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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판타지의 비극까지 직시하다
감독 P.J. 호건
빈사의 팅커벨을 관객의 박수로 살려내는 연극의 명장면은 영화 <피터팬>에도 남아 있다. 다만 영화는 객석의 박수를 “나는 요정을 믿어!”(I do believe in fairies)라고 곳곳에서 독백하는 사람들의 몽타주로 대체한다. 온 세상 아이와 어른이 환희의 미열에 들떠 “아이 두!”의 후렴을 거듭 외친다. 마치 주례 앞에 선 <뮤리엘의 웨딩>의 토니 콜레트처럼,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카메론 디아즈인 양 복숭앗빛 홍조를 만면에 떠올리고.
지금 와서는 P. J. 호건 감독의 ‘I do 3부작’이라고 묶어도 그럴싸하지만, 결혼식이 등장하는 코미디 두편으로 주목받은 감독을 대규모 예산의 실사영화 <피터팬>의 감독으로 낙점한 것은 약간의 상상력을 요하는 결정으로 보인다. 소니 스튜디오를 떠나면서 <피터팬> 기획을 지참금 삼아 들고 나온 제작자 루시 피셔는 자신의 <
아동 판타지의 핵심에 다가간 <피터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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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닫은 웬디, 창 밖의 피터
아이들은 언젠가는 어른이 된다, 단 한명만 빼놓고. 피터는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달아나버렸다. 그의 완벽한 세계는 어른을 원하지 않는다. 네버랜드의 판타지로 초대받을 수 있는 것은 어린이뿐이다. 어른의 세계는, 단순히 행복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날아다니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어린 영웅을 요구하는 판타지는 <피터팬>만이 아니다. C. S. 루이스의 <나니아 나라 이야기> 시리즈의 주인공은 어린 네 남매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해리도 물론 소년이다. 르 귄의 대표작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의 1, 2편은 각각 게드와 테나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출발하고, 3편의 아렌 역시 미숙한 소년이다. 어찌보면 <반지의 제왕>도 그렇다. 반지원정 당시 프로도는 50살로 어리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안락한 샤이어 밖으로 나와본 적 없는, 그리고 누군가 계속 돌봐줘야 하는 무력한 존재다.
판타지에
아동 판타지의 핵심에 다가간 <피터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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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새로운 금광, 아동 판타지
2001년 나란히 개봉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반지의 제왕> <슈렉>은 그해 박스오피스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이들 세 작품이 벌어들인 수익이 그해 전체 매표 수익의 10%를 차지했을 정도. 이들 작품은 모두 아동 소설을 토대로 한 판타지영화였다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이는 캐릭터가 강하고 스토리가 매력적이며 볼거리가 풍부할 뿐 아니라 잠재관객이 친숙함을 느꼈기 때문. 할리우드의 흥행사들이 이런 안전판을 놓칠 리 없다. 최근 몇년 새 할리우드의 주요 스튜디오들은 경쟁적으로 아동 문학이라는 금광으로 달려들었고, 조만간 그 성과가 드러날 전망이다.
지난 1999년 이래 총 8권까지 출간된 인기 시리즈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파라마운트에서 영화화되고 있다. 화재로 부모를 잃은 어린 상속자들이 재산을 빼앗으려는 친지들의 음모에 대항한다는 모험담. 아이들의 목숨을 노리는 사악한 친척 카운
아동 판타지의 핵심에 다가간 <피터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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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학살이 공존하는 네버랜드
어쩌면 호건은 원작에 충실하자는 가장 단순한 원칙만을 따랐을지도 모른다. 그 원칙을 지킨 사람은 많지 않았다. <피터팬>은 1924년작 무성영화, 1953년과 2002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몇 차례의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TV영화, 스티븐 스필버그의 <후크> 등으로 각색됐다. 후일담을 제외한다고 해도 이 많은 <피터팬>은 잃어버린,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을 향한 향수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열두살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누구나 행복해지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그러나 네버랜드는 독약과 학살과 질투도 있는 섬이었다. 자라지 않는 소년과 “미안해, 난 어른이 되어야 해”라고 말하는 소녀가 정을 나눈 비극의 섬이 웬디는 엄마 달링 부인이 가진, "오른쪽 끝에 키스가 숨어있는 입술"을 동경한다. 그러나 웬디는 이제 자라야 할 시간이라는 아빠의 말을 듣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기도 했다. 그 충돌과 모순
아동 판타지의 핵심에 다가간 <피터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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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 to 'REAL' Never Land!
