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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지 않는 바다처럼.” <지금 우리 학교는>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이 박지후와 윤찬영의 성정에 빗대 표현한 말이다.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두 배우에게선 유연하되 쉽게 흔들리지 않는 어떤 다부짐이 느껴졌다. 박지후가 연기한 온조는 <지금 우리 학교는>의 화자로서 변화와 성장이 눈에 띄는 캐릭터고, 윤찬영이 맡은 청산은 좀비들로부터 친구들을 지키는 행동 대장이다. “온조와 청산이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기 때문에 애드리브도 자제했다”는 둘의 답변을 들으며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낭만닥터 김사부> 등에 주로 아역으로 등장한 윤찬영, <벌새>의 윤희로 익숙한 박지후에게 <지금 우리 학교는>이 새로운 도약점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부산행>이다’라는 청산의 대사가 화제가 됐다. 학생들이 좀비에 관해 잘 알고 있다는 세계관이 흥미로웠는데, 실제 두 배우도 좀비물을 잘 보는
'지금 우리 학교는' 박지후,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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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은 종종 축소화된 사회의 인간 실험실처럼 보인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좋든 싫든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관계를 맺고, 특히 한국에서는 획일화된 규칙을 강요하며 자유를 제한한다. 때문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가상의 재난 상황에서 변모하는 인간관계와 심리의 양상을 펼쳐 보이기에 무척 매혹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1월28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지금 우리 학교는>은 신인배우들을 캐스팅해 이 날카로운 지옥도를 시청자들에게 더욱 실감나게 조감한다. 진짜 극중 캐릭터처럼 인지될 수 있는 도화지 같은 매력을 가진 배우들인지라 시리즈의 화제성과 함께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기대케 한다. 가장 반짝이는 청춘의 시간을 <지금 우리 학교는>의 현장과 함께했던 박지후, 윤찬영, 조이현, 로몬, 유인수, 이유미, 임재혁을 만났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배우들을 만나다: 박지후, 윤찬영, 조이현, 로몬, 유인수, 이유미, 임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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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도깨비 깃발>(이하 <해적2>)은 지향점이 확실한 영화다. 화려한 스펙터클과 유머로 무장해 설 연휴 극장가를 찾은 가족 단위 관객에게 최대한의 만족감을 안기는 것이다. 이번 영화의 연출을 맡은 김정훈 감독의 생각도 뚜렷했다. 현실에서 두 아이의 아빠라는 그는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호쾌한 어드벤처물을 떠올렸다. <해적2> 개봉(1월26일)을 이틀 앞둔 시점에 이 프로젝트를 지휘한 감독을 만났다.
- 김남길, 손예진, 유해진이 이끌었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1>)과 배우 라인업부터 배경까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액션과 비주얼, 유머로 승부했던 전편의 태도는 계승한 듯하다. 대중영화로서 <해적2>의 무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준비했나.
= 전편도 액션 활극이었지만 이번 영화는 어드벤처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 이 시리즈가 갖고 있는 유머 코드에 관객이
'해적: 도깨비 깃발' 김정훈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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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2월10일, 촛불 집회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영화 <나의 촛불>이 극장 개봉한다. 이 영화는 6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많은 국민이 서울 광화문을 포함해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들고 국정 농단에 대한 진실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벌였던 평화 시위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손석희 전 JTBC 사장, 박영수·윤석열 전 특별검사,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하태경·김성태·이혜훈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등 정치인뿐만 아니라 친구, 가족, 연인과 함께 추운 겨울날 광화문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사연은 지금도 가슴을 콩닥거리게 한다. 원래는 2년 전 개봉을 시도했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연기한 뒤 공교롭게도 대선 정국에서 영화를 개봉하게 된 김의성, 주진우 공동 감독을 만났다.
