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인이 드라마 <라켓소년단>에서 연기한 배드민턴 선수 한세윤은 안세영 선수를 모델로 한 캐릭터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부상을 안고 8강까지 올라 뭉클한 감동을 준 안세영 선수는 중학생 때 태극 마크를 단, 세계가 주목하는 배드민턴계의 라이징 스타다. 마침 드라마 방영 시기와 도쿄올림픽 기간이 맞물려 이재인은 촬영 중 안세영 선수의 경기를 응원하며 지켜볼 수 있었고 안세영 선수에게 “드라마 재밌게 봤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최연소 국가대표를 꿈꾸는 중학생 배드민턴 선수를 연기하기 위해선 배울 것이 많았다. 4~5개월간 배드민턴을 1대1로 코칭받았고 “선수의 자세”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했다. “세윤이가 성격뿐 아니라 실력 또한 성숙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단지 선수를 ‘연기’한 것뿐이지만 촬영하는 8개월 동안 선수로서의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다.”
실력과 성격 모두 성숙한 노력형 천재 한세윤과 이재인은 닮은 구석이 꽤 있다. “세윤이의 부지런함을 따라갈 순
2004년생 '이재인', 외유내유 이재인의 외유내강
-
한국 병영 문화의 고통스러운 한 단면을 들여다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D.P.>가 연일 화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도 인기 있는 배우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드라마가 다루는 메시지에 공감한다. 물론 작품의 밀도 있는 완성도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 열연을 펼친 배우들의 면면이 궁금해진다. 이 작품에서 얼굴을 알린 배우도 있고 오랫동안 독립영화 계에서, 혹은 아이돌로 활동하던 배우도 있다. 이들이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연기와 <D.P.>에서 보여준 연기를 비교해보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천상 배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변화를 보여준 배우들을 소개한다.
황장수 병장
이름: 신승호
나이: 1995년생
출연작: 영화 <더블패티>
드라마 <계약우정><열여덟의 순간> <좋아하면 울리는> <에이틴> 시즌 1, 2
실제 군생활 당시, 정말 저런 고참이 있었지 싶다. &l
조석봉 일병부터 황장수 병장까지, 'D.P.'를 빛낸 명품 조연 5인
-
스튜디오 바깥에서 들려오는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노크 소리를 대신했다. 16살의 싱그러운 기운은 금세 주변의 공기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였다. 이제 막 패션과 뷰티에 호기심을 갖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재미를 느끼고 있는 이레는 베레모에 안경까지 멋스럽게 쓰고 나타나 마치 <안녕? 나야!>의 반하니와 같은 텐션으로 “본 투 비” 배우의 모습을 보여줬다. 올해 상반기 방영된 드라마 <안녕? 나야!>에선 17살의 반하니와 37살의 반하니를 최강희와 2인1역으로 연기하며 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다. 극중 이름처럼 모두를 반하게 만드는 자기애 가득한 10대의 반하니는 당돌하고 거침없다.
사실 이레의 에너지도 그 못지않다. “낯가림이 풀리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텐션이 치솟고,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땐 밝고 쾌활하고 도전하는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작 스스로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이렇게 밝은 캐릭터를 연기하기에 내 목소리 톤이나 성격이 잘 맞을까” 걱정이었다는
2006년생 '이레', 연기라는 홈그라운드
-
“뭐든지 최선을 다하는 윤찬영이 되겠습니다.” 연기 학원에서 막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초등학생 윤찬영이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했던 말이다. ‘최선을 다하자’는 좌우명은 중학생이 되어 이내 ‘착하게 살자’로 바뀌었다. 좌우명대로 “중학교 다닐 땐 친구들과 싸움 한번 하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고 늘 많이 웃었다”. 성인이 된 지금은 다시 최선의 의미를 곱씹는 중이다. 20살의 길목에서 꿀맛 같은 최선의 결실을 맛봤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대학에 합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에 캐스팅된 것이다.
