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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처럼 쏟아지는 뉴스를 보지 않더라도, 이해관계를 가진 현대 사회 속 인간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 존재들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서로 중시하는 가치도, 당대 사회에서 가장 위중하다 판단하는 문제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 세대, 국가, 이념 불문하고 환경과 젠더가 동시대 가장 뜨거운 이슈였음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생태와 젠더를 주제로 기존 문학 작품들을 선별한 ‘해시태그 문학선’은 해당 주제들이 섬세하게 반영된 소설 13편과 시 140여편을 묶었다. <#생태_소설> <#생태_시> <#젠더_소설> <#젠더_시> 총 4권의 책이다. 작가들이 생태 또는 젠더를 주제로 청탁받아 새로 쓴 작품이 아니라 1970년대부터 2020년까지 근래의 문학 중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들을 추려낸 것이다. 덕분에 메시지만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 독자는 이야기 속으로 천천히 발을 내딛어 함께 사유하고 상상하게 된다
씨네21 추천도서 - <해시태그 문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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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두고니의 <내 동생의 무덤>은 형사물과 법정물을 절묘하게 조합한 스릴러다. 1993년, 부모님이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자 트레이시는 남자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러 가면서 동생 세라에게 꼭 고속도로로 운전해서 귀가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이후로 20년, 트레이시는 세라를 보지 못했다. 감쪽같이 사라진 세라 때문에 트레이시의 가족은 슬픔에 잠겼고, 부모님도 차례로 돌아가셨다. 학교에서 선생으로 일하며 동생과 가까이서 살고자 했던 트레이시의 소원 역시 물거품이 되어, 지금 트레이시는 고향을 떠나 강력반 형사로 일하고 있다. 세라의 사체가 20년 만에 발견되자, 트레이시는 고향으로 잠시 돌아와 사건을 다시 파헤치고자 한다. 세라를 살해한 범인으로 강간범 에드먼드 하우스가 이미 1급 살인 유죄판결을 받아 복역 중이지만 트레이시는 당시 실종 상태인 세라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하기 위해 에드먼드 하우스가 누명을 썼다고 판단하고 그를 석방시키려고 노력한다. 진범을 찾기 위해서.
씨네21 추천도서 - <내 동생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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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혼이 나 덜덜 떨면서도, 그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서 기억 속에 저장하는 내가 있었다. 어렴풋이 이것이 소설의 좋은 소재가 될 것이라고 느끼면서.”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인 <긴 하루>의 작가 노트 중 이 부분에 공감할 창작자가 많을 것이다. 나쁜 일이 생기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겪으면 몹시 괴로워하는 당사자이면서도 자아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이건 나중에 글 소재가 되겠다’라고 남의 일처럼 바라볼 때가 있다. 한이 작가의 <긴 하루>는 치매에 걸려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는 주인공의 시선이 소년 시절로 이동하며 가족의 비밀을 들춘다. 치매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방에 가두는 설정은 과거 모자가 살기 위해 공모했던 어떤 사건을 은유하고, 뒤이어 전모가 밝혀지면 독자도 기이한 가담자가 된다.
이번 황금펜상 수상작품집에는 어떠한 경향성 같은 것이 엿보인다. 사회면 뉴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아닌가 싶
씨네21 추천도서 -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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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결심으로 독서를 마음먹은 분들을 위한 책 리스트. 한국의 추리 단편소설들을 한데 묶은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술에 대한 다양한 에세이를 묶은 앤솔러지 <영롱보다 몽롱>, 생태와 젠더를 주제로 기존 문학 작품들을 선별한 ‘해시태그 문학선’, 공중파 3사 영화 정보 프로그램을 모두 담당했던 이력을 지닌 방송 작가의 육아와 영화 에세이 <육퇴한 밤, 혼자 보는 영화>, 변호사 출신인 작가들이 쓴 범죄 소설 <내 동생의 무덤>과 <미라클 크리크>, 곧 현실로 이루어질 듯한 SF 소설 <리틀 아이즈>를 소개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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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을 맞아 새로운 앨범 구상을 위해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책상에 앉아 있는다. 예전에 써뒀던 내용들을 들여다보며 고치기도 하면서 기타도 좀 치고… 를 반복하다 보면 밤도 금방 깊어지는 일상이다. 오랫동안 반복해온 일이지만 여전히 과정은 평탄하지만은 않다. 최단거리로 목적지에 바로 도착할 수 있는 일이라면 참 좋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과정은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어릴 적 시장에 심부름하러 갔다가 무엇인가에 홀려(장난감이나 게임기였겠지?) 해가 다 지고서야 돌아왔던 경험을 떠올리지 않아도 작업을 하기 위해 준비한 이 방과 책상에는 주의력을 빼앗아가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 무엇인가에 주의를 빼앗기기를 반복하는 것이 작업자의 숙명이겠거니 하면서도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혹시나 인터넷에는 그런 방법이 있을까? 