- 영화 개봉을
'나의 촛불' 김의성, 주진우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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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장이머우의 영화관으로 가는 길, 필름캔 속의 동화다. 장이머우 감독은 2020년대 필모그래피를 열며 자기 영화의 정수인 1980~90년대 작품들의 토대로 돌아갔다. <귀주 이야기> <인생> <책상 서랍 속의 동화> <집으로 가는 길> 등이 품은 미덕으로 언제든 회귀할 수 있다는 자부심의 발로이면서, 시네마의 역동기 앞에 선 쓸쓸함의 고백인 <원 세컨드>는 적임자가 적시에 소화해낸 과업처럼 알맞고 자연스럽다. 197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 둔황, 고비사막을 건너온 정체불명의 남자 장주성(장역)이 농장 마을에 나타난다. 그가 갈증 속에서 애타게 찾는 오아시스는 오래전 헤어진 딸의 모습이 담긴 뉴스 필름이다. 본편 상영 전 뉴스를 틀어준다는 영화관까지 어렵게 찾아왔건만 흙바닥에 필름통이 쏟아져버려 장주성은 물론이고 마을 주민들 모두 비상이 걸린다. 딸이 등장하는 시간은 겨우 1초. 찰나를 위해 필름을 닦고 말리고 되감기 시
'원 세컨드' 장이머우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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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배틀그라운드>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단편 <100>에서 김낙수 의원(이희준)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을 찾기 위해 <배틀그라운드> 게임에 참가한 국가정보요원 천호영(엄태구)에게 김낙수는 “나 죽인다고 이 게임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나?”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겼다. <방관자들>은 <100>보다 앞선 시점의 이야기로, 김낙수 의원이 태이고시의 거대한 음모를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태이고시에서 일어난 주민 불법 퇴거 사건, 의문의 살인 경기의 전말을 알아내기 위해 그는 청문회에서 정익제 전 부시장(고수)의 유일한 편이 되어준다. 하나의 캐릭터로 <100>과 <방관자들>을 촬영한 배우 이희준은, 두편에 드러난 김낙수의 변화 과정을 계속 염두에 두고 정익제와 김낙수의 관계, 김낙수가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리며 다채롭게 캐릭터를 묘사했다고 말했다.
- 연출
정의를 믿다, '방관자들' 이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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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 고수가 연기한 <방관자들>의 정익제 태이고시 전 부시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태이고시에서 일어난 주민 불법 퇴거 사건, 그리고 불법 살인 경기에 관해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런 그가 마음을 바꾸게 된 건 오랜 친구 김낙수 의원(이희준)이 등장하면서다.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플레이한 적이 있는 배우 고수는 때로 게임 유저의 입장에서, 또 펍지유니버스의 한 조각을 완성한 배우의 입장에서 답변을 이어나갔다. 짧은 호흡의 작품임에도 그가 얼마나 세심하게 작품과 캐릭터를 관찰하며 촬영을 이어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양한 시각으로 정익제의 면면을 그려나간 고수의 이야기를 전한다.
-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해본 적 있나.
= 예전에 해봤다. 승패에 크게 욕심이 없어 게임을 잘 못하는데 그래도 <배틀그라운드>는 재밌게 했다. (웃음)
- <방관자들>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 단편이라 대본이 짧은데도
모든 것을 아는 남자, '방관자들' 고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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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거대한 음모의 진실이 밝혀질 것인가. 고수, 이희준 주연의 <방관자들>은 펍지유니버스의 단편영화 프로젝트의 일부로 지난해 공개된 <그라운드 제로>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그라운드 제로>가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시초가 된 1983년 태이고시의 호산 교도소 폭동 사건을 다뤘다면, <방관자들>은 2002년을 배경으로 태이고시의 주민 불법 퇴거, 불법 살인 경기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국회 청문회 사건을 담았다. 고수는 이 모든 상황의 전말을 알고 있는 태이고시의 전 부시장 정익제를, 이희준은 사건을 파고드는 국회의원 김낙수를 연기한다. 100여명에 이르는 기자와 국회의원이 날을 세운 채 정익제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김낙수는 유일하게 그의 편에 서서 실태를 파악하려 한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정익제와 김낙수처럼 배우 고수와 이희준은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편하게 담소를 이어나갔다. 펍지유니버스의 퍼즐 한 조각을 채운 두 배우
진실을 찾아서: '방관자들' 고수&이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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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추운 겨울, 많은 국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서울 광화문 광장을 포함해 전국 각지에서 촛불 집회가 열렸다.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거리로 나선 사람들은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진실 규명과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배우 김의성과 언론인 주진우가 함께 연출한 <나의 촛불>은 2016년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 집회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영화는 손석희 전 JTBC 사장, 박영수·윤석열 전 특별검사,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탄핵 정국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사람과 촛불 집회에 모였던 시민들의 인터뷰 영상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증언을 퍼즐 삼아 당시 탄핵 정국을 촘촘하게 펼쳐내는데, 여도 야도 시민들의 눈치를 보고 촛불을 두려워하며 떠밀리듯 탄핵에 이르는 과정은 지금 다시 봐도 웬만한 정치 드라마 못지않게 긴장감이 넘친다.