윤찬영은 코로나19 직격탄으로 대학 생활의 낭만을 경험하지 못한 비운의 2020학번이다. 지난해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는데, 합격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윤찬영은 13살 때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로 데뷔했고, <마마>로 아역상, <의사요한> <17세의 조건>으로 청
2001년생 '윤찬영', 최선과 진지함의 힘
-
-
어떤 사람은 처음 카메라 앞에 선 순간부터 배우가 된다. 이는 결국 배우가 보는 사람에 의해 평가받는 직업군이기에 가능한 일인데, 예쁘거나 잘생겼다는 이분법적인 구분이나 기술적인 연기를 뛰어넘는 마술적 순간을 동반한다. 박지후를 처음 봤을 때부터 관객은 그가 가상의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이산적 기억을 공명하는 힘이 있는 배우임을 직감했다. <벌새>의 은희와 같은 중학교 2학년 때 첫 장편영화를 만난 박지후는 그렇게 필연적으로 배우가 됐다.
흥미로운 것은, <벌새>가 전세계 영화제 59관왕 기록을 세우고 배우 역시 트라이베카페스티벌 여우주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 들꽃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는 와중에도 쉽게 요동치지 않고 현실에 발 딛고 사는 학생의 모습을 잃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박지후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대단하지 않다고 묘사한다. 자신이 자라온 대구에서 학교도 계속 다니고 있다. “그냥 급식 메뉴 얘기하고 랜덤 게임 하면서 논다. 친구
2003년생 '박지후', 배우의 아우라
-
안산, 김제덕, 신유빈, 황선우…. 이번 도쿄올림픽의 화제성을 이끈 건 단연 2000년대생 선수들이었다. 벌써 2000년대생이 활약하며 이름을 알리는 시대가 됐느냐며 놀라지 말자. 이미 영화와 드라마계에서도 2000년대생들은 누군가의 아역이 아닌 독립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며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절대다수가 열광하는 무언가가 점점 사라지고 유튜브와 SNS가 발달하는 등 플랫폼이 다변화될 때 연기 활동을 시작한 세대다. 그리고 배우를 ‘내 직업’, ‘일터’로 인지하며 누구보다 프로 중의 프로로 성장했다.
그동안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단연 “그러면 2002 월드컵을 못 봤단 말이야?”. 하지만 본인보다 어린 세대를 볼 때 생경한 마음은 자신들도 똑같다고 한다. “이해한다. 나도 <라켓소년단>에서 동생으로 나오는 (안)세빈이가 2013년생인데 ‘쟤가 태어날 때 나는 뮤지컬을 하고 있었는데!’ 하고 놀란다.”(탕준상) “2013년에 태어났다고 하면 ‘엑
2000년대생 배우 5인을 만나다
-
마블의 새로운 슈퍼히어로 시대를 알리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개봉했다. 아이언맨 없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이제 샹치라는 새로운 슈퍼히어로와 함께 긴 여정을 펼치게 됐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통해서 그동안 마블이 다루지 않았던 무협과 판타지의 영역에까지 손을 뻗은 만큼, 샹치의 앞으로의 역할이 더욱 기대된다. 샹치는 계속 해서 MCU에 등장하게 될 것이고 이번 영화는 그 여정의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다. 영화의 제작을 둘러싸고 제작진과 감독, 배우들이 여러 인터뷰에서 나눈 내용들, 제작기 등에서 공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관객이 궁금해할 제작 비하인드와 트리비아를 모아봤다.
1.아버지에 관한 영화다.
