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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상상>의 첫 번째 에피소드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과 <천국은 아직 멀어>에 출연하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두 차례 호흡한 배우 현리는 감독의 유명한 리허설 방식에 관해 흥미로운 부연을 해주었다. 감정을 뺀 채 대사를 읽되 “상대 배우 뱃속의 종을 울리는 상상”을 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그는 매주 일요일 라디오 DJ를 할 때도 이 태도로 게스트와의 대화에 임한다. “타인의 말을 최대한 듣는 법을 배워간다”는 그는 대화에서도 상대의 뱃속 종을 청명히 울린다. 캐릭터간 장구한 대화가 서사를 축조하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세계에 현리가 더없이 어울리는 이유일 테다. 한국인 배우 현리는 일본과 영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연세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다. 3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대학만 졸업하면 하고픈 걸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 순전히 자신의 언어 능력이라면 졸업을 빨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법대에 진학했다. 그의 언어 감각은
[WHO ARE YOU] '우연과 상상' 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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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정준호)은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어선 ‘어부바호’를 몰며 홀로 어린 아들 노마(이엘빈)를 키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남동생 종훈(최대철)은 마흔몇의 나이에 모은 돈도 없으면서 덜컥 두 바퀴 띠동갑의 중국계 여성을 신붓감으로 데려와 결혼하겠다며 생떼를 쓴다. 나이에 비해 조숙한 아들에겐 죽은 아내에 관해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지갑 사정은 빠듯한데, 9년째 대출 중인 선박 회사에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어부바호를 더이상 몰 수 없다. 그 와중에 노마는 선박 회사 전무의 아들과 갈등을 빚고, 종범은 고용 관계뿐 아니라 보호자 관계로도 전무와 얼굴을 붉힐 일이 생긴다. 그럼에도 종범은 가부장으로서 어린 아들과 철없는 동생 앞에서 언제나 밝고 든든한 모습을 보인다.
<어부바>에는 눈에 띄는 독창성보단 가정의 달 개봉에 걸맞은 안온하고 익숙한 서사로 가득하다. 하늘을 보며 사별한 가족의 빈자리를 떠올리는 구성원의 슬픔, 영화의 제목을 듣는
[리뷰] '어부바' 답보와 퇴보 사이 표류하는 가족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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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들의 얼굴을 웃는 얼굴로 바꿔놓는 저 은은한 미소의 소유자는 누구일까. 바로 베트남 출신 승려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이다. 마크 J. 프랜시스와 맥스 퓨 감독은 스님의 명상 공동체 플럼 빌리지에서 머물며 그가 뇌출혈로 쓰러지기 직전까지의 3년을 담은 다큐멘터리 <나를 만나는 길>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거목이 궁금한 관객에게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을 자료다. 베트남 반전 운동을 벌인 틱낫한이 베트남 정부로부터 망명을 강요받자 프랑스로 건너가 플럼 빌리지를 설립했다는 몇줄의 자막이 사실상 그에 관한 유일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수행하며 틱낫한 정신에 감응한 두 감독은 혹여나 스승을 우상화할까 염려해 의도적으로 그와 거리를 두는 촬영 방식을 택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플럼 빌리지 내부를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본 카메라는 외부 활동에 나서는 제자들을 따라 도시로 나갔다가 그들의 가족을 만나기도 한다.
<나를 만나는 길>은 명상이
[리뷰] 스승 대신 제자들이 이끄는 무던한 명상 체험, '나를 만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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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소치틀 고메즈)는 어느 날 멀티버스 사이를 오갈 수 있는 힘에 눈을 뜨지만 완전히 제어하지 못한다. 정체불명의 악마가 아메리카를 죽이려 하자 다른 우주의 스트레인지가 이를 막아보지만 결국 살해당한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로 넘어온 아메리카는 어벤져스 멤버인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도움과 보호를 받는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웨스트뷰 사건 이후 잠적한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곧바로 그녀가 사건의 진정한 흑막, 스칼렛 위치임이 드러난다. 스칼렛 위치는 자신의 원하는 멀티버스로 가기 위해 아메리카의 힘을 흡수하려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아메리카는 압도적인 힘을 지닌 스칼렛 위치를 피해 또 한번 다른 멀티버스로 도망치지만 그의 끈질긴 추격을 받는다.
