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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2017)의 후속작 <범죄도시2>는 활동 범위를 베트남으로 확장하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리봉동 소탕작전으로부터 4년이 지난 2008년, 금천경찰서 강력반은 베트남으로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받아 오라는 미션을 받는다. 그렇게 현지를 물색하던 마석도(마동석)와 전일만(최귀화)은 용의자에게 미심쩍음을 느껴 추궁한 끝에, 악랄한 강해상(손석구)의 존재를 알게 된다. 두 형사는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도 그를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호찌민 이곳저곳을 거침없이 누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악을 처치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려는, 관객에게 익숙한 공식만을 따르는 듯해 보이지만 영화는 계속 예상할 수 없는 대립구도를 만들어내면서 악과 악의 대결을 빠르게 추적해간다. 무엇보다 전편에서 장첸의 악행이 가리봉동이라는 지역으로 비교적 한정돼 있었다면 <범죄도시2>의 강해상은 국내외 경계를 뛰어넘어 종횡무진하고 길거리, 도로 등 사람들의 일상적 공간을 쉽게 침범하
[리뷰] 명료하고 경쾌한 히어로 마동석 '범죄도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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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를 ‘위대한 소설의 시대’라고 일컫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아는 모든 위대한 소설적 창작이 19세기의 산물이었으며, 소설이 진정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뜻에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생각도 비슷했던 듯하다. 그는 러시아의 위대한 산문 작가들의 순위를 1위 톨스토이, 2위 고골, 3위 체호프, 4위 투르게네프로 매긴 뒤 말하기를, “소위 ‘메시지’가 19세기 중반부터 러시아의 소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20세기 중반 즈음에는 러시아 소설을 말살시켰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롤리타>의 성공 이후 강의를 접고 소설 집필에 몰두했던 나보코프가 유럽 전체를 뒤흔들던 나치의 망령을 피해 1940년 5월 미국으로 이주한 뒤 웰즐리, 코넬 등 미국 대학에서 강의하기 위해 작성한 강의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작가별로 대표작 하나를 선정해 강의했기 때문에 해당 작품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
씨네21 추천도서 -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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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공처럼 빠르게 오가는 잡담, 시시한 듯 재미있는 농담. 잡담과 농담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순간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상황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단편집 <스마일>을 읽으면 떠오른다. <스마일>에서 주인공 데이브는 비행기를 타는데, 느닷없이 승객 한명이 죽는다. 정체불명의 옆자리 사람 잭은 그 사망자가 헤로인을 먹어서 운반하는 밀수꾼 ‘스왈로워’라서 헤로인에 중독되어 죽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푼다. 사실 데이브는 스왈로워였기에, 헤로인 펠릿을 삼키고 아랫배의 통증을 느끼며 이미 죽음을 겪은 듯한 기분이었기에, 승객의 죽음이 자신의 가까운 미래 같아 쉽사리 잭의 잡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는 플라스틱섬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 조이의 사연을 소설로 써보려는 이야기다. 추락하는 경비행기에서 탈출한 조이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여 거대한 섬을 형성한 곳에 간신히 도착한다. “조이가 플라스틱 가득한 해변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발견한 문
씨네21 추천도서 -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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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하루 속에 미래를 계획하는 일상다운 일상, 그런 일상 속으로 원인불명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다들 별일 아니라고 여기고 전염병이 돈다는 응급실 의사의 신고를 무시했으나, 곧 사망자가 폭증하고 바이러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하여 유럽으로, 미국으로, 전세계로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출근을 피하고 집에 숨어 지내거나 인구밀도가 낮은 동네로 피난을 떠난다. 가족을 잃은 이들은 철저하게 격리를 하지 못해 그렇게 되었다고 자책하며 슬퍼한다. 도시 기능은 마비되고 세상은 문명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역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0호 환자’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용감한 의사가 있고 또 백신 개발에 매진하는 학자들이 있다.
