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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를 온전히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 영화제이기에 만날 수 있는 도전적이고 개성 넘치는 영화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훨씬 풍성하고 다채로운 세계가 열린다. 10월 10일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는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 네 편의 영화 <뒤틀린 집>, <우수>, <낮과 달>, <라스트 필름>에 대한 야외무대인사가 차례로 열렸다. 코로나로 인해 막혀 있던 소통의 시간. 감독, 배우와 관객들이 소중한 만남을 통해 영화제의 온도가 훈훈하게 올라간 뜻 깊은 시간이었다.
야외무대인사 <뒤틀린 집>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 초청된 강동헌 감독의 <뒤틀린 집>. 전건우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하우스 호러, 심리 스릴러물이다. 이날 오픈토크에 참석한 강동헌 감독, 서영희, 김민재 배우(왼쪽부터)는 매혹적인 비주얼과 긴장감 넘치는 영화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나눴다. 강
BIFF #6호 [화보] “극장에서도 빨리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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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A Hero
아스가르 파르하디/이란, 프랑스/2021년/128분/아이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세일즈맨> 등 아스가르 파르하디의 영화에는 언제나 인물을 곤란에 빠뜨리는 도덕적 딜레마가 자리 잡고 있다. 작은 불씨가 진화하기 힘들 정도로 번져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세계의 모순과 삶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아스가르 파르하디의 <히어로> 역시 그러한 감독의 영화적 정수가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빚을 갚지 못해 교도소에 간 라힘에겐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다. 여자친구는 최근 금화가 든 가방을 주웠다. 두 사람은 금화를 팔아 라힘의 빚을 갚고 새 출발을 꿈꾸는데, 최종적으로 라힘의 양심이 그들을 돌려세운다. 가방을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한 것이다. 금화의 주인을 찾아준 라힘의 선행은 곧 세상에 알려진다. 방송까지 탄 라힘은 순식간에 착한 영웅이 된다. 그러
BIFF #6호 [프리뷰] 아스가르 파르하디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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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우리가 과거를 돌아볼 때 마음속에 벌어지는 많은 생각들을 담아내고 싶었다.” <소피의 세계>는 외국인 친구 소피가 친구들의 집에 묵었던 나흘간의 시간을, 한참이 지난 뒤 다시금 되돌아보는 이야기다. 되돌아본다는 것은 영화의 본질이기도 하다. 모든 영화는 결국 재현이고, 카메라는 지나간 시간을 현재로 복원시킨다. 다시 볼 때, 찬찬히 생각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반복되는 일상이란 핑계로 놓치고 지나가버렸을지도 모를 보석 같은 순간들. <소피의 세계>는 그 소중한 감정들을 정성스럽게 주워 모아 관객 앞에 선물한다. 이제한 감독은 오랫동안 다닌 회사를 퇴사하고 처음으로 연출한 장편영화에서 자신이 어떤 종류의 연출자인지 선명하게 색을 드러냈다. 확신컨대 언젠가 만들어질 이제한 감독의 차기작들은 앞으로 여러 영화제들을 통해 관객들과 꾸준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첫 발자국인 <소피의 세계
BIFF #6호 [인터뷰]당신의 오늘을 위로하는 과거의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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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를 보고 나면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저 유명한 첫 문장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카메라는 너무 다른 엄마와 딸 사이의 불화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엄마 수경(양말복)은 다혈질이고 딸 이정(임지호)은 느린 사람이지만 두 사람 사이 감정의 골은 단지 성격 차이 이상으로 깊고 아프다. 김세인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첫 연출작에서 신인이라 믿기 힘든 예리함과 예민함으로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 한다. 모녀 사이의 갈등이라고 하면 얼핏 익숙한 소재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공감 가는 사연 사이마다 매우 개인적이고 유일무이한 순간들이 녹아들어 있다. 김세인 감독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 소중한 예민함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것은 모녀 사이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차라리 관
BIFF #5호 [인터뷰] 가족 이전에 관계를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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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9일, 부산국제영화제의 스페셜 토크 프로그램 ‘액터스 하우스’가 배우 조진웅, 변요한을 초대해 토요일 밤의 열기를 지폈다. 부산 KNN시어터 객석을 가득 채운 팬들과 만난 조진웅, 변요한은 백은하 영화연구소 소장과 각각 1시간씩 유쾌한 수다를 나눴다.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신설한 토크 프로그램 액터스 하우스는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을 초청해 그들의 연기 인생을 관객과 나누는 자리다. 배우 이제훈, 전종서, 한예리, 조진웅, 변요한이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고, 피날레는 엄정화가 장식할 예정이다.
