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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정우성을 26년 만에 한 스크린에 담아낼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하다.”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는 <헌트>가 완성되기까지 몇년에 걸친 시간이 마치 몇 개월처럼 짧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신세계> <무뢰한> <아수라> <공작> 등 선 굵은 영화들을 제작해온 한재덕 대표에게도 <헌트>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다음에 하면 되지, 하다가는 영영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갈수록 커진다. 지금 이 순간 전력투구해도 원하는 바가 성사될까 말까다.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을 때, 지금 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한가운데를 헤치고 뚝심과 결기로 만들어진 <헌트>는 사나이픽처스의, 나아가 한국영화의 현재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중이다.
-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부문에서 먼저 공개한 뒤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공작>(2017)에 이어 두 번째다.
= 전략적으로 구상한 마케팅은
‘헌트’ 제작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 “보고 싶은 걸 끝까지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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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의 인물들이 1980년대 미국과 일본, 태국, 한국을 무대로 막힘없이 액션을 펼칠 수 있었던 데에는 박일현 미술감독과 허명행 무술감독의 힘이 컸다. <오케이 마담> <공작> <검사외전> <무뢰한> 등을 작업한 박일현 미술감독은 한국 올 로케이션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워싱턴과 도쿄, 방콕의 풍경을 스크린에 그대로 구현해냈다. <반도> <D·P> <킹덤: 아신전> <범죄도시2>에 이어 <헌트>에 참여한 허명행 무술감독은 이정재 감독이 요청한 ‘리얼리티와 박력’을 놓치지 않으면서 인물의 동선과 액션을 설계해나갔다.
방콕 총격 신의 액션 디자인
“이 많은 사람들의 동선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막막함은 있었다. 그래서 상황의 순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대통령의 차에 큰 데미지를 주고 싶어서 저격병들로 하여금 마치 가미카제처럼
영화보고 읽으면 영화가 더 재밌어진다! : 주요 공간별로 살펴본 <헌트>의 미술과 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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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데뷔작이 탄생했다. 이정재가 주연과 연출을 맡은 <헌트>는 쉴 틈 없는 전개와 밀도 높은 장면으로 관객을 만족시킨다. 시대적 모순을 담아낸 이야기,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의 대결을 보는 맛도 각별하지만 이 영화의 진가는 액션의 짜임새와 정밀한 시대 재현에 있다. 1980년대 특유의 분위기를 생생히 살리는 가운데 미국, 일본, 한국, 태국을 무대로 다채로운 구성의 액션이 시각적 쾌감을 더한다. <씨네21>에서는 박일현 미술감독, 허명행 무술감독에게 <헌트>의 놀라운 장면들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물었다. 여기에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가 또 다른 각도에서 <헌트>를 향한 여정을 안내해줄 것이다. <헌트>를 만든 사람들이 전하는 진짜 <헌트>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헌트'를 만든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 박일현 미술감독, 허명행 무술감독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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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도 콘서트를 하러 세번 이상 방문한 적은 없다. 이번 콘서트가 여러모로 뜻깊은 시간이 될 거라 기대한다.” <라라랜드>로 2017년 아카데미, 골든글로브에서 주제가상과 음악상을 수상하고 <퍼스트맨>으로 2019년 골든글로브 음악상을 거머쥔 저스틴 허위츠 음악감독이 8월11일 개막하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위해 내한한다. 저스틴 허위츠 음악감독은 8월13일, 제천 비행장 무대에서 서울그랜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재즈빅밴드, 뮤지컬 배우 민경아, 이충주와 함께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여름의 제천에 영화음악이 울려퍼지기 전, 저스틴 허위츠 음악감독과 나눈 대화를 전한다.
