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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라로크성 유적에서 발굴 작업에 한창이던 일단의 젊은 고고학자들이 600년 이상 숨겨져 있던 지하유적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발견된 것은 며칠 전에 뉴멕시코로 떠난 존스턴 교수의 600년 동안 봉인되어온 친필 구조요청과 안경알이었다. 이 앞뒤가 맞지 않는 기이한 사건의 진위를 알아내기 위해 유적 발굴의 후원자였던 ITC에 연락을 취한 그들이 알아낸 것은, 사물의 전송이 가능한 양자 원격 이동 장치가 존재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1357년의 프랑스로 떠났던 존스턴 교수가 행방불명됐다는 사실이었다. 4명의 젊은이들은 이제 ‘6시간’ 안에 교수를 구출하여 현재로 돌아와야 한다.
야심으로 가득 찬 자본가가 만들어낸 상상을 초월하는 테크놀로지, 그것이 야기한 부작용을 바로잡기 위해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혼재하는 ‘테마 파크’ 속으로 뛰어드는 젊은 전문가 무리들. 이쯤 되면 여기서 <쥬라기 공원>과의 묘한 데자뷔 현상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좋은 의미에서든 그 반대의 의미에서든
텅 빈 스펙터클에서 길을 잃다,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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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g down the house. 만장을 떠들썩하게 하다. 대갈채를 받다. 영화 <브링 다운 더 하우스>의 타이틀이 갖는 사전적 의미다. 우리가 ‘지붕이 떠나가라’ 박수치는 동안 아마 그네들은 ‘집이 내려앉도록’ 하는 꼴인데 대략 이 차이가 스티브 마틴의 영화를 우리가 ‘웃기는 영화’로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다. 그러나 스티브 마틴이 정말 포복절도하게 웃기지 않는 이유는,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허전함(<신부의 아버지>)이나 대가족을 이끄는 가장의 애환(<열두명의 웬수들>)에서처럼, 그의 코미디가 실은 ‘웃지 못할 일’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이 일들은 그의 영화에서 항상 떠들썩한 ‘소동극’으로 변모되어 코미디가 된다. 물론 이 좌충우돌의 여정 끝엔 늘 행복한 가족애로의 회복과 격려, 잔잔한 공감이 있다. 좀 뻔한 듯하면서도 사려 깊은 스티브 마틴표 브랜드 코미디의 변치 않는 공식이다.
<브링 다운 더 하우스>는
분노와 통쾌함이 엇갈리는 공감의 대갈채, <브링 다운 더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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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25일 "스크린 쿼터의 완화 등 개선 여부와 방안을 연내에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 위원장은 이날 매일경제TV에 출연, 올해는 시장의 실패와 함께 정부의 실패 를 바로 잡기 위한 규제 개혁에 업무의 비중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국산 영화의 점유율이 50%를 넘어 경쟁 당국 입장에서 보면 조금 경쟁적이 되도록 완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 문제는 문화와 외교정책 문제도 있어 관계 부처 및 이해관계자와 협의한 뒤 연내에 제도의 개선 여부와 개선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강 위원장은 정부의 규제 개혁에 대해 "지난해 연구결과 각종 정부 규제중 97개는 폐지, 57개는 품질 개선 지적이 나와 이를 토대로 정부의 규제개혁안을 확정하려고 한다"고 밝히고 "폐지할 것이 많다면 일괄 정리법을 만들어 정리한다는 방안을 규제개혁위원회와 협의했고 총리 보고도 마친 상태"라고 덧붙였다.(서울=연합뉴스)
