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루야오(류이호)는 잠에서 깨 아침을 맞으면 모든 것이 새롭다. 그는 몇해 전 뇌종양 수술을 받으며 해마를 제거해 수술 이후 기억이 모두 리셋되는 순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주치의는 루야오의 회복을 위해 잠재의식을 기억으로 전환하는 실험에 참여하길 권한다. 루야오는 실험에 참가하며 심리학 박사과정 재학 중인 쉬싱웨(구리나자)를 만난다. 쉬싱웨는 상담가의 직업윤리를 잊은 채 어차피 기억을 못할 루야오에게 이런저런 연애 고민을 털어놓는다. 실험 2회차, 루야오는 우연히 쉬싱웨의 집에 가고 쉬싱웨가 시 창작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마침 인기 가수 친메이쑤의 신곡을 작곡하며 재기를 준비 중이던 루야오는 쉬싱웨에게 작사를 의뢰한다. 다음날 곡 작업을 이유로 다시 만난 루야오와 쉬싱웨는 하루를 같이 보내며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매일 기억을 잃는 남자, 그런 그를 사랑하는 한 여자, 음악과 시.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설정에 순애보와 낭만이 가득한
[리뷰] '너와 사랑한 시간', 홍콩발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
압구정 토박이 강대국(마동석)은 넘치는 아이디어와 능청스러운 말발로 압구정 일대를 누빈다. 그러던 어느 날 대국은 한때 잘나갔지만 누명을 쓰고 면허가 정지된 성형외과 의사 지우(정경호)를 만나 일생일대의 사업 수완을 발휘한다. 그렇게 자신이 아는 압구정의 인맥을 모아 압구정 최고의 성형외과를 만들겠다는 대국의 계획은 얼렁뚱땅 진행된다. 병원은 대박나 손님들로 가득하지만, 성공을 맛보자마자 두 사람은 동상이몽에 잠겨 충돌하기 시작한다.
괜히 ‘MCU’(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라고 하는 게 아니다. 이제 마동석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유사한 캐릭터가 서로 다른 영화를 관통하여 누비는 통합 장르가 되어버렸다. <압꾸정>도 마찬가지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이 영화는 단독 작품이라기보다는 MCU의 에피소드 중 하나처럼 다가온다. 문제는 이번 에피소드가 너무 익숙하고 빤하다는 거다.
2007년 압구정동 성형외과를 무대로 K뷰티의 세계화를 꿈꾸는 이 소동극은 시끌벅적하지만 정작
[리뷰] '압꾸정', 입으로 때리는 마블리 자기복제
-
크리스마스 아침, 월우(박진영)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온몸에 폭행 흔적이 있지만 경찰도 사회복지사도 월우의 죽음을 단순 사고로 처리한다. 쌍둥이 형 일우(박진영)는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아 똑같이 되갚아주기 위해 복수에 나선다. 집요한 추적 끝에 일우가 용의자라고 확신하는 문자훈(송건희) 일당이 소년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일우는 제 발로 소년원에 들어간다. 일우에게는 어떤 작전도, 계략도 없다. 일우가 소년원에서 문자훈 일당을 만나자마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맨몸으로 달려들었다가 맞고 끌려 나가는 장면에서 관객은 일우가 가진 건 오직 처절한 분노와 복수심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일우는 목숨을 걸고 온몸을 내던지지만, 소년원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작동하는 힘과 자본의 논리에 또다시 당할 수밖에 없다.
