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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희의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읽으면서 <파친코>의 선자가 자꾸 연상됐다.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재일 동포와 조선족, 탈북자의 삶은 자주 포개졌다가 흩어진다. 이들은 타민족에게 차별당할 뿐 아니라 같은 동포에게도 ‘너는 우리와 다르다’고 선 그어진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의 ‘나’는 중국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조선족이다. “한국인이냐”고 묻는 닝에게 나는 “아니죠. 중국이에요. 조선족”이라고 답한다. 앞은 국적, 뒤는 자신이 속한 민족이다. 나는 중국인 닝과 사귀고, 한국인 연주와 교류하면서 자신이 연주보다는 닝과 더 닮았다고 여긴다. 닝은 “넌 두 나라 말을 다 잘해서 좋겠다”고 하지만 나는 두 나라 언어 중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같은 소설 안에서 한국 독자들이 피식할 장면이 있다. 인물들은 자주 마라탕을 먹으러 가는데, 마라탕을 ‘얼얼할 정도로 매운 쓰촨성 유명 탕 요리’라고 설명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세상에 없는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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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맨_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스마일_김중혁 지음
세상에 없는 나의 집_금희 지음
사라진 반쪽_브릿 베넷 지음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개정판_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5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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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강수연에 대해 일상의 모습조차 영화 속 한 장면 같다고 누군가가 얘기해준 적이 있다.그런 그가 마치 영화처럼 한순간에 우리 곁을 떠나갔다.
1995년 10월22일. 영화 <지독한 사랑>의 첫 촬영이 있던 부산에서 천생 배우인 강수연은 이리도 아련하고 아름답게 빛났다.
[ARCHIVE]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영화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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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 배드민턴의 미래, 올림픽 유망주로 불렸던 박태양(박주현)이 3년간 잠적했다 돌아온다. 고작 하루 운동에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침대에 쓰러져 끙끙 앓던 태양은 먹던 떡을 계속 씹으며 중얼거린다. “어… 근데 맛있어.”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짜증이 뻗쳐도, 협회에 뇌물을 주었다는 오명을 써도,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연봉 1900만원짜리 선수로 ‘폭망’한 신세라도 떡은, 맛있다. 대개 드라마 속 인물들은 어떤 상황과 감정에 얼마나 일관되게 몰두했는지 보여주지만, 비참한 동시에 떡도 맛있을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내가 그렇듯이 너도 그럴 수 있다고 타인을 판단할 때 여지를 두게 되고, 부딪치는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어도 ‘캐붕’이 아니다. 배드민턴 실업팀을 배경으로 한 스포츠 로맨스 드라마 KBS <너에게 가는 속도 493km>의 허성혜 작가가 캐릭터 전반을 다루는 관점이다.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두고 흔히 ‘멘탈이 강하다’고 한다. 한 가지 감정,
[유선주의 드라마톡] '너에게 가는 속도 49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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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 넷플릭스
남성 임신부. 붙여 쓸 수 없을 듯한 두 단어가 합쳐진 세계가 펼쳐진다. 광고회사에 다니며 일과 일상 모두를 자신만만하게 꾸려가던 히야마 켄타로는 어느 날 갑자기 임신하게 된다. 상대는 비혼을 지향하는 여성 아키. 아키는 히야마의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어디선가 많이 들어봄직한 “내 아이가 맞냐”는 말부터 내뱉는다. 그 자리에서 여성의 일이라 여겨지던 임신과 출산이 남성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시리즈는 남성의 생물학적 전제를 전복함으로써 여성의 현실에 접근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래서 ‘남자다운 임신부’를 꿈꾸는 남성 임신부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여자답게’, ‘남자답게’ 같은 수사 속에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역할이 잠재돼 있다는 사실을 유머러스하게 비추니 말이다.
메기 /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외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남녀의 섹스 장면을 촬영한 엑스레이 필름이 유포된다. 그때부터 엑스레이에 ‘찍힌 자’를 찾아나서는
[리뷰 스트리밍]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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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킬러 빌라넬과 그녀를 추적하던 폴라스트리 이브의 애증 어린 관계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다. 미친 짓, 충동, 집착으로 요약 가능할 이브와 빌라넬의 관계는 4년여에 걸쳐 변화해왔다. 시즌1에서는 비밀리에 국제적인 암살 범죄를 추적하던 이브가 대담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용의자 빌라넬과 만나며 이끌림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이 그려진다. 사건의 대척점에서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하나의 짝패처럼 붙어버린 두 사람의 관계는 시즌2에 이르러 한층 고착되는 듯하다. 빌라넬은 이브를 정복하기 위해 그녀가 사랑하는 이들을 살해하고, 이브는 그런 빌라넬을 처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잔혹해진 자신의 모습과 가까워져 오는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빌라넬과 MI6으로부터 멀어지고자 시도한 이브의 서사는 시즌3에 담겼다.
