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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조건들을 떠올려보자. 빛, 어둠, 시간 약속, 정해진 자리, 스크린, 스크린의 가장자리, 덜 채워진 객석, 집중하는 이의 옆얼굴 혹은 뒤통수, 비상구 사인이 내뿜는 희미한 빛….
이렇게 극장의 조건들을 아주 작은 단위까지 고심하다 보면 기이하게도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경험이 떠오른다. 한 전시장에서의 기억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긴 긴 어둠이 진입을 막아선다. 비틀거리면서 한참 걸어가다 보면 스크린과 몇개의 빈백이 놓인 구간이 뒤늦게 나타난다. 2019년 11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된 김희천의 <탱크>를 보기 위해 통과해야 했던 걸음의 경로다. 사실상 이렇게 짙고 긴 어둠을 관람의 조건으로 삼는 것은 극장을 드나드는 이들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다. 극장에서 우리는 시간을 약속하고 어둠을 합의한다. 정해진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이미 어둠은 극장에 도착해버리고, 관객은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전시장과
[기획] 미술관과 극장, 교환의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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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상영’되고 어떤 영화는 ‘전시’된다. 어떤 것은 필름이 되고 어떤 것은 비디오가 된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요나스 메카스를 누군가는 영화의 거장이라 하고 누군가는 미디어 아티스트라 칭한다. 반대로 어떤 이미지는 그림(drawing)이 되고 어떤 이미지는 픽처(moving picture)가 되어 움직인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디지털 아트의 다양한 종류를 아우르기 어려워지면서 움직이는 이미지인 영화의 경계는 더욱 복잡다단해졌다. 극장과 미술관의 자리를 오가는 동안 그중 ‘영화’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번 기획에서는 김예솔비 영화평론가가 미술관과 극장의 구분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들에 주목하며 궁극적으로는 지금 극장에 필요한 영화들은 무엇인가 질문했다. 이어 홍진훤 감독이 전시용으로 제작했으나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 실험 다큐멘터리 <멜팅 아이스크림>(2021)도 이 기회에 자세히 들여다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12월18일까지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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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기씨가 데뷔 이후로 음원 수익을 한푼도 정산받지 못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톱스타로 오랜 시간 성과를 내왔음에도 응당 받아야 할 인세를 받지 못한 것도 당황스러운데, 그것이 자신이 부족해서라고 알고 있었다는 점이 너무 안타까웠다. 하물며 그 정도 되는 사람도 이런 일을 겪는데 실제로 수익이 크게 발생하지 않은 경우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인디음악은 원래 돈이 안되니까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애초에 제대로 정산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액수를 떠나 스스로에 대한 판단도 흐려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비교적 내 창작물에 대한 대가를 정당하게 받아온 축에 속한다. 물론 더 적게 평가받고 인정받지 못한 적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작업물을 직접 제작하고 관리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작업 중 일부에 대해서는 특별한 계약이나 합의가 없었던 적도 있고 그 행방을 모르는 것도 있다. 그러나 본격적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인세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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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한국에서 사이버펑크 전문(?) 작가로 활동 중이어서인지 가끔 사이버펑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SF의 정의가 무엇이냐는 질문만큼이나 답하기 어려운 주제인데, 내가 주로 답변하는 방식은 이렇다. 사이버펑크(Cyberpunk)는 ‘사이버펑크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활극이다. 혹은 가까운 미래의 암울한 첨단 기술이 잔뜩 등장하는 ‘펑크한 장르’다. 하하, 물은 축축하고 고담시는 고담에 있다.
