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중반에 시작해 1990년대에 마쳤다고 평가하는 대만 뉴웨이브의 파동은 주지하듯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그리고 차이밍량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로운 물결이라는 명명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의 작품은 전통의 재해석, 또는 배격, 더 나아가 완전한 재탄생으로 특징지을 법한데, 이런 수사도 2022년 현재 되레 도전과 반발 앞에 놓인 또 다른 전통으로 보인다. 최근도 이 개척자 세명을 자주 호명하지만 현 대만영화계가 주목을 요하는 다른 이름들이 있다. 청몽홍이 그 선두 주자라면 후앙시, 호위딩, 미디 지, 양야체, 수자오렌 감독 등은 꾸준히 레이스를 펼치는 성실한 러너들이다. 이번 서독제 해외초청 프로그램은 기존 대만 뉴웨이브 삼인방을 잇는 ‘뉴웨이브 이후 대만영화의 기수들’을 소개해 특정 분야로 편중했을지 모를 우리의 영화 경험에 기분 좋은 자극을 꾀한다.
뉴웨이브 이후를 말하지만 그렇다고 청몽홍을 포함한 새로운 대만 감독들과 이전 뉴웨이브 사
[기획]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추천작 소개③, ‘뉴웨이브 이후 대만영화의 기수들’ 초청전
-
사갈
이동우 | 한국 | 2022년 | 156분 | 본선 장편경쟁
<셀프-포트레이트 2020>에서 한때 단편영화로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이력이 있지만 지금은 알코올중독과 조울증에 시달리며 노숙 생활을 하고 구치소를 드나드는 인물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던 이동우 감독의 신작이다. 감독은 이번에도 문제적 인물을 내세워 지난 작품이 품은 진기한 기운을 재현한다. 감독의 대학 시절 영화과 동기이자 10살 많은 형인 박건호는 사채를 굴리는 동시에 본인도 빚에 허덕인다. 배달 대행 일로 삶을 꾸려가던 그는 도박에 손을 대면서 뱀과 전갈이라는 뜻의 사갈, 즉 남을 해치거나 혐오감을 주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자신의 처지와 책임을 객관화해 인식하는 듯하면서도 채무자에게서 수금한 돈을 재차 도박으로 날리고 자기 합리화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자면, 지난 작품 속 노숙자의 초상이 오버랩된다. _김성찬 영화평론가
이어지는 땅
조희영 | 한국 | 2022년 | 88분 | 본선 장편경쟁
런던
[기획]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추천작 소개②
-
제48회 서독제가 12월1일부터 9일까지 CGV압구정에서 열린다. 이번 영화제에는 영화가 만들어내는 ‘사랑의 기호’로 독립영화들이 서로 대화하며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담겼다. 축제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도록, 개막작 <또 바람이 분다>와 본선 장편경쟁에 초청된 8편의 영화, 그리고 ‘뉴웨이브 이후 대만영화의 기수들’ 초청전을 통해 선보이는 8편의 대만영화를 소개한다.
