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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쟁한 톱스타들이 캐스팅되어 화제를 모았던 영화 <오션스 트웰브>가 5월 6일 DVD로 선보인다.
지난 2001년 공개되어 히트한 <오션스 일레븐(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속편인 이 영화는, 전편에서 훔친 돈을 갚기 위해 다시 한 번 모인 대니 오션과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줄리아 로버츠 등 전편을 빛냈던 스타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전자인 프랑스의 괴도 '밤여우' 역의 뱅상 카셀, 브래드 피트의 전 애인으로 나온 캐서린 제타 존스와 같은 새 얼굴을 보는 것도 즐겁다. <셋 잇 오프> <이탈리안 잡>을 연출한 F. 게리 그레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유쾌하고 호화로운 범죄 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워너 브라더스에서 출시할 <오션스 트웰브>DVD는 2.35대 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영상, 돌비 디지털 5.1 사운드를 수록한다. 부록은 들어있지 않다.
이번엔 12명이다 - <오션스 트웰브> 5월 6일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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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교’…8명의 부모…12각 애정관계
희극의 본령이 풍자라면, 이 봄 방송 희극의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다.
‘뚱뚱교’ 교주는 먹거리에 신성을 부여해 외모 지상주의와 맹신적 종교 행태를 격렬히 뒤틀고, 한 여고생에 딸린 8명의 부모들은 극단적인 가족해체와 파편화된 현대사회의 개인들을 비꼰다. 그런가하면 흡혈귀와 인간들의 얽히고설킨 12각 관계는 3~4각 관계가 기본인 기존 드라마의 애정 구조는 물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초현대식 사랑법을 꼬집어댄다. 종교와 가족 등 풍자의 대상에서 성역처럼 존재하던 것들이 풍자의 도마 위에 제대로 오른 판이라, 날아드는 비판의 창끝이 따가울 법도 하지만, 시청자들은 풍자의 감칠맛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종교등 성역까지 패러디 대상으로
뚱뚱교 교주 ‘출산드라’는 지난달 20일부터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에서 “먹어라! 네 시작은 삐쩍 골았으나, 끝은 비대하리라”며 교리 설파에 나섰다. 비대함이 신의 축복인
코미디 풍자의 봄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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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존 프랑켄하이머가 만든 <맨츄리안 켄디데이트>는 미국 역사의 한장을 보여주었고 조너선 드미의 새 <맨츄리안 켄디데이트>는 구스 반 산트의 장면장면을 복제한 <싸이코> 이후 가장 불필요한 리메이크로 보이지만 실제는 전혀 다른 영화이다.
군더더기 없지만 음산한 드미의 <맨츄리안 켄디데이트>는 전작이 보여준 사악하고 아찔한 거만함이 없다. 몇몇 농담에도 불구하고 일급 정치음모인 프로그램된 최면상태의 암살자 이야기로 대통령 선거 시기에 맞춘 이 작품은 경쾌한 풍자만 담긴 것이 아니라 불길하고 잔혹한 광기까지 갖추고 있다. 풍자적이기보다 침울한 분위기는 프랑켄하이머의 원작만큼이나 앨런 파큘라가 워터게이트 이후 만든 맨츄리안식 영화 <암살단>을 떠올리게 한다. 1962년에 만들어진 원작은 케네디 시절의 섬뜩한 통찰이었다. 존 캐리의 노미네이션 바로 다음날 전략적으로 공개된 드미의 이 떠들썩한 영화가 얼마나 미국의 정신을 반
연쇄살인자 미국을 고발하다, <맨츄리안 켄디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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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파도>는 웃자고 만든 영화다. 웃자고 만들었으니 잘 웃기는 건 미덕이다. <마파도>는 잘 웃겨준다. 디테일의 힘이다. 얼개는 허술하지만, 디테일은 촘촘하다. 특히 말맛의 미덕은 달인의 경지다. 더구나 포스터와 다른 내용은 기쁨을 두배로 만든다. 저승사자 같은 할머니들이 낫, 곡괭이를 들고 노려보고, 두명의 남자가 ‘어매 기죽어’ 하는 표정으로 쪼그라져 있는 포스터를 보고 누가 ‘착한 코미디’ 영화를 연상하겠는가? 그저 좀 웃기기도 하는 호러영화인 줄 알았다(나중에 물어보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오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이문식표’ 본격 코미디물이었다. 시사회에서 뜻밖의 웃음을 선사받은 친구 일동은 틀림없이 대박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마파도>는 기승전결이 ‘매우’ 확실하다. 도망치는 ‘기’, 웃기는 ‘승’, 쫓고 쫓기는 ‘전’, 화해하는 ‘결’이다. 기승전결은 개연성 없는 우연과 우연으로 연결된다. 우연히 발견한 테이
말맛과 디테일 살아 있는 코미디 <마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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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소박하고 은은한 맛과 향기가 때로는 상쾌하게, 때로는 알싸하게 번져오는 녹차. 지난해 부천영화제의 최고 인기작 중 한 편이었던 이시이 가쓰히토 감독의 <녹차의 맛>은 질 좋은 녹차처럼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일상과 교감, 성장을 담는다. 어두운 화면 위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 짝사랑하던 소녀가 전학을 가든 날 소년은 소녀가 탄 기차를 쫓아 가슴이 터져라 내달린다.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멈춰 선 소년. 그런데 영화의 정체가 드러나는 건 이제부터다. 소년의 이마에서 난데없이 기차가 쓰윽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이렇듯 평범함에서 시작해 느닷없이 끼어드는 엽기적이고 기발한 상상력과 기이함은 영화를 관통하여 흐르는 양념 같은 장치다. 물론 메인 코스는 ‘기차소년’(?)이 일원인 ‘하루노 가족’의 일상이다. 애니메이터에 재도전하는 어머니, 최면치료사로 가끔 식구들에게 천국을 선사하는 아버지, 행위 예술가와 변태의 중간쯤인 괴이한 할아버
