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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다들 경험했을 것이다. 네댓살 먹은 녀석이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있을 때 “나 밥 안 먹어” 하고 토라지는 것을. 쥐어박고 싶기도 하고, 가소롭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것이 애들이 밥 안 먹는다고 투정부리는 일이다. 요즘 유행어로 “나는 소중하니까요”를 깨달은 아이들은 숟가락을 놓는다. 그러나 여기 넘어가는 부모들은 별로 없다. 소중한 자식 버릇 잘못 들까봐 부모들은 때론 철저한 무시로, 때론 따끔하게 혼내고, 때론 아이가 좋아하는 불고기나 피자 같은 음식을 앞세운 적극적인 공략으로 아이들의 단식투정을 무력화시킨다.아이들의 단식투정과는 달리 정치적인 요구나 생존권적인 요구를 내건 단식투쟁에는 가벼이 볼 수 없는 절박함 또는 비장함이 묻어난다. 단식투쟁은 “네깐 놈들, 밥 몇끼 굶는다고 내가 눈 하나 까딱할 것 같냐”고 버티는 강자들을 향한 약자의 마지막 무기이다. 다른 투쟁수단을 애당초 동원할 수 없거나, 또는 다른 수단이 소용없음이 판명되었을 때 마지
단식투쟁과 단식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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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가지면 골치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직업’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것이 성립되어 있음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이 골치아픔은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관계의 문제라 할 수 있다.우리가 어떤 이에게 무슨 일을 ‘부탁’한다면, 그가 그 일에 관한 한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그 일을 해주면 고맙고 안 해주면 섭섭할 뿐이다. 부탁인 걸 어찌하겠나. 미안하고 민망하고 얼굴봐서 해주는 거지 반드시 해줘야 한다는 법도 없고 그러길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이에게 무슨 일을 해달라고 ‘정식으로’ 말하고 어떤 이도 그것에 응했다면, 우리와 어떤 이 사이에는 계약이 성립된 것이다. 너무 빤한 일이다. 어떤 이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평가를 바탕으로, 그 능력을 일정 기간 수행하는 대가로 어떤 이는 보상을 받는 계약을 맺게 되는 것이다.일단 계약 관계에 들어서면 어떤 이나 우리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품고 있든 두 사람은 계약서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문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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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붉은 돼지> 보고 편지를 쓰다친구. 가득 찬 여백을 본 적이 있나. 슬퍼할 틈을 주지 않는 웃음과 놀이로 가득한 여백을. 내가 인간이었을 때 모두들 내게 영웅이란 찬사를 보냈지. 내가 돼지였을 때 그들은 나를 영웅이 아닌 붉은 돼지인 채로 사랑해주더군. 어처구니없는 나를 기꺼이 끌어안는 그들은, 새로운 대상을 만나면 언제고 새롭게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마음자리를 비워놓았네. 증오와 분노로 무장한 사내들의 가슴을 녹여버리던 지나의 노래처럼, 가난과 고통이 우리를 꿈꾸게 했지. 지나의 카페는 포연 속의 연꽃이라네. 지나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거친 전쟁광도 순둥이가 되고, 그녀의 카페 50㎞ 반경에서는 어떤 싸움도 일어나지 않지. 지나는 세명의 남편을 모두 전쟁통에 잃고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네. 하물며 우락부락한데다 무뚝뚝한 돼지를 사랑할 정도니, 전쟁도 그녀의 사랑의 능력을 빼앗진 못했지 뭔가.나는 전쟁과 공황의 상처로 얼룩진 그곳에서 축제의 꿈을 발견했네.
자네, 언제든 놀러오게나, <붉은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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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백년 전도, 지금도 세상은 온갖 핑계로 고향을 떠나는 청년들로 어수선하다. 스물여섯살 여름의 나도 무거운 가방에 기대어 먼 나라의 공항에 앉아 있었다. 열 시간이 넘게 날았지만 1년간 머무르기로 한 학교까지는 또다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이른바 공부를 하러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 명분을 못 믿는 사람은 나였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승무원들은 공항에서 혼자 우는 애 따위는 비행기 이착륙만큼이나 흔한 구경거리라는 듯 직업적 미소를 흘리며 바삐 스쳐갔다. 나는 스스로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것인지 몰라 겁에 질렸다. 어스름이 내리는 거리에 대책없이 서 있는 미아처럼.