프리랜서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는 책을 읽으면서 집중력을 회복하기 위한 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사실 그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비트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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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 선임연구원. 영화 속 혜성 충돌은 오늘날 우리 인류가 맞닥뜨린, 그러나 애써 무시하고 있는, 전 지구를 위협하고 있는 문제들로 치환해볼 수 있다. 위기의 종류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대처하는 자세는 비슷할 것 같다.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돈 룩 업>을 봤다. 영화를 먼저 본 지인들은 내게 구체적인 힌트는 주지 않고 추천만 했다. 재밌는데 무섭다고 했다. 과학자와 정치가가 등장한다는 말에, 그거 참 재밌겠다 싶어 무선 이어폰을 끼고 개수대 맞은편에 태블릿을 올려두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고무장갑을 꼈다. 여느 때처럼 설거지를 해치우는 동안 가볍게 영화나 보며 집안일의 지겨움을 쫓을 요량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찻주전자에 물이 끓는 휘파람 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공포물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는 찰나, 뜨거운 차 한잔과 간식을 들고 모니터 앞에 앉아 음악으로 지루함을 쫓으며 관측을 시작하는 천문학자가 보였다. 아니구나. 곧이어 기이한 소
천문학자가 본 '돈 룩 업', 신중한 과학적 묘사보다 눈길을 끈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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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평론가의 프런트 라인]
배우의 얼굴은 영화를 위한 작은 장소다. 클로즈업된 얼굴에는 그 자체로 영화적인 힘이 내장되어 있다. 프랑스를 연기한 레아 세두의 얼굴은 영화적인 동시에 영화적인 것을 무너뜨린다.
브루노 뒤몽이 현재로 돌아왔다. <까미유 끌로델> <잔 다르크> 등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룬 시대극과 어딘가 현실에서 한발 물러난 영화를 만들어오던 뒤몽은 미디어에 둘러싸인 인물의 삶을 조망하는 <프랑스>를 통해 완전한 현재에 뛰어든다. <프랑스>의 도입부는 마치 현재를 재정의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너무 평범해서 도리어 이상한 첫 장면에서부터 두드러진다. 스타 방송인 프랑스 드 뫼르(레아 세두)에게 사람들이 몰려든다. 카메라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 놓여 있다. 잠시 후 무리를 등지고 카메라쪽으로 걸어와 카메라 앞 적당한 거리에 멈춰 선 프랑스는 이어폰을 통해 아들과 통화한 뒤 무리 속으로 되돌아간다. 이 장면에서 주목할 것은
브루노 뒤몽의 '프랑스'가 카메라 시대에 던지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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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인도 극장가엔 오랜만에 훈풍이 불었다. 비록 살만 칸의 액션 스릴러 <안팀: 더 파이널 트루스>는 기대치를 밑돌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수르야반시>에 이어 1983년 인도 크리켓 월드컵 대표팀의 신화적 승리를 스크린에 재현한 란비르 싱의 스포츠 드라마 <’83>이 순항하며 마침내 길었던 흥행의 갈증을 풀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극장가를 더욱 뜨겁게 달군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다. 급기야 발리우드 넘버원인 <수르야반시>의 기록을 능가하는 흥행 성적을 거뒀는데, 특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이례적으로 외화가 ‘올해의 인기상’을 거머쥔 셈이다. 제아무리 기라성 같은 할리우드 대작도 이와 같은 성공을 보장받지 못하는 곳에서 이 거미 인간 시리즈만큼은 이미 여러 차례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둬왔고, 이번에도 외화의 대표주자다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만하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최대 규모의
[델리] 자국 영화 선호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흥행 고공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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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이구나” “쉽진 않았어요.”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성진그룹의 실세 서한숙(김미숙)과 10년을 꾸민 계략으로 일격을 날린 둘째 며느리 윤재희(수애) 사이에 불꽃이 튄다. 재희는 시어머니가 가진 모든 것을 갖겠노라고 선언하고, 한숙은 유력 인사들의 치부를 모은 비밀 서재의 출입 키를 재희에게 건넨다. 일종의 곳간 열쇠를 주고받으며 맺은 JTBC <공작도시>의 고부 동맹. 서한숙은 남동생에게 넘겼던 그룹 회장직을 되찾아 큰아들에게 잇게 하고자 유능한 며느리를 활용하고, 윤재희는 성진가의 혼외자인 남편 정준혁(김강우)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시어머니를 든든한 뒷배로 삼는다. 이들에게 아들과 남편은 오로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위치를 마련하는 수단이다.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일에는 자연히 리스크가 따른다. 나랏일을 논하고 진정성을 입에 올리는 자들이 성매수, 성추행을 저질러도 요직은 여전히 남자가 차지하는 세상을 살아온 시어머니는 그들의 치부를 공격하는 쪽보다 덮어주는
