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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J. 심슨 사건이 종결된 뒤 미국 내에서는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이 극심했다. 개인의 범죄를 인종차별로 부각시켜 무죄를 끌어낸 심슨 사건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비난과 함께 배심원 제도에 대한 논란도 가져왔다. 능숙한 변호사들의 ‘연기’에, 배심원들이 쉽게 속아넘어간다는 것이다. 한때 변호사 생활을 했던 존 그리샴은 미국 사법제도의 허점과 모순을 파고든 <타임 투 킬> <의뢰인> <야망의 함정> <레인메이커> 등의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다. <런어웨이>에서는 미국 사법제도의 핵심인 배심원 제도의 문제점을 다룬다. 미국의 배심원 제도는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여겨졌다. 선거인 명부에 등록한 시민은 배심원 명부에 오르고, 시민의 의무인 배심원에 선정되면 타당한 이유없이 거부할 수 없다. 권리와 의무, 모든 것을 지킬 때 진정한 시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재판관의 판단과 결정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판
법정 바깥의 배심원 쟁탈전, <런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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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스토리의 미덕은 등산과 하산이라는 고도(高度)의 추이가 인물의 긴장과 대구를 이룬다는 것에 있다. 집결과 등정, 추락과 극복, 정상에서의 절정과 하산을 갖춘 산행 스토리는 그 자체로 서사장르의 시간표를 내장하고 있다. ‘산 밑’의 이야기가 어떻던가와 상관없이 산에선 산에서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그 안엔 산 밑에서 살던 자연인(the natural)을 영적인 존재로 주목하는 신화적 긴장감이 있다. 산악영화는 따라서 이종교배된 다른 장르가 무엇이던가에 상관없이 항상 ‘산악영화’라는 메타의 장르로 회자되는 구석이 있다.
산악드라마를 통과하는 인물들에게서 입체적인 유형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실내극의 좁다란 방 안에서도 납득할 만한 변화무쌍함을 가진 인물은 산을 오를 필요가 없다. 드라마가 인물에게 등반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단조롭다 못해, 편협하리만큼 집요하고 일관된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그런 인물들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헤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조여
조난당한 산악 드라마, <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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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은 고통이다. 상상 속에서 소년은 영웅이지만 거울에 비친 나는 한없이 초라하다. 그 불일치를 감당할 수 없기에 아프고, 아픔을 잊기 위해 더욱더 초인의 환상에 집착한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그 시절의 기억으로 이뤄진 영화다. 1978년, 소년들의 영웅은 이소룡이었고 폭력은 매일 반복되는 일과였다. 선생님은 폭언과 구타를 가르쳤고, 학교는 권력의 발바닥을 핥았으며, 아이들은 주먹질로 그들만의 서열을 만들었다. 그때를 어떻게 견뎠던가? 가능한 유일한 길은 수컷이 되는 것이었다. 맞기 전에 선방을 날리고 모욕을 당하기 전에 욕설을 뱉어라. 불의에 맞서기 위해 남자가 돼야 했던 한 소년의 성장기, <말죽거리 잔혹사>엔 참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쓴 청춘에 대한 헌사와 흉포한 남성성의 근원을 파고드는 냉정한 고발이 나란히 들어 있다. 그리고 둘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말죽거리 잔혹사>의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다.
이 영화는 <비트>나 <친구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말죽거리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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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과 장례식을 거치면서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의 사랑을 확인하고야 마는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또는 알 파치노와 조니 뎁이라는 세기의 ‘성격’을 내세워 적과 동료를 나눌 수 없는 비운의 함정수사로 주인공들을 몰아간 <도니 브래스코>, 이 두 영화로 이미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마이크 뉴웰 감독이 신작 <모나리자 스마일>을 들고 찾아온다. 재치있는 에피소드의 연발과 섬세하게 짜여져 있는 스토리의 이음새로 즐거움과 긴장의 상황을 동시에 안겨주는 그가 이번에는 여성의 사회에 시선을 맞춘다.1953년 미국 동부에 자리한 웰슬리대학에 미술사 교수로 캐서린 와슨이 부임한다. 그러나 상류층 여성들만이 다니는 웰슬리대학은 새 인생을 꿈꾸며 이곳에 찾아든 신임 교수를 절망시킨다. 캐서린 와슨은 미국 최고의 명문 여자대학교라는 이곳에서 오로지 멋진 결혼식과 화려한 결혼생활로 상징되는 상류층 사회의 부패한 관습과 그것을 지탱하는 보수적인 교육체계를 발견한다.