그러나 젊음은 오만하고 영악한 것이어서 날아갈 듯한 희열 속에서도 그 순간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려 슬퍼하고, 가장 아득한 불안 속에서도 그것을 훗날 그리워하리라고 예감한다. 스페인에 모여든 유럽 7개국 학생들의 공동생활을 그린 영화 <스페니쉬 아파
모바일 시대의 성장영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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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학로의 동숭아트센터는 14-20일 센터 1층에 위치한 하이퍼텍나다에서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과 함께 '이탈리아 무성영화제-사일런트 디바'를 마련한다. 영화의 역사가 시작되던 20세기 초반의 이탈리아 영화계에서는 여성의 육체를 에로틱하고 매혹적으로 담는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감독들은 여배우 중심으로 작업을 펼쳐나갔고,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를 의미하는 '디바'라는 이름의 스타들이 탄생됐다.동숭아트센터는 "작가의 이름으로 쓰이는 영화사가 아니라 산업으로서의 영화의 기원을 찾아 1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획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제에는 1910년~192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무성영화 중 1914년작 <푸른피>를 비롯한 14편이 선보인다. 오후 5시부터 하루 세 차례 상영되며 관람료는 5천원(하이퍼텍 나다 회원은 2천500원). 상영작은 다음과 같다.▲푸른 피(Sangue Bleuㆍ1914ㆍ프란체스카 베르티니)▲악의 꽃(Fiore di malㆍ1915ㆍ카
동숭아트센터, 이탈리아 무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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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가수 이효리가 스크린을 통해 중화권 공략에 나선다. 이효리와 소속사 DSP엔터테인먼트는 7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홍콩의 연예기획사 '엠퍼러(英皇) 그룹'과 올해 안에 영화 두 편에 출연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출연료는 100만 달러(약 12억원) 이상이며 상대 남자 배우로는 성룡(成龍)이 호흡을 맞출 예정. 현재 시나리오 작업중이고 촬영 일정 등 세부 사항은 시나리오가 나온 뒤에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엠페러 그룹은 50여명의 가수와 탤런트를 거느리고 있는 유력 연예기획사. 이날 계약은 DSP의 이호연 대표와 엠퍼러 그룹의 앨버트 영(楊守成)회장이 지난해 11월 이효리가 출연한 홍콩의 `하버페스트' 축제에서 만난 인연으로 성사됐으며 앨버트 영 회장은 6일 내한해 이효리 측과 구체적인 협의 작업을 벌였다.엠퍼러 그룹의 앨버트 영 회장은 "이효리가 중국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고 중국 사람이 좋아할 만한 기질을 갖고 있다"며 "한국의 문화 아이콘인 이효리가 아
[인터뷰] 홍콩영화 출연하는 이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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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이 개봉 22일 만에 전국 관객 500만명 고지에 올라 최단기간 500만명 돌파 신기록을 세웠다.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7일 개봉한 <반지의 제왕> 3편은 7일 전국 관객 500만명을 넘어 제1편 <반지원정대>의 최종 흥행 스코어(전국 400만명)를 멀찌감치 따돌린 것은 물론 2편 <두 개의 탑>이 석 달에 걸쳐 이룬 550만명의 기록을 깨는 것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7일까지 서울 관객은 155만명에 이르러 설 연휴에 들어서면 98년 <타이타닉>이 세웠던 외화 최고 흥행기록(197만1천780명)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반지의 제왕> 전국 관객 500만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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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컬러 85분연출 김수용출연 김지미, 허장강, 방수일, 주증녀EBS 1월 11일(일) 밤 11시‘砲聲과 哨煙이 자욱한 메마른 산야에 파편처럼 버려진 어린 목숨들!’