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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수지)가 그토록 훔치고 싶어 하는 현주의 삶은 타인의 기분을 살필 필요도, 가계 사정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부유한 환경에서 그늘 없이 자라온 만큼 누군가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긴다. 언뜻 아무런 문제 없는 화려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현주의 말과 행동에서 정은채는 숨겨진 외로움을 읽었다.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부터 드라마 <파친코>에 이르기까지, 캐릭터의 이면을 살피는 정은채의 눈은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허구에만 머물지 않고 생동감을 얻을 수 있게 만들었다.
- <안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 여성 서사라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보고 자연스럽게 이끌렸다. 마냥 무겁지 않은 전개 방식도 신선했다. 장면 곳곳에 인간의 솔직한 본능이 묻어 있어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다양한 색깔이 혼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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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정은채, "연기가 나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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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많다. 모든 이의 사랑을 받으며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유미는 어느 순간 자신이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한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유미 앞에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을 지닌 현주(정은채)가 나타난다. 유미는 결국 현주의 삶을 훔쳐 거짓된 삶을 살기 시작한다. 핏기 없는 얼굴의 유미로, 잘 가공된 안나(현주의 영어 이름.-편집자)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수지는 매 순간 초연하다. 이 평온함은 아마도 “타인을 속이고 결국 자신까지 속이는 유미”의 그릇된 확신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안나>에서 수지는 전작보다 훨씬 진중한 에너지로 스스로를 고르게 다듬는다. 유미와 안나, 상반된 둘을 완성한 그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스타트업> 이후 오랜만의 드라마 출연이다. <안나>의 어떤 점 때문에 출연을 결심했나.
= 우선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었다.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유미가 이다음엔 또 어떤 선택을 할지 조마조마
'안나' 수지, "할 수 있다는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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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나를 두려워했으면 좋겠어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가진 게 많았던 유미(수지)는 항상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왔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대학 입시에서도 좋지 못한 결과를 얻는다.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에 대학생 행세를 하던 유미는 거짓에 거짓을 더하며 결국 자신까지 속이기에 이른다. 그런 유미 앞에 학벌과 재력, 모든 것을 가진 마레 소품숍 주인 현주(정은채)가 나타난다. 유미가 현주의 영어 이름 ‘안나’를 훔쳐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다.
6월24일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되는 <안나>는 <싱글라이더>의 이주영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현주와 그의 삶을 동경하는 안나, 안나와 결혼하는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 지훈(김준한)은 각자의 욕망을 동력 삼아 움직인다. 이들이 형성하는 묘한 긴장감은 우리에게 어떤 결말을 가져다줄까. 작품이 공개되기
거짓과 욕망의 블랙홀: '안나' 수지 / 정은채 / 김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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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일곱 조각>은 일곱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 연작소설집이고 모두 같은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소설마다 조금씩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 동일 인물이 맞는지 헷갈린다. 은하, 민주, 성지, 세 여성의 이야기는 다음 소설마다 새로 시작되면서 혼동을 주고 그것이 이 소설집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앞 장이 성지의 이야기로 끝났다면, 다음 장은 친구 민주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주인공들이 평행 우주 속에서 다른 삶을 살면서, 새로운 페이즈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삶을 살아도 내 주변의 환경과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은지라 저마다 한계와 좌절은 존재한다. 은하, 민주, 성지가 아무리 다른 선택을 해봤자 한국 사회에 사는 30대 후반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에서 양성애자인 민주는 혼자 제주도에서 칵테일 바를 운영하다가 또 다음 소설 속에선 쌍둥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니기도 한다. 그 어느 쪽의 민주라고 해서 완벽하게 행복하진 않다.
