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국제적인 경력으로 스페인 문화를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스페인영화 아카데미’로부터 황금메달을 받는다. 할리우드에서 그는 자신의 문화권을 대표하는 캐릭터(<조로> <에비타>)를 주로 맡아왔다. 황금메달은 평생의 공적을 인정받은 경우에 주어지는 것이기에, 지금의 메달은 그가 앞으로 더욱 고국의 명예를 드높이기를 바라는 격려의 의미로 보인다. 한편 반데라스는 오래전부터 스페인으로 돌아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함께 <타란툴라>를 찍을 계획을 밝혀왔다.
조로, 황금메달을 훔쳤나?
-
집 근처에 세워둔 차가 새벽 세 시에 끌려갔다. 행정이 아니라 사업일세, 구시렁거리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에 차 찾으러 가자니 심사가 꼬였다. 그 동네 사는 친구와 선배 커플의 집에 죽치고 앉아 인생이 우울하다며 심드렁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더니, 이런저런 조언과 함께 “말 잘 듣는 애처럼 뭘 그리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느냐”는 타박도 덤으로 날아왔다. 그래도 편안했다. 특별한 역할의 잣대에 나 자신을 밀어넣기 위하여 혹은 그런 것에 맞지 않는 어떤 결핍이나 잉여 때문에 속앓이하는 사회관계 대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를 보아왔고 마음의 복잡한 지형까지 수용해주는 지인들의 품이었기 때문이다.다음날에는 어떤 감독이 우리 동네로 놀러왔다.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겉으로 말하는 이유였지만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는 심경이 역력했다. 창작자로서,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뼈저린 회의를 곱씹으며 긴 나날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젊은 영화감독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사람 인(人)
-
서양에서 어른과 구별되는 ‘어린이’란 관념이 발생한 것은 17세기경이었다. 어린이가 어른과 달리 순진무구하고, 그래서 오염되기 쉬운 존재라는 생각이 나타났고, 그 결과 어린이를 어른들로부터 분리하여 교육시키는 새로운 학교들이 생겨났다. 이전에는 아이들이 일을 해야 하는 경제적 대상이었다면, 그때 이후 점점 껴안고 입맞추고 싶은 정서적 대상으로 바뀐다. 그러면서 서서히 가족생활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물론 이 모두는 그런 걸 챙겨줄 수 있던 귀족이나 상층 부르주아들에게만 한정된 것이었지만.어린이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는 사회에 특징적인 것이었다. 즉 근대화는 어린이에 대한 이런 관념을 동반하며 진행된다. 급속한 근대화를 꿈꾸었던 일본의 지식인들에게 이 ‘낯선’ 풍경은 낯선 만큼 중요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어린이를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계몽하기 위해 일년에 하루라도 어린이를 대접해주는 날을 만들었다. ‘조국을 잃은’ 비장함을 안고 ‘선진’ 일본
어린이날을 위하여
-
중력에 짓눌려져 땅 위에 붙박힌 우리 몸뚱이는 무게를 가진 존재이다. 반면에 상상력의 세계는 질량 0의 비물질의 세계로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삶 속에서 의식과 관념과 사상과 생각은 65kg 몸뚱이보다 더 무거웠다. 인류는 그렇게 무거운 몸뚱이에 그보다 더 무거운 관념을 쌓으며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청동기에서 철기시대를 거쳐, 다시 석유화학과 중공업과 글로벌 거대기업과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를 이루면서 자꾸만자꾸만 무거워졌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가진 인류는 이제 다시 새로운 생존문명으로 가벼움의 테크놀로지-디지털 시대를 개척하고 있다.