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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간데없지만 온기는 남아 있다. 만원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에, 사직서를 안고 사는 중앙지방국세청 조사관 서혜영(고아성)은 희망보다 유리한 꼼수를 부린다. 명의를 빌려줬다가 피해를 입은 23살 가장이 죽음을 택한 현장에서 그에게 불리한 문자를 지우거나, 의문스런 사고를 당한 내부고발자의 유족에게 남몰래 CCTV 기록을 건네는 식으로. 대기업(<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경찰서(<크라임 퍼즐>)를 지나 국세청에 도착한 배우 고아성은 전작들보다 느슨하고 유연하지만 여전히 쪽팔리게 살 수만은 없는 프로페셔널을 연기한다. 일하는 여성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어떻게 잇고 넓힐 것인가. 고아성의 화두는 <트레이서>를 만나 더 깊어지고 있다.
-작품에서 착용한 출입증, 사원증을 개인 작업실에 모아둔 것을 봤다. 이번엔 국세청 조사관 신분의 이름표가 생겼다.
=다양한 직장인 캐릭터를 연기해봤지만 국세청 조사관은 한번도 가깝게 느껴본 적
'트레이서' 고아성, 성실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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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잘 알면 엿도 더 잘 먹일 수 있다. 대기업 돈세탁을 전문으로 하던 전직 회계사 황동주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각성해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국세청에 입성한다. 공무원 하면 떠올리는 딱딱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뻔뻔하고 독한 추진력으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황동주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 등에서 보여준 임시완의 ‘얄밉게 약 올리는’ 얼굴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제대 후 쉬지 않고 여섯 작품을 내리 촬영했다는 임시완을 만났다.
-<트레이서>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미생>의 CP(책임 프로듀서)였던 이찬호 스튜디오 웨이브 대표와의 인연 때문인가.
=<미생>이 나올 때만 해도 tvN 드라마는 시작 단계에 있었다. 그때처럼 선구자 역할을 웨이브에서도 잘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국세청에 대해 아주 철저하게 조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글
'트레이서' 임시완, 완성형의 임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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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체납자에게 이들은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 2022년 1월7일 첫 공개되는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트레이서>(제작 웨스트월드스토리·연출 이승영·극본 김현정)는 국세청 조세5국이 검은돈, 숨긴 돈, 구린 돈을 찾아나서는 활극이다. 경찰, 검찰 같은 수사기관을 배경으로 한 추적 드라마는 많지만 국세청을 배경으로 체납자를 쫓는 이야기는 이 작품이 처음이다. 한창 <트레이서>를 촬영하고 있는 배우 임시완, 고아성, 박용우 등 조세5국 삼총사는 코믹, 정색, 진지 등 변화무쌍한 포즈를 시시각각으로 선보이며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했다. 다음 장부터 세 배우에게 듣는 <트레이서> 출연기를 전한다.
시리즈 '트레이서'의 배우들: 임시완, 고아성, 박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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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트레이서>의 배우 임시완, 고아성, 박용우가 2022년 <씨네21> 신년호 표지를 장식했다. 2022년 1월7일 웨이브를 통해 첫 선을 보이는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트레이서>(제작 웨스트월드스토리·연출 이승영·극본 김현정)는 검은 돈, 구린 돈, 숨긴 돈을 찾아 활극을 펼치는 국세청 사람들의 이야기. 시리즈의 공개에 앞서 <씨네21>은 <트레이서>의 세 주역 임시완, 고아성, 박용우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임시완은 대기업의 뒷돈을 관리하던 회계사에서 국세청 조사관이 된 독특한 캐릭터 황동주를 연기한다. 황동주는 일명 ‘쓰레기 하치장’이라 불리는 조세 5국에 팀장으로 부임해 팀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임시완이 바라본 황동주는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틀 안에서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기상천외한 모습에서 오는 통쾌함”을 주는 인물.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실제 국세청을 탐방하고 전
'트레이서' 임시완・고아성・박용우, '씨네21' 신년호 표지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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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 감독의 <하우스 오브 구찌>는 이탈리아의 럭셔리 브랜드 구찌가 패밀리 비즈니스에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넘어가는 시기와 맞물려 일어났던 마우리치오 구치 청부살해 사건을 다룬 영화다. 전 부인 파트리치아 레자니(레이디 가가)가 이혼당한 후 적개심을 키워오다가 마우리치오 구치(애덤 드라이버)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재판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화려한 스타일과 도도하고 반성 없는 태도 때문에 파트리치아에게는 ‘블랙 위도우’라는 닉네임이 붙기도 했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미국에서 11월24일 개봉했으며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편이다. 영화의 바탕이 된 사라 게이 포든의 책 내용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평이한 각색이라는 비평과 영어로 연기하는 배우들의 이탈리아 억양이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다. 다만 레이디 가가의 연기만큼은 호평이 쏟아졌다. 사랑에 배신당한 여자, 구치가의 며느리였지만 인정받지 못했던 여자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연기했다는 중론이다