또 바람이 분다
김태일, 주로미 | 한국 | 2022년 | 103분 | 개막작
제48회 서독제의 개막작인 <또 바람이 분다>는 조금 특별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사 ‘상구네’의 ‘민중의 세계사’ 프로젝트의 네 번째 작품이다. 감독 김태일과 주로미,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김상구, 김송이 네 가족으로 이루어진 상구네의 발길은 2009년 광주에서 시작해 캄보디아와 팔레스타인을 거쳐 보스니아로 이어져왔다. “고립되어 빨갱이로 몰렸던 광주 시민, 자본에 밀려나고 있는 캄보디아
[기획]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추천작 소개①
-
올해의 모녀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수경과 이정
여느 때와 같이 마트에 같이 장을 보러 간 날, 사건이 벌어졌다. 씩씩대며 앞서 나간 수경(양말복)의 뒤를 이정(임지호)이 바삐 쫓는데 차에 타자마자 수경이 이정에게 손찌검을 시작한 것이다. 견디다 못한 이정이 차를 박차고 나가자 별안간 수경의 차가 이정을 들이받는다. 급발진 사고라 주장하는 수경과 달리 이정은 엄마의 고의를 확신한다. 그렇게 아슬아슬하던 둘의 관계가 완전히 뒤틀리고 만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라는 제목처럼 가장 내밀한 부분을 공유하면서도 서로를 증오하고, 종국엔 이해받길 바라는 수경과 이정의 관계는 강렬하고 처절하다. 둘의 서사를 모녀라는 프레임 안팎에서 유연하게 그려나가는 김세인 감독의 연출은 둘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올해의 미장센
<초록밤>의 윤서진 감독과 추경엽 촬영감독
소파 위로 쓰러지듯 누운 원형(강길우) 위로 창밖의 초록빛이 쏟아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⑥ 올해의 독립영화, 별별 리스트 2탄
-
-
올해의 자기 반영
<오마주>의 여성감독들
아들과 남편은 자꾸만 투덜대고 오래 함께한 PD는 떠나겠다 한다. 세편의 영화를 만들고 슬럼프에 빠진 영화감독 지완(이정은)은 신작 <유령인간>이 상영 중인 텅 빈 극장에서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영화는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이 묘하게 겹쳐지는 듯하고, 배우 이정은은 절박함과 묘한 낙천성을 동시에 품은 신수원 감독의 인상을 능청스레 모사한다. 한국영화 역사상 두 번째 여성감독인 홍재원의 필름 복원을 의뢰받은 지완의 여정은 곧 여성영화의 길을 닦은 실존 인물 홍은원 감독의 삶까지 불러낸다. 신수원의 자전적 이야기와 홍은원의 찬란한 생애, 그리고 픽션 속에서 이들 사이를 오가는 캐릭터 지완의 삶은 서서히 허구와 실제, 각색과 진심을 넘어 영화 만드는 여성의 삶에 관한 환상적인 수수께끼로 귀결된다.
올해의 메뉴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치킨 수프
4·3사건의 트라우마와 이산가족의 고통을 품은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⑤ 올해의 독립영화, 별별 리스트 1탄
-
한해에만 수많은 데뷔작이 영화과 졸업작품,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제작 지원작 등으로 완성되지만 그렇게 발굴된(혹은 사비를 털어 스스로 발굴한) 창작자들의 차기작을 보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2015년부터 한국 독립예술영화에서 데뷔작이 차지하는 편수가 급격히 늘어나 2022년 현재 증가세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극장에서 개봉한 한국 독립예술영화는 약 120편으로 이중 장편 데뷔작은 59편이다(영화진흥위원회 2022년 개봉일람 기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장편제작 연구과정 작품 6편(<윤시내가 사라졌다> <낮과 달>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그 겨울, 나는> <썬더버드> <파로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합협력단 영화 3편(<거래완료> <세이레> <옆집사람>) 등이 있지만 데뷔작 대다수가 영진위 제작지원, 영화제 기획개발비, 지역 영상위원회 지원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④ 이들의 두 번째 영화를 보고 싶다
-
