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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는 신원 미상의 여성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호퍼의 1927년작 <자동판매기 식당>(Automat) 속 홀로 앉은 여인을 들 수 있다. 유리막 안에 전시된 음식을 동전을 넣어 주문하는 자동판매기 식당은 1920년대 미국 도시 문화의 고유한 풍경이다. 커피잔을 들어올리는 여인은 정작 커피 자체에는 무관심한 듯하다. 상념에 빠진 듯한 인물의 자태가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후경의 유리벽에 반사된 실내등의 긴 행렬은 깊은 상념의 시각적 등가물이다. 이 여인이 심중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같은 해 개봉한 할리우드영화 <잇>(It)의 여주인공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클래라 보가 연기하는 베티는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지만 거침없는 언행과 타고난 성적 매력으로 뭇 남성들을 매료시킨다. 동시에 노동계급의 동료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워 누구에게든 문제의 해결사 역할을 자임한다. 베티는 범인은
[기획] 호퍼의 여인들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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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0일부터 8월2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한국 첫 에드워드 호퍼 개인전인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가 열린다. 호퍼의 리얼리즘은 일상을 기묘하게 바라보도록 하는 빛과 색채, 현대 도시의 우울증을 포착하는 구도로 감탄을 자아낸다. 그 형식과 깊이 면에서 시대 불변의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해석에의 역동을 요구하는 작가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오늘날 우리는 작가가 살아간 당대의 사회·정치적 맥락 속에서 ‘호퍼 게이즈’(Hopper’s gaze)를 새롭게 풀이하고, 그의 창작 생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아내 조세핀과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다.이번 전시에 포함된 작품(약 160점)과 대표작들을 두루 아울러 그의 작품에 담긴 소외, 그리고 고독의 외연을 확장하는 글을 소개한다. 포스트-시네마 시대의 회화와 영화에 관한 책 <카메라 소메티카>를 펴낸 박선 영화학자가 여성 인물들을 중심으로 보다 면밀한 해석의 관점을 제시한다. 20세
[기획] 국내 첫 개인전과 함께 다시 마주하는 에드워드 호퍼 작품 속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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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교사인 도경(전석호)은 현장학습에서 물에 빠진 반 학생을 구하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홀로 남게 된 그의 아내 명지(박하선)는 집 안 곳곳에서 도경의 기억을 맞닥뜨리고, 슬픔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한다. 김애란 작가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사회적 사고 이후 남겨진 유가족의 슬픔을 물에 빠진 아이의 주변인과 아이를 지키려던 교사의 가족, 두 가지 축으로 보여준다. 누구도 탓할 수 없지만 누구든 탓하고 싶은 원망 속에서 사람들은 끝끝내 안개 속을 걸어나온다. 어떤 터널에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며 사람들을 위로하는 영화의 중심을 김희정 감독과 함께 들여다봤다.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가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소감이 궁금하다.
= 내게 전주는 가족 같은 곳이다. 2006년에 작업한 <열세살, 수아>를 대부분 전주에서 촬영했고, 2016년에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1억
[인터뷰] 도시가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 폐막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김희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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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은 올해 전주영화제 한국경쟁에서 유일하게 SF 장르를 표방한 작품이다. 지구 상공 곳곳에 UFO가 출현한 지 29년째 되는 해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확인>의 기획은 2018년에 시작됐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자란 전주영 감독이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때다. 그는 당시의 한국 사회를 보며 명확히 말하기 힘든 혼란을 느꼈다. “우리 세대에게 세상의 어떤 점이 문제고, 어디에서 불안을 느끼는지 물어보면 제대로 답하기가 곤란하다. 세대 갈등? 지구온난화? 부동산? 마음에 걸리는 요소는 많은데 하나의 답은 없었다.” 이런 대화 중 그가 언급한 영화는 <국제시장>이다. “<국제시장> 속 주인공의 가족은 전쟁과 산업화 시기를 함께 버티고 이겨내면 좋은 미래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 희망이 지금 시대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미확인>의 UFO가 탄생했다. 그가 느꼈던 한국 사회의 혼란과 불안을 도심 위 미확인 비행 물체
[인터뷰] 한국 사회가 쏘아올린 UFO, 한국경쟁 ‘미확인’, 전주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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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객은 영사 사고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밤 산책>은 어떤 소리도 없이 도시와 숲, 골목길과 개울, 도시와 자연의 정적 풍경을 산책하듯 이어 붙인다. 전작 <오후 풍경>도 도시의 풍경을 포착한 작품이지만 <밤 산책>에선 행인의 움직임까지 덜어내 종종 영화 전체가 사진 이미지의 연속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올해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하버부문에 초청된 데 이어 전주영화제 특별부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밤 산책>은 손구용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그는 첫 번째 장편영화 <오후 풍경>의 로케이션 중 하나였던 세검정 마을에서 밤 산책을 하다가 “사물과 풍경이 한순간 푸른빛으로 감응되는 미적이고 공감각적인 경험을 했다”고 전한다. 5~6개월 동안 세검정 마을을 카메라에 기록한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개울이었다. 개울 속을 들여다봤을 때 “마치 물과 하늘이 하나가 되고 이를 보는 나 자신은 사라지는, 환상일 수도 망상일 수도 있는”
[인터뷰] 특별부문 다큐멘터리상 ‘밤 산책’ 손구용 감독, 달, 별, 밤,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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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바다 마을에서 살아온 나영(권유리)의 낙은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점심이면 모두 모여 함께 끼니를 나누고 새로운 소식이 들리는 날이면 파티를 연다. 하지만 가족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엄마(길해연)는 정든 집을 팔자고 하고 동생(현우석)은 20살이 되면 독립해서 서울에 갈 거라 통보한다. 새로운 변화가 막연한 불안처럼 느껴지는 나영은 다시 예전처럼 변함없는 방식으로 살고 싶다. 사실 나영과 배우 권유리는 많이 다르다. 걸그룹 소녀시대로 데뷔해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다방면에서 확장을 거쳐온 그와 달리 나영은 단조로운 삶을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이 둘은 닮아 있다. 온 힘을 다해 친 볼링공이 행운처럼 날아오를 때, 마치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돌핀처럼 솟아오를 때 그 순간과 자신을 연결 짓는 나영처럼 권유리는 자신의 소중한 찰나를 부지런히 그러모은다. 나영과 권유리 사이의 희미한 경계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독립영화를 선택했다.