배우 조진웅 : “캐릭터 창조는 걸음걸이부터”
“연기를 하는 이유와 본질에 대해 정체성을 확실히 찾은 날로 기억될 것 같다.” 열렬한 함성, 무대를 가득 메운 열기에 조진웅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기쁜 마음을 조금도 숨기지 않는 솔직함은 토크 내내 이어졌다. 객석의 주의를 붙잡는 유머까지 구사하며 부지런한 입담으로 1시간을 채운 조진웅은 앞으로의 꿈을
BIFF #5호 [화보] 조진웅과 변요한의 휴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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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고 딸은 두명의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18살 유진은 사랑에 목숨거는 엄마가 미운데, 가만히 살펴보면 사랑 때문에 괴로운 건 자신도 매 한가지다. 그 흔한 교실 장면 하나 없는 성장담 <만인의 연인>은 학교 바깥을 소요하는 주인공이 관계 속에서 겪는 상처와 비극을 적나라하게 바라본다. 대학생 오빠 강우에게 어른처럼 보이고 싶고 동갑내기 현욱의 순애보도 즐기고 싶은 유진의 당돌한 연애사 아래에는 억눌린 불안과 두려움, 욕망과 조급함이 세차게 관류한다. 단편영화 <토끼의 뿔>(2015)로 전주국제영화제 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던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한인미 감독이 4년 동안 집요하게 붙든 데뷔작 <만인의 연인>을 만났다.
-경제적으로 위태롭고 각자의 고독과 혼란에 처해있지만, 두 모녀가 관객 앞에서 자기 고난을 내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눈길이 갔다.
=성장기에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지낸 기간이 굉장히 짧다
BIFF #5호 [인터뷰] '만인의 연인' 한인미 감독, “왜 10대의 성욕은 발화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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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트> Annette
레오스 카락스/프랑스/2021년/140분/갈라 프레젠테이션
“신사 숙녀 여러분, 이제부터 침묵해 주십시오. 숨 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막이 오르고 노래가 흐르면 예언 같았던 내레이션은 금세 현실이 된다. 레오 카락스의 신작 <아네트>는 음악과 침묵, 희극과 비극, 충동과 욕망이 뒤섞여 경계를 가로지르고, 마침내 익숙한 것들을 해체하는 환상적인 뮤지컬이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 <나쁜 피>(1986)의 도발적인 상상력은 물론 최근 <홀리 모터스>(2012)에서도 자기 파괴적인 형식미를 펼쳐냈던 레오스 카락스가 이번엔 오랫동안 꿈꿔왔던 뮤지컬에 도전한다. <홀리 모터스>가 기계장치로서 영화 매체에 대한 창의적인 탐구였다면 <아네트>는 뮤지컬, 그리고 음악과 극에 대한 탐미적인 탐색이다.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와 스
BIFF #5호 [프리뷰] 레오스 카락스 감독, '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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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부재중> The Absent Director
아르반드 다쉬타라이/이란/2021년/85분/뉴 커런츠
극단 연출가의 집에 단원들이 모였는데 정작 연출가는 현장에 없다. 이들은 해외 체류 중인 연출가를 영상통화로 연결한 다음, 카메라 앞에서 공연을 연습하고 디렉팅을 받기로 한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앞두고 준비 중인 대망의 공연은 <맥베스>다. 이쯤에서 예상되는 소동극의 전개가 그렇듯, 연습이 제대로 될 리 만무 하다. 셰익스피어 비극 속 맥베스가 타락하고 파멸할수록, 화상 소통은 오해를 동반하고 그동안 누적된 배우들의 갈등은 급기야 싸움으로 번진다. 이란의 베테랑 연극 연출가 아르반드 다쉬타라 이가 자전적인 요소를 더해 주목한 것은, 혼돈의 연습실 속에서 자생적으로 피어나는 어떤 진짜들이다. 감독은 아마도 실전 무대 에서는 오히려 볼 수 없는 것들에 매혹된 듯하다. 숏의 경계를 가리고 영화 전체를 롱테이크로 전개하면서 연극적 영화 혹은 영화적
BIFF #8호 [프리뷰] 아르반드 다쉬타라이 감독, '감독은 부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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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집> House of Time
라즈딥 폴, 사르미사 마이티/인도/2021년/125분/뉴 커런츠
한 의사가 계속해서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집에 납치를 당한다. 아침 9시에 팔다리가 묶인 채 눈을 뜨면 차례대로 세명의 가족 구성원(할머니, 엄마, 딸)이 의사에게 수수께끼 같은 말을 건넨다.
