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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이 상대의 사냥터에서 서로를 뒤쫓는다. <헌트>는 1980년대 신군부 정권의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를 배경으로 시대의 모순 한가운데 던져진 이들의 암투를 그린다. 미국 순방 중 대통령 암살 기도가 벌어지자 이를 사전에 막지 못한 안기부 내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이어 일본에서 진행된 북측 고위 인사 망명 작전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내부 첩자가 있다고 확신한 윗선에선 소문으로만 떠돌던 북한 스파이 ‘동림’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해외팀 차장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는 목적을 숨긴 채 서로를 의심하며 뒤를 캐기 시작한다.
이정재가 기획과 공동 각본, 연출과 주연까지 맡은 <헌트>는 짜임새가 돋보이는 첩보 액션물이다. 남북 대치 상황에 따른 첩보전이 난무하는 가운데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 세력은 국내 통제에도 정신이 없다. 1980년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바탕으로 핵심 정보기관에서 일어나는 암투와 음모를 그린
[리뷰] 첩보보다 액션. 직진 상승의 매력과 편의주의의 함정 사이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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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로 수감 중인 전직 야쿠자 미카미 마사오(야쿠쇼 고지)는 13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를 앞두고 있다. 갱생의 의지로 가득한 채 한층 들뜬 그지만 반성을 강요하는 교도관에게 자신의 판결이 부당했다고 반발하는 모습은 불안한 행보를 예고한다. 짐작대로 미카미가 출소 후 느끼는 격세지감은 수용하기 버거운 수준이다. 야쿠자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향한 냉정한 시선의 감옥에서 미카미는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기도, 멀쩡히 사교하기도 쉽지 않다. 다행인 것은 타인과의 접촉면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그를 향한 사회의 냉대가 환대로 바뀌어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량배와 마주할 때 폭주하는 것과 같이 폭력적인 과거 영광의 시기에 심정적으로 가깝게 다가갈수록 생기를 되찾는 미카미에게 현실에 순응하는 일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보인다.
전작 <유레루> <아주 긴 변명>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모진 상황에 내몰린 인물의 심리를 깊이 탐구하는 데 큰 관심을 둔다.
[리뷰] ‘개인 대 사회’ 구도에 관한 모호한 작법 '멋진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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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난 아저씨처럼 살지 않을 거야.” 얼핏 평범한 대학생 같은 유정(고윤정)은 들여다볼수록 궁금해지는 캐릭터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며 운동권 친구들을 돕는데 정작 본인은 어째서 데모에 참여하지 않을까? 박평호(이정재)는 왜 아버지와 다름없는 태도로 유정의 주변을 맴돌며 그를 돌봐주는 것일까? 안기부 요원들만큼이나 유정은 <헌트>의 서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드라마 <스위트홈> <로스쿨> <환혼>에 출연한 고윤정은 신인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담대한 태도로 첫 영화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 신인배우들은 큰 스크린으로 자기 모습을 보는 걸 더러 낯설어하기도 하는데, 어땠나.
=얼마 전에 <탑건: 매버릭>을 봤다. <헌트> 찍고 극장 가서 본 첫 영화였는데 톰 크루즈 얼굴이 정말 크게 나오는 거다. 나도 저렇게 나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그렇게
‘헌트’ 배우 고윤정, “담대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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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 수행을 위해 잔인한 고문도 서슴없이 행한다. 안기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 입장에선 같은 팀 요원인 장철성(허성태)만큼 미더운 후임도 없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장덕수와 달리 문신 하나 없는 멀끔한 정장 차림이어서일까. 비밀리에 움직이며 상대를 겁박하는 <헌트>의 철성은 어쩐지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허성태는 “이정재, 정우성 선배 사이에서 분장을 받는 스리숏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너무 뿌듯했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며 <헌트> 촬영 현장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이거 진짜 어떻게 다 찍으실 건가요?”라고 물었다고.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엄청 휘몰아치고 있었으니까. (웃음) 그런데 계획대로 영화에 잘 구현돼서 깜짝 놀랐다. 이정재 선배가 장면 하나하나 다 신경 쓰면서도 그 안에서 본인도 연기까지 하는 걸 보면서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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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배우 허성태,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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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진이 연기하는 여성들은 로맨스가 아닌 일에 대한 욕망으로 움직인다. 성취욕이 캐릭터의 신념과 행동을 결정하고 감정을 좌우한다. <헌트>의 방주경 역시 안기부 해외팀 박평호 차장(이정재)의 오른팔로서 완벽한 수행 능력을 보여주는 직장인이다. 안기부 국내팀과 해외팀이 조직에 잠입한 남파 간첩 동림으로 상대를 지목하며 모략을 펼칠 때, 전혜진의 거침없는 돌파력과 꼿꼿한 기세는 첩보물의 긴장감을 조직하는 핵심 뼈대가 된다.
- 안기부 해외팀 에이스 방주경은 어떤 정치적 입장이 두드러지기보다는 그냥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80년대 초 안기부 배경을 고려할 때 일반적으로 상상되는 이미지는 아니었다.