구치 가문 청부살해 실화 다룬 '하우스 오브 구찌' 출연진 기자회견: 구치가의 사랑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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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당은 장례식 케이크를 주문받아 만드는 가게다. 연옥당의 주인 마고는 (침대 시트 유령인) 유령차사 미로와 함께 작업하는데, 망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그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의뢰인으로부터 자세한 사연을 듣는다. 눈이 세개인 소녀와 그 소녀에게 자신이 쓴 작품을 읽어주는 작가의 이야기, 뱀파이어 엄마를 둔 딸 이야기, 관계가 주는 온기는 죽음이 다가올수록 속절없이 애틋해진다. 고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들을 수 있는 내용을 다 파악한 뒤에 마고는 케이크 제작에 들어가는데, 제작에 쓰이는 재료나 기술 역시 (인물들처럼) 판타지의 산물들. 카세트테이프에 남아 있는 기억을 케이크에 불어넣을 수 있다거나, 이를 가능케 하는 기계를 ‘연옥 최고의 엔지니어’ 고야 선생님이 발명하셨다거나 하는 설정이 재미있다. 담담하면서도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유머와 즐거웠던 기억을 놓지 않는 슬픔의 정서를, 흑백을 기본으로 하고 컬러는 붉은색만 사용한 그림 톤이 잘 뒷받침
담담함, 유머, 슬픔의 정서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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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문제가 생기면 관련한 책부터 찾는 사람들이 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위로를 받기 위해, 계속 살아가기 위해. 룰루 밀러는 한 사람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고, 그에 대한 각종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스탠퍼드대학 초대 총장이었던 그는 19세기에 활동한 생물학자(분류학자)다. 그와 그의 학생을 포함한 스탭들이 발견해서 직접 이름 붙인 물고기의 수는 당시 인류에 알려진 어류 중 거의 5분의 1에 달했다. 그런 그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1906년 4월18일 오전 5시12분, 리히터 규모 7.9로 추정되는 큰 지진이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강타해 그가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어류 표본이 든 수백개의 유리병들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물고기 하나를 집어들고 바늘에 실을 꿰어 물고기의 목살에 이름표를 꿰매기 시작했다. 무용한 일 아닌가? 하지만 룰루 밀러는 조던이 결국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의 비밀을 알려주기에 적합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삶이라는 실타래 풀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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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팔로 66>
감독 빈센트 갈로 | 왓챠
5년의 복역을 마치고 막 출소한 빌리 브라운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이들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이를 간다. 다만 그전에 부모에게 그동안 뵙지 못한 이유를 해명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연기해줄 여자가 필요하다. 당연히 아는 여자라곤 없는 그는 댄스 연습실에서 나오는 라일라를 무작정 차로 끌고 와 동행한다. 이 미련하고 난폭한 남자의 속사정을 이해한 라일라는 꽤 정성껏 그의 아내를 연기해준다. 구질구질하고 변변찮은 인간은 어떻게 ‘평범한 남자’가 될까, 를 그리는 초고속 성장담이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아는 여자>
감독 장진 | 시리즈온, 왓챠, 웨이브, 티빙
빌리 브라운 못지않게 동치성도 아둔한 남자다. 물론 그에게는 지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애인에게는 이별 통보를, 병원에서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왕년에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2군 외야수인 처지도 스스로 딱하다. 이제 아무것도 뵈
초고속 성장담이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버팔로 66'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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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은 방송사 시상식과 ‘올해 최고의 프로그램’ 투표 시즌이다. 그런데 사실 요즘 내가 가장 기꺼이, 구석구석 재방송까지 찾아보는 프로그램은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다. 방문하는 공간과 주민들을 존중하며 품위를 잃지 않는 태도가 이 프로그램의 특별함이다. “테레비서 많이 봤다”라며 반기는 노인부터 대뜸 “사딸라!”를 외치는 어린이, 가게 앞에서 채소를 다듬다 “여긴 어쩐 일이셔?”라며 일어나 손을 내미는 식당 주인까지, 김영철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거리의 예능이었던 시절 유재석만큼이나 어딜 가든 환영받는 스타다. 골목에서 마주하는 풍경마다 새삼스럽게 감탄하고 누구에게든 편안히 말을 붙이는 그는 농촌에 가면 도리깨질을, 산촌에 가면 시래기 말리기를 도우며 사람들과 섞여든다. 어떤 음식을 먹든 정성 들인 덕담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대단히 멋지거나 세련된 명소가 아니더라도 그곳을 운영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정중함은 60대 후반 남성에게서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사람들 사이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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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영업시간 제한 조치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표본이다. 영화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영업시간 제한을 풀어달라!” 영화계 관계자 49인이 12월21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극장 영업시간 제한 해제와 다각도의 정부 지원을 요청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영화산업 생존권 보장’이라고 쓴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르고 ‘극장 영업시간 제한 즉시 해제’, ‘정부가 주도하여 영화 개봉 지원’이라고 쓴 손팻말을 든 채 영화산업의 피해를 호소했다.