이란 당시 홍보 문구처럼, 영화 <사격장의 아이들>은 분단과 근대화의 물결이 공존하던 시대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이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 한 마을의 성공 사례를 그려낸 작품이다. 휴전선 동부 전선의 국군 사격장 주변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가난한 살림에 보탬을 주려고 사격장 근처의 탄피를 주워다 판다. 그런 가난하고 무지한 마을에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부임해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선도하여 마침내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게 된다는 줄거리의 이 영화는 목적성을 가진 계몽영화이다. 당시 경제개발 등 ‘조국 근대화’의 기치 아래 사회 전체가 움직이던 시대적 배경에서 나온 작품이기도 하다.109편의 영화를 연출한 60년대 후반 한국영화의 대표 감독 중 한명인 김수용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든 1967년에만 <
김수용의 또 하나의 문제작, <사격장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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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강도사건 Le Casse 1971년감독 앙리 베르누이출연 장 폴 벨몽도EBS 1월 11일 (일) 오후 2시오마 샤리프와 장 폴 벨몽도가 주연하는 프랑스 오락영화. 아자드와 랄프 등은 에메랄드를 훔치기 위해 대부호인 타스코의 집에 침입한다. 하지만 금고를 여는 도중에 순찰 중인 경찰 자카리아의 눈에 이들의 차가 발각된다. 자카리아를 따돌리고 무사히 에메랄드를 빼낸 일당은 그리스를 빠져나가기 위해 미리 구해놓은 화물선으로 간다. 주인공들이 아테네 시가지에서 벌이는 자동차 추격장면이 영화의 백미. '봄날은 간다 2000년감독 허진호출연 이영애KBS2 1월 10일 (토) 밤 11시사운드 엔지니어 상우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 등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해 겨울 그는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를 만난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은수는 상우와 녹음 여행을 떠난다.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두 사람은 어느 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주말TV] 에메랄드 강도사건 /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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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di Matin 2002년감독 오타르 요셀리아니출연 자크 비두EBS 1월10일(토) 밤 10시이 사람의 일상은, 허무하다. 프랑스의 소도시에 사는 중년의 남자 벵상의 삶은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동료들과 공장 문에 도달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는 담배를 피우고, 출근해서는 기계의 부품처럼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가족들은 그를 무시하기 일쑤다. 어느 날, 벵상은 출근하는 대신에 아버지를 찾아간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베니스로의 여행을 권하며 옛 친구들을 만나보라고 한다. 이후 벵상은 베니스로 향하지만 그곳 역시 탈출구는 아니다. <월요일 아침>은 퍽이나 과묵한 드라마다. 영화가 시작한 지 한참이 되어도 인물들은 입을 다물고 대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소음과 사운드 같은 것만 반복될 따름이다. 그루지야 출신의 요셀리아니 감독은 독특한 코미디를 빚어내는 것에 솜씨를 과시한다. 극히 절제된 인물 대사와 행동은 희극과 비극 사이를 경쾌하게 오가면서 미묘한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미니멀한 불안, <월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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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한 남자를 꼬신다. 그것도 얼굴을 맞대고.먼저 꼬심을 당하는 남자가 근심어린 얼굴로 말문을 연다. “괜찮을까”. 단호한 표정으로 꼬시는 남자가 대답한다. “더 좋아.”잠시 두 남자 사이에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마침내 꼬심을 당하던 남자는 결심을 굳히고, 환한 얼굴로 묻는다. “바꿀까?” “기회야.”두 남자를 클로즈업했던 카메라가 빠지자 꼬심을 당하던 남자가 철장에 갇혀 있었음이 드러난다. 그가 철장을 훌쩍 뛰어넘어 꼬시던 남자 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두 남자가 머리를 비스듬히 맞대며 환한 미소를 짓는 헤피엔딩. 이들을 축복하는 마무리 자막이 뜬다. ‘have a good time’.어라, 좋은 시간을 가지라고? 남자 둘이서? 때맞춰 “굿타임 찬스”라는 속삭임이 들려온다. “바꿀 기회”라니. 무엇을 바꿀 타임? “괜찮을 뿐 아니라 더 좋다”니. 뭐가 더 좋다는 거지? 더구나 근심말고 넘어 오라니. 이성애에서 동성애로? 이건 완전히 커밍아웃하라는 거군. 철창을 나오자(com