<엔드 오브 맨>은 세계적 유행병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이 압축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전염병의 발생으로 모두가 공포와 절망에 빠지나 생존자는 회복하여 힘을 내고 현실에 적응한다. 그런데 코로나19에서 아이디어를 얻긴
씨네21 추천도서 - <엔드 오브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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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가 재미가 없을 수 있을까? 피부색이 밝은 유색인 쌍둥이 자매가 있다. 이중 한명이 자신을 백인이라 속이고 새 삶을 살게 된다. 여자는 남편과 아이에게조차 가짜 과거를 지어낸다. 쌍둥이 중 한명은 백인으로, 한명은 흑인으로 살게 된다. 이 소설이 재미가 없을 리가. 1950년대, 인종차별이 심하던 미국 남부에는 피부색이 밝은 유색인들만 사는 마을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결혼을 통해 자기보다 더 밝은 피부색의 자식을 낳는 것을 목표로 해왔고 덕분에 아이들은 ‘거의 젖지 않은 모래색’의 밝은 피부로 태어난다. 백인들의 린치로 아버지를 잃은 쌍둥이 자매 스텔라와 데지레 역시 백인만큼 밝은 피부색을 지녔다. 답답한 현실을 도망쳐 자매는 대도시로 떠난다. 거기서 스텔라는 ‘백인만 지원 가능’한 회사에 거짓말로 취직하게 되고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데지레는 자기보다 피부색이 어두운 남자와 결혼하고 딸 주드를 낳는다. 사실 스텔라는 백인 상사와 결혼해 유복한 백인 사모님으로
씨네21 추천도서 - <사라진 반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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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희의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읽으면서 <파친코>의 선자가 자꾸 연상됐다.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재일 동포와 조선족, 탈북자의 삶은 자주 포개졌다가 흩어진다. 이들은 타민족에게 차별당할 뿐 아니라 같은 동포에게도 ‘너는 우리와 다르다’고 선 그어진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의 ‘나’는 중국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조선족이다. “한국인이냐”고 묻는 닝에게 나는 “아니죠. 중국이에요. 조선족”이라고 답한다. 앞은 국적, 뒤는 자신이 속한 민족이다. 나는 중국인 닝과 사귀고, 한국인 연주와 교류하면서 자신이 연주보다는 닝과 더 닮았다고 여긴다. 닝은 “넌 두 나라 말을 다 잘해서 좋겠다”고 하지만 나는 두 나라 언어 중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같은 소설 안에서 한국 독자들이 피식할 장면이 있다. 인물들은 자주 마라탕을 먹으러 가는데, 마라탕을 ‘얼얼할 정도로 매운 쓰촨성 유명 탕 요리’라고 설명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세상에 없는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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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맨_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스마일_김중혁 지음
세상에 없는 나의 집_금희 지음
사라진 반쪽_브릿 베넷 지음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개정판_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5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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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강수연에 대해 일상의 모습조차 영화 속 한 장면 같다고 누군가가 얘기해준 적이 있다.그런 그가 마치 영화처럼 한순간에 우리 곁을 떠나갔다.
1995년 10월22일. 영화 <지독한 사랑>의 첫 촬영이 있던 부산에서 천생 배우인 강수연은 이리도 아련하고 아름답게 빛났다.
[ARCHIVE]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영화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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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 배드민턴의 미래, 올림픽 유망주로 불렸던 박태양(박주현)이 3년간 잠적했다 돌아온다. 고작 하루 운동에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침대에 쓰러져 끙끙 앓던 태양은 먹던 떡을 계속 씹으며 중얼거린다. “어… 근데 맛있어.”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짜증이 뻗쳐도, 협회에 뇌물을 주었다는 오명을 써도,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연봉 1900만원짜리 선수로 ‘폭망’한 신세라도 떡은, 맛있다. 대개 드라마 속 인물들은 어떤 상황과 감정에 얼마나 일관되게 몰두했는지 보여주지만, 비참한 동시에 떡도 맛있을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내가 그렇듯이 너도 그럴 수 있다고 타인을 판단할 때 여지를 두게 되고, 부딪치는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어도 ‘캐붕’이 아니다. 배드민턴 실업팀을 배경으로 한 스포츠 로맨스 드라마 KBS <너에게 가는 속도 493km>의 허성혜 작가가 캐릭터 전반을 다루는 관점이다.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두고 흔히 ‘멘탈이 강하다’고 한다. 한 가지 감정,
[유선주의 드라마톡] '너에게 가는 속도 49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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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 넷플릭스
남성 임신부. 붙여 쓸 수 없을 듯한 두 단어가 합쳐진 세계가 펼쳐진다. 광고회사에 다니며 일과 일상 모두를 자신만만하게 꾸려가던 히야마 켄타로는 어느 날 갑자기 임신하게 된다. 상대는 비혼을 지향하는 여성 아키. 아키는 히야마의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어디선가 많이 들어봄직한 “내 아이가 맞냐”는 말부터 내뱉는다. 그 자리에서 여성의 일이라 여겨지던 임신과 출산이 남성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시리즈는 남성의 생물학적 전제를 전복함으로써 여성의 현실에 접근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래서 ‘남자다운 임신부’를 꿈꾸는 남성 임신부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여자답게’, ‘남자답게’ 같은 수사 속에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역할이 잠재돼 있다는 사실을 유머러스하게 비추니 말이다.
