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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이들의 집’이라고도 불리는 명문 크라이니크 학교의 교사 에미(카디아 파스칼리우)는 남편과 찍은 섹스 비디오가 인터넷상에 유출되며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남편이 컴퓨터 수리를 맡긴 뒤에 벌어진,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던 에미는 학부모 회의에 출석하게 된다. 하지만 그를 향한 학부모들의 무자비한 경멸과 모욕은 이 자리가 실은 마녀재판에 다름 아니며, 그것은 혐오와 배제에 기반한 사회가 끊임없이 희생자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주역인 감독 라두 주데는 루마니아 사회의 이러한 희생자들, 집시(<아페림>), 유태인(<상처 입은 마음> <나는 야만의 역사로 거슬러가도 상관하지 않는다> <열차의 출구>), 독재정권에 저항한 학생(<대문자>)을 다룬 전작들에 이어 <배드 럭 뱅잉>에서는 한 여성을 또 다른 희생자로 호명한다. 그러나 에미에게
[리뷰]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배드 럭 뱅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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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13일, 왜군의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기습적인 공격으로 순식간에 한양의 도성을 잃고 선조는 평양으로 거처를 옮긴다. 왜군들은 조선을 정복하고 나아가 중국, 인도까지 손에 쥐려는 계획을 세우는데, 이들의 행보를 막아선 이가 바로 이순신 장군(박해일)이다. 왜군들이 북진하려면 해상로를 확보해 물자를 보급받아야 하는데 이순신이 이끄는 해군이 이 창구를 완전히 차단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선은 여전히 수세에 몰려 있고, 위기를 돌파할 요량으로 이순신은 새로운 전략을 세운다.
<한산: 용의 출현>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삼부작 중 <명량>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명량해전보다 5년 앞선 한산대첩을 다룬다. 영화는 한산대첩이 벌어지기 전, 왜군과 조선군 양측이 서로 첩자를 보내 적군의 상황을 파악하고 전술을 바꿔 대처하는 시점부터 충실히 묘사한다. 이순신 장군, 왜군 장수 와키자카(변요한)를 비롯한 군사들의 캐릭터 및 관계를 그리며 관객이
[리뷰] 적의 시점으로 바라본 한산대첩. 승리의 쾌감은 배가된다 '한산: 용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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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의 삶에 예기치 못한 죽음의 잔영이 드리운다. 영화는 이 죽음을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이 세계에서 밤은 언제나 초록으로 빛나고 자신의 초록을 유일한 진실처럼 내보일 뿐이다. 아파트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버지(이태훈)는 지쳐 있고 무력하다. 장애인 활동 보조인으로 일하는 아들 원형(강길우)은 오래된 연인이 있지만 생활고 탓에 결혼하지 못하고 부모 집에 얹혀살고 있다. 집안의 실질적인 뒤치다꺼리를 도맡는 사람은 어머니(김민경)다. 그녀는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그건 활력이라기보다는 더이상 몸과 떼어낼 수 없게 된 가사노동의 인장과도 같다. <초록밤>에서는 이 세 사람이 오래된 아파트에 함께 살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헐겁게 묶인다. 발걸음이 유독 느리고 무거운 사람들.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밤은 알고 있다.
영화는 세 인물의 수심 가득한 얼굴을 빌려 알 수 없는 삶의 중량에 짓눌려 사는 침침한 현대인의 초상을 그려낸다. “삶을 애도
[리뷰] 익숙한 슬픔을 우회하는 초록의 방식 '초록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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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박진영에겐 ‘첫사랑 기억조작남’ 내지는 ‘남자 수지’ 같은 별명이 있었다. 마치 저렇게 생긴 첫사랑이 있었던 것만 같은, 겪어본 적 없는 노스탤지어마저 조작하는 말간 얼굴은 바쁜 가수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찌감치 배우로 각인될 수 있는 경쟁력이 됐다. 어느덧 소년은 훌쩍 자라 회사원이 됐다. 앳된 얼굴에 굵은 선이 여럿 더해지면서 그의 얼굴엔 풋풋함부터 피로한 직장인까지 다양한 이미지가 스친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유미의 세포들2>의 유바비는 세상에 없는 완벽한 ‘남친’이었다가 현실적인 감정 변화를 드러내며 인류 보편의 연애사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 웹툰 <유미의 세포들>이 연재될 때 유바비는 논란의 중심에 선 캐릭터였다. 유미(김고은)와 연애 중이면서 다은(신예은)에게 흔들리는 모습이 나올 때 욕을 많이 먹을 거라 예감했을 것이다. (웃음)
= 친누나에게 연락이 왔었다. 너 정말 괜찮겠냐고. (웃음) 하지만 제대로 연기해낸다면 정말 입체
‘유미의 세포들2’ 배우 박진영, “연기로, 음악으로 지금의 나를 채워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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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퍼 무비라는 장르 하나로 전작을 통틀어 4천만명이 넘는 관객의 마음을 훔친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 촬영 현장. 실제 사기꾼들을 취재해서 건져올린 실감나는 대사와 배우들의 근사한 연기 덕에 지금 다시 봐도 재밌는 영화다. 개인적으론 n차 관람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영화라 기억에 남는다.