공정위원장 "스크린쿼터 완화여부 연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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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유형의 직업여성이 등장한다. 스티비 닉스의 <에지 오브 세븐틴>이 울려퍼지면 교장 로잘리 멀린스(조앤 쿠색)는 ‘두 얼굴의 여인’처럼 신체변형을 시작한다. 완고하고 단정하던 로잘리의 동그란 두눈이 좀더 커지며 두손과 입술이 어쩔 줄 모르고 움찔거리더니 스티비 닉스의 섹시한 멜로디와 리듬에 기꺼이 어울린다. 눌러둔 ‘끼’가 제대로 발동되면 자신이 직접 근엄한 훈육자로 양성시킨 교사들 앞에서 온몸에 식탁보를 휘감고 마돈나처럼 열창한다, 고 한다. 반면 철없던 시절을 접어버린 친구의 애인은 조신하기 이를 데 없는 시장의 비서다. 그녀는 너무나 도덕주의적 속물이어서 절대로 록의 세계를 이해 못한다. 그녀는 회개시킬 수 없는 훼방꾼이자 문제아다. 세 유형의 초등학생이 있다. 백인, 황색인, 흑인. 모두 부잣집 자식들이고 최고의 사립학교를 다니지만 유독 동양계와 아프리카계 아이는 열등감에 시달리거나 왕따다. 다행히도 이들은 백인 아이 못지않게 음악에 천부적 재질을 가졌다. 아직
잭 블랙의 개인기가 만발하는 유쾌한 축제, <스쿨 오브 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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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나 장르로 봐선 한 사람의 필모그래피란 게 믿기 힘든 감독들이 있다. <스플래쉬>에서 <분노의 역류> <아폴로 13>을 거쳐 <뷰티풀 마인드>로 이어진 론 하워드도 그중 하나. ‘작가’는 못 돼도 그는 분명 코미디부터 SFX스펙터클까지 어떤 과목이든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장인’이다. 그렇다고 일관성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그의 무난한 정공법과 보수적 가족주의는 할리우드 하면 떠오르는 전형성을 벗어난 적이 없다.
<실종>은 그의 작품 중 <파 앤드 어웨이>와 <랜섬>의 설정을 뒤섞고 변주한 듯한 영화다. 개척시대가 배경이지만 이번에 대립하는 건 소작농과 지주가 아니라 인디언과 백인이며, 유괴되는 건 재벌의 외아들이 아니라 여의사의 딸이다. 두딸과 살던 여의사, 매기(케이트 블란쳇)는 어느 날 20년 만에 아버지(토미 리 존스)의 방문을 받는다. 하지만 가족을 버리고 인디언이 돼버린 아버지는 도저히 용
로드스릴러를 표방하는 지루한 드라마,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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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들은 나뒹구는 마약 주사기를 장난감 삼아 놀고, 소년들이 공을 차는 주택가에는 마약 딜러에게 고문당하는 자의 비명이 무상하게 울려퍼진다. 좀더 자라면 이 아이들은 조직에 고용돼 마약 행상에 나설 것이다. 마약이 오염시킨 1994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빈민가 풍경 앞에서는, 분노의 감정이 마땅하다.
어떤 경우에나 싸움은, 성토나 한탄과는 다른 문제다. 상대가 “네 아들을 유괴해 성폭행한 다음, 네 년을 쏘아 죽여주지”라고 협박하는 무뢰한일 때는 더욱. 그러나 <선데이 인디펜던트>의 열혈 기자 베로니카 게린은, 기사나 쓰고 수사는 경찰에 맡기라는 현명한 충고를 묵살한 채 마약 트래픽의 진원지를 캔다. 의욕과 사명감이 마치 방탄조끼라도 되는 양 암흑가를 들쑤시는 그녀의 행보를 지켜보는 관객의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움직이는가?