제목 그대로 대혼돈과 광기로 가득하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연출을 맡은 샘 레이미 감독은 호러와 유머, 괴이한 액션이 뒤섞인 자신의 색깔을 마블 유니버
[리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의외로 단순한 이야기+이미 봤던 상상력+조악한 듯 현란한 눈뽕+샘 레이미가 늘 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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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콜센터에서 영업 일을 하는 에밀리(루시 장)는 룸메이트를 찾고 있다. 노령의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들어간 뒤, 넓은 아파트를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진 탓이다. 근처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카미유(조나단 아모스)가 공고를 보고 그녀를 찾아오고, 이내 두 사람은 선을 넘는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카미유에게 에밀리가 반기를 들면서, 둘 사이에는 금이 간다. 한편 보르도 출신의 늦깎이 대학생 노라(노에미 메를랑)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상경한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극복하려고 그녀는 파티에 과감한 복장으로 참석하는데, 우연히 선택한 가발 때문에 소동에 휘말린다. 언뜻 캠걸 앰버 스위트(카미유 베토미에)와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수모를 당한 것이다. 이후 노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나선다. 그렇게 카미유와의 교류가 시작된다. 카미유를 중심으로 세 인물들은 서로 연결된다. 과도하게 직설적인 이들의 상황은, 실상 우리 삶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리뷰] 타이트한 몽타주 사이, 음악처럼 흐르는 대사들 '파리, 13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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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있었다. 운동회가 끝나고 천원에 산 병아리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며칠 지나지 않아 숨이 끊어지자 온 동네 떠나가라 울어대던 시절이.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아니 무뎌지고, 외부의 규격에 순응해가는 것이 어른이라면 아예 성장을 포기하고 싶었던 남자가 있었다. 유원지에 숨어 사는 어설픈 마술사 리을(지창욱)을 두고 누군가는 낙오자라 폄훼할지 모른다. 하지만 계급의 벽에 부딪쳐 굴욕을 자처하는 아이(최성은)와 잘 닦인 아스팔트가 보장하는 미래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처음으로 질문하는 일등(황인엽)에게 리을은 현실을 망각하는 찰나의 환시를 경험케 한다. 지창욱은 지독히 현실적인 상황에서 마법을 논하는 <안나라수마나라>의 모순형용을 성립시키는 중심축이다. 데뷔 초부터 주목받은 미남 청춘 스타에 머물지 않고 치열하게 다양한 무대의 문을 두드렸던 지창욱은 판타지와 평범성을 고르게 추구한다. 리을은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풍문처럼 “진짜 잘생긴 미술사”지만, 이따금 스치는 눈빛에
'안나라수마나라' 지창욱: 하고 싶은 대로,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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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코로나19로부터 한 걸음을 내디뎠다.국내는 전주, 해외는 칸에서 영화제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사진은 2011년 칸국제영화제 기자실 풍경. 다시 땀나게 움직여야겠다.
[ARCHIVE]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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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크 시즌4 파트2 / 넷플릭스
5년간 이어온 시리즈가 시즌4 파트2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오자크> 시리즈를 충실히 관람해온 팬이라면 아쉬움이 클 테다. 시리즈는 방대하나 이야기의 골자는 간단하다. 멕시코 카르텔의 돈을 빼돌리다 덜미가 잡힌 시카고 재무 컨설턴트 마티 버드가 가족의 연명을 위해,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출발을 노리며 매 시즌 주어진 고비를 넘기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번 시즌4 파트2에서는 집을 떠나려는 마티의 자녀를 설득하는 문제와 투옥된 카르텔 수장을 멕시코로 안전하게 돌려보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오자크> 시리즈는 누아르 장르의 외피를 두른 가족 드라마다. 마티 집안뿐 아니라 계급을 달리하는 랭모어, 스넬 집안 사이의 갈등까지 포함해 현대 미국 가정의 불안과 공허를 직시한다.
소공녀 / 왓챠, 웨이브, 넷플릭스 외
미소는 명예나 출세, 부에 관심이 없다. 그저 파출부 일을 하며 하루치의 위스키와 담배만 있으면 그만이
[리뷰 스트리밍] '오자크 시즌4 파트2'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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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사찰 활엄사 터에서 사람 키의 두세배되는 불상의 두상이 발견된다. 진양군청은 관광 진흥을 노린 전시를 기획하면서 불상의 눈에 둘러진 결계를 풀어버린다. 불상이 세상에 드러난 후 해괴한 일들이 일어난다. 불상의 눈을 마주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기억 저편의 환영을 보고 이를 뿌리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인까지 저지른다. 하늘에선 검은 비가 내리고 까마귀들은 사람들을 공격한다. 한편 유망한 불교 고고학자였지만 지금은 잡지나 유튜브에서 괴담 콘텐츠를 다루는 신세인 기훈(구교환)은 스님들의 도움으로 이 사태가 고려 시대의 원귀가 들러붙은 귀불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아내 수진(신현빈)의 안전을 살피러 진양군으로 향한다.