<피터팬>은 그 주인공처럼 늙지 않는 판타지다. 1904년 희곡으로 태어난 <피터팬>은 1911년 소설로 무성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1953년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2002년의 리메이크 <리턴 투 네버랜드>로 영원한 유년을 반복했다. 그리고 J. M. 배리의 <피터팬>이 런던에서 초연된 지 100년이 되는 지금, 살아 있는 사내아이의 육체를 가진 사상 최초의 피터팬이 스크린을 통해 날아들었다. P. J. 호건 감독의 <피터팬>은 티없이 건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풍부하기 때문에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판타지로 완성됐다. ‘완역판’ 영화 <피터팬>은 어떻게 누구에 의해 탄생했는가? <피터팬>은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 이후 판타지 트렌드의 어디쯤을 날고 있는가? 판타지는 왜 어린 영웅의 모험을 먹고 꽃을 피우는가? 네버랜드
아동 판타지의 핵심에 다가간 <피터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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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 영화에선 좋은 교사가 한명도 안 나오잖아. 와, 그거 되게 좋더라고. 사실, 우리 때는 그런 선생님들이 부지기수였잖아.
유하 | 시나리오를 쓸 때나 영화를 찍으면서 한 가지 의문사항이 들더라고. 교사들이 아무 개연성 없이 애들을 때리잖아. 그런데 그 당시를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그냥 연결이 돼. (웃음)
김성수 | 교실에 들어오면서부터 때리기 시작하잖아.
유하 | 오히려 영화적으로 점잖게 다룬 셈이지.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맞은 기억밖에 없어서…. ‘맨소래담’이 필수품이야. 1학년 때는 키가 크니까 선도부 하라고 맞고, 기수 하라고 맞고. 알루미늄 배트 있잖아, 그걸로 맞으면 머리까지 충격이 와.
김성수 | 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나니까 기분이 어떠냐.
유하 | 사실 이런 얘기는 오히려 서른다섯 때까지 정말 하고 싶었는데, 좀더 나이가 들어서 하니까 장점이 있더라고. 객관적으로 보게 되더라고. 그래선지 쿨하게 만들 수 있었어. 사실 나는 70년대에
유하-김성수 감독 <말죽거리 잔혹사> 대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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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 시나리오 읽었을 때도 한 말이긴 하지만 또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현수가 은주를 사랑하지만 고백도 못하다가 상처를 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희망을 갖고, 하는 것이 반복되는 것 같다는 거야.
유하 | 그게 너랑은 안 맞았을 수 있어. 너는 여자한테 딱 한번 대시해봐서 ‘아니면 말고’ 그러잖아. (웃음)
김성수 | 그게, 네가 나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이야. (웃음) 그런데 은주는 우식이랑 같이 떠났던 거지?
유하 | 떠났다가 돌아온 거지. 오래 갔겠니. 한 5일 됐겠지. 시나리오상에서는 우식이랑 은주랑 살림을 차려. 지방에서. 그게 그 당시를 보면 리얼한 부분이 있었거든. 근데 다들 비현실적이라 그러더라고. 그래서 뺐지. 우식이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 있지만 어차피 성장영화이기 때문에 시시콜콜한 설명이 필요없을 거라고 생각해. 사실 난 우식이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뭐, 나이트클럽이나 왔다갔다 했겠지, 뭐.