지난 9월, <씨네21>은 1373호 ‘극장 중심의 체험들이 중요하다: 2022년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를 말하다’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독립영화 시장이 입은 타격과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의 확장 가능성, 독립영화가 일군 성장 등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에 한 단계 더 나아가 독립영화 배급사·제작사·극장 관계자의 관점으로 올해 한국 독립영화 시장 전반의 성적과 관객의 수요 변화, 각 층의 출구 전략 등을 정리해보았다. 먼저 관계자 모두 공통적으로 올해를 독립영화의 암흑기로 꼽았다. 배급사 그린나래미디어는 올해 청년 문제를 날카롭게 다룬 <태어나길 잘했어>와 <홈리스>를 배급했지만 모객 성적은 예상보다 훨씬 저조했다.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는 “여름 시장에 기대가 컸던 빅4 영화(<한산: 용의 출현> <헌트> <외계+인> 1부 <비상선언>)가 흥행 예상을 빗나가면서 그에 따라 독립영화 시장도 더 경직되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③ 한국 독립영화의 정체기, 제작사·배급사·극장 관계자가 말하다
-
돌이켜보면 <벌새> <윤희에게> <메기>가 연이어 개봉한 2019년은 명실상부 독립영화계의 호황기였다. 개별 작품의 개성이 뚜렷하고 완성도가 높아 입소문을 탔고, 팬층이 형성돼 N차 관람이 유행처럼 번져 <벌새>가 14만명, <윤희에게>가 11만명, <메기>가 3만명의 관객을 얻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초중반에도 크게 조명받은 독립영화들이 있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와 <남매의 여름밤>의 경우 2만명대로 관객수는 어쩔 수 없이 감소했지만, 그럼에도 팬들의 두터운 지지를 얻었다. 그 뒤론 어땠나. 거론되는 작품의 수가 서서히 줄면서 팬데믹 3년차인 2022년엔 독립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도 자체가 낮아진 느낌이다. 2022년 1월부터 10월까지 개봉한 101편의 독립영화를 놓고 보자면, 소재 면에서 다양해졌고 팬데믹으로 어려워진 제작 환경에서도 끈기 있게 주제를 밀고 나간 작품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② 점점 높아지는 관객 1만명의 벽
-
코로나19 팬데믹 3년차, 위축된 현장과 축소된 예산에도 불구하고 창작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제작해왔다. 나름의 돌파구를 거쳐 완성된 영화들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들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얼마나 유효하게 다가가는가. <씨네21>은 2022년의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기획 기사를 통해 올해 독립영화에서 읽힌 경향을 짚고 제작과 배급, 마케팅, 소규모 독립예술영화관의 상황과 신진 창작자들이 마주한 고민을 다각도로 들어보았다. 오는 12월1일 개막하는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상영작 중 기자들이 엄선한 9편의 영화와 ‘뉴웨이브 이후 대만영화의 기수들’ 초청전도 함께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올해의 독립영화 속 인물, 감독, 스탭을 꼽은 ‘별별 리스트’를 보며 지난 1년간 인상 깊게 본 작품의 요소들을 상기해보시기를.
2022년 1~10월 한국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결과
*이어지는 기사에 한국독립영화결산 및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추천작 소개 기사가 계속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① 사회적 거리두기 종료 이후의 독립영화계는 어땠나
-
오세현 감독은 22시간을 자야 하는 희귀병을 앓는 오세의 로드무비 <여정>에 이어 다시 한번 삶과 죽음이 기묘하게 겹쳐 있는 이야기 <우수>를 만들었다. <우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지만 마냥 울적하지만은 않다. 친구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을 향해 가는 세 사람의 여정에 단순하지만 생생한 대사들이 웃음을 유발한다. 인상적인 여백과 독특한 프레임을 가진 장면들은 영화를 보는 시각적 재미도 유발한다. 이 모든 것이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닐지라도 오세현 감독이 제시한 <우수>라는 여정의 발견은 관객의 재미이고 몫이다.
-<우수>는 어떤 질문으로 시작된 이야기인가.
=10년 전에 친구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장례식장에 가면 죽음이 확인되는 거 아닌가. 영화에서처럼 세명이 장례식장을 향해 가는데 목적지에 가까이 갈수록 기분이 묘했다. 또 한번은 삽교천에 칼국수를 먹으러 가는데 내비게이션을 잘못 작동해 그냥 돌아온 적이 있다. 이
[인터뷰] ‘우수’ 오세현 감독, “로드무비에 매력을 느낀다”
-
<썸바디>의 김영광은 살인마이기 이전에 유혹자다. 로맨스 장르 안에서 활약한 배우의 전적을 묘하게 비튼 캐릭터 성윤오는 낮에는 건축가로 일하고 밤이 되면 데이팅 앱을 켠다. <썸바디>에서 연쇄살인범 성윤오가 외로운 여성들의 급소를 파고들어 목적지로 유인한 이후 펼치는 일들이란 대개 소름 끼치는 폭력으로 점철돼 있다. 배우로서의 야심을 더듬어보게 하는 이번 신작에서 김영광은 전에 없던 무시무시한 기운과 미스터리를 입고 나타나 변신의 포부를 알린다.