모호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부디 이해해주시길. 사이버펑크를 접한 적 없는 사람에게 사이버펑크를 설명하는 건 마치 코끼리를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코끼리를 설명하는 일과 같다는 말이다. 사이버펑크에 대해 지금 당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그냥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를 읽으시길. 나는 가끔 이 서브 장르가 그저 <뉴로맨서>라는 왕릉의 부장품을 도굴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미학적으로는 <블레이드 러너>와
[이경희의 오늘은 SF] 망한 사이버펑크 세계에서 투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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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를 생각하면 올해 두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하나는 <실종>이다. 부녀는 탁구공 없이 탁구를 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리는 들린다. 부녀는 랠리를 이어가고 카메라는 네트를 줌인한다. 부재를 느끼게 하는 이 기묘한 영화의 마지막 숏은 네트를 통해 윤리의 경계를 형상화한다. 다른 하나는 <창밖은 겨울>이다. 선배 버스 기사들이 휴식 시간에 탁구를 친다. 심판을 보는 석우(곽민규)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비춘다.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는 그의 얼굴 위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한다. 이내 석우는 선배들에게 심판을 제대로 안 보냐며 꾸중을 듣는다. 경계를 가르는 네트에 위치한 석우. 그는 시간의 경계에 멈춰 있다. 과거와 현재, 그 사이에서 석우는 잠시 길을 잃었다.
MP3가 촉발시킨 감정들
<창밖은 겨울>엔 두개의 인력이 석우에게 작용한다. 하나는 과거로, 다른 하나는 현재로 그를 이끈다. 이러한 움직임은 터미널에서 본 MP3로부터 시작된다. 석우는 영화
[비평] ‘창밖은 겨울’,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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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영화감독. 영화 <비트> <태양은 없다> <감기> <아수라> 등 연출
“섬뜩한 꼰대 김준평을 낳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강퍅했던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
한준희 영화감독. 영화 <차이나타운> <뺑반>, 넷플릭스 드라마 <D.P.> 연출
“지금도 한번씩 <피와 뼈>를 찾아 볼 때가 있다. 내가 쓰고 찍는 이야기들은 그런 들끓는 에너지가 있는가. 작품도, 삶도 하드보일드 그 자체였던, 영화보다 더 영화같이 살다 홀연히 사라진 감독.”
기타노 다케시 영화감독이자 배우.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 출연
“같은 세대의 영화 동료가 잇따라 죽어버려 낙담하고 있습니다. 최양일 감독과 영화를 만들면서 싸우기도 했고 술도 마시고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다 좋은 추억이에요.”
기시타니 고로 영화배우.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출연
“연극밖에 하
[추모] 영화인들이 기억하는 최양일 감독과 그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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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7일, 최양일 감독이 방광암으로 별세했다. <피와 뼈>(2004)의 거칠고 폭력적인 주인공 김준평처럼, 언제나 세상을 거스르며 꼿꼿하게 살아남을 것 같은 감독이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아무리 강인해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시대도 변했다. 스탭에 대한 폭언과 폭력으로 유명했던 최양일을 마냥 추앙하기도 쉽지 않다. 재일 조선인 2세로서 험난한 세월을 헤쳐온, 빛나는 영화들을 남긴 최양일 감독의 명복을 빈다.
최양일은 1949년 나가노현에서 태어났다. 조선학교를 졸업한 후, 사진전문학교에 들어갔다가 중퇴하고 영화계로 뛰어들었다. 조명부, 소품부를 거쳐 연출부로 갔고, 오시마 나기사 연출의 <감각의 제국>(1976), 마쓰다 유사쿠 주연의 <가장 위험한 놀이>(1978) 등에서 수석 조감독을 맡았다. 첫 연출을 맡은 작품은 드라마 <프로헌터>(1981). 이후 뮤지션이며 배우인 우치다 유야가 기획한 <10층의 모
[추모] 최양일 감독: 폭력으로 세상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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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연대기(1968)
어쩌면 장 마리 스트로브야말로 진정한 앙리 랑글루아의 후예인지 모른다. 이 영화의 후반부에는 악보와 편지가 등장하는데, 이들을 통해 관객은 기표의 제약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사운드 필름의 등장 이후, 막간 자막의 사용은 불필요해졌다. 무성영화에서 자막은 대사를 전달했지만, 토키영화의 등장으로 역할을 잃었다. 구조적인 면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결과물만을 바라보면, 이 영화가 시네마의 관점에서 음성과 텍스트를 고민한 흔적이 발견된다.
