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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자기 반영
<오마주>의 여성감독들
아들과 남편은 자꾸만 투덜대고 오래 함께한 PD는 떠나겠다 한다. 세편의 영화를 만들고 슬럼프에 빠진 영화감독 지완(이정은)은 신작 <유령인간>이 상영 중인 텅 빈 극장에서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영화는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이 묘하게 겹쳐지는 듯하고, 배우 이정은은 절박함과 묘한 낙천성을 동시에 품은 신수원 감독의 인상을 능청스레 모사한다. 한국영화 역사상 두 번째 여성감독인 홍재원의 필름 복원을 의뢰받은 지완의 여정은 곧 여성영화의 길을 닦은 실존 인물 홍은원 감독의 삶까지 불러낸다. 신수원의 자전적 이야기와 홍은원의 찬란한 생애, 그리고 픽션 속에서 이들 사이를 오가는 캐릭터 지완의 삶은 서서히 허구와 실제, 각색과 진심을 넘어 영화 만드는 여성의 삶에 관한 환상적인 수수께끼로 귀결된다.
올해의 메뉴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치킨 수프
4·3사건의 트라우마와 이산가족의 고통을 품은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⑤ 올해의 독립영화, 별별 리스트 1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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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에만 수많은 데뷔작이 영화과 졸업작품,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제작 지원작 등으로 완성되지만 그렇게 발굴된(혹은 사비를 털어 스스로 발굴한) 창작자들의 차기작을 보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2015년부터 한국 독립예술영화에서 데뷔작이 차지하는 편수가 급격히 늘어나 2022년 현재 증가세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극장에서 개봉한 한국 독립예술영화는 약 120편으로 이중 장편 데뷔작은 59편이다(영화진흥위원회 2022년 개봉일람 기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장편제작 연구과정 작품 6편(<윤시내가 사라졌다> <낮과 달>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그 겨울, 나는> <썬더버드> <파로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합협력단 영화 3편(<거래완료> <세이레> <옆집사람>) 등이 있지만 데뷔작 대다수가 영진위 제작지원, 영화제 기획개발비, 지역 영상위원회 지원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④ 이들의 두 번째 영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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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씨네21>은 1373호 ‘극장 중심의 체험들이 중요하다: 2022년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를 말하다’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독립영화 시장이 입은 타격과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의 확장 가능성, 독립영화가 일군 성장 등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에 한 단계 더 나아가 독립영화 배급사·제작사·극장 관계자의 관점으로 올해 한국 독립영화 시장 전반의 성적과 관객의 수요 변화, 각 층의 출구 전략 등을 정리해보았다. 먼저 관계자 모두 공통적으로 올해를 독립영화의 암흑기로 꼽았다. 배급사 그린나래미디어는 올해 청년 문제를 날카롭게 다룬 <태어나길 잘했어>와 <홈리스>를 배급했지만 모객 성적은 예상보다 훨씬 저조했다.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는 “여름 시장에 기대가 컸던 빅4 영화(<한산: 용의 출현> <헌트> <외계+인> 1부 <비상선언>)가 흥행 예상을 빗나가면서 그에 따라 독립영화 시장도 더 경직되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③ 한국 독립영화의 정체기, 제작사·배급사·극장 관계자가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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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벌새> <윤희에게> <메기>가 연이어 개봉한 2019년은 명실상부 독립영화계의 호황기였다. 개별 작품의 개성이 뚜렷하고 완성도가 높아 입소문을 탔고, 팬층이 형성돼 N차 관람이 유행처럼 번져 <벌새>가 14만명, <윤희에게>가 11만명, <메기>가 3만명의 관객을 얻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초중반에도 크게 조명받은 독립영화들이 있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와 <남매의 여름밤>의 경우 2만명대로 관객수는 어쩔 수 없이 감소했지만, 그럼에도 팬들의 두터운 지지를 얻었다. 그 뒤론 어땠나. 거론되는 작품의 수가 서서히 줄면서 팬데믹 3년차인 2022년엔 독립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도 자체가 낮아진 느낌이다. 2022년 1월부터 10월까지 개봉한 101편의 독립영화를 놓고 보자면, 소재 면에서 다양해졌고 팬데믹으로 어려워진 제작 환경에서도 끈기 있게 주제를 밀고 나간 작품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② 점점 높아지는 관객 1만명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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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3년차, 위축된 현장과 축소된 예산에도 불구하고 창작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제작해왔다. 나름의 돌파구를 거쳐 완성된 영화들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들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얼마나 유효하게 다가가는가. <씨네21>은 2022년의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기획 기사를 통해 올해 독립영화에서 읽힌 경향을 짚고 제작과 배급, 마케팅, 소규모 독립예술영화관의 상황과 신진 창작자들이 마주한 고민을 다각도로 들어보았다. 오는 12월1일 개막하는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상영작 중 기자들이 엄선한 9편의 영화와 ‘뉴웨이브 이후 대만영화의 기수들’ 초청전도 함께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올해의 독립영화 속 인물, 감독, 스탭을 꼽은 ‘별별 리스트’를 보며 지난 1년간 인상 깊게 본 작품의 요소들을 상기해보시기를.