-데뷔 이래 가장 악하고 잔인한 인물을 연기했다. 작품을 준비하는 자세에서도 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나.
=이 인물을 잘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처음에는 외형적인 모습, 행동의 논리 등을 조금 과하게 준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썸바디>에서 성윤오란 인물의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는 어떤 전환의 순간을 이해하고 싶었다. 촬영을 3개월 앞두고 체격을 좀더 키웠는데, 감독님과 회의 후에 다시 체중을 뺐다.
[인터뷰] 넷플릭스 ‘썸바디’ 김영광, “변신의 스위치를 켜다”
-
<주말의 명화>를 손꼽아 기다리고, 시린 손을 비비며 단관 개봉 극장의 영화표를 줄 서 예매하던 추억은 이제 까마득하다. 요즘 유행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은 지상파, 종편, 케이블, OTT 중 도대체 어디에서 볼 수 있나 찾아보아야 할 정도로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요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다. 십수년 전 지상파 예능에서 대본 없이 (혹은 대본 없는 것처럼) 예능인들의 일상을 보여주던 리얼리티 쇼가 비방송인들로 대상을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 가족들의 삶을 보여주는 육아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아마추어 뮤지션이나 댄서들의 성장기를 보여주던 오디션이 각광받았다. 그래도 이들 프로그램은 연예계라는 범주의 생활인들과 지향점이 연예인을 꿈꾸는 후보자들이라 일반인이라 말하긴 어렵다.
최근에는 짝을 찾는 프로그램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청춘 남녀가 풋풋한 설렘으로 상대를 찾던 예전의 짝짓기가 이제는 높은 연령대 출연진의 현실적인 고민으로 확장된다. 그다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Please, be kind
-
“그런 때가 있지 않나. 남들은 다 아니라고 하는데 나 혼자 괜찮다고 말할 때. 혜진은 남들이 다 별로라고 할 때도 경학을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권소현이 연기한 <그 겨울, 나는>의 취준생 혜진은 관객과 같은 위치에서 인생의 혹한기를 버티는 공시생 남자친구 경학(권다함)을 바라본다. 관객은 혜진의 시선에서 때론 경학을 염려하고 때론 경학을 질책하고 싶어진다. “혜진은 취업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경학을 향한 마음 모두가 달라진다. 그래서 정체해 있는 경학을 자꾸만 재촉하고 싶어 한다.” 혜진의 마음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건 권소현이 배역에 쏟아부은 노력 덕일 것이다. 상대역인 권다함과 프리프로덕션 기간에도 일주일에 네댓번 만나며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고 촬영 전부터 함께 노량진 일대를 답사하며 지역 분위기와 수험생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혜진과 직장 상사의 일본어 대화 장면 또한 권소현을 통과하며 그 결이 풍성해졌다. “시나리오에는 ‘일본어로 대화한다
[WHO ARE YOU] '그 겨울, 나는' 권소현
-
<동행: 10년의 발걸음>은 2011년 출범한 시각장애인 관현악단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의 창단 이후 10년의 궤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오케스트라를 출범한 이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 교장을 역임한 명선목 광명복지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은 현악기를 다루기 어렵다는 통념을 깨고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는 전 단원이 장애 연주자로 구성돼 있고, 전 단원은 보면대 없이 교향곡의 전 악장을 암보해 연주한다. 영화는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의 10년을 담은 기록물답게 단원들의 연주 실황을 무편집본으로 담는다. 시간 순서에 따른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의 발전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단원들의 연주 기량과 이들이 공연에서 다루는 레퍼토리가 시간에 비례해 진보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음대 출신 혜광학교 졸업자, 협연자, 후원자, 언론 관계자 및 국회의원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인터뷰
[리뷰] '동행: 10년의 발걸음', 마음의 눈을 틔우는 선율과 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