1950년대 프랑스의 시네필들은 프랑스어 자막 없이도 의미가 전달되는 외국영화들에 열광했다. 대표적으로 미조구치 겐지가 그랬다. 그들은 스스로 미조구치의 스타일을 납득했다고 믿었다. 이 점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연대기>의 결과물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곳에서 음악은 음성보다 더 중요한 구성요소로 작동한다. 관객이 청취한 텍스트는 ‘편지’가 아니라 오히려 ‘악보’에 더 가까운 듯
[기획] 2022년에 돌아보는 장 마리 스트로브의 주요작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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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마리 스트로브가 11월20일, 스위스 롤의 자택에서 89살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계의 비순응주의자, 철저한 순수주의자로 불렸던 이가 이 땅에서 사라졌다. 그의 영화는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번이라도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모두 그의 단호함에 경외심을 가졌다. 평론가 필리프 아주리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모든 사람, 한 국가 전체, 여러 국가를 동시에 소외시키는 사람”이라고 그를 소개한 적이 있다. 또한 영화감독 주앙 세자르 몬테이루는 장뤽 고다르나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보다 훨씬 더 추앙받아야 하는 감독이라고 말했다. 예술과 권력 사이에서 스트로브가 보여준 호전적인 태도를 기억하며, 평생을 무언가의 반대를 위해 바친 예술가 스트로브를 돌아본다.
1933년 1월, 프랑스 메스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 스트로브는 고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문학에 빠져들었고, 이후 낭시의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향후 언어학의 구조주의적인 관점은 그의 작품에 영향
[추모] 장 마리 스트로브 감독: 반동적 시네아스트, 현대영화의 지층을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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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돌아왔다. 2014년 <버드맨>, 2015년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로 2년 연속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정점을 찍은 후 무려 7년 만의 복귀작이다.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이하 <바르도>)를 둘러싼 반응은 실로 흥미롭다. 이냐리투의 작가적 야심이 발휘된 대작이라는 평가와 자의식 과잉의 불친절한 실패작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쏟아졌다. 극명하게 갈라진 호불호의 목소리를 들은 뒤 이냐리투는 3시간에 가까운 영화를 재편집해 새로운 버전으로 내놓았다. 넷플릭스의 과감한 투자로 제작된 이 기묘하고 야심찬 프로젝트는 이냐리투의 자전적 기억이 반영된 사적인 고백과도 같다. 동시에 과거와 현재, 멕시코의 역사, 정치와 예술 등 논쟁적인 주제들을 중층적으로 녹여낸 현학적이고 심오한 작품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영화가
[기획]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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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웃어볼까요, 는 내가 일을 시작한 뒤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다. 주로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 사진기자나 포토그래퍼가 하는 말로, 저 뒤에 이어지는 말로는 계속 웃어볼게요, 조금만 더 웃어볼게요, 자연스럽게 웃어볼게요 등이 있다. 처음 몇년은 물색없이 웃다가 언젠가부터는 웃는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미리 말씀드린다. 그래도 지면에 사진을 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웃는 사진이 좋기 때문에 매번 같은 주문을 받게 된다. 그런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고, 지면으로 나를 처음 만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나쁠 것 없으니 여전히 웃는다.