가벼움에 대하여, 밀란 쿤데라만큼 멋진 문장을 창조한 사람이 있을까. 그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제목만으로도 웬만한 장편소설 전문 이상의 생각의 동기를 제공한다. 그것은 ‘존재’라는,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단어를 ‘가벼움’이라는 단어와 병치시킴으로써, 환호성을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움에 대하여
-
-
그들은 늘 궁리해왔다. 당신의 식사시간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그들은 늘 기다려왔다. 당신이 밥을 빨리 먹고 일어서기를. 그들은 늘 모색해왔다. 당신이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기를. 그들은 누구인가? 쉿, 비밀이야!내가 본 최초의 패스트 푸드는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를 통해서였다. 기본적인 발상은, 그러니까 노동자의 밥먹는 시간도 아깝기만한, 아니, 밥을 먹이는 그 순간에도 일을 시킬 순 없을까? 물론 있지요!의 발상 그것이었다. 일해라. 가만히 있으면 기계가 밥을 먹여줄 테니, 그러므로 일해라. 만국의 노동자여!내가 먹은 최초의 패스트 푸드는 햄버거였다. 햄버거를 먹으며 나는 캠퍼스를 뛰어다니거나, 종로3가의 극장가를 서성이거나,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했다. 자네 참, 열심이군. 저 참, 열심이죠? 빨리빨리- 햄버거를 먹으며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나는 시집을 사고는 했다. 무렵엔 장정일의 시를 좋아했는데, 예컨대 그의 시집 <햄버거에 관한 명상&
패스트, 푸드
-
건달, <인 더 컷>의 여성 육체가 남성 육체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듣다중국인은 여자 셋이 모인 풍경(姦)을 간사하다고 상상했다. 여기 불만을 품은 누군가는 남자 셋이 모인 풍경은 ‘뻔뻔할 뻔’이라고 우스개를 지어냈다. 종종 엿듣게 되는 ‘여자 셋’의 수다는 간사하다기보다 터프하다. 여자가 간사해지는 것은 괜찮은 남자 셋 사이에 혼자 있을 때다. 물론, 이 경우 ‘간사함’은 사회적 권력에 기대어 독점하고자 하는 강자의 욕망에 포획되지 않는 약자의 얄미운 모습일 뿐이다. 반대로, 남자가 매력있는 여자 셋 사이에 혼자 있으면 뻔뻔스럽다. 여기서 ‘뻔뻔함’은 독점욕을 뒷받침해주는 사회적 권력이 없는 약자의 눈에 비친, 좀더 분방하게 저질러대는 강자의 파렴치한 모습이다. 성적 매력을 경합하는 섹슈얼리티의 시장에서 독점의 욕망은 간사함과 뻔뻔함을 뒷맛으로 남긴다.이 개운치 않은 뒷맛의 예방주사로 오래전부터 상호 독점의 계약이 제시됐다. 낭만적 사랑의 뿌리는 남녀간의 성적 독점을 통해
조건부 화해, <인 더 컷>
-
책 읽는 사람보다 책 만드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것 같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한가하게 책이나 펴들고 앉아 있다가는 그야말로 ‘한가한 사람’이란 소리 듣기 십상이다. 팔릴 책이란 것은, TV프로그램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되지 않고서 더이상 불가능해 보인다. 하긴 영화나 음악 따라잡기도 힘든 판에 영화보다 몇 곱절로 시간을 잡아먹을 책이라니. 그런 와중에 독서평론가니 전문서평가니 하는 말을 들으면 옛날 생각도 나면서, 참 낯설게 느껴진다.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는 임지호의 홈페이지는 독서에 관한 한 비범한 수준이다. 다종다양한 책을 쉼없이 읽어내고 있는 열의는 정말 대단하다. 출판계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하면, 내가 옆에서 듣기에도 아쉬울 것 같다. 책 읽기란 것이 영화나 음악처럼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절대적인 시간을 요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주인장만큼의 독서량은 백수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양이다. 백수가 아님에도 꼬박꼬박 책을