- 스페셜콘서트의 세트리스트(공연의 노래 목차, 순서를 담은 리스트)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 <라라랜드> <위플래쉬> <퍼스트맨> 그리고 데이미언 셔젤 감독과 처음 작업한 <가이 앤드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의 수록곡 중 나름 의미 있
'라라랜드' 저스틴 허위츠 음악감독, “영화가 끝난 자리에 음악이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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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놈이다>(2015) 이후 2016년 중국 개봉한 한중 합작영화 <하유교목 아망천당>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7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영화다.
= 전역 후 드라마, 공연 등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시간이 이만큼 흘렀다. 지난해 3월 뮤지컬 <고스트>가 막을 내린 지 몇달 안되었을 때 바로 <카터> 준비에 돌입했다. 작품 선택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약간의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카터> 대본이 들어왔는데 그동안 공백을 견딘 것이 바로 이 작품을 위해서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카터>는 확실한 준비 과정이 요구되는 프로덕션이었다.
- 8월5일 넷플릭스에 영화가 공개됐다. OTT 오리지널 영화에 출연하는 건 처음이라 관객 반응이 어떨지 긴장될 법도 하다.
= 떨리기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크다. <카터>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무척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다음으론 ‘근데
‘카터’ 배우 주원, “성실한 킬러의 무아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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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기자의 SNS에서 “나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문장을 처음 보았다. 웃기기도 했지만, 충격적이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기도문 영문을 찾아봤다. “but deliver us from evil”, 여기에서 말하는 ‘악’이 ‘evil’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원래의 문장은 ‘우리’, 복수로 되어 있지만 ‘but’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서 들어간 ‘다만’을 ‘나만’으로 전환하면서 기도의 대상이 단수가 되었다. 언어유희로는 최고의 경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다’라는 글자 하나를 ‘나’로 바꾸면서 이렇게 기가 막힌 구조적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니! 아마 다른 언어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일일 것 같다. 그렇지만 사실 “나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 문장이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 중 하나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의 원래 제목은 “the tyranny of merit”이다. 메리토크라시라는 단어는 많은 철학 용어가 그렇듯이, 정말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나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런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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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는다는 건 연기를 영 못하지는 않았다는 뜻 같아서 다행스럽다. 하지만 나도 ‘봄날의 햇살’같이 좀 따뜻해지고 싶은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얄미운 그 이름, ‘권모술수 권민우’ 변호사는 요즘 비호감의 대명사로 통한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의 비범한 능력을 시기하는 그에게, 동료는 곧 ‘공정’하게 경쟁할 상대이고 업무는 곧 성과와 ‘페널티’의 장이다. 그러나 자체 제작한 아기자기한 명함을 기자에게 건넨 배우 주종혁의 첫인상은, 어디선가 누군가의 절친일 것만 같은 ‘동그라미’쪽에 가까웠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태권도를 배우다, 10대 시절에 필리핀과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난 주종혁은 몽골음식점 철판 담당을 시작으로 생계형 아르바이트의 달인으로 거듭났다. 귀국 후에는 크루즈 바텐더로 일했는데, 이때 우연찮게 PR 영상 출연 제의를 받으면서 카메라 앞에 서는 재미에 눈떴다. “필름메이커스에서 만난 연극영화학과 친구들을 붙잡고