조엘 슈마허 감독은 계몽적 의도가 아니라 베로니카 게린이라는 여성의 ‘캐릭터’가
굽힐 줄 모르는 어느 기자의 마약 전쟁, <베로니카 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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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 먹은 샴쌍둥이 테너 형제(이들은 ‘결합된 형제’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고 점잖게 밝힌 바 있다)는 마을의 명사다. 어떤 까다로운 주문이라도 3분 내에 해결하는 ‘번개 버거’의 공동 요리사이자 야구면 야구, 권투면 권투, 미식 축구면 미식 축구를 하는 족족 우승으로 이끄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게다가 형인 월트(그렉 키니어)는 직접 희곡을 쓰고 출연을 겸하는 만능 재주꾼이기도 하다. 내성적인 동생 밥(맷 데이먼)은 무대 공포증 때문에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면서도 기꺼이 형을 위해 검은 옷을 뒤집어쓰고 무대에 함께 오른다. 그들이 함께라면 겁날 게 없다. 섹스문제만 해도 서로 조금씩만 양해하고 자세를 바꾸어준다면(!) 별 문제될 건 없다. 한명이 샤워할 때도 나머지 한명이 비옷만 입고 있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안온한 일상의 다사로운 행복이 월트의 폭탄 선언으로 산산조각나버린다.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프로 배우로 성공하고 싶다는 것! 대경실색할 노릇이지 않겠는가.
바로 그 순간,
따로 또 같이 - 가슴이 훈훈해지는 형제애, <붙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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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채로 맺어진 4명의 남녀가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원래의 커플로 재결합한다. 25일 처음 나가는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는 제목에서 풍기듯 색다른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각자 자신의 애인을 두고서도 서로 남의 애인을 탐한다는 설정은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전개공식을 닮았다.
지난 23일 시사회를 통해 살짝 속살을 드러낸 이 드라마는 이런 상투성에만 의존하는 드라마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우선 심각한 이야기를 가볍고 코믹하게 포장하는 요즘 드라마 제작 추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상투적 이야기를 제법 심각하고 진지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난해 드라마 〈피아노〉와 영화 〈첫사랑 사수궐기대회〉를 만든 오종록 피디는 영화제작 방식처럼 후반 작업에 공을 들여 다른 멜로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어두운 톤의 깊이 있는 색감을 브라운관에 살려내 눈길을 끈다. 우울한 느낌의 배경음악도 차별성을 더하는 데 한몫한다.
박종 문화방송 드라마 국장은 시사회 뒤 “조금 독특하다. 인
김래원, 염정아의 ‘물오른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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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 장서희가 '귀신'으로 스크린에 진출한다. 장서희는 김상진 감독의 <귀신이 산다> 여주인공에 캐스팅, 차승원과 호흡을 맞춘다. <광복절 특사>에 이은 김상진 감독의 새 작품 <귀신이 산다>는 차승원이 우여곡절 끝에 장만한 새집에 귀신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리는 로맨틱 코미디. 장서희는 이 작품에서 차승원이 이사온 집에 사는 귀신으로 출연, 사사건건 그를 괴롭힌다.
장서희는 "유쾌한 코미디 영화지만 연화가 왜 구천을 헤매며 차승원씨가 살고 있는 집을 고수하려 했는지, 막판 반전을 통해 그 내용이 알려지는데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났다"며 이번 작품에 큰 애정을 보였다. <귀신이 산다>의 촬영이 끝나면 다시 홍콩으로 날아가 유덕화와 호흡을 맞추는 서극 감독의 영화 <칠검하천산> 촬영에 들어간다.
장서희, <귀신이 산다>로 스크린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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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수입추천 불허 판정을 받은 무라카미 류 감독의 영화 <도쿄 데카당스>가 재심에서 수입추천을 통과했다. <도쿄 데카당스>는 올해 제4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실시되면서 수입추천 신청 1호작으로 기록됐으나 영등위 수입추천소위원회가 변태적 성애장면 등이 국민 정서에 반한다는 이유로 불합격 결정을 내렸다.
수입사 백두대간은 이에 불복해 지난 18일 재심을 신청했으며 영등위는 24일 15명으로 구성된 전체회의를 열어 수입추천을 결정했다. 백두대간은 등급분류를 신청한 뒤 오는 여름쯤 개봉할 계획이다.(서울=연합뉴스)
<도쿄 데카당스> 수입추천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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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을 위해 문화적, 세계적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 방영할 것”을 슬로건으로 삼고 있는 프랑스-독일 중심의 유럽 합작 텔레비전 채널인 <아르테>(Arte)는 1991년 창사 이후 10여년 동안 유럽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 채널로서 기능해오면서 동시에 영화분야(제작 및 배급)에도 관심을 보여왔다. 2003년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아르테>는 연간 총매출액의 약 5% 이상을 영화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프랑스의 다른 텔레비전 채널들의 투자비율(약 3.2 %)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다.