소년원은 폭력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보호해야 하는 세계다. 일우는 이곳에서 힘없는 자는 복수가 아니라 용서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폭력의 강도를 높일수록 더 센 반격이 되돌아온다는
[리뷰] '크리스마스 캐럴', 서럽고 불편하게 울리는
-
이미 다른 글에서 한번 언급한 적 있지만 2022년이 가기 전에 꼭 한번 되짚어보고 싶은 영화로 <소일렌트 그린>(1973)이 있다. 영화는 미래 세계가 서서히 비참한 사회로 변해 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주인공이 이런저런 모험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결말에 가까워지면 ‘소일렌트 그린’이라는, 새로 나온 식품의 정체를 밝히려 한다는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한동안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소일렌트 그린의 성분이 뭔지 밝히며 외치는 장면이 인상적인 SF 명대사로 자주 언급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 비슷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온 탓인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과거만큼 무겁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영화의 진짜 구경거리가 뭔지 보다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이 영화는 망해 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괴롭게 사는지를 하나하나 보여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영화 속의 세상은 핵전쟁이나 소행성 충돌 같은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망해 가는
[곽재식의 오늘은 SF] 1973년에 상상한 2022년
-
-
한 아이가 있다. 아이는 포로로 붙잡힌다. 포로가 된 아이는 살인을 저지른 열명의 삼촌에게 둘러싸이는데, 이들을 일컬어 빅토르 위고는 ‘그의 아버지의 끔찍한 형제들’이라 칭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그 상대를 ‘끔찍한 아버지’라고 불렀다. 아무튼 포로로 붙잡힌 아이의 이야기는 ‘구세주’를 만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얻는다. 아이는 삼촌으로부터 도망치고, 그 과정에서 두려움을 경험한다. 그리고 마침내 ‘말하는 동물’과 만나게 된다. 이 신비로운 동물과의 조우 덕택에 아이는 자신이 태어났던 낙원으로 되돌아간다. 이상의 내용이 바로 위고의 서사시 <세기의 전설>에 등장하는 ‘삼촌과 대립하는 아이’ 이야기의 원형이다. 2018년 개봉했던 <블랙 팬서>에는 마치 <햄릿>과도 흡사한 아버지의 형제 이야기가 등장한다. 킬몽거(마이클 B. 조던) 캐릭터를 통해서다. 그리고 속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이하 <와칸다 포에버>)에서 다시, 킬몽
[비평]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세이렌의 노래
-
우주 비행사를 꿈꾸는 흑인 소년 죠니(제일린 웹)는 침대에 누워 거동조차 힘든 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다. 지금은 사립학교에 다니는 친구 폴(뱅크스 레페타)이 갑자기 플로리다로 떠나자는 제안을 던졌기 때문이다. 죠니에겐 대안이 없다. 보호자인 할머니는 자신을 돌봐줄 능력이 없고 이대로면 사회복지시설에 끌려갈 처지다. 폴의 집 뒷마당에 지어진 아지트에서 잠시 비바람을 피하고 있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른다. 폴은 함께 떠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학교에 몰래 들어가 컴퓨터를 훔치자고 유혹한다.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을 받고 제 발로 뛰쳐나올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게 범죄라는 걸 안다. 그러나 다시 말하건대 죠니는 대안이 없다. 세상의 그릇된 것들로부터 지켜주던 우산 같은 외할아버지(앤서니 홉킨스)가 돌아가셨다 해도 여전히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폴과는 달리.
죠니의 할머니가 나오는 장면은 이상하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폴의 시점에서 벗어난 기이한 개입이다
[비평] ‘아마겟돈 타임’, 유령과 함께하는 시간
-
<만인의 연인>의 유진은 자기 연민보다는 욕망에 충실하다. 애인의 아이를 임신한 엄마가 집을 떠난 후돈을 벌기 위해 노래방 전단지를 돌리고, 손님이 남기고 간 피자를 은박지에 포장해가는 곤궁한 상황에 서도 이성과의 성애적 욕구에 눈을 뜬다. 담대한 이야기를 유난하지 않은 표정으로 이끌어간 신예 황보 운은 <만인의 연인>이 사실상 데뷔작이다. “당시 회사가 ‘주인공은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캐릭터 중심으로 오디션을 준비하라’고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을수록 내가 하고 싶은 건 유진밖에 없었다.”
