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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이 돌아왔다. 4년 전 발매된 일반판은 쌍발 가스터빈엔진의 화염과 함께 태워버릴 듯한 사양의 SE버전이 발매된 것이었다. 이 영화로 말미암아 오늘날의 토니 스콧이 있을 수 있었고 톰 크루즈와 발 킬머는 스타덤에 올랐으며 짧게 등장할 뿐인 멕 라이언도 주목받게 되었다(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팀 로빈스도 잠깐 출연하니 찾아보시라).
아나모픽이 지원되는 SE버전의 화질은 여전히 빛바랜 부분이 있지만 정말 기가 막힌 것은 사운드다. DTS 6.1채널의 디스크릿 사운드는 당신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탑건>을 ‘들려준다’. 비록 <플래툰>에 밀려 사운드 부문 오스카를 놓쳤지만 아카데미에서 DVD 사운드 리마스터링 부문이 있다면 <탑건> SE가 받아야 할 것이다. 과도하리만큼 활용도가 높은 리어벡 사운드와 F-14 전투기가 뿜어내는 묵직한 저음이 시종일관 감상자를 미소짓게 만든다. 감독과 제작자 그리고 제작에 참여했던 해군 기술고문들의
토니 스콧이 제작중 3번 해고당했다?! <탑건 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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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겨울잠에 빠져 있어야 할 구리시 수택고등학교 안. 1층 음악실만 부산하다. 지은 지 2년 된 건물답게 음악실도 최신식이다. 천장엔 고른 온기를 뿜는 냉난방기가, 강당식의 내부엔 드럼과 앰프 따위가 있다. 체리빛의 마감자재가 아늑함도 준다. 한반을 구성하는 서른명의 학생들, 스무명 내외의 스탭들이 자리잡은 이곳에 열명가량의 기자들이 들어서자 잠시 술렁임이 일어난다.
<여고괴담4: 목소리>가 공개한 촬영분량은 죽은 영언의 음악시간 회상장면이다. 사고로 목을 다쳐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 음악선생 희연(김서형)이 “대신 노래해줄 사람 없어?”라고 묻고, 영언(김옥빈)은 단짝 친구 선민(서지혜)의 쾌활한 추천을 받아 마지못해 나선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죽은 영언의 눈물 그렁한 모습까지가 이날 찍을 16컷 분량이다. 웬만해선 테이크를 두세번에 끊는 최익환 감독이지만, <여고괴담> 시리즈의 전통처럼 돼버린 신인배우들과의 작업엔 충분한 여유를 둔다. 포털사이트
죽은 소녀가 부르는 슬픈 노래, <여고괴담4: 목소리>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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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뼈>(28일 개봉)의 최양일(56)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개 달리다>에 이어 한국에서 두번째 개봉이다. 그의 출세작인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의 원작을 썼던 양석일의 소설을 영화화한 <피와 뼈>는 최감독의 아버지 세대인 재일한국인 1세의 삶을 강렬한 톤으로 그려 지난해 일본의 주요 영화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15일 아침에 만난 최감독은 “영화를 본 박찬욱 감독이 피해자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있어 좋았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고 말했다.
목 졸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 일본도 한국도 참 어려운 시대
박 감독의 지적대로 <피와 뼈>의 주인공 김준평(기타노 다케시)은 희생이나 절망, 고난같은 관습적인 재일한국인의 이미지가 없다. 돈과 섹스, 그리고 핏줄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그는 폭군이자 악랄한 착취자이다. “모든 죄악을 모아놓으면 이런 인간이 나오겠다 싶을 만한 ‘괴물’이지만 내적 맥락을 가지고 인생을 역동적으로 사는
재일한국인 1세 담은 ‘피와 뼈’ 들고온 최양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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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몽정기2>의 언론평에 대한 비판과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수락 뒤 네티즌과 벌인 논란으로 화제가 됐던 정초신 감독의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몽2(몽정기2)는 17살 이전의 정신연령으로 봐야 재미난 모양입니다. 그런데 27살의 관객들이 보니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하물며 37살의 기자단이나 47살의 평론가들이 보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앗, 뜨거워라’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면에서 를 비판한, 그것도 17살보다는 37살에 훨씬 가까운 기자였기 때문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정 감독의 글에는 분명 지난해부터 쏟아져나온 10대 영화들을 볼 때마다 빠졌던 고민을 콕 찌르는 부분이 있다. <늑대의 유혹>이나 <몽정기2> 그리고 상대적으로 평판이 좋았던 <어린 신부>를 보면서도 마뜩지 않은 느낌이 있었다. 어떻게 10대들의 사고방식이나 하는 짓이 부모세대보다도 진부할까 하는 못마땅함이었다. 반면 이런 생각 속에 스스로에
[팝콘&칼럼] 30대의 눈으로 10대 영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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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하나. 싸지타(Sagitta)는 무슨 의미일까. 화살자리란 뜻이다. 퀴즈 둘. 이와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가니메데와 엮기 위해 제우스에게 쏜 ‘에로스의 화살’, 프로메테우스를 구하기 위해 독수리에게 쏜 ‘헤라클레스의 화살’,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번개를 만든 키클롭스에게 쏜 ‘아폴로의 화살’로 상이하다. ‘각각 장난스런 사랑의 화살, 정의의 화살, 분노의 화살’이라고 부연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이런 퀴즈도 가능할 듯하다. 음반 <헬로우 월드>의 혼성 듀엣 싸지타의 멤버는 누구인가. 정답은 한국 인디 신의 1세대 밴드 코코어의 리더로 10년 가까이 활동해온 이우성과 디자이너, 공연 기획자, 파티 플래너로 활동해온 이정은이다. ‘이우성과 이정은은 부부 사이’라고 센스있게 덧붙인다면 보너스 점수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싸지타란 작명은 ‘사랑의 화살’이란 의미를 염두에 둔 것일까. 흘낏 음반을 들어보면 그렇다. 예컨대 <너의 이야기&