[인터뷰] ‘돌핀’ 권유리, 중심을 잃지 않고 천천히 나아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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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온전히 믿을 수 없다. 영화의 1부도, 2부도 마찬가지다. 배우 화령(조현진)은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자신이 촬영한 영화에 관한 기억을 잃는다. 관계자들이 화령의 병문안을 와 영화 내용을 복기해주지만 이들의 진술은 모두 다르다. 영화의 2부에 도달하면 영화의 우주는 몇 갈래로 나뉘어 관객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제24회 전주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심사위원 특별언급 수상작인 <우리와 상관없이>는 81분의 러닝타임 내내 흑백의 미로를 헤매야 하는 영화다. 그리고 그 미궁은 유형준 감독에 의해 쓰이고, 찍히고, 만들어졌다. 첫 장편 연출작인 이번 영화로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에 다녀온 후 영화제를 찾은 유형준 감독을 만났다.
- 영화의 제목이 모호하다. 어떤 의미로 제목을 지었나.
= 살면서 복잡한 생각이 들거나 큰 그림이 보이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을 제목화 했다. 대개 문제에 관한 해결책을 강구할 때 여러 경우의 수를
[인터뷰] 한국경쟁 심사위원 특별언급 ‘우리와 상관없이’, 유형준 감독 “내게 영화는 아주 복잡한 기계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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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 종말을 예언했던 1999년은 혼란스러웠다. 2000년이 되는 순간 컴퓨터가 연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밀레니엄 버그’ 때문에 컴퓨터를 이용하는 모든 분야가 마비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돌았고, 학교에선 대의를 위해 참아야 한다는 식으로 수위 높은 폭력이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우.천.사)>(이하 <우.천.사>)의 고등학교 태권도 부원 주영(박수연)과 소년원 학교를 다니는 예지(이유미)의 사랑은 세기말에 싹텄기에 더 순수하고 순진할 수 있다. 1991년생 박수연과 1994년생 이유미에게 1999년은 생생하게 기억나는 과거는 아니지만,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순진한 믿음은 10대 시절을 거쳐온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대를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코드다.
- 시나리오를 통해 처음 만난 주영과 예지는 어떤 아이였나. 실제 본인 모습과 얼마나 닮았다고 느꼈나.
박수연 모든 사람이 그렇듯
[인터뷰] 한국경쟁 왓챠가 주목한 장편,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우.천.사)' 배우 박수연, 이유미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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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던 사랑에 배신당한 지수(김재경)는 이별 후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봉투를 뒤져 봉투의 주인을 파악한 후 다시 내다버린다. 프로파일링과 같은 과정으로 상대를 엿보는 지수의 눈에 정체 모를 봉투의 주인, 우재(현우)가 들어온다. <너를 줍다>가 제24회 전주영화제 한국경쟁 2관왕(CGV상,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의 쾌거를 거두기 하루 전, 고령화사회의 이면을 깊이 파고든 <욕창>(2020) 이후 4년 만의 장편 연출작으로 전주영화제를 찾은 심혜정 감독과 처음 영화제를 찾은 배우 김재경을 만났다. 인터뷰에 앞선 사진 촬영부터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데 여념이 없던 둘은, 인터뷰 중에도 다감한 리액션을 아낌없이 교환하며 서로를 향한 두터운 신뢰를 자랑했다.
- 심혜정 감독은 지금까지 자전성을 반영한 창작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다 처음으로 하성란의 단편소설 <곰팡이꽃>을 각색하는 도전을 했다.