며느리의 진심, JTBC '공작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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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돼지를 가져갔지?” 오리건주의 버려진 땅에서 오막살이를 하는 주인공 롭(니콜라스 케이지)은 황금빛깔의 돼지 한 마리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다. 푸드 바이어인 아미르(알렉스 울프)를 제외하곤 숲속에 파묻힌 그를 찾아오는 이도 없는 상태. 가족이라곤 흙을 헤집고 킁킁대며 땅속에 파묻힌 트러플 버섯의 위치를 알려주는 돼지가 유일하다. 그러던 어느 날, 롭의 돼지가 낯선 이들에게 납치되고, 롭은 돼지를 되찾고 자신을 찾기 위해 15년 전 떠나온 포틀랜드로 여정을 떠난다. <피그>는 신인감독 마이클 사노스키가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았으며, 감독은 이 데뷔작으로 2021년 전미비평가위원회 최우수 데뷔 작품상, 시카고비평가협회 유망 감독상, 포틀랜드비평가협회 오리건 작품상 등을 받았다.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롭으로 변신한 니콜라스 케이지 역시 세인트루이스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 노스텍사스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 등 미국 전역의 영화협회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Coming Soon] 돼지와 나를 찾는, 포틀랜드로의 여정 '피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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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할리우드 시네마의 기수였던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은 존 포드, 하워드 휴스 감독과 같이 할리우드 황금시대 형식주의자들의 미학을 다시금 재현함으로써 1970년대 초에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빠르게 얻은 유명세와 달리 <마지막 영화관>(1971), <왓츠업 닥>(1972), <페이퍼 문>(1973) 등의 대표작 외에는 이후 만들어진 많은 작품들이 주목받지 못해 “1970년대에 가장 외면받은 감독”(<뉴욕타임스>)이라 불릴 정도로 커리어의 부침도 컸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그는 영화예술의 챔피언”이라고 애도를 보냈다
'마지막 영화관'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 1월6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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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전설적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1월7일 고향 바하마에서 생을 마감했다.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를 상담하는 의사로 분한 <노 웨이 아웃>(1950)으로 데뷔해 1950~60년대 할리우드에서 주연배우로 거듭난 그는 당대 흑인 배우에게는 잘 주어지지 않던 역할들을 섭렵해나갔다. <흑과 백>(1958)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영국 아카데미 최우수외국배우상을 수상했고 <들판의 백합>(1964)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위엄과 우아함의 훌륭한 전형”이라고 조의를 표했다.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 향년 94살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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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는 1월7일 2022년 제1차 정기회의를 통해 박기용 감독을 신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수상작인 <모텔 선인장>, 스위스 프리부르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낙타(들)> 등을 연출한 박 위원장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을 지낸 후 최근까지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영화학과 주임교수로 강단에 섰다. 임기는 2024년 1월8일까지 2년간이다. 부위원장으로는 여성영화인모임 대표, <봄날은 간다> <지구를 지켜라> 등의 프로듀서인 김선아 위원이 선출됐다.
영화진흥위원회 신임 위원장에 박기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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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윤여정이 있었다면 올해는 오영수다. <오징어 게임>에서 1번 참가자 ‘오일남’을 연기한 배우 오영수가 지난 1월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호텔에서 열린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가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와 <킬링 이브>로 여우조연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적 있지만, 한국 배우가 골든글로브에서 수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상식에 불참한 오영수는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입니다’”라며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1944년생인 그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63년 극단 광장에서 연극 생활을 시작했고,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오징어 게임' 오영수,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