읽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출판인 임지호의 서평 사이트>
-
<그레고리 호러 쇼>장르 어드벤처배급 코코캡콤플랫폼 PS2언어 일본어 음성/ 한글자막안개 짙은 숲속에서 길을 잃었던 주인공의 눈에 띈 것은 어딘지 모르게 수상한 미소를 띤 늙은 잿빛 생쥐, ‘그레고리’ 소유의 작은 호텔. 옆 침실의 좀비 고양이와 꿈속에 나타난 사신(死神)과의 대화를 통해 주인공은 자신이 미계의 세계인 그레고리 하우스에 들어섰음을, 그리고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다른 투숙객들의 영혼 12개를 빼앗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연 그/그녀는 갖가지 방해를 물리치고 현실 속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동명의 애니메이션을 소재로 제작된 <그레고리 호러 쇼>는 ‘말’ 속에서 단서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어드벤처 게임. 예를 들어 발빠른 분홍색 도마뱀 캐서린을 잡는 방법은, 자신이 버린 바나나 껍질에 그녀가 나뒹군 적이 있다는 꼬마 생쥐 제임스의 무용담에서 착안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 고개를 넘을 때마다 주인공에게는 영혼을 빼앗긴 숙
호러에 대한 편견을 버리시라, <그레고리 호러 쇼>
-
<효자동 이발사> I EMI 발매송강호 주연의 <효자동 이발사> O.S.T는 정갈함이 최대 매력이다. 특정 사운드의 과함없이 아코디언, 바이올린, 트럼펫, 나일론 기타, 어쿠스틱 베이스, 퍼커션 등이 정말 시종일관 균형있게 어우러진다. 집시풍의 경쾌한 4박자 리듬 위로 얹힌 구슬픈 음색은 이발사 성한모의 울지도 웃지도 못할 아이러니한 상황과도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한국의 특정 시대를 산 소시민의 이야기를 미국의 재즈와 유럽의 집시 음악으로 채웠다는 게 인상적이다.<라이어> I T-엔터테인먼트 발매주진모, 공형진 주연의 <라이어>는 두집 살림을 하는 한 남자의 일상이 거짓말로 인해 엉망진창되는 해프닝을 담은 영화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꼬여만 간다. 이 중심에 놓인 주인공 노상구(주진모)의 거짓말과 그 때문에 벌어지는 땀나는 상황을 오디오로 듣는 게 이 O.S.T의 재미다. 전체적으로 꽤 공들인 인상을
<효자동 이발사>, <라이어> OST
-
동물 스펙터클의 원조격인 히치콕의 <새>(1963)는 지금 보면 다소 촌스러운 특수효과가 여전히 놀라운 공포효과를 유발하는 수준급의 고전이다. 이 말이 <새>의 기술력에 대한 폄하로 들려선 안 되겠다. 히치콕은 진짜 새와 기계 새를 총동원하여 ‘온갖 잡새가 날아드는’ 전대미문의 이미지를 합성해냈을 뿐 아니라, 거기서 발견될 ‘옥에 티’를 상쇄하고 남을 만큼 풍부한 의미망을 또한 고전적으로 직조해냈다는 뜻이다.영국영화연구소(BFI) 고전영화 시리즈 중 하나인 <새>(카밀 파글리아 지음/ 이형식 옮김/ 동문선 펴냄)는 이러한 제작과정과 영화적 의미를 더없이 충실하게 밝혀주는 ‘<새>잡기 완전정복’ 해설서이다. 광범위한 리서치와 꼼꼼한 영화읽기를 아우르는 저자는, 가령 멜라니(티피 헤드런)의 애스턴 마틴 스포츠카(의 제임스 본드 차와 유사 모델)에서 성적 모험가로서의 현대 여성의 자유를 끄집어낸다. 저자의 우상이기도 한 멜라니는 히치콕 특유의 가
히치콕의 <새> 완정정복
-
사회적 개입 No! 감정적 갈등 Yes!
하드한 야오이에 비해 소프트한 야오이라고 불리는 로맨스물들에서도 재현된 주체와 여성관객 사이에 마찬가지의 관계가 설정된다. 낭만적 연애 판타지에 대한 욕구와 그 안에서의 여성 주체의 위치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데 꺼림칙함을 미소년들의 연애 판타지로 대체하는 것이다.