제롬 클레망 <아르테> 회장은 2004년 2월3일 공식발표를 통해 향후 <아르테>의 영화지원 정책을 표명했다. <아르테>는 앞으로 연간 20여편의 비상업적 독립 장편영화에 대한 지속적인 제작 지원과 함께 창작 다큐멘터리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이러한 정책을 기반으로 <아르테>는 2004년에 테오
[파리] <아르테>, 영화지원 정책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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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의 기다림 끝에 지아장커(사진)의 새 영화가 마침내 관객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번에 그의 시야는 샨시의 작은 마을에서 도시로, 세계로 넓혀질 예정이다. 지난 1월 홍콩과 인접해 있는 도시 선전에서 크랭크인한 지아장커의 신작 <세계>(世界)는 제목이 암시하듯 감독의 당대 중국 젊은이들에게 도대체 이 ‘세계’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사유를 엿보게 할 것이다. 농촌에서 도시로 온 일군의 젊은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세계>는 극의 사실성을 강조하기위해 배우들이 실명으로 출연하고 있고, 배우들의 실제 경험에 바탕해 시나리오 작업을 하였다. <플랫폼>과 <임소요>의 히로인 자오타오가 이번에도 여주인공을 맡고, 감독과의 9년 전 약속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앙희극학교 출신의 청타이셩이 남주인공으로 출연하고 있다. 지아장커의 페르소나인 <소무>의 왕홍웨이 또한 잊지 않고 얼굴을 내밀 것이다. 공원에서 춤을 추는 자오타오와 공원경비원
[베이징] 지아장커, 극장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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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국제영화제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뒷날 역사책에 2004년 베를린영화제(2월5∼15일)가 그 전환점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배짱 두둑하고 독립심 강한 미국 여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이끄는 공식부문 심사위원단은 확연하게 활동연한이나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는 젊음이나 혁신성에 표를 던졌다. 정평이 난 노장들 가운데 자동으로 수상의 영예를 얻은 이는 없었다. <친근한 이방인들>을 통해 자신이 가장 세련된 프랑스 감독 중 하나로 건재하다는 것을 보인 파트리스 르콩트조차도 못 받았다. 사실 56살의 르콩트는 상복이 없던 노장감독들 가운데 가장 젊은 사람이었다. 영국의 존 부어맨(71), 켄 로치(67), 그리스의 테오 앙겔로풀로스(68), 프랑스의 에릭 로메르(83) 등 공인된 ‘대가’들은 다 빈손으로 돌아갔다. 수년간 이들은 영화제에 나타나기만 하면 상을 보장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앙겔로풀로스는 한번은 칸 관객에게 자신이 실제로 받았던 작은 상보다는 최우수상인 황
[외신기자클럽] 베를린, 혁신성에 표를 던지다 (+영어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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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쉬리>라는 영화를 작품 그 자체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 산업적 공헌도는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쉬리>는 한국영화의 오랜 짐이었던 ‘촌스러움’을 단숨에 극복하였고, 한국 영화인, 영화관객의 뿌리깊은 할리우드 콤플렉스를 해소해주었다. 하나의 전환작이 나온다는 것은 그 이후의 흐름이 그 전환작을 기준으로 완전히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쉬리> 이후 한국영화 관객은 한국영화들이 이전의 촌스러움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쉬리>의 기록을 깨려면 적어도 <쉬리>만큼의 ‘때깔’은 보여주어야 했다.
이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사진)라는 두 영화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상업적으로 볼 때는 <태극기 휘날리며>가 <실미도>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두 영화가 경작함으로써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고 있고, 그 혜택은 상당 부분 후발주자인
[충무로 이슈] 흥행대박 시대, 시장에만 맡겨두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