= 방주경은 급한 마음으로 계속 돌진하는 사람 같았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박평호 차장을 잘 보좌해서 국내팀에 뒤처져서는 안된다는 의욕이 넘쳤을 것이다. 일을 즐기고 갈망하는 면에 포커스를 두고 너무 심각하게 접근하지 않았다. 고문 장면에서도 다른 인물들은 눈
‘헌트’ 배우 전혜진, “기세로, 돌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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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없다> 이후 이정재와 정우성이 투톱 주연으로 재회하는 순간을 많은 이들이 갈망한 만큼 배우 입장에서는 출연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이정재 배우보다 먼저 제작을 경험하고 장편영화 연출을 준비했던 정우성은 배우가 감독을 맡을 때, 더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업계 분위기를 잘 알기에 무게를 나눠지기로 결정했다. 고로 이 프로젝트가 성사됐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우성이 <헌트>의 시나리오와, 감독 이정재에 보낸 믿음을 증명한다.
- 제목이 ‘남산’이던 시절부터 이정재 감독이 <헌트>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과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사업 동료다. 지금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시나리오를 발전시킨 과정은 어땠나.
= 아티스트 스튜디오에서는 투라인으로 각자 관심 가는 작품을 제작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정재씨가 ‘남산’ 시나리오에 관심을 보일 때도 그냥 옆에서 응원하는 입장이었다. 시나리오가 바뀔 때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라든지
‘헌트’ 배우 정우성, “함께라는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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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성공적인 연출 데뷔작이다. 배우 이정재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연기와 연출은 엄연히 다른 분야라 그의 첫 연출 데뷔작에 쏟아진 기대에는 일말의 의심이 섞여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감독 이정재는 실로 놀라운 결과물을 보여준다. 극 전체를 조망하는 기획자의 시선. 자기 결정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되새김질하는 연출자로서의 태도. 그리고 여전히 좋은 배우. <헌트>에서는 여러 역할을 맡았지만 결국엔 이정재라는 대명사로 수렴된다. 배우 출신 감독이란 수식어는 거추장스럽다. 어떤 역할을 수행하건 그저 영화인 이정재의 차기작이 벌써 기다려질 따름이다.
- 칸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를 했다. 칸에서의 반응과 국내 시사 후의 반응이 달랐나.
= 차이가 꽤 있다고 느낀다. 칸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서 공개한 이후 다양한 반응이 나왔는데 아쉬움을 표하는 분들도 있었다. 국내 시사를 통해 미리 본 분들이 남긴 댓글이나 SNS 반응을 보니 “왜
'헌트' 이정재 감독, “후회없이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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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었을 때부터 화제를 모은 <헌트>가 마침내 여름 극장가의 문을 두드린다. <헌트>는 1980년대 국가안전기획부에 잠입한 북한 간첩을 둘러싼 정보기관의 혈투를 그린 첩보 액션물이다. 해외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가 대립하며 내부 스파이를 추적하는 가운데 대통령 암살 음모가 더해져 보는 이가 정신없게 휘몰아친다. 배우 이정재가 기획, 공동 각본, 연출,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연출 데뷔작이라 믿기 힘들 만큼 준수하다. 첩보물 특유의 긴장감, 시대를 고증한 리얼리티, 매끄럽고 짜임새 있는 액션과 화려한 볼거리, 1980년대의 어지러운 정국에 대한 묘사까지 촘촘히 엮어낸, 풍성한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헌트>의 완성도를 빛내는 건 믿고 보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다. 영화의 두 기둥인 이정재·정우성 배우, 이들의 든든한 조력자인 국내팀 요원 장철성 역의 허성태와 해외팀 에이스 방주
매끈한 한국형 첩보 액션이 왔다!: ‘헌트’ 이정재, 정우성, 전혜진, 허성태, 고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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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출간된 영화비평서 3권
단정·섬세한 김혜리 영화산문집
연서 같은 주성철의 첫 영화평론집
‘시네필’들의 즐거운 수다 담은 책도
묘사하는 마음
김혜리 지음 l 마음산책 l 1만8000원
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주성철 지음 l 씨네21북스 l 2만3000원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김도훈·김미연·배순탁·이화정·주성철 지음 l 푸른숲 l 1만6000원
영화 보고 기사 쓰는 일이 복인 건 맞지만, ‘영화 기자’에게도 즐겁지 않은 순간이 있다. 그것은 별 감흥이 없는, 또는 공감 가지 않는 영화에 대해 기사를 써야 할 때 찾아온다. 내가 영화를 오독한 건 아닌지(거장의 베를린영화제 수상작이야!), 무식해서 숨겨진 의미를 못 본 건 아닌지(한 번 보고 판단하는 게 말이 돼?)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없는데 마감은 코앞이다. 누군가는 ‘보고 느낀 대로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실제 그렇게 쓴 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쓴소리를 하는 일이 망
[책&생각] ‘쓴소리+★’이 영화 평론의 전부? 애정 없으면 못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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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는 4일 자사가 후원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아트+필름 갈라’의 올해 수상자로 박찬욱(사진) 감독을 선정해 발표했다. <헤어질 결심>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그는 한국인으로 처음 선정됐다.