의사는 처음엔 현실을 부정하며 물리적인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 해보다가 차츰 그런 방식으로는 이 집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반복 사이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며 상황을 타개해나가려 한다. <시간의 집>의 시대 배경은 코로나19 시대, 즉 지금이다. 집에 갇혀 매일이 똑같은 것 같은 하루를 보내는 이 가족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한한 공포감을 자아낸다. 집밖은 위험하다고 하지만 그런데 과연 집에만 있는 게 안전한 것일까. 되풀이되는 시간 속에서 의미(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린 것은 아닐까. <시간의 집>은 장르
BIFF #7호 [프리뷰] 라즈딥 폴, 사르미사 마이티 감독, '시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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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연인> Nobody's Lover
한인미/한국/2021년/137분/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내색은 않지만 삶의 기반이 심히 위태로운 두 모녀가 있는데, 엄마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고 딸은 두명의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 팡한다. “엄마는 나한테 왜 이렇게 냉정해. 나한테 이렇게까지 할이유가 뭐야?” 집에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게 그 자신도 다분히 냉정한 어조로 항의하는 18살 유진을 보고 있으면 <만인의 연인> 을 믿게 된다. 유진은 함부로 자기를 파괴하거나 관객이 불안할 정도로 미숙하게 구는 미성년이 아니다. 그녀는 단지 조용할 뿐,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을 건사하고 끌리는 남자에게 저돌적으로 키스하며 자신을 모욕한 상대를 돌려세워 쏘아붙일 줄 안다. 동시에 대학생 오빠 강우에게 어른처럼 섹시하게 보이길 원하고, 조숙한 동갑내기 현욱의 보호도 받고 싶다. 놀라울 정도로 삶에 능동적이면서 아직 혼란스러운 자아의 다면성을 스스로 시험할줄 아는 여성주인공과
BIFF #7호 [프리뷰] 한인미 감독, '만인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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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김종분> Kim Jong-boon of Wangshimri
김진열/한국/2021년/102분/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왕십리의 한 길거리에서 50년째 채소 장사를 이어가고 있는 83살 김종분씨가 있다. 그는 91년 5월 25일 충무로 대한극장 앞에서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외치는 거리시위에 참가했다가 백골단의 과잉 폭력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다. <왕십리 김종분>은 김귀정 열사의 30주기를 기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지만, 영화의 주인공만큼은 김귀정이 아닌 김종분 이다. 영화는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 김종분이 장사를 하며 동네 사람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일상을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가 그동안 누군가의 어머니로만 불렸던 한 개인의 이름을 되찾아주자, 그는 그동안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영화가 이뤄낸 놀라운 성취는 그럼으로써 다시 한번 김귀정 열사에 대한 이해가
BIFF #7호 [프리뷰] 김진열 감독, '왕십리 김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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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의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는 부산영화제 상영작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단숨에 표가 동나버렸다. 세편의 단편을 묶은 <우연과 상상>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이브 마이 카>는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일본 영화의 현재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뜨거운 주목과 찬사를 받고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를 부산에서 만나 그가 길어 올린 마법 같은 영화적 순간들의 비밀에 대해 물었다.
-어제(10월7일)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 두 편의 영화 상영과 GV(관객과의 대화) 그리고 봉준호 감독과의 흥미진진한 스페셜 대담까지 빠듯한 일정을 소화했다. 관객의 반응을 온몸으로 느낀 어제 하루는 어땠나.
=봉준호 감독과의 대담은 두고두고 큰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관객들 역시 따뜻하게 환대해준다는 느낌이었다. 3시
BIFF #4호 [인터뷰] 하마구치 류스케가 말하는 우연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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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땅> Memory Land
킴퀴 부이/베트남, 독일/2021년/99분/뉴 커런츠
어느 화장터를 거쳐가는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작은 작고 허름한 집 안, 죽은 노인 여성의 몸에서 쉬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혼령이 남은 아들을 걱정하며 육신의 경계 위로 어른거린다. 아들은 이웃집이 파둔 묫자리를 거부하고 엄마를 4번 소각실에서 화장시킨다. <기억의 땅>은 이 화장터 소각실을 매개로 연루된 서너명의 인물들을 경유하면서 그들에게 내려앉은 절망과 권태를 기록한다. 살해당한 남편을 같은 곳에서 화장한 젊은 미망인은 남편의 유골을 조상의 묘소로 다시 가져가 제의를 치러야 하고, 다가올 죽음을 염려하는 어떤 노부부는 화장을 피하기 위해 상조 회사를 찾는다. 영화는 죽음과 영혼, 장례 의식이 갖는 신비성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과 대결시킨다. 비디오아트의 영역을 넘나들며 죽음을 둘러싼 관념과 의식을 그러모은 다음, 이를 우연적이
BIFF #6호 [프리뷰] 킴퀴 부이 감독, '기억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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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Hot in Day, Cold at Night
박송열/한국/2021년/90분/한국영화의 오늘-비전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젊은 부부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들의 아파트에서 보내며 각자 구직 활동 중이다. 영태(박송열)와 정희(원향라), 작은 것에도 기뻐할 줄 알고 만족할 줄 아는 이 도덕적인 부부의 상황은 그러나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희는 생활비가 빠듯해지자 남편 몰래 사금융에서 돈을 빌리고, 영태는 믿었던 선배에게 빌려준 카메라를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놓인다. 그런데도 부부는 인간의 존엄과 신뢰와 도리를 생각한다. 빌린 카메라를 팔아버렸다는 선배에게 카메라값으로 300만원을 받은 영태는 어쩐지 돈을 너무 많이 받은 것 같다며 100만원을 다시 돌려주는 인물이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비극적 상황도 희극으로 승화하는 웃픈 코미디다.
BIFF #6호 [프리뷰] 박송열 감독,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