[WHO ARE YOU]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배우 주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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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만 들려오는 사제 앞에서 수녀 베네딕타가 정결과 청빈, 순명을 서원하고 신을 향해 찬송을 한다. 그는 축하 행렬을 뒤로한 채 수녀원으로 들어가고 수녀원의 문은 굳게 닫힌다. <기도의 숨결>은 남프랑스 주크에 자리한 노트르담 드 피델리테 수녀원의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암전 속 관객을 향한 축복의 기도가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들려오며 시작하는 영화는 다루는 소재의 속성을 반영하듯, 앞으로의 내용을 예고하듯 러닝타임 내내 수녀들의 기도와 찬송으로 가득하다. 주목할 점은 영화의 촬영과 편집 방식 또한 기도와 찬송을 닮아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기도문을 인터 타이틀로 활용해 챕터를 나누고 가톨릭에서 으레 마침기도로 사용하는 영광송으로 매 챕터를 끝맺는다. 영화는 수녀원의 삶에서 독특한 흥미 요소를 애써 찾아내 중점적으로 부각하거나 그곳의 삶을 수녀원 밖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식으로 일반화하지 않고 수녀원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화면에 담아내는
[리뷰] 고요한 기도, 거룩한 찬송, '기도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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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 중공군을 무참히 격파했던 전투를 지시하는 명칭의 호수 파로호. 이 근처 화천에서 도우(이중옥)는 물려받은 모텔을 운영하며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본다. 무력해 보이기만 하는 그에게 모텔에서 벌어진, 벌써 세 번째인 투숙객 자살 사건은 도우를 더욱 작아 보이게 한다.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느 날 노모가 실종되고, 다른 여성 투숙객이 같은 날 살해된 것으로 밝혀진다. 그러잖아도 이름을 말하지 않는 젊은 청년, 당돌한 다방 여종업원, 루게릭병을 앓는 미용실 주인의 남편 등 평범하지 않은 주변 인물들과 접하면서 주의가 흐트러지던 차, 경찰이 호의적이었던 태도를 거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하자 도우는 당황한다.
도우의 내면은 물로 이루어진 장소에서 느끼는 여러 정서 중 고요, 침체, 불안, 어둠, 공포 등의 정념과 상통한다. 작품은 호수의 심연을 닮은 도우에게 벌어진 사태를 실제와 가상을 넘나들며 그려낸다. 마음의 고통으로 인한 인식의 혼돈을 현실
[리뷰] 여유롭고 진중한 스릴, '파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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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쥘리(로르 칼라미)는 매일 숨 막히는 장거리 출근길에 오른다. 늘 이웃집에 읍소하듯 아이들을 맡기는 그는 파리 시내의 5성급 호텔에서 경력직 메이드로 일하고 있다. 마침 이직하고 싶은 회사의 면접 기회를 얻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던 그에게 예기치 못한 변수가 끼어드는데, 바로 대중교통 파업이다. 시위의 여파로 도시에는 발이 묶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집까지 가는 차량이 없어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거나 쿰쿰한 냄새가 나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이 늘어난 쥘리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두발로 달린다. 그야말로 ‘쥘리 런’이다. 고대하던 면접날. 쥘리는 호텔 수습 직원에게 자신의 출입증을 찍어달라 부탁해 퇴근 시간을 속이고 면접을 치르러 가는데, 이 일을 알게 된 상사가 해당 직원을 해고하고 쥘리를 압박해온다.
<풀타임>은 제목대로 시간을 꽉 채워야 겨우 삶을 보존할 수 있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영화는 여타 미디어나 브
[리뷰] 시간을 따라가는 것과 시간을 담는 것의 머나먼 거리, '풀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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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이 같은 길을 걸으려 한다면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를 평등하게 지원해주면 좋겠지만 손민서씨 가족의 경우는 좀 복잡하다. 첫째 아들인 은성호씨가 자폐인이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는 첫째에게 음악이 생계 수단이자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라는 엄마는 아들이 피아니스트이자 클라리네티스트로 활동할 수 있도록 그의 삶에 밀착하기를 택한다. 그러나 피아노를 치는 건 둘째 아들 은건기씨 역시 마찬가지다. 엄마가 형에게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기씨지만 자신이 연주하는 동안에도 형에게 집중하는 엄마가 그는 못내 섭섭하다.