박 감독은 미국 아티스트 헬렌 파시지안과 함께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트+필름 갈라는 현대 미술과 영상 예술 발전을 도모해온 거장들의 족적을 기리며 운영 기금을 모금하는 연례 이벤트로, 구찌는 11년째 타이틀 후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아우디는 갈라 후원사이다.
이 미술관의 한인이사 에바 차우와 할리우드 스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공동의장을 맡아 제11회째인 올해 행사는 오는 11월 5일 열린다.
한겨레 서정민 기자
LA카운티 미술관 ‘아트+필름 갈라’ 박찬욱 감독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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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히사이시 조의 음악
가사 없이 분위기를 누릴 수 있는 음악을 좋아한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들으면서 드라이브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영화 <레퀴엠>
기대를 하지 않고 내려놓는 것에 익숙해지려는 타입이다. 희극보다 비극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비극은 사람이 깊어지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골프
좋아하는 것들을 꼽다보니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사색하는 행위를 즐긴다는 걸 알게 됐다. 골프도 조용히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 좋아한다.
영화 <더 헌트>
심리학에 관심이 생길 만큼 인간의 인식에 관한 통찰을 보여주는 영화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의심’이라는 소재와 북유럽 스타일의 미장센이 좋아 반복해서 보는 영화 중 하나다.
제프 크리스텐슨 <저스트 비즈니스>
[LIST] 배우 이현욱의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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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유도 선수가 만화 잡지 편집자로 성장하는 일본 <TBS>에서 방영한 <중쇄를 찍자!>를 보며 주인공 쿠로사와 코코로(구로키 하루)의 체력을 부러워했다. 코코로는 많이 먹고 힘차게 움직인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나란히 있으면 망설임 없이 계단을 오르는 쪽이다. 몸을 단련해 에너지를 담는 그릇의 용량을 키우고, 목표한 곳에 남김없이 힘을 쓰는 신체를 어떻게 선망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선망은 부채질하는 주체와 목적이 또렷하게 느껴지며 잦아들었다. 부상으로 선수 생명이 끝나자 꿈의 방향을 바꿔 유도로 한판승을 얻을 때의 희열을 편집자로서 다시 느끼고 싶다는 게 코코로의 포부였다. 그리고 이는 목표를 세우고 전력을 다하기를 반복해온 체육인의 특질을 생산성에 적용해보는 기업과 사용자측의 소망 성취와 분리되지 않는다. 지치지도 않고 힘내는 몸과 정신이 배신 없는 성과를 내는 판타지를 지금 여기서 반복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중쇄를 찍자!> 한국판 리메
[유선주의 드라마톡] ‘오늘의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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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 재킷>
티빙
1996년 뉴저지고등학교 여성 축구부 단원들은 전국대회 출전을 위한 비행길에 오른다. 하지만 비행기는 추락하고, 소녀들은 황량한 산맥에 19개월간 조난된다. 25년 후 사고에서 살아남은 쇼나, 나탈리, 미스티, 타이사는 애써 자신의 일상을 꾸려가지만 여전히 조난지의 기억으로 고통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들이 조난지에서 저지른 끔찍한 일에 관해 알고 있는 의문의 존재가 이들을 협박해온다. 연출은 생존물의 서스펜스, 청춘물의 산뜻함, 스릴러의 공포 등 다채로운 장르와 감정을 자연스레 넘나들고, 배우들은 이를 전부 체화하여 개별 캐릭터의 인상을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각인한다. 제74회 에미상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루시와 데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코미디 쇼 작가이자 배우이며 다수의 시상식에서 통렬한 유머의 모놀로그로 화제를 모은 에이미 폴러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데뷔했다. 다큐멘터리 <루시와 데시>는 미국 시트콤 역
[리뷰 스트리밍] ‘옐로우 재킷’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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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감독 조 루소, 앤서니 루소 / 출연 라이언 고슬링, 크리스 에반스, 아나 데 아르마스, 빌리 밥 손턴, 레게 장 페이지 / 플레이지수 ▶▶▷
2003년 플로리다 주립 교도소 면회실,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피츠로이(빌리 밥 손턴)는 코틀랜드 젠트리(라이언 고슬링)에게 감형을 조건으로 CIA 기밀 프로젝트인 시에라 프로그램의 요원으로 합류할 것을 제안한다. 이날 이후 코틀랜드는 코드명 시에라 식스로 활동한다. 2021년 방콕에서 카마이클(레게 장 페이지)로부터 미션을 하달받은 식스는 사살해야 할 타깃이 자신과 같은 시에라 프로그램의 요원 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포로부터 시에라 프로젝트의 기밀이 담긴 USB를 건네받는다. 식스는 시에라 프로그램의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그런 식스를 두고 볼 수 없는 카마이클은 잔혹한 킬러 로이드 핸슨(크리스 에반스)을 사적으로 고용해 USB를 찾고 식스를 제거할 것을 명한다. 한편 또 다른 CIA 요원인 미란다(아나 데 아르마스
[리뷰 스트리밍] ‘그레이 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