모은영의 오리엔트 특급 <녹차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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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더이상 이 세상에, 혹은 그 어느 세상에도 그가 부재한다는 깜깜한 절망감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세계 어딘가에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면, 살아남은 자는 견딜 수 있다. <화이트 노이즈>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죽은 자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다. 그런데 죽은 이의 음성은 산 자의 꿈이나 무당을 통해 들려오지 않는다. 그것은 괴기한 형상과 목소리로 컴퓨터와 라디오를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 기록과 녹음을 통해 분석되는 죽은 자의 소식. 그것은 더이상 낭만적이거나 반갑거나 슬프지 않고 다만 소름끼친다.
아내를 잃고 방황하던 존(마이클 키튼)은 어느 날부터인가 죽은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녀는 자동응답기와 라디오를 통해 음성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에 흐릿한 형상으로 나타나 죽음의 위협에 당면한 사람들을 도우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 영화에서 존을 죽은 자와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
현대 과학기술의 무서운 힘, <화이트 노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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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 온다고 불평하는 남자를 여자가 위로한다. “누구나 가끔은 잠 못 이뤄.” 그녀를 향해 돌아누우며 남자가 말한다. “나는 1년 동안 못 잤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고갱이 그린 예수처럼 여윈 몸과 움푹 팬 눈자위는 그의 말이 진실이라고 증언한다. 원인 모를 장기적 불면에 시달리는 기계공 트레버 레즈닉 역의 크리스천 베일은 185cm의 몸을 55kg까지 감량했다. 체중조절도 이쯤 되면 스턴트다. 원래 깡마른 배우를 쓰는 편이 쉽지 않았을까? 하지만 <머시니스트>는 관객으로 하여금 “사람이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을까?”라고 절실히 묻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영화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이 평소 모습을 기억하는 스타가 필요하다.
밤새 깨어 있는 트레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읽지 않을 때면, 공항 24시간 커피숍의 웨이트리스 마리아(아이타나 산체스 지온)와 창녀 스티비(제니퍼 제이슨 리) 곁에서 안식을 구한다. 일터에서 그는 노동법을 거론할 만
영화광이 조립한 공포 기계, <머시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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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은 필립 카우프만의 연출 작품이다. 그가 만든 <외계의 침입자>(1978)나 <필사의 도전>(1983)은 수준급이다. 그는 할리우드 대중주의와 장인의 연출력을 능수능란하게 교합하는 것으로 인정받을 만한 감독이다. <블랙아웃>은 노련한 그 장인의 손길이 스릴러 장르에 미쳤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낸다. 게다가 새뮤얼 잭슨, 애슐리 저드, 앤디 가르시아로 엮은 삼각편대는 기대할 만한 배역진이다. 영화에서 그들의 연기는 훌륭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어도 나쁘지는 않다. 문제는 영화의 방만한 구조다.
제시카(애슐리 저드)는 끔찍한 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나쁜 과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경찰계의 대부인 존 밀스(새뮤얼 잭슨)의 도움을 받아가며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강력계 경관이 된다. 시기의 눈총들이 거세지만 제시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른 남자들과 달리 동료 경찰 마이크(앤디 가르시아)만은 그녀를 이해
방만한 구조의 스릴러 영화, <블랙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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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은 빚을 대신 받는 청부업자가 영화제작에 뛰어드는 코미디 <겟 쇼티>의 속편이다. 10년 만에 제작된 이 영화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조지 클루니의 표적> <재키 브라운> 등에 재료를 제공한 작가 엘모어 레너드의 소설에 기대고 있다. 그렇다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들이닥치는 난관, 궁지에 몰려도 냉정한 주인공, 하나씩 장애물을 격파하는 묘기. 또 한번 존 트래볼타를 기용한 <쿨!>은 그런 공식에 충실하고자 한다.