은모든 작
씨네21 추천도서 - <우주의 일곱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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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1960년대와 1970년대 편이 출간된 <한국 팝의 고고학>은 17년이 지난 2022년, 1980년대와 1990년대 편이 나오면서 시리즈의 마침표를 찍었다. ‘고고학’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리즈는 유물과 유적을 찾아내듯이 20세기 중반부터 세기가 끝날 때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세세하게 추적하고 음반과 기사와 관련 사진들을 그러모았으며 그때그때 놓칠 수 없는 인물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특히 한국이라는 공간의 현대사적 특성은, 저자들이 정한 ‘한국 팝’의 개념과 잘 어우러진다. ‘한국 팝’이란 대중가요 전체가 아니라, ‘팝’이 ‘한국’과 만나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그렇게 탄생한 음악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개념이다. 한국전쟁 이후 대규모로 주둔한 미군은 연예공연이 필요했으니 1950년대 후반부터 ‘미8군 무대’ 출신의 신예 가수들이 현대적인 대중음악을 만들어나갔고, 이후 1960년대를 수놓은 신중현과 펄시스터즈 같은 이름들이 등장한 것이
씨네21 추천도서 -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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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홀레는 다시 술에 빠졌다. 일요일 한낮, 술기운을 떨치지 못하고 간신히 눈을 뜬 해리 홀레는 손에 핏자국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해리 홀레 시리즈’ 12번째 소설인 <칼>은, 전편 <목마름>에서 해리 홀레와 라켈이 결혼한 이후 모종의 문제가 있었음을 분명히 암시하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별거 중이며, 해리는 다른 여자들과 마구잡이로 만나고 있는데, 무엇보다 다시 술을 진탕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해리가 해결한 사건의 범인의 아버지가 용의자인 범죄가 다시 시작되고, 같은 시기에 해리는 믿고 싶지 않은 비보를 전해듣는다.
“라켈이… 발견됐어요.”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12번째 소설 <칼>에서 라켈이 사망했음을 알리는 이 문장이 등장하는 순간, ‘올 게 왔다’는 근심과 슬픔에 잠기는 독자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칼>은 (2022년 6월 기준) 후속작이 아직 없는 해리 홀레 시
씨네21 추천도서 -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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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SNS며 인터넷 커뮤니티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K장녀 이야기의 인기를 옆에서 씁쓸하게 지켜보고 있었을 차녀들을 위한 책이 드디어 나왔다. “부모도 첫째도 자기가 가정의 주인공인 줄” 아는 가족 내부에서, 언니가 물려주는 옷을 입고 언니가 보는 책을 곁눈질하면서 입 다물고 가족 내 관계를 관찰하는 역할을 맡게 된 둘째 딸에게 마이크를 건네주는 책이다. 다들 알다시피 한국의 가족 문화는 공고하고, 구성원마다 자리가 배정된다. 첫째는 첫째라서 집안 식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중압감과 책임감을 느낀다면, 둘째는 무명 배우처럼 아예 없는 사람 대우를 받는다. “나만 없어, 돌 사진.” “아람단이나 걸스카우트는 언니만 시켜줬던 사람 접어.” “내가 입던 건 늘 헌 거, 내 마음은 늘 헝거(hunger)!” 둘째에게 돌 사진만 없을까, 엄마는 첫째 입맛은 기억해도 둘째 입맛은 절대 머릿속에 입력하지 않고 아빠는 자식들이 싸울 때 유독 둘째가 첫째 위에 올라타면 감히 서열을 어겼다고 발
씨네21 추천도서 - <차녀 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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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한 폐 안 끼치고 죽는 방법 없을까?’ 새벽 3시 마포대교 위에 선 29살의 ‘나’ . 지나가던 취객이 말리기는커녕 돌아보지도 않아서 ‘나 혹시 투명한가?’ 하는 서글픈 마음에 빠져든다. 폐 끼치지 않고 죽는 법을 궁리하던, 300만원을 갚을 방법이 없어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나’에게 눈부시게 하얀 여자가 말을 건다. “당신은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에요.”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을 쓴 박서련의 신작 장편소설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는 마법소녀가 존재하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후 위기처럼 거대한 재앙에 맞서기 위해 마법소녀들은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을 만들어 힘을 합친다. ‘나’를 찾아온 마법소녀 아로아의 설명에 따르면 ‘나’는 ‘시간의 마법소녀’라는, 중요한 재능을 각성할 예정이다. 참고로 시간의 마법소녀는 사상 최강의 마법소녀가 되리라고 예상된다.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는 절박한 삶의 장면에서부터 출발한다. 최저임
씨네21 추천도서 -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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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은퇴합니다_박서련 지음
차녀 힙합_이진송 지음
칼_요 네스뵈 지음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_신현준, 최지선, 김학선 지음
우주의 일곱 조각_은모든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6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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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지망생들이 보내오는 다이렉트 메시지 내용 중 상당수가 ‘랩을 어떻게 시작하면 되나요?’다. 대부분 10대 청소년들이 품는 귀여운 생각이다. 실제로 데모 음악을 들어달라는 메시지보다 많다. 차라리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나요?’라면 답변이 조금 수월할 것 같지만, 어쨌든 저런 게으른 고민에 대한 답은 언제나 ‘나이키’의 슬로건이 대신해준다. “그냥 하세요.”