이번에 공개된 시즌4에서는 이브와 빌라넬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감정선보다 장막에 가려 있던 범죄 조직 트웰브의 정체를 파헤치는 일이 중요하게
[리뷰 스트리밍] 마침내 종지부를 찍다 '킬링 이브 시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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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훈정
출연 신시아, 박은빈, 서은수, 진구, 성유빈, 조민수, 이종석, 김다미
배급 NEW
개봉 6월15일
2018년 개봉했던 <마녀>의 후속편 <마녀 Part2. The Other One>(이하 <마녀2>)이 4년 만에 극장가를 찾는다. 박훈정 감독이 누아르 <낙원의 밤>(2019) 이후 선보이는 신작인 <마녀2>는 비밀연구소가 초토화되어 홀로 살아남은 ‘소녀’(신시아)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소녀가 각기 다른 이유로 자신을 쫓는 여러 세력들과 대적하는 과정을 그린다. 만화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액션, 전작보다 더욱 디스토피아적인 미장센이 강화된 작품이 될 전망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론칭 카피에서 엿볼 수 있듯 박훈정 감독이 최초에 3부작으로 기획했던 <마녀> 시리즈의 기원을 보다 자세히 풀이할 작품으로도 기대된다. 한편 <마녀>가 김다미라는 새로운 배우의 발견을 통해 작품 바깥에서
[Coming soon] '마녀'의 후속편 '마녀 Part2. The Other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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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2002), <엔터 더 보이드>(2009), <러브>(2015), <클라이맥스>(2018) 등 가스파 노에 감독의 영화를 아방가르드, 컬트라는 단어로 수식하기엔 뭔가가 허전하다. 마약, 섹스, 죽음, 폭력, 엽기, 사이키델릭 이미지를 더한다면? 혹자는 이 리스트에 구토, 실신, 악마, 트라우마 같은 좀더 극단적인 단어를 더하려 할지도 모르겠다.
2022년 4월, 노에 감독의 신작 <소용돌이>의 시사회가 진행된 파리의 한 영화관. 새 작품을 한 문장으로 소개해 달라는 진행자의 요청에, 감독은 이번 영화는 손자, 손녀 그리고 조부모가 함께 손잡고 와서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분명하게 해두자면 그렇다고 어린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놀랍게도 그의 여섯 번째 장편은 한 80대 부부의 생의 마지막 날들을 담담히 기록하는 네오리얼리즘에 가까운 영화다. 정신과 의사였던 부인과 영화평
[파리] 가스파 노에의 첫 전체관람가 작품 '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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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축소됐던 영화 축제들이 정상화되면서 여름을 달굴 영화제가 잇따라 개막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무주산골영화제는 6월2일부터 5일간 총 31개국, 110편의 작품으로 관객을 맞는다. 무주산골영화제의 숲속 심야 상영 프로그램도 2년 만에 재개돼 무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낭만을 즐길 수 있다. 개막작은 김태용 감독이 총연출한 <新 청춘의 십자로>로, 무주산골영화제의 전통대로 올해에도 영화와 라이브 연주를 결합한 공연 형식으로 개막작을 선보인다. 더불어 10년간의 역대 개막작들을 앙코르 상영해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예정이다.
