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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 >>
금자씨의 복수리스트에 최민식이 이름을 올렸다. 이영애의 핏빛 복수가 기대되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친절한 금자씨>에서 복수의 대상인 백 선생으로 출연을 결정한 것. 출연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 조연이지만,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현재 류승범과 함께 <주먹이 운다>에 주연으로 출연 중인 그는 내년 2월 <친절한 금자씨>에 합류하게 된다.
김옥빈, 서지혜, 차예련>>
3개월간 진행된 오디션을 마친 <여고괴담4: 목소리>의 캐스팅 결과가 발표되었다. 1500 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은 김옥빈(18), 서지혜(20), 차예련(19), 3인방이 <여고괴담>의 계보를 이을 주인공들. 김옥빈은 그림자에 죽임을 당하고 목소리만 남는 영언, 서지혜는 영언의 목소리를 듣는 단짝 친구 선민, 차예련은 귀신의 소리를 듣는 초아 역으로 각각 차세대 호러퀸을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캐스팅 소식] 금자씨의 복수리스트에 오른 최민식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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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불지마>의 시사회장. 마이크 앞에서 사회를 보는 남자. 회상장면에서 소매치기로 나와 개떡(오지명)이 던진 돌에 맞아 죽는 단역배우다. 왠지 얼굴이 낯익은 그는 스스로를 <까불지마>의 프로듀서 류병석(35)이라고 조심스럽게 소개한다. <친구>의 롤러장과 극장 화장실에서 상택(서태화)에게 치도곤을 날리던 면도날, <돌려차기>에서 “바람 구멍 술술 날 거야”라고 협박하던 병수가 바로 그다. 본업은 <그놈은 멋있었다>를 거쳐 두 편째 제작을 책임진 프로듀서. 그가 말하는 프로듀서와 배우라는 충무로 ‘투잡’ 스토리.
시작은 배우였나, 제작부였나.
고등학교 때부터 오디션 본답시고 충무로를 들락거렸다. 일찍 군대를 가서 복무 중에 영화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 영화세상 안동규 대표와의 인연으로 처음 제작부를 한 것이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그때는 제작부가 뭔지도 몰랐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까불지마> 프로듀서 겸 단역배우 류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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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뭐냐 하면….” 유독 진유영은 이 말을 자주 꺼낸다. 기사가 어떤 페이지에 나오는지도 꼼꼼하게 챙긴다.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해두고 싶기 때문이다. “내 동년배가 없기 때문에 다시 연기를 하는 거예요. 내 세대의 역할이 필요해요. 젊은 감독들한테 내가 준비가 됐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거죠.” 하지만, 그가 말하는 자기의 역할이 안방에 들어앉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상은 아니다.” 진유영은 그걸 싫어한다. “예전에 내가 얄개를 했잖아요. 그리고 <발레교습소>의 계상이가 사실은 지금의 얄개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이 영화에서 아버지 역할을 하게 된 건데, 사실 형이나 삼촌 역할을 해야지… 부모하고의 갈등이 키포인트라고 해서 하긴 했는데, 감독한테도 그게 왜 삼촌으로 가면 안 되냐고 처음에 제안했다니까.”
대체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은 세월과 경쟁하며 지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임권택 감독의 <낙동강은 흐르는가>로
세월을 놓지 않는 중년의 박력! <발레교습소> 배우 진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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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사 준비차 방한한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 장 미쉘 프로동
<르몽드>의 영화부문 책임을 맡고 있던 장 미셸 프로동은 2003년 7월 역사 깊은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새 편집장으로 부임했다(첫 번째 편집장의 글을 쓴 건 9월이다). 약 1년 반이 지난 지금, 2005년 1월호 특집기사로 한국영화를 싣기 위해 그가 한국에 왔다. 1980년대부터 폭넓게 아시아영화를 주목해온 <카이에 뒤 시네마>의 일관된 편집방향과 한국영화에 많은 애정을 지닌 장 미셸 프로동 개인의 관심이 동석한 결과이다. 4박5일 중 4일째 되는 날 그를 만났고, 개인에 관한 궁금증에서 시작하여 <카이에 뒤 시네마>의 현재, 그리고 한국영화에 관한 의견을 물어보는 자리로 진행되었다. 세계 영화역사의 커다란 사건이자 동력이 되어온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을 만나 밖으로부터 다시 안을 되돌아본다.