2022년 1~10월 한국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결과
*이어지는 기사에 한국독립영화결산 및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추천작 소개 기사가 계속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① 사회적 거리두기 종료 이후의 독립영화계는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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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현 감독은 22시간을 자야 하는 희귀병을 앓는 오세의 로드무비 <여정>에 이어 다시 한번 삶과 죽음이 기묘하게 겹쳐 있는 이야기 <우수>를 만들었다. <우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지만 마냥 울적하지만은 않다. 친구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을 향해 가는 세 사람의 여정에 단순하지만 생생한 대사들이 웃음을 유발한다. 인상적인 여백과 독특한 프레임을 가진 장면들은 영화를 보는 시각적 재미도 유발한다. 이 모든 것이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닐지라도 오세현 감독이 제시한 <우수>라는 여정의 발견은 관객의 재미이고 몫이다.
-<우수>는 어떤 질문으로 시작된 이야기인가.
=10년 전에 친구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장례식장에 가면 죽음이 확인되는 거 아닌가. 영화에서처럼 세명이 장례식장을 향해 가는데 목적지에 가까이 갈수록 기분이 묘했다. 또 한번은 삽교천에 칼국수를 먹으러 가는데 내비게이션을 잘못 작동해 그냥 돌아온 적이 있다. 이
[인터뷰] ‘우수’ 오세현 감독, “로드무비에 매력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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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바디>의 김영광은 살인마이기 이전에 유혹자다. 로맨스 장르 안에서 활약한 배우의 전적을 묘하게 비튼 캐릭터 성윤오는 낮에는 건축가로 일하고 밤이 되면 데이팅 앱을 켠다. <썸바디>에서 연쇄살인범 성윤오가 외로운 여성들의 급소를 파고들어 목적지로 유인한 이후 펼치는 일들이란 대개 소름 끼치는 폭력으로 점철돼 있다. 배우로서의 야심을 더듬어보게 하는 이번 신작에서 김영광은 전에 없던 무시무시한 기운과 미스터리를 입고 나타나 변신의 포부를 알린다.
-데뷔 이래 가장 악하고 잔인한 인물을 연기했다. 작품을 준비하는 자세에서도 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나.
=이 인물을 잘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처음에는 외형적인 모습, 행동의 논리 등을 조금 과하게 준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썸바디>에서 성윤오란 인물의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는 어떤 전환의 순간을 이해하고 싶었다. 촬영을 3개월 앞두고 체격을 좀더 키웠는데, 감독님과 회의 후에 다시 체중을 뺐다.
[인터뷰] 넷플릭스 ‘썸바디’ 김영광, “변신의 스위치를 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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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명화>를 손꼽아 기다리고, 시린 손을 비비며 단관 개봉 극장의 영화표를 줄 서 예매하던 추억은 이제 까마득하다. 요즘 유행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은 지상파, 종편, 케이블, OTT 중 도대체 어디에서 볼 수 있나 찾아보아야 할 정도로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요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다. 십수년 전 지상파 예능에서 대본 없이 (혹은 대본 없는 것처럼) 예능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던 리얼리티 쇼가 비방송인들로 대상을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 가족들의 삶을 보여주는 육아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아마추어 뮤지션이나 댄서들의 성장기를 보여주던 오디션이 각광받았다. 그래도 이들 프로그램은 연예계라는 범주의 생활인들과 지향점이 연예인을 꿈꾸는 후보자들이라 일반인이라 말하긴 어렵다.
최근에는 짝을 찾는 프로그램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청춘 남녀가 풋풋한 설렘으로 상대를 찾던 예전의 짝짓기가 이제는 높은 연령대 출연진의 현실적인 고민으로 확장된다. 그다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Please, be 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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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때가 있지 않나. 남들은 다 아니라고 하는데 나 혼자 괜찮다고 말할 때. 혜진은 남들이 다 별로라고 할 때도 경학을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권소현이 연기한 <그 겨울, 나는>의 취준생 혜진은 관객과 같은 위치에서 인생의 혹한기를 버티는 공시생 남자친구 경학(권다함)을 바라본다. 관객은 혜진의 시선에서 때론 경학을 염려하고 때론 경학을 질책하고 싶어진다. “혜진은 취업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경학을 향한 마음 모두가 달라진다. 그래서 정체해 있는 경학을 자꾸만 재촉하고 싶어 한다.” 혜진의 마음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건 권소현이 배역에 쏟아부은 노력 덕일 것이다. 상대역인 권다함과 프리프로덕션 기간에도 일주일에 네댓번 만나며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고 촬영 전부터 함께 노량진 일대를 답사하며 지역 분위기와 수험생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혜진과 직장 상사의 일본어 대화 장면 또한 권소현을 통과하며 그 결이 풍성해졌다. “시나리오에는 ‘일본어로 대화한다