5년 동안 썼던 일기장을 들고 가 과거 연애 경험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주인공 역할로만 오디션을 보고, 한달 넘게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자 새벽 5시에 PD에게 결과를 묻는 문자를 보내는 등 거침없는 당돌함을 눈여겨본 한인미 감독은 캐스팅 모험을 감행했다. 황보운은 기회를 운이 아닌 노력의 발판 으로 받아들이는 영민한 초심자다. 그리고 매일 영화 사무실을
[WHO ARE YOU] '만인의 연인' 황보운
-
지난해 <술꾼도시여자들> 이후 이선빈은 한선화, 정은지와 게임 광고를 찍고 새로 출시된 비빔라면의 새 모델이 됐다.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칸 현지 레드 카펫에 서기도 했다. 흥행과 화제성을 가늠하는 몇몇 지표 외에도 <술꾼도시여자들>은 데뷔 초부터 줄곧 도도하고 빈틈없는 이미지로 각인되어왔던 이선빈이 낚아챈 적시타다. 개그맨을 꿈꿨지만 재능이 없어 대신 예능 프로그램 방송 작가로 커리어를 쌓게 된 안소희는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의 감정 노동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평범한 직장인이 가장 이입할 만한 인물이다. 만취 상태로 대기업 회장에게 1분16초 동안 속사포 욕을 날리고 장례식장에서 무너지는 감정을 연기하는 등 배우가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신도 많다. 캐릭터 스펙트럼 면에서나 연기 방식에 있어서나 담대한 확장을 가능케 했던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주변으로부터 “전보다 자유로워졌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12월9일 티빙에서 공개되는 <술꾼도시여자들2&g
내 안의 평범함을 꺼내어: ‘술꾼도시여자들2’ 이선빈
-
2014년 1월,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촬영 현장에서 배우 유해진은 아주 잠깐 잡히는 장면에서도 혼신의 연기를 보여줬다. ‘산으로 간 해적’을 연기했던 그는 2022년 <올빼미>에서 한번도 상상한 적 없는 왕의 모습으로 관객을 찾았다. 갈수록 깊고 단단해지는 그의 연기를 보며 오랜 시간 잘 숙성된 와인의 맛을 상상하게 된다.
[ARCHIVE] 왕이 된 남자
-
Apple TV+ 오리지널 시리즈 <슬로 호시스>가 다시 돌아온다. 이번 시즌2는 믹 헤론의 두 번째 원작 소설인 <데드 라이온스>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영국 정보 담당기관인 MI5에서 좌천된 팀원으로 구성된 ‘슬라우 하우스’ 일부가 영국을 방문하는 러시아 재벌의 보안을 위해 차출된다. 같은 시간, 냉전시대에 활동한 영국 스파이 시체가 버스에서 발견된다. 사인은 심장마비. 하지만 슬라우 하우스의 수장 잭슨 램(게리 올드먼)은 그가 살해됐다고 믿는다. 12월2일 시즌2 공개를 앞두고 게리 올드먼, 잭 로던, 사스키아 리브스와 함께 영상 인터뷰를 가졌다.
-이번 <슬로 호시스> 시즌2는 시즌1과 어떻게 다른가.
잭 로던 시즌1과 시즌2를 연이어 촬영했다. 시즌2는 ‘서머 스릴러’에 가깝다. 그리고 시즌1에 비해 훨씬 더 위험한 사건을 수사한다. 잔인한 행위를 일삼는 집단을 상대하면서 엄청난 사건에 휘말린다. 인물들의 전사나 희망, 욕망 등도 알 수
[현지보고] Apple TV+ ‘슬로 호시스’ 시즌2, 배우 게리 올드먼, 잭 로던, 사스키아 리브스 인터뷰
-
“아이돌 드라마의 대모.” 2001년, 동명의 만화를 실사화한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큰 인기를 끌며 일본에 역수출됐다. 이는 오랜 시간 대만 콘텐츠 업계에서 제작자로 활동해온 차이즈핑의 활약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밖에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청춘은 너의 것> 등을 제작하며 차이즈핑은 대만 콘텐츠 업계에서 수많은 역사를 써왔다. 제작자로 일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예리한 감각으로 좋은 작품과 인재를 발굴 중인 차이즈핑 스타리츠 엔터테인먼트 CEO를 만났다.