심혜정 사람을 관찰하는 걸 즐긴다. 요즘 친구들은 누구
[인터뷰] ‘너를 줍다’ 심혜정 감독, 김재경 배우, 동시대성이란 개념을 정말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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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영화제 한국경쟁 대상의 영예는 신동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당신으로부터>에 돌아갔다. 첫 장편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가 동일 부문 대상에 선정된 이후 3년 만이다. 이로써 신동민 감독은 해당 대상을 2회 수상한 최초의 감독이 됐다. <당신으로부터>의 형식과 내용이 전작과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이 의미 있는 족적이다. 먼저, 신동민 감독의 실제 어머니 김혜정 배우가 전작에 이어 다시 등장한다. 신동민 감독이 출연해 김혜정 배우의 아들 역으로 연기하기까지 한다. 다만 <당신으로부터>에 연기라는 단어를 무턱대고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3부엔 신동민 감독이 실제로 겪었던 아버지의 상실, 전작에서 경험한 어머니와의 영화 촬영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 2부에서도 신동민 감독의 주변인들이 각자의 일상을 영화에 녹여낸다. 시상식 직후 신동민 감독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본인의 연출론을 진중히 읊어냈다.
[인터뷰] 한국경쟁 대상 ‘당신으로부터’ 신동민 감독, 인물들의 실제 삶과 시간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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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관습, 그 모든 선을 넘는 예술의 장을 선언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가 5월6일 폐막했다. 다르덴 형제가 개막작 <토리와 로키타>로 전주를 방문한 빅 이벤트를 시작으로, 많은 국내외 게스트들이 영화제를 찾아 관객을 만났다. <씨네21>도 전주 영화의 거리에서 게스트들을 화상 통화가 아닌 대면 인터뷰로 만나면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간 영화제의 활기에 동참했다. 폐막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와 한국경쟁 대상을 수상한 <당신으로부터>를 포함한 한국경쟁 수상작 그리고 화제작 인터뷰를 모아 소개한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전주국제영화제 관련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영화인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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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년들이 맞닥뜨리는 세계의 균열을 극도로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 끝내 여린 소년의 죄의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마는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를 반복해 보며 체념하듯 되뇌었다. 영화를 거듭해 보아도 매 장면에 대한 감응은 다르게 반향하지 않았고, 이 가련하고도 가혹한 영화를 끌어안고픈 마음과 마냥 그럴 수만은 없는 양가적인 감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마음에 걸려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장면은 감상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데, <클로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그 생명력의 근원을 날카롭고도 사려 깊은 시선과, 개인의 얼굴에 무섭도록 집중하면서도 사회상을 영민하게 반영하는 지능적인 면모에서, 단순하게는 관객과 인물을 밀착시키는 강력한 동화력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딘가 위태로워 보인다. 소년의 세상이 흔들리기 때문만이 아니다. 영화 후반부부터 서사가 도식적으로 구조화되고, 소년이 연약
[비평] ‘클로즈’, 상실이 자아내는 큰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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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촬영할 때는 언제나 기술적인 문제에 몰두한다.” - 필리프 가렐
<물안에서>의 성모(신석호)는 단편영화를 만들기 위해 촬영감독인 성국(하성국), 배우로 출연하는 후배 남희(김승윤)와 함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닌다. 만들려는 영화의 배우이자 연출자이기도 한 성모는 어느 골목에 남희를 세우고 몇 발짝 걸어보게 한다. 그는 남희가 골목을 걷는 모습을 보면서 “장소와 인물이 어울리는지” 관찰하고 이곳을 촬영장소로 결정한다. 다른 장면에서 세 사람은 이미 비슷한 골목 몇 개를 지나쳐 왔지만, 성모는 그곳이 아니라 이 골목을 선택한다. 아직 무엇을 찍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성모는 구체적인 지역에서 장소를 찾고 그 자리에 인물을 배치하는 것에서부터 장면을 구상한다. 영화의 윤곽을 떠올리기 위해 지역과 장소와 배우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전제는 물론 홍상수의 변함 없는 원칙이다(“난 모델이 필요한 사람이다. 구체적인 지역, 장소, 배우…”).
홍상수의 영화에 영화감독과 배우
[비평] '물안에서'를 중심으로 본 촬영장, 리허설, 워크숍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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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 당근마켓에서 2만원 주고 산 소파에 앉아 풍경 소리를 들으며 한 계절을 보냈다. 당시 나는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 출품을 목표로 이야기를 떠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크게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단지 잠자코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바람이 가로질러가며 풍경을 울리는 소리를 듣다보면 이야기도 불현듯 방문할 것 같았다. 꽤 간절하기도 하고 심드렁하기도 했다. 나와 주변에서 벌어지는 불가해한 일들을 바라보다 보면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이야기는 아무 힘이 없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많은 축복과 응원을 받았음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안에서는 이야기에 대한 경멸이 커졌다. 다시 이야기라는 것을 믿고 싶었기에 그 방문이 간절했고 끝내 믿을 수 없을 거라 예상했기에 심드렁했다. 그래도 뭔가 떠오르기는 했다. 중년 여성 ‘동경’과 어린이 ‘을래’라는 두 인물 사이에 흐르는 시간에 대한 것이었는데 트리트먼트가 완성되었지만 스스로도 도저히 그 인물들과 이야기가
[김세인의 데구루루] 이야기의 빛과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