<씨네21>에 몇 차례
한국 온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장 장 미쉘 프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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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미 레슬러 샤프 형제를 쓰러뜨리는 역도산
찍다보니 케이블 프로레슬링 경기네
송해성 l 드디어 레슬링 장면이군요. 고통의 연속이었죠. 이 시합은 1954년에 열렸던 역도산 대 기무라 전하고 똑같이 찍으려고 했는데 실제보다는 리얼하진 않더라고요. (웃음) 당시 자료화면을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인데 상대에 대한 배려로서의 룰은 전혀 없어요. 워낙 살벌해서 관중이 소리를 내지도 못할 정도니까.
김형구 l 일본 관중이 거구의 미국 레슬러인 샤프 형제를 쓰러뜨리는 역도산을 보고 ‘만사이’를 부르는 첫 번째 경기장면에는 풍부한 컬러를 썼고, 이후 경기들로 가면서 서서히 탈색됩니다. 나중 경기들은 점점 콘트라스트가 강하고 어두워요.
송해성 l 경기장면은 CG를 전제로 촬영을 해야 했는데.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제가 CG 노이로제가 있습니다.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파이란>에서 CG 쓴 건 제목 뜨는 부분에서 물안개 심은 거 딱 한 장면이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938컷
<역도산> 미리 보기 [4] - 주요 장면 코멘터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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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못할 롱테이크 액션의 고통
송해성 감독과 김형구 촬영감독은 <역도산> 촬영을 이끈 쌍두마차. “드라마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촬영감독”, “통솔력이 대단한 연출자”라고 서로를 인정하는 이들은 <역도산>이 첫 공동 작업이지만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읽을 수 있을 만큼 현장에서 호흡이 좋았다고 한다. 개봉을 앞두고 긴장과 흥분이 교차한다는 두 사람으로부터 <역도산>의 주요 장면 코멘터리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 1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 역도산
36시간 연속촬영, 미리 자둘까?
송해성 l 당시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던 클럽 라틴 쿼터에서 역도산은 칼을 맞습니다.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에 배치될 이 장면 촬영은 신주쿠의 한 클럽에서 진행됐습니다. 60년대 클럽 분위기가 나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대부분이 연신내 카바레처럼 생겼더라고요.
김형구 l 저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장면이네요. 천장이 스펀지로 만든 흡음장치로 덮여 있어서 라이트를 달
<역도산> 미리 보기 [3] - 주요 장면 코멘터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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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해두는데, 난 죽기 살기로 싸운다” -<역도산> 중-
레슬링 장면은 그야말로 악전고투였다. 첫날 팔 하나가 내 허벅지만한 놈들이 촬영장으로 들어오는데, 내 옆에 있던 정두홍 무술감독의 입이 쩌억 벌어지고…. 그걸 본 경구가 “형 내가 저 새끼들 들어올리고 말 거다”라고 다짐을 하더니 곧장 집에다가 바벨 가져다놓고 열심히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악바리 같은 게 결국엔 본촬영에서 그놈들을 번쩍 들어올려버렸다. 그걸 찍고나서는 나한테 다가와서 그러더라. “형. 남들이 이 장면 보고나서 와이어 쓴 거 아니냐고 물어보면 그 새끼들 다 죽여버릴 거야!” 레슬링 장면은 경구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니까 어떻게든 빨리 찍으려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보니 롱테이크로 갈 수밖에 없는 게, 컷을 나누어서 찍으면 들고 던지는 장면들을 여러 번 다시 찍어야 하지 않나. 나중에는 잔머리를 썼다. 화난 표정으로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면 경구가 먼저 ‘이게 잘 안 찍혔나보구