김성수 | 어, 근데 난 우식이가 궁금하
유하-김성수 감독 <말죽거리 잔혹사> 대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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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 난 그게 재미있었어. 현수란 인물에, 물론 감독이 투영돼 있기도 한데, 현수가 이소룡을 닮고 싶어하기도 하지만 현수 안에 이소룡이란 인물을 아예 집어넣었더라고. 이소룡의 영화에서 이소룡은 항상 싸우기 싫어하고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늘 누가 싸움을 걸어오거나 불의를 보면 결코 참을 수 없어 하고, 그래서 마침내 제일 강한 인물까지 쓰러뜨리잖아. 그런데 또 여자 앞에서는 굉장히 숙맥이고. 그런 면을 넣은 건 의도적인 것 같아.
유하 | 너 영화를 제대로 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당산대형>을 보면 이소룡이 옷걸이 때리면서 분노하고 그러잖아. 그걸 어떻게 넣을까 했었어. 근데 그냥 넣으면 싸구려가 되니까 멜로랑 잘 섞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지.
김성수 | 현수의 가족 얘기는 더 나올 거 같았는데 별로 안 나오더라.
유하 | 더 있었는데,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도 그랬고, 이상하게 한국 가족이 영화에 등장하면 매
유하-김성수 감독 <말죽거리 잔혹사> 대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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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고딩 잔혹사
유하와 김성수, 언뜻 보기에 잘 어울리지 않을 법한 두명의 영화감독은 사실 20년도 넘는 세월 동안 우정을 쌓아온 친구 사이다. 세종대 영문과 81학번 동기생인 둘은, 역시 동기생인 <흥부네 박 터졌네> <아줌마> 등의 안판석 PD와 함께 대학 시절 ‘반영화’라는 동인을 만들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유하가 1993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대실패 이후 거의 10년 만에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영화계에 돌아오는 데도 김성수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런 두 감독이 유하 감독의 신작 <말죽거리 잔혹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이야기는 혹여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될 수도 있었지만, 김성수 감독은 친구에 대한 진심어린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유하 감독 또한 그런 비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하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유하-김성수 감독 <말죽거리 잔혹사> 대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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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수스의 여우는 양말을 신고 있고 고양이는 모자를 쓰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그건 닥터 수스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그림책 작가 시어도어 가이젤이 쓴 동화들의 영어 원제를 검토해보면 분명해진다. 〈Fox in Sock〉 〈The Cat in the Hat>. 둘 다 모두 엄격한 각운을 고려한 제목들이다. 닥터 수스라는 작가가 유명한 가장 큰 이유도 제한된 숫자의 영어단어들을 절묘하게 이용해 운을 맞추는 실력 때문이었다. 아마 그의 작품들이 명성에 비해 국내에 덜 소개된 것도 언어장벽 때문일 것이다. <양말 신은 여우>와 같은 그림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운을 이용한 말장난이기 때문에 번역되면 그 매력을 100% 잃는다. 그나마 제대로 소개된 <바솔러뮤 커빈즈의 모자 500개>는 그래도 말장난보다는 스토리의 힘이 더 강한 작품이다.
닥터 수스라는 작가의 힘이 기본적으로 언어에, 그것도 운을 이용한 말장난에 놓여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다시
할리우드는 <그린치> <더 캣>를 어떻게 해코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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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나는 존재들”이 던지는 병 속의 편지
세 번째 테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아픔을 얻기 위해서 은유를 포기하지 마라.