19회를 맞은 서울국제환경영화제도 같은 날 개막한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3578편이 출품되어 역대 최다 출품 기록을 세웠다. 올해 영화제의 주요 이슈는 대멸종의 시대를 눈앞에 둔 멸종 세대의 다양한 관점과 문제의식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생존 위기에 처한 시대를 16살 소녀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개막작 <
무주산골영화제,서울국제환경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 여름 영화 축제 잇따라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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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이스는 트위터의 실시간 음성 대화 기능입니다. <씨네21>은 2022년부터 트위터 코리아와 함께 매주 목요일 또는 금요일 밤 11시부터 자정까지 1시간 동안 영화와 시리즈를 주제로 대화를 나눕니다. 스페이스는 실시간 방송이 끝난 뒤에도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
김혜리 @imagolog 오늘 다룰 <우연과 상상>은 감독의 전작이자 생년이 같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와 친족 관계에 있어요. 알다시피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각색한 것인데, 하마구치가 무라카미로부터 원작 사용을 허락받기 위해 요청하고 답신을 기다리는 동안 <우연과 상상>이라는 단편 모음을 만든 거예요. 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부지런함인데, 하마구치 감독은 이런 방법론 자체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제를 비롯해 영화적 모티브들을 <우연과 상상> 속 세 단
[트위터 스페이스] 김혜리의 랑데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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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7일, 강수연 배우가 눈을 감았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었다는 비보를 접한 지 사흘 만에 들려온 돌이킬 수 없는 부고였다.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 속 그의 고요한 얼굴에 눈을 맞추자니, 이것이 영화 속 연출된 한 장면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온 영화인들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이다. 강수연 배우가 중환자실에 입원한 때부터 발인까지 계속해서 곁을 지킨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사장)을 비롯해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 등을 함께한 임권택 감독, 고인의 유작이 된 영화 <정이>를 만든 연상호 감독, 후배 설경구와 문소리 배우는 5월11일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통해 애통하고 애틋한 작별 인사를 전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믿기지 않는다. 여전히 그리고 도무지.
배우 강수연의 과거 기사들을 들춰보았다. 1995년 늦가을에 발행된 <씨네21> 28호의 특집 기사 주인공은
[이주현 편집장] 우리 기억 속의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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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차다, 여장부다, 올곧다 같은 표현만으로는 배우 강수연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그는 현장에서는 스탭과 배우들의 든든한 동료였고, 부산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 시절에는 정권의 외압에 맞선 든든한 방파제였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맞아 충격에 휩싸인 많은 동료 영화인들은 “배우로서 더 보여줄 게 많은데…”라며 침통해했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미안한 마음밖에 없다. 그를 부산국제영화제로 모셔온 사람이고, 떠밀다시피 집행위원장을 맡겼으니까. 미안함과 고마움이 크다. 곧 만나자는 말을 주고받았었는데…. 그럴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진짜 보고 싶다.
박중훈 배우
35년 된 동갑내기 오랜 내 친구 강수연 배우가 세상을 떠나서 가슴이 너무나 아프다. 아직 할 일이 많은 나이인데…. 이 친구와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를 즐겁게 촬영하고 개봉해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고 기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대를 함께 신나게 보냈었다. 선후배 동료에겐 한
[추모] 동료 영화인들의 추모 메세지: 당신을 오랫동안 그리워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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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똑같다 그러는데 그건 제가 여러분과 계속 가까이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계속 드라마하고 영화하고 그랬잖아요.” 4살 때부터 관객의 곁에서 연기해온 강수연은 ‘독종’, ‘깡수연’으로 불렸지만, 누구보다 다정했고 동료와 스탭을 든든하게 북돋웠다. “우리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에서 강수연 배우가 실제로 한 말을 명대사로 옮겼다. 영화인이 “다 같이 대접받는” 길을 닦기 위해 앞장섰던 그녀의 어록을 모았다.
"여배우지만 여배우를 너무 좋아해요. 가장 큰 경쟁 상대는 제 자신이죠.” _1996년 6월15일, 영화 <지독한 사랑> 개봉 직후 출연한 KBS <이문세쇼>
“부산국제영화제는 거의 매년 참석했고. 제가 되게 게을러요. 그래도 그런 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큰 상을 받는 데도 참석해야 하지만 축하를 해주기 위해서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없는
[추모] 시대를 대변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던 강수연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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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는 특정 시간을 그대로 복제해 간직한다. 예전과 다른 거리 풍경, 지금은 쓰지 않는 통신기기들, 그리고 이젠 곁에 없는 사람까지. 강수연의 필모그래피를 시간 순으로 정리하면서 그가 영화사에 남긴 의미를 조각 모으듯 하나씩 맞춰봤다. 그를 간직하고 있는 영화들의 이야기.
<똘똘이의 모험>(1971)
강수연은 동양방송(TBC) 전속 연기자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똘똘이의 모험>은 1946년에 제작된 동명의 작품을 새롭게 각색한 드라마로, 본격적인 어린이 드라마 시대를 열었다. 모험심 많은 어린이들이 힘을 합쳐 새총으로 악당을 혼내주는 권선징악형 이야기. 그중 이쁜이 역을 맡은 강수연의 명랑한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다.
<W의 비극>(1985)
아역배우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선택한 강수연의 성인 데뷔작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W의 비극’이라는 연극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혜미는 연습 중 상우와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추모] 1969년부터 2022년까지, 강수연이 걸어온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