-대만 콘텐츠가 지닌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꽃보다 남자> 때부터 해외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해외 관계자들로부터 꾸준히 들은 칭찬은, 대만은 청춘 로맨스물이 강점이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같은 청춘 로맨스 작
[인터뷰] ‘꽃보다 남자’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제작한 차이즈핑 스타리츠 엔터테인먼트 CEO, “OTT 시대엔 더 자유롭게, 더 폭넓게 상상 가능하다”
-
BL과 LGBTQ+는 현재 대만에서 가장 주목받는 주제 중 하나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작품을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고, 그렇게 제작된 대만의 BL, LGBTQ+ 콘텐츠가 해외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것이다.
이에 TCCF는 BL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생산, 유통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대담을 진행했다. 11월9일 열린 해당 행사에서는 송가림 영상콘텐츠부문 총담당, 김경은 라쿠텐 그룹 스트리밍부문 아시아 콘텐츠 담당, 채행진 라인TV 운영자, ‘WBL 시리즈‘의 채비교 총괄 PD, 강서지 감독, 판심혜 요이스 제작사 총괄 PD, 임폐유 창이부레 작업실 담당자가 참석해 대화를 나눴다.
대만의 BL 콘텐츠는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을까. 김경은 담당은 “일본 라쿠텐TV 시청자 중 BL 콘텐츠 시청자는 2년 전에 비해 20배 늘었다”라며 대만의 BL 작품이 다른 국가에 비해 팬층이 두텁다고 말했다. “BL 콘텐츠 소비자들이 대체로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적
[기획] 대만문화콘텐츠페스티벌④, 주목받는 BL, LGBTQ+ 콘텐츠: 원 소스 멀티 유즈의 가능성
-
자신의 작품을 완성해 보다 많은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 TCCF 피칭에 참석한 모든 대만 창작자들의 목표일 것이다. 11월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대만의 금마장 FPP(Film Project Promotion)가 선택한 TV시리즈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시리즈물, 장편영화의 잠재력을 살필 수 있는 TCCF 피칭이 진행됐다. 발표자들은 주어진 7분 동안 작품 줄거리와 예산, 촬영 스케줄 등을 소개하고 이후에도 투자자들과 열띤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이를 통해 창작자들은 국제적 협업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대만과 평양의 유도 선수가 스포츠를 통해 성장하고, 서로 감정을 쌓는 과정을 그릴 드라마 <주도카>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시리즈 마니아 페스티벌’ 대표단에 의해 선택돼 내년 프랑스에서 선보이게 됐다. 좋은 소식을 접한 <주도카>의 리위청, 양지에 감독에게 대화를 청했다.
-1998년 대만의 남자 유도 선수와 북한의 여자 유도 선수가 실제로 경기장에서 만
[기획] 대만문화콘텐츠페스티벌③, “OTT 통해 전세계 관객과 만나고 싶다”
-
유디트 샬란스키는 미래가 아닌 과거가 진정한 가능성의 공간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이 탐색하는 영역은 자연스럽게 과거가 된다. 과거를 탐색하는 도구는 읽고 쓰기. 쓰는 행위를 통해 상실을 복구할 수 없다 해도,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은 “잊힌 것을 불러내고, 침묵하는 것을 말하게 하고, 상실을 애도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불려나오는 잃어버린 것들은 장소부터 동물까지 다양하다.
쿡 제도의 남쪽에 있는 투아나키라고 불렸던 산호섬(지도에서 지워짐),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들과 싸워야 했던 카스피해 호랑이(멸종), 언급된 적이 있는 케리케의 일각수(유니콘의 뼈대가 발견되었다는 기록을 믿을 수 있다면), 17세기 초중반에 지어진 빌라 사케티(허물어지다가 폐허가 된 뒤 제거), 무르나우의 첫 영화 <푸른 옷을 입은 소년>(소실 추정), 사포의 시가들(파피루스 해독을 통해 오히려 발견되는 중), 카스파르 다비트 프
씨네21 추천도서 -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