Girls Be Ambitious! ㅡ 해외신작 <모나리자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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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댄스그룹 신화의 멤버 김동완이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영화 <돌려차기>.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태권도가 영화의 소재다. 태권도부를 두들겨팬 불량학생들이 도리어 태권도 부원이 되어 학교를 대표해서 전국대회에 나간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1월7일 부산 경남고에서 있었던 촬영현장. 이날 공개된 장면은 용객와 그 패거리들이 태권도부에 들어와서 훈련하는 장면으로, 타이어를 메고 운동장을 도는 장면이다. “자, 배우들 옷 벗어주세요.” 조감독의 메가폰 소리에 용객 역의 김동완과 민규 역의 현빈이 웃통을 걷어올리기 시작했다. 둘이 옷을 벗자 취재진 사이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특히 근육질로 다져진 김동완은 마치 보디빌더를 보는 듯했다. 날씨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매서운 바닷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상황에서 웃통을 벗고 뛰어야 하는 배우들에게는 큰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땀이 안 나온다고 물까지 뿌려대니 말이다.“그동안 촬영하면서 발차기에
으랏차차 태권부, < 돌려차기 >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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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 경민(김하늘)은 산악반에 들어갔다가 환영회에서 졸업한 선배 중현(이성재)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중현은 유부남임에도, 경민은 주저하지 않고 그에게 마음을 드러낸다. 둘 사이가 깊어지면서 중현이 결혼했다는 사실이 둘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시작한다. 경민의 자취방에 찾아온 중현 옆에 누워 경민이 말한다. “산이 좋아, 내가 좋아 나 나야 산이 좋지. 질투 안 해도 되고. 항상 찾아갈 수 있고.” 과묵한 중현은 말을 아끼지만 돌발적으로 그 감정이 드러난다. 뽑아낸 경민의 사랑니가 화로에 빠졌을 때, 데는 걸 주저하지 않고 손을 집어넣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헤어져야 한다. 알래스카의 산 ‘아시아크’를 오르는 중현을 따라 경민은 이별여행 같은 산행을 떠난다.
“이제 성숙했구나 얘기듣고 싶어요”
한국 최초로 시도되는 산악영화 〈빙우〉는 짙은 멜로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경민 곁에서 경민을 좋아하며 마음 졸이던 우성(송승헌)까지 가세해 닿지 못하는 슬픈 사랑의 곁가
[인터뷰] 영화 <빙우> 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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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잠들지 않는 소란한 유령이기도 하고 복수를 꿈꾸며 떠도는 귀신이기도 하다. ‘정의가 세상을 지배하도록!’ 명령하는 영웅과는 달리, 유령과 귀신이 요구하는 정의는 때로 산 자들에게 불가해하다. 현재의 시간과 불화하기로 작정한 그의 언어는 강박적이고 냉혹하다. 귀환한 역사는 까다로운 시간의 손님이다. ‘자비의 시간을 구하지 말라!’ 역사는 죽은 자의 무덤까지 파헤쳐 망령을 살려낸다. 그리하여 현재는 삽시간에 전쟁터로 변한다. 산 자와 죽은 자, 아직 죽지 못한 자들의 소요가 역사의 현장이다. <실미도>의 마지막, 중앙정보부의 캐비닛에 ‘실미도 사건 진상 보고서’가 검토되지도 않은 채 다른 서류들과 함께 보관되고, 그 캐비닛이 녹슬어 가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는 그 캐비닛의 문을 열고 서류를 꺼낸다.
와당탕 녹슨 캐비닛은 열었지만 역사의 녹은 녹여내지 못했다
<실미도>는 알려진 것처럼 1968년에서 1971년이라는 역사의 시간을 잘라낸다. 그리고 사면을 조
[비평 릴레이] <실미도> 김소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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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반지의 제왕> 최종편이 10일 미국비평가상(CCA) 가운데 최우수작품상과 최우수감독상을 포함 4개부문 상을 휩쓸었다.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은 미국방송영화비평가협회(BFCA)가 뽑은 비평가상에서 최우수작곡상과 최우수연출앙상블상도 차지, 다른 9편의 영화를 제치고 최우수 영화로 평가받았다. 이날 저녁 베벌리 힐스 호텔에서 거행된 시상식에서는 또 <미스틱 리버>의 주연숀 펜이 최우수남우상을 받았고 <몬스터>의 찰라이즈 세런이 최우수여우상을 탔다.한편 주말 흥행집계에 따르면 외국 이야기를 떠벌리는 작은 마을의 허풍쟁이를 그린 소니사의 <빅 피쉬>(Big Fish)가 3주연속 수위를 차지했던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을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빅 피쉬>는 지난주말 미국과 캐나다에서 1천450만달러의 매표수입을 거둠으로써 1천410만달러 수입에 그친 타임 워너사의 <반지의 제왕>을 제쳤다.
<반지의 제왕3> 미 비평가상 4개 부문 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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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는 일본국제교류기금과 공동으로 29일부터 나흘간 1950~70년대 일본 액션영화를 상영한다.<일본영화 걸작선Ⅰ>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상영회는 <배틀로얄>로 알려진 후카사쿠 긴지(사진) 감독의 73년작 <의리 없는 전쟁>과 <도쿄 방랑자>, <겐카 엘레지> 등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실험적인 액션영화 등 여덟 편이 선보인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올 하반기에 일본영화 걸작선 상영회를 한 차례 더 마련할 계획이다.상영회는 서울아트시네마의 회원(동반 1명 무료 입장)을 대상으로 열리며 관객 회원은 연회비 6만원(청소년ㆍ노인관객은 4만원, 후원회원은 50만원 이상)에 가입할 수 있다. ☎(02)720-9782, 745-3316, 인터넷 www.cinematheque.seoul.kr다음은 그밖의 상영작 목록▲수젠지의 결투(仇討崇禪寺馬場ㆍ마키노 마사히로)▲반역아(反逆兒ㆍ이토 다이스케)▲13인의 자객(十三
서울아트시네마, 일본 액션영화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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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4주연속 북미영화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완결편인 <왕의 귀환>은 1천420만달러로 1주일전 입장수입의 절반 수준으로 급락했지만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며 개봉 이후 26일 동안 3억1천22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팀 버튼 감독의 팬터지 드라마 <빅 피쉬>가 1천380만달러의 흥행실적을 올려 1위의 입성을 노렸으나, <반지의 제왕>의 아성을 누르기엔 부족했다.