마블 스튜디오의 CEO이자 이번 영화의 제작자인 케빈 파이기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아버지가 세계 최대의 범죄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본질이다.”라고 말한다. 샹치는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보고 나면 궁금해질 제작 비하인드
-
1986년 28살의 이준익 감독은 봉급 30만원에 혹해서 서울극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15만원 받고 일했던 잡지 <주부생활> <여성자신> 일러스트레이터를 그만두고 그길로 약 2년간 서울극장 선전부장으로 일했다. 영화 포스터는 물론 대형 간판, 작은 신문광고, 지하철역에서 나눠줄 지라시 광고까지 모두 디자인했다. 그가 처음 광고한 영화는 <변강쇠>였다. 영화에 대한 꿈이 없었던 청년 이준익은 서울극장과 인연을 맺으면서 영화를 시작했고, 오늘날 영화감독으로까지 성장했다. 1980년대 낭만이 가득한 서울극장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그에게 그 기억을 조금 나눠달라고 청했다.
-단관극장 시절 서울극장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했다.
=당시 서울극장 좌석 수가 1003석이었다. 그땐 단관극장 시절이기 때문에 좌석 수가 1천석이 넘느냐 안 넘느냐가 중요했다. 1천석은 굉장히 상징적인 숫자다. 서울극장 주변에 있었던 재개봉관 오스카극장, 금성극장, 성남극장, 화양극장
서울극장 선전부장으로 일했던 이준익 감독이 기억하는 서울극장
-
최초의 극장 블록화, 최초의 멀티플렉스. 서울 종로3가에 자리한 서울극장(회장 고은아, 사장 곽승남)은 유난히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붙는 극장이다. 단성사, 피카디리극장에 비해 뒤늦게 개봉영화관 사업에 뛰어든 서울극장은 ‘막내극장’으로 출발했으나, 80~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우리의 ‘시네마 천국’이었다. 그런 서울극장이 오는 8월 31일 관객과 작별을 하고 43년간 돌렸던 영사기를 멈춰 세운다. 서울극장을 운영해온 합동영화주식회사는 지난 7월 2일 “약 40년 동안 종로의 문화 중심지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울극장이 2021년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영화를 매개로 관객과의 추억을 쌓았던 서울극장은 작별 인사도 영화 상영으로 대신했다. 극장은 ‘젊은 시절부터 평생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봤다’는 관객에게 보답하기 위해 지난 8월 11일부터 3주간 ‘감사합니다 상영회’를 열고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서울극장이 걸어온 길은 한국 극장의
'굿바이, 서울극장' 사진으로 추억하는 서울극장의 43년
-
“내가 아는 기주봉 선생님은 한 사람 같지 않고 여러 사람 같다. 그는 예민하고 둔하며, 친절하고 불쾌하며, 이타적이고 이기적인 우리의 얼굴이다.”(임대형 감독) 데뷔 45년차에 접어든 배우를 수식할 만한 관록과 예우의 말들이 기주봉에겐 유유히 비껴나갔다. 홍상수·박찬욱·임대형·임선애 감독, 배우 예수정·권해효·전여빈이 보내온 기주봉에 관한 생각은 저마다 그를 재료로 쓴 몽상적 시나 일기처럼 자적했다. 권위 없는 방랑자적 면모, 야생과 감상(感傷)의 지대를 오가는 특유의 거칠거칠한 순수를 기억하는 동료들이 기주봉에 대해 남긴 목소리를 전한다. 여전히 그를 잘 모르겠다는 고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말과 태도가 또렷한 장면으로 각인되었다는 애호의 말들이다.
