 영화와 게임의 비주얼적 경계가 확실히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에서부터 <킹콩>, <아바타>, <고질라> 시리즈, <알리타: 배틀 엔젤>의 알리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디지털 액터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넘지 못하는 언캐니 밸리의 산을 드디어 넘을 수 있게 될까. 유튜브 채널에 공개
나탈리야 타타척 유니티 그래픽 기술 부문 총괄 부사장 "우린 이미 모두 메타버스를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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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환상이 많이 가미된 영화라고 생각했다. 최진영 감독은 2007년에 낮잠 자던 중 꾼 꿈에서 <태어나길 잘했어>의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꿈속에서 그녀는 벼락에 맞았고, 자신의 몸에서 튀어나온 또 다른 남성 자아와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기묘한 꿈을 꾼 후에 서사를 완성하고 싶단 욕망이 생겼고, 그렇게 초고가 작성됐다.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이 영화는 무척 ‘현실적으로’ 구상된 결과물이었다. 단순히 동화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았다. 대사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사회적 메시지가 감추어져 있었다. 소품 설정부터 미장센에 대한 고민까지, 감독의 입을 통해 영화의 제작 과정을 들었다.
- 독특한 왕자가 등장하는 ‘역전된 동화’ 같단 인상을 받았다. 마사이신발은 살짝 ‘신데렐라’ 분위기도 났다.
= 동화보다는 현실에서 소재를 빌렸던 것 같다. 예전에 학원 강사를 주인공으로 단편영화를 쓴 적 있다. 2008년에 잠깐 학원
'태어나길 잘했어' 최진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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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책 시장이 존재했었다. 청소년 토지를 비롯해서 많은 책들이 10대들이 읽을 수 있게 만들어졌고, 잘 팔려나갔었다. 언제나 있는 것 같은 이 시장이 어느새 사라져갔다. 10대용 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말로 소리 소문 없이 어느 순간부터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단은 출생률 급감이 한 요인이다. 1970년대 초반에 한국의 신생아 수는 100만명이 넘었다. 지금의 40대들이다. 21세기 초반에 60만명 조금 넘게 태어났다. 지금의 20대들이다. 그 이후로 출생아 수가 급감해서 최근에는 26만명 정도 태어난다. 1960~7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의 10대들 수는 3분의 1 수준이다. 10년 전과 비교해도 절반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구 변화만으로는 10대들의 책에 대한 취향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예전 10대용 책에서는 엄마가 사주는 책이라는 좀 독특한 마케팅 방식이 있었다. 직접 10대에게 책을 전달하기가 어려우니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10대 문화 시장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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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태훈(김상경)의 아들 민우는 수영장에서 의식을 잃은 뒤 급성 간질성 폐 질환 진단을 받는다. 공교롭게도 아내 길주(서영희)마저 같은 질환으로 사망한다. 석연치 않은 아내의 죽음을 살펴보던 태훈은 비슷한 증상으로 죽거나 병을 얻은 환자의 사례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들이 모두 동일한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는 공통점을 밝혀낸다. 태훈은 이 사건을 계기로 검사복을 벗고 변호사로 나선 길주의 동생 영주(이선빈)와 함께 정확한 진상과 정당한 처벌을 위해 피해자들과 연대해 법정에 선다. 하지만 사회 고위층 인사들을 장악한 가습기 살균제 제조 회사는 쉽게 혐의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근거 없이 기업 활동을 방해한다고 주장하며 맞선다.