[ARCHIVE] 새로운 장르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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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쓴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노후에 접어들며 ‘싱글의 노후’ 시리즈를 펴낸 바 있다. <싱글, 행복하면 그만이다>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으로 일본에서는 누적 판매 부수 130만부를 달성했다. “그러나 아직 죽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노인 인구 구분법에 따르면 65살 이상이 전기 고령자, 75살 이상이 후기 고령자인데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건강하게 살다 가장 편안하게 죽는 법>은 후기 고령자가 되기 3년 전에 쓴 책이다. 세대간의 가구 분리가 완전히 자리를 잡아, 부모 세대가 배우자와 사별한 뒤에도 자녀와 합가하기보다는 혼자 사는 비중이 늘고 있다. 고령자와 관련한 풍부한 데이터가 존재하는 일본의 사례를 바탕으로, 고령자의 생활 만족도를 말한다. 노인의 경우 1인 가정의 만족도가 가장 높고 2인 가정의 만족도가 가장 낮은데, 미디어에서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건강하게 살다 가장 편안하게 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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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음악 <Jimmy Jazz>- 카를라 브루니
한동안 카를라 브루니의 <Little French Song>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온종일 <Jimmy Jazz>를 틀어놓는다. 목소리를 닮고 싶을 만큼 정말 매력적이다.
드라마 <안나>
최근 본 가장 인상 깊었던 드라마다. 배우로서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은 탐나는 이야기다. 작품을 다 보고 원작 소설이 너무 궁금해 <친밀한 이방인>을 구매해서 읽고 있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90년대 미국 멜로영화의 감성을 좋아한다. 겨울만 되면 습관처럼 보는 영화들이 있는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도 그중 하나다. <유브 갓 메일>과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빼놓을 수
[LIST] 배우 정이서의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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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세컨드>
넷플릭스, 웨이브 외
단 1초 혹은 두 프레임의 필름도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원 세컨드>는 필름 시대의 거장 장이머우가 이러한 질문에 내놓은 긍정의 답이자, 필름이 아니더라도 영화의 가치가 여전히 소중하다는 믿음의 전언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 주인공 장주성이 노동교화소에서 탈옥해 거친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을 뚫으며 영화 필름을 운반한다. 영화와 함께 상영될 뉴스릴에 오래전 헤어진 딸의 모습이 나온다는 소식 때문이다. 운반 도중 필름이 훼손되고 사라지는 통에 여러 번 위기를 맞지만 어떻게든 영화가 상영될 마을의 영사 기사에게 필름을 전달하려 한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 <인생> 등 장이머우의 초기 대표작들에 서린 따스한 정서가 과거와 현재에 걸친 영화 매체에 대한 무조건적 애정과 조응하면서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영화, 보기의 미학>
넷플릭스
<원 세컨드>처럼 영화에 대한 애정
[리뷰 스트리밍] '원 세컨드'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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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증인>의 고등학생 임지우(김향기)는 “아마 나는 변호사는 못 될 거야. 자폐가 있으니까”라고 했다. 문지원 작가는 ‘아마’라는 부사에 기대 완전히 놓지 않은 가능성과 미래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 이야기를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이어간다. 우영우(박은빈)가 <증인>을 보지 않았다는 인용 조크 덕에 영화를 다시 보니 지우가 증인으로 섰던 1심 재판장과 영우가 변론을 맡은 첫 재판의 재판장(김학선)이 같고, 지우의 방문에 걸린 고래 모양 장식이 고래 사랑이 각별한 영우로 이어졌을까도 싶다. 둘의 세계를 연결하는 작은 매듭들이 반가운 한편, 영화에서 드라마로 이어지는 중요한 질문에 관해 곱씹게 된다.