20세기 폭스사의 <치퍼 바이 더 더즌>(Cheaper by the Dozen)은 1천200만달러로 3위였으며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이 출연한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Something's Gotta Give)은 820만달러로 4위였다.
남북전쟁을 소재로 한 미라맥스영화사의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은 주드로와 니콜 키드먼이 최우수 남녀주연상, 르네 젤위
<반지의 제왕3> 북미영화 박스오피스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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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감독의 2001년작 <화산고>가 최근 케이블채널 <MTV>에서 힙합 가수들의 목소리로 더빙되고, 힙합 사운드트랙을 새롭게 삽입해 방영됐다. 그러나 원작을 변형시켰다는 불만과 나름대로 참신한 시도였다는 만족스런 평가가 맞서고 있다.
지난 2003년 12월21일 <MTV>에서 첫 소개된 <화산고>는 본래 상영시간이 2시간에 가깝지만, 1시간20분으로 축소 방영된 뒤 더빙과 사운드트랙 삽입 과정을 담은 10여분짜리 다큐멘터리가 연이어 방송됐다. 상영시간의 축소로 많은 내용이 삭제되거나 변형 또는 축소됐다. 이중 가장 큰 내용 변경은 교장의 역할을 <사비망록>을 둘러싼 이야기 구조와 함께 삭제해버린 것. 이 때문에 <MTV>의 <화산고>는 <사비망록>을 차지하기 위한 대결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 사이의 대립으로만 표현됐다. 주인공 김경수의 과거나 기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중 일부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뉴욕] 화산Go, 미국 MTV에서 반응 좋아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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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영화관객 수를 살펴볼 때 가장 높은 객석점유율을 자랑하는 나라들은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미국처럼 국민들이 1년에 평균 대여섯편의 영화를 보는 나라들이다. 최근 영화바람이 불고 나서도 평균적으로 한국인은 1년에 영화를 2.5편 정도 본다. 이 수치를 보고 아이슬란드인이나 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영화에 관심이 더 높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물론 사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평균적인 20대 한국인은 아마 평균적인 20대 미국인만큼이나 (혹은 더 많이) 영화를 챙겨볼 것이다. 차이점은, 많은 나라에서 영화관람은 평생 가는 취미생활인데 반해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하고 나면 극장을 찾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에 가면 부모님과 친구분들이 최신 영화들을 논하는 것을 자주 듣지만, 60대 한국 사람들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어보긴 힘들다. 이런 점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종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할리우드에서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영화를 상당수 제작한다. 결국
[외신기자클럽] 중장년층 관객이 있다면? (+영어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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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극장가는 흉작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미국의 연간 박스오피스와 관객 수가 하락하고, 해외에서 벌어들인 매표수익 역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데 이어, 영국과 프랑스 등의 유럽 극장가도 수년 만에 박스오피스 하락세로 접어들었다고 <버라이어티> 최근호가 보도했다.
할리우드 대작 중에서 올해 국경을 초월해 사랑을 받은 작품은 <니모를 찾아서>(사진)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정도. <헐크>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씨비스킷> 등은 대체로 부진했고, 기대주였던 <매트릭스2 리로디드> <매트릭스3 레볼루션>마저 관객의 실망을 산 것이다. 미국영화가 해외로부터 벌어들인 수익은 74억2500만달러로, 2002년에 비해 1% 늘어난 액수지만, 유로화의 강세를 감안하면 이는 명백한 ‘감소’다. &
2003, 세계 극장가는 마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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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도 ‘인터넷 해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영상협회(회장 권혁조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대표)가 온라인상 불법 복제된 영화를 적발한 결과, 지난 한해 10만560건의 ‘해적판’ 영화들이 P2P 사이트를 중심으로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떠돌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수치는 영상협회가 적발해낸 건수이므로 실제로 온라인상에서 유통되는 해적판의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영상협회는 이중 9만5408건에 대해 폐쇄 또는 삭제를 요청했으며, 9만3866건이 실제로 폐쇄되거나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의 불법 복제·유통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3년 가장 많은 불법 복제판이 유통됐던 작품은 <매트릭스2 리로디드>(사진)로 총 4651건이었으며, <엑스맨2>(3495건), <나쁜 녀석들2>(3096건), <터미네이터3>(3067건), <젠틀맨리그>
영화계도 ‘해적’ 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