숨어 있는 퀴어 코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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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가 기억난다. “버려진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수집가의 열정을 향한 아녜스 바르다 자신의 ‘수집가적인’ 세심한 시선은 초기작 에서도 분명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유명 가수인 끌레오의 노래를 만들어주는 미셀 르그랑의 달콤한 음악처럼, 파리라는 변덕스럽고 사랑스러운 공간의 무드를 아녜스 바르다는 정확하게 포착해낸다.사진과 다큐멘터리 작업으로부터 영화로 넘어온 전력에서 끌어낸 이미지에 대한 예민한 감식안으로, 바르다는 파리라는 공간에 혹은 끌레오라는 여인의 혼란스러운 마음에, 혹은 언제나 생사의 갈림길을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우리 모두의 삶에서 교차되고 있는 갖가지 상이한 요소들의 격자무늬를 섬세하게 짜나가는 것이다. 자신이 암에 걸렸는지의 여부를 알려줄 검사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끌레오가 거리를 서성거리는 2시간을 실시간으로 따라가며(실제 상영시간은 90분이지만), 병원 근처를 불안스럽게
불안과 평온 사이, <5시부터 7시까지의 끌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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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 전기에 의하면, <황금광 시대>의 아이디어는 황금을 찾는 시굴자들의 사진과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던 사람들의 비극적 이야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유사한 분위기의 이야기를 코미디로 이끌어간 버스터 키튼의 <얼어붙은 북쪽>, 혹은 비극적 드라마로 그린 안토니아 버드의 <블러드 솔져>와 비교해보면 코미디와 드라마를 결합하는 채플린의 능력이 잘 드러난다.<황금광 시대>는 채플린의 장편으로선 초기작임에도 불구하고, 그 희극적 특성은 이미 완성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인육까지 먹었다던 실제 사건처럼 떠돌이 찰리 또한 극한 상황에 부딪히지만, 영화는 코믹드라마로 기능한다. 채플린이 스스로 말했듯이, 비극이 희극정신을 자극한다는 역설적 사실의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황금광 시대>의 비현실적 설정은 현실의 극악함과 작가의 순수한 꿈을 그리기 위한 완벽한 장치였다. 현실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웃음을 선택했고, 풍자를 넘어 비극과 휴머니즘이 결
완벽주의자의 영화 만들기, <황금광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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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란 쿼터메인과 도리언 그레이, 조너선 하커 부인에 네모 선장과 투명인간, 톰 소여까지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점 정도를 제외하고는 공통점은커녕 접합 지점마저 찾기 힘든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역시 원작소설 속의 모습과는 전혀 거리가 먼 슈퍼히어로적인 능력을 지니고 슈퍼특공대를 결성한다는 설정은 예상대로 <프롬 헬>의 원작자인 앨런 무어와 케빈 오닐의 만화책에서 가져온 것이다.등장인물들의 초인적인 능력은 단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나가기 위해 임의로 설정한 것일 뿐인 만큼, 주요 캐릭터들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영화는 곧바로 화려한 액션 시퀀스들을 연속적으로 펼쳐놓기 시작한다. 아프리카와 런던, 베니스, 북극을 연결하는 장대한 로케이션과 컴퓨터그래픽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호쾌하고 멋들어지게 연출된 액션신들, 개성적인 디자인으로 눈길을 끄는 메커닉 등이 어우러져 그려나가는 영화의 오락성은 시각적 쾌감과 재미를 충분히 만족시킨다.CG가 대량으로 사용된
방향감 돋보이는 총격 액션신, <젠틀맨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