<증인>에서 지우가 증언 능력을 의심받고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 있듯, 변호사 우영우 역시 비장애인에게 자폐인이란 정체성을 포함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겪는다.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 모두 장애인이 비장애인
[유선주의 드라마톡]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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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감독 김정민 / 출연 김희선, 정유진, 이현욱, 차지연, 박훈 / 플레이지수 ▶▶▶
혜승(김희선)의 삶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남편이 상간녀 진유희(정유진)에게 속아 횡령범 및 성폭행범으로 몰리자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다.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딸에게까지 향하는 사회의 지탄에 혜승의 일상은 녹록지 않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찾아간 고위층 결혼중개업체 렉스에서 진유희를 다시 만난 후 혜승의 복수가 시작된다. 렉스의 최고 등급 ‘블랙’에 속한 게임계 재벌 이형주(이현욱)와 결혼하려는 진유희의 목적을 방해하고 그녀의 파렴치한 실체를 사회에 폭로하는 것이 혜승의 계획. 하지만 진유희가 차기 대선 후보이자 친부인 손필영(남명렬)의 기세를 이용하면서 외려 혜승의 교수 일과 가족 관계에 치명적인 위협이 가해진다. 그러던 중 혜승과 이형주의 관계가 서서히 깊어지면서 혜승과 진유희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다분히 프랑수아 트뤼포의 <검은 옷의 신부>를 떠올리게
[리뷰 스트리밍] '블랙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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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에 잠입한 남파 간첩 ‘동림’이 북한 고위 인사의 탈북 작전을 무산시키고, 해외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는 그의 정체를 밝혀내라는 임무를 각각 부여받는다. 서로의 정체를 의심하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상대를 궁지에 몰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두 사람의 뒤틀린 관계는 한국 근현대사의 혼돈스러운 정세를 경유하며 서늘하게 고조된다. <헌트>는 80년대 초 혼란스러운 정국을 배경으로 스파이물의 팽팽한 심리전과 화려한 총격, 카 체이싱 액션을 균형 있게 녹여낸다. 잘못된 신념에서 비롯된 파국을 날카롭게 묘사하며 이 시대를 바라보는 연출자의 시선이 선명히 드러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모개 촬영감독, 박일현 미술감독, 허명행 무술감독 등이 참여해 프로덕션의 완성도를 높였고, 크고 작은 역할의 카메오로 얼굴을 비치는 유명 배우들을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연출과 공동 각본, 주연까지 맡은 이정재는 첫 연출작으로 제75회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
[Coming soon] 연출과 공동 각본, 주연까지 맡은 이정재 감독의 첫 연출작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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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언즈2> 관람을 위해서는 복장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게 됐다. 영국의 일부 영화관에서 ‘정장을 입고’ 극장을 찾은 10대들의 입장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몇몇 극장들의 이런 단호한 결정을 바라보는 영국영화계는 코로나19 이후 예측하기 어려웠던 극장 관람 행위의 진화를 방해하는 섣부른 결단이라는 의견과 대다수 선량한 관객의 영화 관람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단이라는 쪽으로 팽팽히 나뉜 상태다.
사건의 발단은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은 한 10대 그룹이 <슈퍼배드> 시리즈의 악당 펠로니우스 그루의 복장을 하고 난폭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촬영해 소셜 미디어 틱톡에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이 동영상의 조회수가 100만건 이상 올라가자 스스로를 ‘젠틀미니언즈’라 칭하며 ‘정장을 입고, 상영 중 큰소리로 환호하고 박수를 치거나 스크린을 향해 물건을 던지는 모습’을 촬영해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는 것이 <미니언즈2> 팬들 사이에서 놀이가 된 것이다.
[런던] 극장에 복장 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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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회복세가 뚜렷하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표한 2022년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매출액은 4529억원으로 2021년과 비교해 143.1%(2666억원) 증가했다. 상반기 전체 관객수 역시 4494만명으로 지난해 대비 124.4%(2492만 명)가 늘었다. 4월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됐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4월25일부터 영화관 취식까지 허용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후 여러 차례 개봉을 미뤄오던 기대작들이 속속들이 개봉을 이어갔다. 5월4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시작으로 5월18일 <범죄도시2>가 개봉하면서 5월 매출액과 관객수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특히 <범죄도시2>는 7월21일 기준 누적 관객수 1267만명을 넘어서며 올 상반기 흥행 1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첫 번째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6월에도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
되살아난 극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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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이스는 트위터의 실시간 음성 대화 기능입니다. <씨네21>은 2022년부터 트위터 코리아와 함께 매주 목요일 또는 금요일 밤 11시부터 자정까지 1시간 동안 영화와 시리즈를 주제로 대화를 나눕니다. 스페이스는 실시간 방송이 끝난 뒤에도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
(https://twitter.com/cine21_editor/status/1547579989201002500)
김혜리 @imagolog 남자 인간을 뜻하는 영단어 ‘man’의 복수형 ‘men’(<멘>)이 오늘 이야기할 영화 제목입니다. <엑스 마키나>로 연출 데뷔를 하고, <서던 리치: 소멸의 땅> <데브스>를 만든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작가 출신임에도 비주얼 전략에 있어 많은 차별화를 시도해왔어요. 무의식을 동요하게 하는 이미지로 공포감을 주는 데 발군의 실력을 보여왔습니다.
김혜리 @imagolog 가랜드의 세 번째 장편 <멘>의 주연은 명백하
[트위터 스페이스] 김혜리의 랑데부: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