<녹턴>은 두 사람이 아닌 세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개성을 가진다. 헌신적인 어머니와 천재 아들의 익숙한 성공담일 줄 알았던 영화는 괄호 안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아들을 끄집어내 등장시킴으로써 기묘한 가족 드라마란 자아를 형성한다. 카메라 앞에 원망과 불편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건기씨는 엄마와 형이 맺은 내밀한 관계의 틈
[리뷰] 괄호 안에 숨겨져 있던 인물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개성을 입는다, '녹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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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이정현)은 과중한 업무에 한푼이 아쉬운 살림이지만 책상에 놓인 아들 사진만 보면 기운이 솟는 생활안전과 소속 경찰이다. 어느 날 그가 일하는 관할 내에서 아동 유괴 사건이 발생한다. 소은은 쇼크로 입원한 유괴된 여자아이의 엄마 연주(진서연)를 대신해 유괴범과의 전화 협상에 강제 투입된다. 첫 협상은 간신히 넘긴 듯했으나 유괴범으로부터 자신의 아들도 데려간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야 그는 대역이 진즉에 들통났음을 알게 된다. 아연실색한 소은에게 유괴범은 몸값 3억원을 가져오라고 요구한다. 소은은 아들을 되찾기 위한 비밀 작전에 돌입한다.
목표가 뚜렷한 범죄 스릴러 <리미트>는 87분이란 간결한 러닝타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어머니가 자식을 구출하는 과정에만 집중한다. 모자의 행복했던 한때를 보여주거나 악당의 전사를 설명하고 싶은 유혹을 과감히 뿌리친 결과다. 영화의 생동감은 전적으로 이정현에게서 나온다. <헤어질 결심>의 정안처럼 귀여운 어른으로 시작해 점차
[리뷰] 윤곽만 존재하는 악당 캐릭터가 내달리는 영화에 제동을 건다, '리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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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수상한 구름이 흑인 가문 ‘헤이우드’가 운영하는 말 목장에 드리운다. 이상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이상한 것들이 쏟아진다. 말 조련사인 OJ 헤이우드(대니얼 컬루야)는 낙마하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사망한다. 아버지 눈에 박힌 동전 한닢과 말에 박힌 열쇠가 그날의 흔적이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죽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OJ는 광고 현장에 투입된 말 ‘럭키’를 조련하지 못해 일을 망치고 말을 주피터 파크에 판다. 어느 밤 ‘고스트’란 말이 이유도 없이 밖에 나와 있고 모든 전자기기가 꺼진다. 그리고 구름 뒤에서 나타난 원반 형태의 비행접시. 여동생 에메랄드 헤이우드(키키 파머)는 오빠에게 이것을 찍어 돈을 벌어보자고 제안한다.
<놉>은 구름 뒤에 정체를 감춘 ‘그것’을 둘러싼 기묘한 현상을 그린 미스터리 공포영화다. <겟 아웃> <어스>를 연출한 조던 필 감독은 신작 <놉>에서 하늘이란 장소를 택
[리뷰] 부정할수록 긍정하게 되는 매혹적인 그것과 그것에 관한 기록 영화, '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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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대건은 2015년 단편영화 <캐치볼>을 시작으로 이야기 심연에 숨은 감정을 정면으로 응시해왔다. 그는 미스터리물과 단연 가까워 보인다. 10년 전 자신을 유괴했던 범인을 다시 마주한 민구의 애수(<호흡>)를, 정체를 숨긴 채 진실을 묵시한 거북이의 은밀함(<왓쳐>)을, 학대 사실을 폭로하는 증인 진우의 단호함(<닥터로이어>)을 체화하며 다음 챕터를 여는 열쇠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살다 보면 마음속에 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의 잔여물이 남기 마련이다. 연기는 그 모든 것을 밖으로 배출해내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직면하도록 한다.” 연기가 자신에게 남긴 것을 설명하는 그를 보며 <파로호>의 호승이 배우 김대건에게 남긴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 <파로호>의 호승은 “남이 지어준 이름은 버리고 산 지 오래됐어요”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한다. 개인사를 알 수 없는 인물에 어떻게 접근했나.
= 시나리오에도
'파로호' 배우 김대건, '묘연하고 비밀스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