<역도산> 미리 보기 [2] - 송해성 감독이 말하는 배우 설경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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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묻혔던 역도산이 드디어 입을 연다. 그의 기일인 12월15일에 개봉하는 <역도산>은 충무로 안팎에서 하반기 최대 화제작으로 꼽히는 영화. 일본에서 천황 다음 가는 영웅으로 꼽히는 전설의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사후 41년 만에 한국과 일본의 배우와 스탭들이 함께 스크린으로 불러들였다는 점에서 이 합작 프로젝트에 대한 궁금증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역도산을 연기한 설경구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거울 것이다. 뜨거웠던 8월, 촬영을 끝낸 뒤 링과 싸우며 분노를 내뿜고 증기 기관차처럼 뛰어야 했던 지난 시간에 대한 설경구의 토로(<씨네21> 466호)를 기억하는가. <공공의 적2> 촬영이 계속되어 이번엔 설경구에게 인터뷰를 제의하지 못했지만, 그를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야 했던 송해성 감독이 둘도 없는 배우에 대한 친절한 덧말을 줬고, 송해성 감독과 김형구 촬영감독이 주고받은 <역도산> 주요 장면 코멘터리를 뒤에 덧붙여 아쉬움을 대신
<역도산> 미리 보기 [1] - 송해성 감독이 말하는 배우 설경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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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뮤지컬의 아버지, 역대 최다관객을 동원한 뮤지컬 음악가, 가장 많은 음악상을 휩쓴 타이틀 홀더, 클래식 음악을 상업적으로 도용하는 장사꾼, 가장 많은 혹평을 감수해야 했던 비평가들의 ‘공공의 적’. 뮤지컬의 제왕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얼굴과 행적은 스포트라이트와 어둠 속을 넘나든다. 음대 교수였던 아버지,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 연극배우였던 숙모의 영향으로 뮤지컬의 길로 들어선 그는 <에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캣츠> <오페라의 유령> <선셋 대로> 등을 쏟아내며 1980년대부터 브로드웨이를 지배한 인물. 그리고 웨버의 뮤지컬 가운데도 <오페라의 유령>의 위치는 특별하다. 전세계 입장수익 30억달러, 국내관객 25만명 동원. 전세계 음악시장에서 비틀스 이후 가장 강력한 제2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기억되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 뮤지컬의 결정판. 그 <오페라의 유령>이 마침내 영화로 만들어
영화 <오페라의 유령> 만든 뮤지컬 마스터 앤드루 로이드 웨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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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맥그리거는 환갑이 되어도, 파격을 추구할 사람이다. 그는 풍파에 닳지 않는 강하고 예리한 각을 지닌 바위처럼 그렇게 늙어갈 것 같다. 모나게 모나게. <트레인스포팅>에서 변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환각을 체험하던 마약중독자가 <스타워즈>에서 제다이의 스승이 되고, <물랑루즈>에서 로맨틱한 순정남이 되어 나타났을 때, 그러려니 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인디에서 블록버스터로 흘러들어가는 게 ‘수순’이니까. 그런데 이완 맥그리거는 기어코 그 원심력에 저항했다. 섹스에 중독된 한 청년의 유랑기 <영 아담>(2003)은 난해하고 비도덕적으로 느껴질 법한 소재 때문에 투자자들이 손을 떼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 이완 맥그리거는 신인감독이 보내온 시나리오에 반해서, 직접 로비를 하며 투자를 받아내는 등 배우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이렇게 훌륭한 영국영화를 만들었다는 데 그들은 긍지와 기쁨을 느껴야 한다. 영국 사람들이 영국을 배경으로 미국을
파격을 즐기는 아웃사이더, <영 아담>의 이완 맥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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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몇년 전 망년회의 기억을 들려주며 “모두 술취해 쓰러져 있는데 혼자 멀쩡한 정신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겨주던, 그 자리의 마지막 남은 이성(理性)”이었다고 말한다. 그럴 것도 같다. 곱고 반듯한 얼굴과 이름이 주는 느낌은 어찌나 바른지, 김석훈은 얄밉게 머릴 굴리느니 예의 갖춰 고개를 한번 더 숙일 사람이다. 잡음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 그리고 눈가의 선량함 덕에 쉽게 오해받을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한번 움직이려면 의외로 운신의 폭이 좁다. 스스로 말하듯 “전형적인 A형”의 우유부단함까지 있는지라, 뭘 크게 지르지도 못하고, 크게 질렀는데 결과가 안 좋다고 악다구니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이 가시적인 이미지에서 보자면, <귀여워>는 그에게 ‘대단한 도전’쯤 된다. 김수현 감독의 이 시끌벅적한 데뷔작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까다로운 영화다. 아버지와 세 아들이 한 여자에게 품은 저마다의 판타지. 황학동이라는, 더 무너질 것도 없는 개발촌을 감싸는 이