퇴마를 주제로 한 오컬트의 향취로 시작하는 <괴이>는 회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장르와 절묘히 접합한다. 귀불의 저주로 환영 속에 갇힌 사람들이 타인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아수라장의 광경이 강조된 2, 3화는 좀비물과 재난영화를 연상케
[리뷰 스트리밍] 퇴마를 주제로 한 오컬트의 향취, '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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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솔(‘모태 솔로’의 줄임말로, 연애 경험이 한번도 없는 사람을 의미함)이란 무엇인가. 연애와 우주여행의 공통점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우주여행’님 말씀에 따르면 ‘돌체 앤드 가바나’를 모르는 사람은 모솔이다. 모솔은 패션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돌체라곤 커피밖에 모르지만 라이트 노벨 캐릭터 바이올렛 에버가든이 여자 친구라고 소개한 ‘마이크책’님은 모솔일까 아닐까? 첫 데이트 식사 후 결제는 무조건 더치페이할 거라는 ‘연애세포’님에겐 모솔로서의 신념이 있다. “실패했던 경험이 많아서 다 쏟아주면 안되겠다.” 혼자 더치페이를 주장하지 않아 모솔이 아니라고 의심받은 ‘노리공원’님, 그러나 그 역시 “(여자와) 카톡할 때 말 안 끊기게 하는 방법”을 검색해본 적 있는 학구파 모솔이다.
모솔을 일종의 실패자로 낙인찍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도, 의외로 이 방송에 출연한 남성들은 자신이 ‘답 없는 모솔’이라는 데 자부심을 드러내며 모솔끼리의 동질감 안에서 안정을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유튜브 PIXID 채널: 모쏠 단톡방에 숨은 유죄인간 찾기(FEAT.이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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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한 생각>의 대니얼 카너먼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노이즈: 생각의 잡음>은 부제 그대로 ‘판단을 조종하는 생각의 함정’을 이야기한다. <선택 설계자들>의 올리비에 시보니, <넛지>의 캐스 R. 선스타인이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이 책은 우리가 판단을 내릴 때 오류가 발생하는 원인을 크게 편향과 잡음으로 이야기한다. 편향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논의가 존재한다. 선거철이 되면 누구나 자신만의 정치적 편향과 타인의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잡음은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으며, 건강한 논의를 오염시키는 주범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같은 사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극과 극으로 갈릴 때, 갑론을박의 이유가 잡음일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와 그 예측 방법은 무엇일까. 형사사법제도부터 과학수사, 의료 가이드라인과 채용 시스템 등 중요한 판단이 내려지는 여러 사례가 언급된다. 단 한번의 결정 기회만이 주어지는 중요한 판
<노이즈: 생각의 잡음-판단을 조종하는 생각의 함정>, 더 잘 판단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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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매버릭>이 영국 내 공식 개봉일인 5월25일보다 약 일주일 앞선 5월19일 런던 레스터 스퀘어의 오데온 극장에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 2월23일 ‘리빙 위드 코로나19’ 정책을 발표하고, 4월1일을 기점으로 코로나19와 관련한 모든 제약 사항을 해제했다.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영화와 TV 자선단체’(The Film and TV Charity)는 지난 4월7일, 72번째 ‘로얄 필름 퍼포먼스’ 작품으로 <탑건: 매버릭>을 선정했음을 알리며, 2019년 12월4일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을 마지막으로 2년 반 동안 중단됐던 자선 모금 행사의 귀환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행사의 참가 티켓은 4월19일 공식 판매를 시작했는데, 시작 당일 모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탑건: 매버릭>의 프로듀서인 제리 브룩하이머는 “영국 영화산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놀라운 자선단체와 뜻을 같이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전했다.
[런던] '탑건: 매버릭' 72번째 '로열 필름 퍼포먼스' 작품으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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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9일 넷플릭스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넷플릭스의 45% 주가 하락과 함께 미국에 상장된 미디어 회사 중 15% 이상 주가가 하락하지 않은 회사는 없었다. 미디어 업계의 트렌드세터인 넷플릭스의 성장 정체로 인해 코로나19 이후 미디어 업계에 더이상 장밋빛 미래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시작하면 따라하던 후발주자들은 어쩌면 쇼크에 빠질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가 주춤할 때 치고 나가려는 회사들도 있다. 하나는 편당 720억원 이상을 들여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를 제작하고 있는 아마존과 또 하나는 넷플릭스 외에 한국과 관련된 콘텐츠로 전세계의 미디어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기대하지 않았던 복병. 애플이다. 애플이 디즈니+와 함께 2019년 11월 Apple TV+를 론칭했을 때만 해도 ‘돈만 쓰고 아마 다른 회사를 인수할 것이다’ 하는 전망들이 많았다. 제품을 더 팔기 위한 마케팅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미디어 플랫폼에 진심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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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극장가의 새로운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5월4일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약진이 심상치 않다. 개봉 전부터 사전예매 81만2923장을 기록하면서 직전 흥행작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사전예매 75만5086장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이는 2020~22년 3년 사이의 사전예매량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개봉 이틀차인 5월5일에는 누적 관객수가 132만명을 넘어섰다. 이 역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개봉 2일차 누적 관객수 102만명을 웃도는 수치다. 연일 기록을 세우고 있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극장 활성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해볼 만하다. 한산하던 극장가가 다시 관객으로 북적이기 시작한 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된 영향도 크다. 조성진 CGV 전략지원담당은 “4월18일부터 상영관 내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4월25일부터 취식이
극장가, 드디어 부활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