영화는 주지하듯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소재로 한다. 심각하고 광범위한 피해임에도 사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관련 기업들은 피해 구제에 소극적이고, 관계 당국의 각 부처도 안전관리에 책임이 있지만 처벌은 요원해 보인다. 지금도 진행 중
[리뷰] 실화의 무게에 짓눌리다 '공기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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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이는 모스크바 공항에서 급박하게 비행기에 탑승하려는 한 남자. 반려견 ‘알마’를 데리고 온 그는 검역증명서를 깜빡하고 제출하지 못한다.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탑승을 저지당하자 남자는 결국 알마를 내버려둔 채 홀로 비행기에 오른다. 알마는 갑작스레 떠난 보호자를 기다리며 활주로 근처를 떠돈다. 얼마 후 모스크바로 착륙하는 비행기가 활주로에 진입하고, 알마가 땅으로 접근하는 비행기를 따라 달리면서 공항에는 한바탕 소란이 인다. 한편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콜리아(레오니드 바소프)는 엄마와 이별 후 기장인 아빠와 지내게 된 9살 소년이다. 엄마와 살던 예카테린부르크로 돌아가기 위해 가출한 콜리아는 활주로에서 알마와 조우한다. 둘은 친구가 되는데, 알마의 이름을 오해한 콜리아는 개를 ‘팔마’라고 부르며 주인을 찾아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팔마>는 개와 소년으로 대표되는 ‘순수’의 시선을 경유해 책임의 의미를 돌아보는 영화다. 오해가 편견으로 비뚤어지기보다 유대
[리뷰] 책임보다 순정을 요구하는 착함 또는 순진함 '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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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소비에트연방의 카자흐스탄. 청년 셰르 사디코프(아스카르 일리아소브)는 경찰 수사팀에 수습으로 합류한다. 그는 진정한 경찰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의 누나 다나(사말 예슬랴모바)는 엄마와 같은 심정으로 셰르를 지켜본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여성들을 잔혹하게 살해해 토막내는 연쇄살인 범죄가 발생한다. 셰르는 사건에 투입되고, 감당하기 어려운 실상을 지켜보며 범인을 잡기 위해 분투한다. 셰르는 수사 중에 부상을 입고, 누나 다나는 격분한 나머지 그의 상사들에게 거칠게 항의한다. 그 상황이 창피했던 셰르는 다나에게 크게 화를 내고, 그날 밤 그녀는 사라진다.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있는 마을, 셰르는 수사를 계속하며 누나를 찾아나선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고려인이자 아시아의 신예로 떠오르는 박루슬란 감독의 신작이다. 카자흐스탄의 연쇄살인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그가 직접 알아낸 사실을 더해 만들었다. 스릴러물이지만 소재의 자극성을 앞세우는 대신, 인물과 시대의 풍광을 두
[리뷰] ‘박루슬란’을 기억하게 만들 독특한 리듬 '쓰리: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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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서>는 출판 금지가 횡행하던 1970~8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출판도시, ‘파주’의 탄생을 꼼꼼히 되짚는다. 출판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오로지 책을 위한 도시를 꿈꾸는 사람들. 출판인들과 건축가들이 모여 하나의 도시를 꿈꾸고, 그들의 계획은 당시 군사 접경 지역의 늪지대였던 파주에서 펼쳐진다.
이례적으로 민간 주도의 출판도시를 추진하며, 이들은 당대 도시에 요구되던 효율성 대신 공공성을 생각한다. 또 파주의 늪지 등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고민한다. 이런 과정이 파주출판도시 시범지구 건축설계 계약이라는 성과를 맺는다. 차라리 선언문에 가까운 이 계약을 두고 그들은 ‘위대한 계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화는 인터뷰 영상, 과거의 사진과 신문 기사를 번갈아 보여주며 지나간 역사를 소환해낸다. 각자의 말과 기억이 모여, 여러 명의 꿈이 실제 도시로 현실화된 과정이 그려진다. 그렇게 영
[리뷰] 도시의 기원을 회상하는 담백한 말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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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옹성 같은 빌딩에 사는 유지(김유나)는 또래 가정부 서진(정민정)이 아무런 말없이 사라져 서운하다. 빌딩 속 삶에 갑갑함을 느끼던 유지에게 ‘하촌’에 사는 서진과 어울리는 건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일이었다. 남들은 하촌은 상종 못할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옥 같은 곳이라고 말하지만, 유지는 그런 하촌에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며 반드시 당도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다. 유지가 서진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불어닥친 기상이변이 빌딩과 하촌을 쓸어가버린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한 채 생존자 집결지로 향하던 유지는 서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거기서 행성처럼 생긴 괴이한 구체를 맞닥뜨린다.
<헝거>는 다중 차원, 평행 우주, 도플갱어, 괴물체 등 공상 과학의 모티브를 다수 차용한다. 막바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SF를 배경으로 한 계급 갈등을 그리는가 싶은데, 그 이후에는 유지의 성장통을 포함한 다양한 갈래의
[리뷰] 좀 거창한 성장담 '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