팬픽의 경우는 남성 커플링의 동기는 연애 판타지의 충족이라기보다는 스타에 대한 배타적 독점욕에 의한 것일 수 있다. 내가 독점할 수 없다면 누구도 그 스타와 연애관계로 연결되지 않기를 바라는 데서 오는 독점욕과 동성끼리의 로맨스라면 로맨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강한 이성애의 발현에 의해 역설적으로 팬픽의 동성애 커플링이 이루어진다는 견해이다. 같은 팀 내에서의 커플링에 집착하는 경향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항상 같이 생활하는 팀 멤버들과 팬들 외에는 인간관계를 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개별 팬픽의 구체적인 텍스트 내에서의 인물들과 수용자가
소녀들의 로맨스가 진화한다, 야오이 만화 [2]
-
소녀들의 로맨스가 진화한다
‘야오이 만화’- 소녀문화에 자리잡은 소년 동성애물
동성애를 소재로 한 다양한 문화적 생산물 중 생산자의 표현적 측면이나 소비자의 수용적 측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 중의 하나가 야오이 만화다. 소년 동성애를 다루므로 BL(보이 러브)로도 통용되는 야오이는 열혈 10,20대 여성 팬층을 확보하는 등 흥미있는 문화 현상을 제공했다. 이번 컬처잼 포커스에서는 야오이 만화와 이에 열광하는 소녀들을 로라 멀비의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에서 보여지는 페미니즘적 테제로 접근, 시선의 대상으로서, 욕망의 규제 대상으로서의 여성바라보기를 시도하였다.
편집자
황미요조/ 문화평론가
아이돌 그룹 신화의 두 멤버인 에릭과 전진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사진집이 기획되었다는 기사가 났다(<스포츠서울> 2004. 4. 30). 그 둘은 실제 동성애자도 아닐 뿐더러 그들의 팬층 역시 10대에서 20대 여성이 대부분으로 동성애 커뮤니티와 별 관련이 없다. 결국
소녀들의 로맨스가 진화한다, 야오이 만화 [1]
-
<킬 빌 Vol.1> Kill Bill: Vol. 12003년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상영시간 111분화면포맷 2:35 아나모픽음성포맷 DD & DTS 5.1 영어자막 한글, 영어출시사 스펙트럼<킬 빌 Vol.1> Kill Bill: Vol. 12003년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상영시간 111분화면포맷 2:35 아나모픽음성포맷 DD & DTS 5.1 영어자막 한글, 영어출시사 미라맥스(미국)<킬 빌 Vol.1> Kill Bill: Vol. 12003년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상영시간 112분화면포맷 2:35 아나모픽음성포맷 DD & DTS 5.1 영어, DD5.1 일본어자막 영어, 일본어출시사 유니버설(일본)출시가 묘연했던 오리지널 <슈라유키히메>(修羅雪姬)나 <소림 36방>이 <킬 빌 Vol.1>과의 연관관계 때문인지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DVD 발매되고 있다. 이미 발매된 <코피>나 <폭스 브라
한국판에는 없고 일본판에는 있다? <킬 빌 Vol.1> 지역코드 1, 2, 3
-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1990년감독 톰 사비니상영시간 96분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4:3 풀스크린음성포맷 DD 2.0자막 한글, 영어출시사 콜롬비아(1장)불멸의 호러스타 톰 사비니. 그는 다방면으로 활동을 했지만, 뭐니뭐니해도 자신의 전공인 ‘특수분장’ 분야에서 가장 빛나는 재능을 발휘한다. <시체들의 새벽> <매니악> <버닝> 에서 만나게 되는 눈부신 효과들은 모두 그의 솜씨다. 이처럼 공포영화와 깊은 인연을 맺은 사비니가 감독 데뷔를 한다면, 공포영화가 되는 것은 그의 운명이다. 사비니는 새로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지 않고, 훌륭한 오리지널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데 더 관심을 보인다. 조지 로메로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선택한 그는 원작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기보다는, 오리지널이 지닌 색깔을 최대한 충실히 옮겨오는 데 주력한다. 이는 각본이 로메로란
좀비 공포, 오리지널의 충격을 다시 한번,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