메기 /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외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남녀의 섹스 장면을 촬영한 엑스레이 필름이 유포된다. 그때부터 엑스레이에 ‘찍힌 자’를 찾아나서는
[리뷰 스트리밍]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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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킬러 빌라넬과 그녀를 추적하던 폴라스트리 이브의 애증 어린 관계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다. 미친 짓, 충동, 집착으로 요약 가능할 이브와 빌라넬의 관계는 4년여에 걸쳐 변화해왔다. 시즌1에서는 비밀리에 국제적인 암살 범죄를 추적하던 이브가 대담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용의자 빌라넬과 만나며 이끌림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이 그려진다. 사건의 대척점에서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하나의 짝패처럼 붙어버린 두 사람의 관계는 시즌2에 이르러 한층 고착되는 듯하다. 빌라넬은 이브를 정복하기 위해 그녀가 사랑하는 이들을 살해하고, 이브는 그런 빌라넬을 처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잔혹해진 자신의 모습과 가까워져 오는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빌라넬과 MI6으로부터 멀어지고자 시도한 이브의 서사는 시즌3에 담겼다.
이번에 공개된 시즌4에서는 이브와 빌라넬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감정선보다 장막에 가려 있던 범죄 조직 트웰브의 정체를 파헤치는 일이 중요하게
[리뷰 스트리밍] 마침내 종지부를 찍다 '킬링 이브 시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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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훈정
출연 신시아, 박은빈, 서은수, 진구, 성유빈, 조민수, 이종석, 김다미
배급 NEW
개봉 6월15일
2018년 개봉했던 <마녀>의 후속편 <마녀 Part2. The Other One>(이하 <마녀2>)이 4년 만에 극장가를 찾는다. 박훈정 감독이 누아르 <낙원의 밤>(2019) 이후 선보이는 신작인 <마녀2>는 비밀연구소가 초토화되어 홀로 살아남은 ‘소녀’(신시아)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소녀가 각기 다른 이유로 자신을 쫓는 여러 세력들과 대적하는 과정을 그린다. 만화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액션, 전작보다 더욱 디스토피아적인 미장센이 강화된 작품이 될 전망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론칭 카피에서 엿볼 수 있듯 박훈정 감독이 최초에 3부작으로 기획했던 <마녀> 시리즈의 기원을 보다 자세히 풀이할 작품으로도 기대된다. 한편 <마녀>가 김다미라는 새로운 배우의 발견을 통해 작품 바깥에서
[Coming soon] '마녀'의 후속편 '마녀 Part2. The Other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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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2002), <엔터 더 보이드>(2009), <러브>(2015), <클라이맥스>(2018) 등 가스파 노에 감독의 영화를 아방가르드, 컬트라는 단어로 수식하기엔 뭔가가 허전하다. 마약, 섹스, 죽음, 폭력, 엽기, 사이키델릭 이미지를 더한다면? 혹자는 이 리스트에 구토, 실신, 악마, 트라우마 같은 좀더 극단적인 단어를 더하려 할지도 모르겠다.
2022년 4월, 노에 감독의 신작 <소용돌이>의 시사회가 진행된 파리의 한 영화관. 새 작품을 한 문장으로 소개해 달라는 진행자의 요청에, 감독은 이번 영화는 손자, 손녀 그리고 조부모가 함께 손잡고 와서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분명하게 해두자면 그렇다고 어린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놀랍게도 그의 여섯 번째 장편은 한 80대 부부의 생의 마지막 날들을 담담히 기록하는 네오리얼리즘에 가까운 영화다. 정신과 의사였던 부인과 영화평
[파리] 가스파 노에의 첫 전체관람가 작품 '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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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축소됐던 영화 축제들이 정상화되면서 여름을 달굴 영화제가 잇따라 개막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무주산골영화제는 6월2일부터 5일간 총 31개국, 110편의 작품으로 관객을 맞는다. 무주산골영화제의 숲속 심야 상영 프로그램도 2년 만에 재개돼 무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낭만을 즐길 수 있다. 개막작은 김태용 감독이 총연출한 <新 청춘의 십자로>로, 무주산골영화제의 전통대로 올해에도 영화와 라이브 연주를 결합한 공연 형식으로 개막작을 선보인다. 더불어 10년간의 역대 개막작들을 앙코르 상영해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예정이다.
19회를 맞은 서울국제환경영화제도 같은 날 개막한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3578편이 출품되어 역대 최다 출품 기록을 세웠다. 올해 영화제의 주요 이슈는 대멸종의 시대를 눈앞에 둔 멸종 세대의 다양한 관점과 문제의식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생존 위기에 처한 시대를 16살 소녀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개막작 <
무주산골영화제,서울국제환경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 여름 영화 축제 잇따라 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