이창무 한국상영관협회 회장은 “현재 영화산업은 궤멸 직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미노식 붕괴는 불보듯 뻔한 일”이라며 “밤 10시로 극장 영업을 제한한다면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을 고려할 때 오후 7시가 마지막 회차가 된다. 이는 퇴근 후 영화 한편 볼 자유를 제한하고 극장주를 또 한번 사지로 내모는 심각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를 향해 “2년 동안의 피해를 보상할 손실보상안을 만들고 인건비 지원, 경영
영화산업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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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에서 방영을 개시한 <설강화>라는 드라마가 있다. 1987년을 배경으로 남파 간첩과 여대생의 사랑을 다루었다고 한다. 방영 전부터 말이 많았다. 올해 초 유출된 초기 시나리오에 대학생인 여자주인공이 남파 간첩인 남자주인공을 운동권인 줄 알고 보호해준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JTBC를 비롯한 제작 관계자들은 시나리오의 일부가 왜곡되어 악소문을 탔을 뿐, 민주화 투쟁을 폄훼하거나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를 미화한 작품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막상 방송이 시작되자, 주인공은 정말 운동권으로 오해받은 남파 간첩이었다. 이 간첩-운동권 설정은 민주화를 억압했던 독재자와 그를 추종하는 극우 세력의 주장이다.
실제로 독재시대의 많은 민주화 투사들은 간첩이라는 누명을 썼다. 독재정권은 시민 탄압에 북괴 간첩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씌웠다. 조금이라도 민주주의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물론이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는 목적의식 없이 평범하게 생활하다 무심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역사를 기록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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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전시를 관람했다. 토드 헤인스가 <캐롤>을 연출하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던 아티스트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을 좀더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창문, 거울, 쇼윈도 너머로 그가 포착한 뉴욕의 사람과 풍경들을 보니 호기심 많은 내향형 아티스트의 설렘이 보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전시장에서 그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또한 만날 수 있었다. 사울 레이터 예술 세계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무작정 카메라를 챙겨 들고 뉴욕으로 떠난 영국 출신 촬영감독 토마스 리치가 만난 사울 레이터는 작품만큼이나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55년째 같은 동네에 살며 사람과 사물과 풍경을 찍는 그는 그저 “남의 집 창문이나 찍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자신은 어떤 예술적 운동이나 사조에 동참한 적이 없으며, 세상에 알려지는 걸 바란 적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돌림노래처럼 반복하는 말
[장영엽 편집장] 노 그레이트 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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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각종 공연과 이벤트 일정이 취소되는 등 뉴욕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이에 따라 ‘다시 셧다운을 하게 되나’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오미크론 감염에 대한 우려는 수주 동안 뉴스에 보도돼왔으나 지난 12월17일 발표된 뉴욕주의 확진자 수가 2만1천명을 넘어서면서 피부로 느껴지게 된 것. 특히 확진자 중 절반가량이 뉴욕시에서 나왔다. 이같은 확진자의 급증 추세는 계속되고 있으며, 20일에 발표된 확진자 수는 2만3400명에 이른다. 이는 1주일 전에 비해 2배가량 증가한 수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연이 취소됐던 라디오 시티 뮤직홀의 <크리스마스 스펙터클>은 지난 7주간 100회 이상의 공연을 해왔으나, 공연 관계자 중 확진자가 계속 나오자 17일 오전 11시 공연부터 나머지 일정을 취소한다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에게 공지했다. 이 밖에도 프리뷰 중이었던 마이클 잭슨에 관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MJ 더 뮤지컬>
[뉴욕]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뉴욕 극장가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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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성초이가 쓴 JTBC 드라마 <구경이>는 복잡하고 ‘의심스러운’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여성들의 실제를 거침없는 태도로 발설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재학 시절부터 감독, 배우, 작가 등으로 종횡무진하며 창작의 영감을 수다 떨던 오랜 친구 두 사람이 메신저 채팅방. <구경이>는 두 작가가 지난 몇 년간 서로에게 방언을 쏟아내게 만들었던 분노와 좌절,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의 경험을 총합한 결과물이다. 거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비극 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인간의 슬픔이, 성별에 근거한 온갖 범죄의 덫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의 고통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한판을 하거나 모여서 피자 한판을 뜯음으로써 살아 있기로 하는 생의 끈질김이 있다. 나쁜 놈들을 죽이는 것이 삶의 유일한 기쁨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 송이경(김혜준)과 그를 잡으려는 중년의 히키코모리 탐정 구경이(이영애)의 긴 사투는 그런 부조리 위에서 춤추듯 흘러간다. 탐정 이영애와 살
<구경이> 성초이 작가, 구경이는 정답을 주는 게 아니라 정답을 찾아가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