홍상수 감독
<강변호텔> <인트로덕션>
매번 그분을 뵙고 느낀 것들이 그 당시 그 신을 만드는 데 설명하기 힘든 경로로 깊은 영향을 주었고 그래서 영화가, 내가 억지로 추린 몇 마디 말보
동료들이 말하는 인간 기주봉, 예술가 기주봉
-
“하루는 그런 일이 있었어요. 대학로에서 길을 걷고 있는데, 누가 알아보고 ‘배우시죠?’라고 묻더라고요. 네, 하고 다시 길을 가는데 어디서 ‘어, 연예인이다’라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렇게 또 한참을 걷고 있는데 낯선 분이 와서 탤런트 처음 봤다고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유난히 많이 알아보는 희한한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차에 또 다른 분이 다가와 ‘예술 하는 분이시죠?’라고 하는 겁니다. 그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 누구라도 자문해볼 만하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연기 경력 50년이 다 되어가는, 삶의 대부분이 연기로 채워졌던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탤런트, 연예인, 예술가 그리고 배우. 이 농담 같은 일화에서 한 배우가 걸어온 길을 마주한다. 배우이자 연예인이고 예술가, 모든 합이 곧 기주봉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겐 좀더 구체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기주봉 배우가 1981년 <어둠의 자식들>로 영화계
‘기주봉 배우전’ 개최…기주봉이라는 세계
-
제작 우성사 / 감독 임권택 / 상영시간 105분 / 제작연도 1976년
임권택의 60번째 영화 <왕십리>는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한국영화 미학의 역사에 있어서도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정성일 평론가는 임권택 감독과의 대담집에서 이 영화를 “작가영화의 신호탄”으로 규정하고 1970년대 중반 청년영화를 향한 임권택의 대구(對句)로 설명한다. 직관적이지만 예리한 분석이다. 현실적인 삶에 천착한 영화를 시도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데뷔작”이라고 생각한 <잡초>(1973)가 흥행에서 외면받은 후, 임권택은 영화진흥공사가 제작한 국책영화와 개봉관에서 상영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장르영화를 만들며 1970년대를 버티고 있었다.
이때 청년 세대의 감독들은 새로운 한국영화를 만들겠다며 ‘영상시대’를 결성했고, 이장호가 <별들의 고향>(1974)을, 하길종이 <바보들의 행진>(1975)을 성공시키며 어둡고 혼탁한 시기를 돌파하고 있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청년영화를 향한 임권택의 응답
-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꿈의 제인>을 보다가 구교환을 처음 만났다. 이태원의 트랜스우먼 제인 역을 연기한 그는 하얀 원피스에 카디건을 걸치고 또각또각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 퇴근 중이었다. 제인의 손에는 가방과 함께 나이트클럽 미러볼이 들려 있었는데 한쪽 귀에 댄 핸드폰에 제인은 당당히 쏘아붙이는 중이었다. “아니, 내가 어디다 쓴다고 미러볼을 가져갔다고 그래!” 순간 나는 스크린의 캐릭터가 아니라, 초면인데도 뒤따라가서 뭐라도 더 물어보고 싶은 사람을 마주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구교환을 영화 팟캐스트 초대석에서 두 번째로 만났을 때 그는 <타이타닉>을 극장에서 수없이 반복 관람했으며 매주 박스오피스 1위에서 내려오지 말라고 열혈 응원까지 했다며 뜻밖의 영화 취향을 알려주었다.
일단 스크린에 등장하면 시선을 뗄 수 없게 하는 천부의 자질을 입증한 2020년의 <반도>에 이어, 올해 세편의 신작을 내놓은 구교환은 상업장르영화와 시리즈에 유유히
<킹덤: 아신전> <모가디슈> 로 장르의 모험에 뛰어든 배우 구교환
-
배우 황정민이 인질로 납치된 자신을 연기한다.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생생한 설정과 과감한 신인배우 기용 덕분에 영화 <인질>은 개봉 2주째 74만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불러모으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영화는 필감성 감독이 중국 배우 오약보가 납치됐다가 하루 만에 구출된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시작한 프로젝트다. <무사>(감독 김성수, 2001), <결혼은, 미친 짓이다>(감독 유하, 2002), <말죽거리 잔혹사>(감독 유하, 2004) 등에서 조감독을 맡았고, 여러 영화의 연출을 준비하던 그가 <인질>로 감독 데뷔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0년. 필감성 감독은 “오래 기다린 만큼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게 돼 너무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중국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의 어떤 면에 흥미를 느꼈나.
=범죄 사건 실화를 다룬 해외 다큐멘터리를 통해 실제 사건을 접했는데, 배우가 납치된 하루 동안
'인질' 필감성 감독, 피해자 황정민의 모습이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