빚받으러 LA에 왔다가 영화제작자가 된 갱스터 칠리(존 트래볼타)는 쓸데없이 속편이나 강요하는 할리우드에 염증을 느껴 영화판을 떠나려고 하고 있다. 때마침 친구 토미(제임스 우즈)가 러시아 마피아에게 살해당하자 칠리는 미망인 이디(우마 서먼)를 도와 파산 직전이었던 토미의 음반사업에 뛰어든다. 그가 발견한 신인은 악덕 매니저에게 붙들려 고생 중인 린다 문(크리스티나 밀리언). 칠리는
<겟 쇼티>의 속편, 이번에는 음반시장이다, <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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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발만 떼도 하늘이 뱅뱅 도는 어지럼증을 앓고 있는 엄마(고두심)는 수십년째 해남 땅을 벗어난 적이 없다. 막내딸(채정안)의 결혼날짜가 다가오자, 엄마의 한숨은 깊어간다. 목포 시내에서 열릴 결혼식에 무슨 수로 참석한단 말인가. 젊어서 사별한 남편은 아내의 꿈길에 찾아와 능청맞게 등을 긁어달라 하고는, 걸어서라도 막내 결혼식에 꼭 가라는 당부를 전한다. “밥 있제? 밥 좀 도라.” 잠에서 깬 엄마는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며칠은 족히 걸릴 긴 여정에 몸을 싣는다.
몇해 전 <인간극장>에 소개된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다는 <엄마>는 ‘엄마가 가는 길’이 주인공인 영화다. 치명적인 어지럼증을 극복하고, 엄마는 어떻게든 딸의 결혼식장에 당도할 것이다. 설령 그 길이 악명 높은 월출산 구름다리로 이어져 출렁거리고, 비바람이 몰아쳐 시야가 막히고 걸음을 내딛기 힘들어도, 걱정된답시고 따라나선 자식들이 저희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꼴을 보는 일이 있어도
정서적으로 다가가는 길 위의 드라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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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마파도> 외딴 섬으로 피난을 간 남기남
[정훈이 만화] <마파도> 외딴 섬으로 피난을 간 남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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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영화를 기억하는 건 길게 객차를 매달고 한밤중을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오래된 기억들이 모두 그러하듯, 오래된 영화의 기억도 작게 분절되어 있다. 시퀀스들은 사라지고 스틸사진들만 느슨하게 연결되어 흘러간다. 캄캄한 밤을 달리는 긴 객차마다 차창에 한 여배우의 얼굴이 떠 있다. 나스타샤 킨스키. 내가 사랑했던 단 한 명의 여배우라고 조금도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배우. 그녀가 내게 손짓한다. 멀리서 바라보지만 말고 이 기차에 올라타세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기차에 올라탄다.
대학 1학년 시절. 1979년. 동숭동 낙산자락 달동네의 작고 허술한 방. 앉은뱅이 책상, 철제 책꽂이, 아버지가 대학 입학 선물로 사주신 전축. 둘이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이었다. 앉은뱅이 책상 위에 언제나 펼쳐진 채로 놓여진 책이 있다. <테스>. 300원짜리 삼중당 문고 한 권을 사면서도 새가슴이 되어야 했던 시절, 그 크라운 판형에 올 컬러 책을 사기 위해 내가 써
[스크린 속 나의 연인] <테스>의 나스타샤 킨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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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유언도 마지막 인사도 나눌 겨를 없이 사고를 당하게 된다면. 게다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그 중간상태에 놓여 십여 년 간을 식물처럼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기약 없는 시간들을 견뎌내야 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잔인한 테스트일 것이다. 굳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가정해 보는 것조차 끔찍한.
지난 3월 31일 테리 시아보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15년 전 뇌사상태에 빠져 식물 인간이 되어야 했던 그녀는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테리의 경우는 단순히 한 여자가 삶을 선택하느냐, 죽음을 선택하느냐 하는 개인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사이보 케이스’라고 불리 울 만큼, 그녀의 생명은 돈과 이해관계를 둘러싼 부모와 남편 사이의 지리한 법적 논쟁으로 진흙탕 속을 허우적댔다. 만약 테리가
[백은하의 애버뉴C] 20th street / 어느 날 갑자기 삶과 죽음의 중간에 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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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개봉한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한해 인구에 회자되었던 <올드보이>를 다시 불러낸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는 하다. 다만, 외지인들의 반응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비평의 논리가 흥미로워서라면 한번만 더 곱씹어보자. 지난 3월25일, LA와 뉴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예상했던 대로 칸영화제에서의 비평 논쟁을 재연하고 있다.
각 언론 매체들은 이른바 예술영화와 컬트영화, 작품성과 대중성, 내용과 스타일의 양분법에 입각한 자신들의 오랜 소신을 바탕으로 <올드보이>의 위치를 규정하느라 바쁘다. 예를 들면, “산낙지를 먹고, 망치로 사람 머리를 부수는 사내와 ‘아트’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라는 <뉴욕타임스>의 비평문 서두는 일찌감치 폭력 묘사, 선정적인 내용, 현란한 스타일로 가득한, 이라는 문구가 이어질 것임을 예상케 한다. 데이비드 린치식의 스타일지향주의적 B급영화가 일부 시네필의 지지를
[현지보고] 미국 개봉한 <올드보이>, 혹평과 호평의 격전 벌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