가끔은 이런 질문도 받는다. ‘제가 곧 서른에 취업 준비생인데 이제라도 랩을 시작해도 될까요?’ 라든지 ‘30대 직장인입니다. 취미로 랩을 해보고 싶은데 늦지 않았을까요?’ 같은 고민인데, 이럴 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동해온다. 어린 친구들의 고민보다 무게가 조금 더 진지하게 와닿는 건, 어른의 삶에서 새로운 도전이 얼마나 난이도 있는 각오인지를 나 또한 공감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하면 되죠, 뭐’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뜨뜻한 진심을 담아 조언해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최근 공연장을 찾아온
[딥플로우의 딥포커스] 도전하는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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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너무나 발전한 나머지 반란을 일으켜 사람들을 지배한다는 이야기는 지루하다. 이런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이 나왔다. 그나마 발상이 자연스럽다면, 많이 보던 이야기라도 그러려니 할 텐데 이런 소재는 밑바탕부터가 답답한 이야기다. 왜 인공지능이 할 일 없이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겠는가? 사람들 중에 굳이 남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까닭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본능을 갖고 살다 보니, 남이 굽신거리면서 좋은 말로 떠받들여주면 우쭐해하는 습성에 도취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판단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그런 데 관심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짐작하는 것은 따분하다.
나는 초등학생 때 돈이 많은 부자들은 집 창고에 새우깡을 500개 정도 쌓아놓고 언제든지 마음대로 먹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인공지능이 뛰어난 능력으로 고작 사람이라는 종족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할 거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 그 정도 상상력인 것 같다. 혹시 길 가다가 바닥을 돌
[곽재식의 오늘은 SF] 담백한 '위험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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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캐릭터라는 단어가 유행했었다. 어느 정도는 방송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현실의 인물이 등장하는 리얼리티 쇼를 한국에서는 예능이라고 부른다. 물론 인물만 실제로 나오지, 실제 자신과 같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잘 아는 사람이라도 소위 ‘캐릭터’가 형성되지 않으면 인기가 없다. 방송의 성공은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의 상관관계, ‘케미’에 의해서 결정된다. 예능을 지향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성공도 일정 정도는 캐릭터 플레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봉주나 김어준이나, 방송의 모습과 개인의 모습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캐릭터 플레이로는 박근혜와 최순실 조합이 환상 아니 ‘환장’의 조합이 되었다. 오방색까지 배경으로 끼어들며, 추운 겨울날 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광화문으로 나오게 하였다. 가슴이 뛰는 감동과는 정반대의 가슴 터지는 속터짐이 발생했다.
결혼하고 9년 만에 큰아이가 태어나면서 뒤늦게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만화영화도 같이 보게 되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얘기의 재미, 진짜 재밌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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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할리우드 톱스타 중 한명인 톰 크루즈. 자신이 받는 애정만큼 팬들에게 되돌려주는 톰 아저씨의 모습은 방한 때마다 큰 이슈였다.6월19일, <탑건: 매버릭> 레드 카펫 행사에서도 다시 한번 친절한 톰 아저씨를 기대한다. 사진은 2011년 12월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레드 카펫 현장.
[ARCHIVE] 친절한 톰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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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본격소설> / 미즈무라 미나에
장대한 서사도 흥미롭지만 인물의 감정선까지 섬세하게 담아낸 문장을 읽다 보면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유포리아> / <HBO>
이상하게 또 보게 되는 ‘중독적인' 매운맛이 있다.
유튜브 채널 <김나영의 nofilter TV>
건강한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자신을 잘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좋은 자극을 받는다. 왠지 모를 친근감에 만나면 나도 모르게 나영 ‘언니’라고 부를 것 같다.
<석세션> / <HBO>
유약한 인간이 어떻게 잔인해지는지, 괴물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게 만든다.
<아메리칸 허슬>
사기극과 사랑 이야기의 접점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나의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LIST] 영화감독 김진화의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