[리뷰] 2016년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그 현장으로 '나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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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이드 빅보이는 유튜버인 친구 레이와 테마파크 ‘와일드랜드’에 입장한다. 이곳은 팔찌만 누르면 원하는 동물로 변신할 수 있는 모험의 공간. 마침 특별 이벤트로 ‘애니멀 체인지’가 열리고, 둘은 우승 상금을 위해 도전장을 내민다. 세명씩 한팀을 이뤄야 하는 대회에서 레이가 더 강한 상대들과 팀을 꾸리기 위해 떠나자, 빅보이는 새로 팀을 정비한다. 변신한 동물들이 갑자기 사나워지는 소동이 일어나며 와일드랜드는 예상치 못한 위험을 맞닥뜨린다. <부니베어> 시리즈를 연출한 정량 감독의 신작 <애니멀 체인지>는 다양한 동물의 모습을 선보이는 어드벤처 애니메이션이다. 인간이 동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상상력에 기반한 모험 서사로, 인간과 동물의 이미지를 겹쳐놓거나 동물적 신체에 기인한 갖가지 특성을 애니메이션의 동력으로 활용한다. 다만 기시감이 드는 작화와 신선하지 못한 이야기는 영화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리뷰] 누구나 원하는 동물로 변신! '애니멀 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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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의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간신히 홀로 출산을 마쳤지만 그녀(로지 데이)는 마약에 중독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아니 어쩌면 자기 자신을 위해 아이를 브로커(해리엇 샌섬 해리스)에게 팔아넘기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그녀는 브로커의 거처를 찾아가는데, 그러다 우연히 브로커의 폭력적인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 판타스틱 레드 부문 상영작이기도 한 <더 마더>는, 이 부문에서 관객이 기대하는 고어/스릴러 장르의 재미를 상당 부분 충족시켜준다. 특별한 점은 영화에 인물의 대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러티브가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음악 덕분이다. 영국의 천재 포크 뮤지션 닉 드레이크의 <River Man>이 스페인 알라바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지는 장면만큼은 무척 인상적이다.
[리뷰] 대사 없는 엄마의 내러티브 '더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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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2020>은 재야운동가로서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문익환 목사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1994년 1월18일, 문익환 목사의 영결식으로 시작한 영화는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저마다 기억하는 문익환에 관해 회고한다. 아내 고 박용길 여사, 아들인 배우 문성근을 비롯해 주요 인사들이 등장해 문익환이라는 위인을 직접적으로 호명하고 또 소환한다.
북간도에서 태어난 문익환은 윤동주, 송몽규와 함께 명동학교를 다녔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정도상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부이사장의 말처럼 “두 사람에 대한 끝없는 부채감과 두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간직한 문 목사는 자신의 여생이 그들의 몫인 듯 열사와 약자들의 삶으로 끊임없이 다가갔다.
<늦봄2020>은 현재적 의미를 도출하기 위한 장치로서 그의 육성 자료로 남은 상고이유서를 이따금 보이스 오버로 삽입한다. 그의 호(號)와 영화가 제작된 연도가 합쳐진
[리뷰] 재야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삶 '늦봄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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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사(시라이시 세이)는 아리마(우키쇼 히다카)를 볼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한다. 고등학교 1학년 3학기, 전학 온 아리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츠카사는 아리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혼자 품은 마음이 힘들어 체념하려 할 때마다 아리마는 불필요한 친절로 츠카사를 흔들어놓는다. 3학년이 되자 츠카사는 용기를 내 아리마에게 고백하지만 보기 좋게 차인다. 실망도 잠시, 곱고 건강한 성정의 츠카사는 앞으로도 쭉 좋아하겠다고 아리마에게 선언한다. 그러나 아리마의 전 여자친구 마유가 등장하고, 그녀의 사촌 오빠 하세베에게 기습키스를 당하며 츠카사의 다짐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초반 츠카사의 짝사랑하는 마음을 탐구하듯 들여다본다. 이야기가 나아가면서 짝사랑은 여러 인물 사이로 전염병처럼 퍼져 츠카사의 감정보다 짝사랑이라는 마음 작용 자체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 흐름은 아리마마저 츠카사를 짝사랑하는 사태로까지 번지며 정점에 다다른다. 어지러운 마음의 화살표들과 화사한 화면은 청소년
[리뷰] 전지적 짝사랑 시점 '가슴이 떨리는 건 너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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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하는 하루를 반복하는 한 남자가 있다. 생기 없는 화분 앞에 앉아 소주 한병을 비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인(강길우)은 어떤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사를 치를 밧줄까지 구비해놓은 그가 매일 같은 하루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지나친 음주로 인한 기억상실증 때문이다. 모인은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사는 한 여자 화림(박가영)과 하루를 보내게 된다. 술 없이 맨정신으로 일상을 버티지 못하는 것은 화림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연인으로 인해 극심한 불안에 빠져 있는 화림은 아침이 되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인에게 매번 정체를 바꿔가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일상을 회복하는 걸까 싶을 때쯤 상황은 악화되고, 둘은 이제는 정말로 생을 마감하기 위해 태백으로 향한다.
김지석 감독의 첫 장편영화 <온 세상이 하얗다>는 죽음을 다짐한 두 사람의 로드 무비, 혹은 유서 같은 영화다. 영화 중간 흘러나오는 모인의 내레이션이
[리뷰] 죽음을 준비하는 하루를 반복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온 세상이 하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