들뢰즈-가타리는 프루스트를 빌려서 질문한다. 소녀란 무엇인가? 소녀들의 집단이란 무엇인가? (중략) 대답은 간단하다. “달아나는 존재들”(<자본주의와 분열증> 두 번째 권) 거기에는 무언가 피하려는 완강한 의지가 있다. 사실상 한국영화가, 혹은 한국영화에 도착한이 새로운 관객이, 껴안으려는 것은, 껴안아야 할 것은 그 의지이다. 이 언어장애의 환상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증후-기호라는 의지이다. 그런데 그 기호를 쓰는 사람은 귀여니이지만, 그 기호를 읽는 사람은 당신이지만, 귀여니를 쓰는 것은, 당신을 읽는 것은 증후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 그 이야기 자체가 (문학적으로) 의미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가 (우리의 시대라는) 의미를 생산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혹은 (우리의 시대라는) 의미에 한계를 부여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대부분
그 영화(들)의 관객 연놈들은 멋있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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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대의 도착
점점 더 분명해진 사실인데,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아온 사람들은 자기가 보아야 할 영화와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나를 원하는 영화와 원하지 않는 영화를, 이상할 정도로 정확하게 구별한다. 여기서 중 요한 말은 이상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미처 보기도 전에 그것을 구별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영화를 향해서 내가 거기서 무엇을 바라는가, 라고 질문을 던질 때 이미 그 질문에 선행해서 그 영화가 내게 무엇을 보기 바라는가, 라고 대답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질문을 앞지른 대답은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감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던진 질문의 사실상의 실제 내용은 그것을 보기 위해 찾아온 영화(관객의 ‘誤記’가 아니다)와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을 알고 있는 영화를 지목한 사람들 사이의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 속에 감추어진 그 무엇을 의심한다는 뜻이다. 그
그 영화(들)의 관객 연놈들은 멋있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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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해 한국영화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풍성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예리한 눈을 가진 당대의 논객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사유하며 곳곳에서 들려오는 풍년가의 틈새에서 무엇을 듣고 있을까. <씨네21>의 김소영, 정성일, 허문영 세 편집위원에게 자유로운 글을 청했고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첫 번째 발언을 보내왔다. 우리가 아는 그 ‘정성일’이 <동갑내기 과외하기> <옥탑방 고양이> <그놈은 멋있었다>를 통해 새로운 관객의 도래를 확인하며 자신과의 거리 혹은 소통 불가능성을 진지하게 사유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세번에 걸쳐 이루어질 이 기획을 통해 우리 눈앞에 어떤 지형도가 펼쳐질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도 잊을 수 없었던 내 사랑의 문제점을 되씹으면서 영화관을 나서는 나는 “이젠 좀 끝났으면!”이 아닌 “난 이해하고 싶어!”란 괴이한 소리를 지른다. _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괄호로 시
그 영화(들)의 관객 연놈들은 멋있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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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 매달린 카메라, 눈속에 파묻힌 배우
2003. 3. 13
(김)하늘이 캐나다에 와서 첫 촬영에 임한 날, 어찌된 일인지 하늘이 도와주질 않는다. 카메라가 얼어버리는 바람에 촬영을 접어야 했다. 돌려봤자 카메라는 뻑뻑할 뿐이고 애꿎은 필름만 찢어질 뿐이다. (김)하늘이 분량만 치면, 이제 무어 크릭 절벽으로 넘어간다. 그동안 다들 귀 동상이 한번씩은 걸린 듯하다. 슬슬 향수병도 도지기 시작할 것이다. 재미난 사실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기독교 신자가 하나둘 늘어났다는 거다. 독실한 이성재씨의 전도에 따른 것은 아니다. 어찌된 일일까. 알아보니 근교 한국인 목사가 세운 교회에서 스탭들에게 한국 음식을 예배 뒤에 차려준다는 것이다. 오는 일요일은 보지 않아도 교회로 향하는 셔틀버스 정류장에 줄 서 있는 우리 스탭들의 수가 늘어날 것이다. 배고픔과 향수에 성경책을 끼고서 한시적으로나마 주님의 아들, 딸들이 되기로 한 이들을 누가 손가락질할 것인가.
2003. 3.
한국 최초의 산악영화 <빙우> 제작일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