[WHO ARE YOU] '그 겨울, 나는' 권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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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10년의 발걸음>은 2011년 출범한 시각장애인 관현악단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의 창단 이후 10년의 궤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오케스트라를 출범한 이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 교장을 역임한 명선목 광명복지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은 현악기를 다루기 어렵다는 통념을 깨고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는 전 단원이 장애 연주자로 구성돼 있고, 전 단원은 보면대 없이 교향곡의 전 악장을 암보해 연주한다. 영화는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의 10년을 담은 기록물답게 단원들의 연주 실황을 무편집본으로 담는다. 시간 순서에 따른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의 발전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단원들의 연주 기량과 이들이 공연에서 다루는 레퍼토리가 시간에 비례해 진보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음대 출신 혜광학교 졸업자, 협연자, 후원자, 언론 관계자 및 국회의원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인터뷰
[리뷰] '동행: 10년의 발걸음', 마음의 눈을 틔우는 선율과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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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의 젊은 남녀 유팡(문리)과 장둥링(임철희)이 6년 만에 우연히 재회하여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날 갑작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다. 자신이 유팡의 전 애인이라고 말하는 밍량(린바이홍)이 한낮의 기차역에서 유팡에게 칼부림을 시도한 것이다. 장둥링은 유팡을 지키려 몸을 던지고, 큰 자상을 입는다. 그리고 밍량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 유팡과 유팡의 동성애인 모니카(천팅니)를 집요히 스토킹했던 사실이 밝혀진다. <청춘시련>은 영어 제목 <Terrorizers>가 지시하듯 에드워드 양의 <공포분자>(The Terroriser)나 <타이페이 스토리>처럼 도시의 청춘들이 엇갈리며 자아내는 불안을 그려낸다. 기차역 칼부림 사건에 얽힌 이들의 치정과 일상을 인물 각각의 입장에서 담담히 반복하는 플롯을 통해서다. 다만 이러한 레퍼런스의 활용은 작품 고유의 개성을 재창조하기보다는 전술한 대만 뉴웨이브의 감성적인 성취와 생경한 서사 구조를 다소 안일하게 모
[리뷰] '청춘시련', 무의미, 무성의하게 반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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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뉴욕타임스>에 기고된 한편의 기사는 할리우드의 오랜 침묵을 거대한 외침으로 바꾸어놓았다. <펄프 픽션> <셰익스피어 인 러브>등의 제작자로 잘 알려진 하비 와인스틴이 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저지른 성폭력에 대한 탐사보도였다. 여성배우에 대한 할리우드의 왜곡된 인식, 영화 관계자의 묵인과 옹호,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 사법제도 등 와인스틴의 성범죄를 가능케 한 조건들에 대해 끈질기게 추적한 <뉴욕타임스>의 조디 캔터와 메건 투히 기자의 취재기가 <그녀가 말했다>에 담겼다. 영화는 현실과 재현의 경계를 자연스레 넘나든다. 성범죄 당시의 녹취록을 직접 들여오거나 실제 피해자를 등장시키는가 하면 사건 관계자와 가장 유사한 배우를 기용해 설득력을 배가한다. 재현과 실제가 겹친 자리에서 가해자에게 빼앗긴 여성들의 목소리는 거대한 울림이 되어 미투(MeToo) 이후의 시간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첫걸음에 자리한 조디 캔터와 메건
[리뷰] '그녀가 말했다', 두 여성 기자의 끈기와 용기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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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식성을 가진 소녀 매런(테일러 러셀). 그녀는 자신의 독특함을 숨긴 채 아빠와 단둘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아빠마저 그녀를 떠나버린다. 홀로 남겨진 매런. 그녀는 어렸을 때 가족을 떠났기 때문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열여섯 소녀가 홀로 떠나는 여정은 쉽지 않다. 친절한 듯 기묘한 사람들도 마주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길 위에서 자신과 닮은 소년 리(티모시 샬라메)를 만난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가까워지는 둘. 리는 매런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 아름다운 듯 위태로운 두 사람의 여정은 어디로 향할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으로 국내 관객의 사랑을 받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이다. 그는 이번에도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보이지 않는 곳에 머무는 이들을 응시한다. 소재는 어느 때보다도 파격적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런 소재를 통해 영화는
[리뷰] '본즈 앤 올', 외로움, 사랑, 그리고 받아들여짐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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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방에서 한 사람이 노트북에 연신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고 있다. 그 내용은 음성으로 변환되어 방 안에 울려 퍼진다. 영화감독인 노동주는 단편영화 <그냥 걸었어>의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다. 노동주는 “사랑에 대한 힘이 힘에 대한 사랑을 능가할 때 세계 평화가 온다고 굳게 믿고 있는 세계 최초 평화주의 시각장애인 영화감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의 직업은 다양하다. 치료 안마사, 영어 강사, 장애인 인권 강사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자신의 상상을 영상으로 구현해내는 영화 작업에 투자한다. 단편영화 <그냥 걸었어>에 참여한 스탭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본격적인 제작 회의가 시작된다.
<영화감독 노동주>는 시각장애인 영화감독 노동주의 단편영화 <그냥 걸었어>의 촬영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노동주 감독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발병한 다발성경화증으로 시각을 잃었다. 영화를 촬영할 때 중도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은 이점으로 작용한다. 장면을 머
[리뷰] '영화감독 노동주', 노동주의 상상은 영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