웃음에는 죄가 없다. 문제는 웃는 사람을 우습게 보는 시선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가끔 그 복을 뚫고 예의 없는 사람들이 시비를 걸거나, 본인도 모르게 사람을 쉽게 본다. 젊은 여자의 경우 이런 난처함은 배가된다. 젊은 여자가 웃으면 이성적 호감이 있는 줄 안다. 젊은 여자가 웃으면 전문성보다는 인간성을 본다. 워낙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웃을 수 있을 때까지는 웃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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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와 부모가 지구로 귀환하는 우주선에 있다. 윌리는 증강현실 게임에 푹 빠져 있는 7살쯤 되는 꼬마다. 부모의 직업을 따라 우주의 온갖 것들을 탐험하고 수집하는 데 관심이 있는 꿈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불현듯 악재가 닥친다. 무수한 소행성과 그 파편들이 우주선을 습격하고, 윌리는 부모와 떨어져 미지의 행성으로 탈출한다. 부모와는 연락이 끊긴 상황이다. 다행히 탈출선에 있던 로봇 버크가 윌리의 생존과 구조 대기를 만능으로 돕지만, 행성의 환경은 녹록지 않다. 거대 암석 동물이 공격을 일삼고 평범한 음식을 구하는 것조차 어렵다. 다만 윌리는 낙관적인 탐험가 기질을 발휘해 현지의 다양한 생명체들과 우정을 나누고 착실히 생존해나간다. 하지만 구조 요청을 해야 하는 버크의 배터리가 소진되어가면서 윌리의 행성 탈출은 점점 어려워진다.
모난 곳 없는 가족, 아동, 모험 애니메이션의 모범 사례다. 외딴 행성에 홀로 떨어진 소년의 생존형 고군분투에 집중하기보다는 소년의 성장과 교우 관계에 집
[리뷰] '스페이스 키드: 우주에서 살아남기', 소년의 성정처럼 순수한 미지와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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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든이 캠프장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은 에드먼드(제임스 맥어보이)는 급히 사고 현장으로 향한다. 그는 그곳에서 전처 조앤(클레어 포이)에게 전후 사정을 듣는다. 경찰은 납치까지 사건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에드먼드에게 설명한다. 에드먼드는 조앤의 애인 프랭크(톰 컬렌)를 의심한다. 아들이 사라진 다음날 프랭크가 보여준 엉뚱한 행동에 화가 난 에드먼드는 그를 폭행한다. 경찰에 체포된 에드먼드는 정황을 이야기하지만 묵살된다. 프랭크의 선처로 혐의가 풀려 집으로 온 에드먼드는 몰래 가져온 프랭크의 핸드폰을 훑어본다. 그는 사진 속에서 사건의 단서를 발견한다.
<마이 선>은 납치된 아들을 직접 찾아나선 한 아버지의 고군분투를 다룬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다. 실종에서 납치로 바뀌는 초반 전개가 흥미롭다. 에드먼드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석유회사와 연관성을 짓는 경찰에 답답함과 소외감을 느낀다. 영화는 2.35:1 화면비를 활용해 그의 감정을 표현한다. 익
[리뷰] '마이 선', 긴박하지만 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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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출신 라엘(이태경)은 5급 행정고시 준비를 위해 신림동 고시촌에 입성한다. 엄마(전국향)는 물심양면으로 딸을 뒷바라지한다. 희망의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라엘의 방 안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녀의 바람과 달리 합격은 쉽게 되지 않는다. 라엘은 어느새 32살이 되었다. 초시생의 총명함은 사라지고 점차 피폐해지기 시작한다. 엄마는 불합격의 원인을 이름에서 찾았다. 엄마는 용하다는 스님에게서 ‘혜옥’이란 이름을 받아온다. 라엘은 혜옥으로 개명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우며 시험을 준비한다.
<혜옥이>는 5급 행정고시 N수생 혜옥이가 겪는 고된 수험 생활을 그린 영화다. 영화는 ‘매몰 비용의 오류’라는 개념을 주인공 혜옥을 통해 풀어낸다. 매몰 비용의 오류란 과거에 투자한 비용이 아까워 같은 행동을 반복함을 의미한다. 언젠가 시험에 합격하리라는 희망은 늪이 되고 혜옥은 그 속으로 침잠한다. <기생충>을 연상시키는 이 영화의 차이점은 산동네다.
[리뷰] '혜옥이', 희망의 늪에서 노력이 무의미해질 때 분열되는 청춘의 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