착실하게 전진하는 A형 남자, <귀여워>의 김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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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서는 알겠다. 영화에 반한 그 청년이 왜 그토록 비의 리듬에 몰두했는지를.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지난 11월18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제17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는 비 속에서 개막돼, 오가는 빗줄기에 젖어 있었다. 빗줄기는 그때의 빗줄기가 아니겠지만, 그때의 거리는 곳곳에 남아 있었다. 요리스 이벤스들이 영화에 관한 토론으로 밤을 지샜다던 살롱들이 영화제가 열리는 광장 주변에서 여전히 손님을 맞고, 푸도프킨의 <어머니> 상영을 당국이 금지하자, 이벤스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는 아메리칸 호텔에는 다큐멘터리 마켓, 독스 포 세일이 차려졌다. 여전한 것은 또 있다. 현실을, 현실의 변화를 포착하려던 다큐의 정신이다. ‘변화’는 올 IDFA에서 중요한 표제어였다.
‘벽에 붙은 파리처럼’ 현실로
60년대 미국 다큐멘터리사에서 솟아오른 ‘시네마베리테’(혹은 다이렉트시네마) 감독들이 암스테르담에 나타났다. 존 F. 케네디가 말 그대로 새로운
제17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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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흑백 133분감독 신상옥출연 김진규, 황정순, 김승호, 최남현, 최은희EBS 11월14일(일) 밤 11시50분<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은 영화의 내용이나 스타일 등에 대한 얘기보다는 어쩌면 영화의 주변에 관한 얘기가 더 관심있는 영화다. 우선, 이 영화의 제작자인 임화수는 알다시피 1950년대 자유당 정권하에서 영화계의 ‘대부’로 일컬어질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당시 임화수는 많은 통속·오락영화들을 제작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가 제작한 영화들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기록상으로 임화수의 한국연예주식회사가 제작한 작품은 19편인데, 그중 이 영화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만 유일하게 필름이 남아 있다. 다행히도(?) 당시 임화수의 힘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스탭과 출연진을 보면 당시 한국 영화계의 모든 인력을 총동원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대단하다. 우선 촬영의 임병호는 이병일의 <시집가는 날>, 이규환
자유당 시절 충무로 대부, 임화수의 파워,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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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nslow Boy 1999년감독 데이비드 마멧 출연 나이젤 호손EBS 12월12일(일) 낮 1시50분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는 색다른 즐거움을 주곤 한다. <윈슬로우 보이>는 작가 테렌스 래티건이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쓴 희곡을, 영화로 각색한 경우다. 권력에 맞서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길고 힘든 싸움을 해야만 했던 가족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제레미 노담, 레베카 피전 등의 배우가 출연하는 이 영화는 그리 튀지 않으면서 탄탄한 연기력을 과시하는 출연진의 면모가 돋보인다.영국의 중산층 아서 윈슬로우는 딸 캐서린의 약혼이 진행되는 가운데, 막내아들, 로니가 왕립해군사관학교에서 5실링짜리 우편함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퇴학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모든 가족은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훔치지 않았다는 로니의 말을 직접 확인한 아서는 자신의 재산과 명예, 지금까지의 안정, 그리고 딸 캐서린의 약혼까지 위험으로 몰아넣을지 모르는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
아들의 누명을 벗기려는 가족의 싸움, <윈슬로우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