당신의 가슴을 꿰뚫을 포크 록 화살, 싸지타 <헬로우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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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부터 프랑스나 미국의 서점에 일본 만화가 그득하다. 일본 만화는 프랑스나 미국 만화의 고유한 출간 형태를 무시하고 일본식으로 출간되어 새로운 서가에 꼽힌다. 인기작들은 몇달의 시차로 소개될 지경이다. 이런 와중에 서구에서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다니구치 지로다. 우리에게는 낯선 다니구치 지로는 가장 문학적인 만화로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은 2권이다. 시공사의 <K>, 샘터사의 <열네살>. <K>는 절판되었고, <열네살>은 2004년에 출간되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다니구치 지로의 책은 작은 판형에 수십권씩 이어지는 시리즈가 아니라 넉넉한 크기에 한두권으로 끝나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산악 만화인 <K>를 제외하면 <열네살>이나 이번에 출간될 <아버지>(애니북스 펴냄)나 모두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는 일본의 30∼40대가 어느 날 자신을 되
영혼을 움직이는 꽉 찬 만화, 다니구치 지로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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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세렝게티 초원은 얼마 남지 않은 야생동물의 천국입니다. 이곳에서 초식동물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요.” 초원이 중얼거렸을 때 나는 이것이 적확하지 않은 진술이라고 생각했다. 초식동물만이 아니다. 초원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모두 위험하다. 얼룩말을 먹고 사는 사자 또한 절대강자가 아니다. 그들은 저희끼리 싸운다. 서열을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교육받고 자랐다. 달려라, 더 빨리 달려라, 끝까지 달려라. 레이스의 진짜 경쟁자는 너 자신이니 너는 너를 이겨야만 한다! 고등학교 때 우리 반 급훈은 정말로 ‘극기(克己)’였고,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내일 할 일이 ‘말아톤’ 이라고 또박또박 일기장에 쓰는 청년 초원은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 그는 달린다. 달리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무서워하는지 행복해하는지는 그의 어머니조차 모른다. 그는 그저 달
[정이현의 해석남녀] <말아톤>의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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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딘을 반항하는 청춘의 이미지로 아로새긴 <이유없는 반항>의 감독 니콜라스 레이(1911~79)는 히치콕에 비견되는 독특한 인물이었다. 활동무대였던 미국에서는 별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미국이 무시한 할리우드의 위대한 감독들을 찾아내는데 비상했던 프랑스 평단은 레이를 50년대의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명으로 그를 일으켜세웠다. 엘리아 카잔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1949년 데뷔작 <그들은 밤에 산다>에서 이후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사회적 소외자들에 대한 친밀감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다.
초기 대표작인 <고독한 영혼>(1950) <어둠 속에서>(1951)에서 등장인물들의 자기파괴적 열정을 탁월한 시각적인 테크닉으로 구사하면서 그는 낭만적 비관주의를 자신의 상표로 확립시켰고, 이 재능은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린 서부극 <자니 기타>(1954)와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실물보다 큰>(1956)으로
이유없는 반항·야생의 순수…니콜라스 레이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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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
인도 출신의 여성이론가 스피박은 이 질문 하나로 탈식민주의 이론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백인들의 사회에서 활동하는 인도 출신의 여성이라는 하위주체로서 질문했던 것일 게다. 그 대답은 짐작하다시피 “하위주체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누군가 그들을 대변하고 대신해서 말한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그들의’ 생각이고 그들의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대답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이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하위주체 혹은 소수자가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다리에 힘이 빠지고 서 있을 수도 없게 되었건만, 추방과도 같은 귀국을 해야 했던 타이의 여성노동자들, 혹은 몇년 전 역시 노말헥산에 중독되어 앉은뱅이가 되어 쫓겨나듯 돌아가야 했던 중국의 여성노동자들, 그들은 아무 말 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고통을 그저 감수해야 했다. 물론 말했을 것이다. 아프다고,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 말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침묵은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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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도 안 됐는데 벌써 반백이다. 두살 위인 연극연출가에게 형이라고 부르며 친한 척을 하려고 했더니 불편해하는 기색이다. 머리가 허옇게 센 동생을 둔다는 것도 곤혹스런 일일 것이다. 누우면 슬픔처럼 출렁이는 뱃살, 거울 앞에 서면 폭설을 맞은 듯한 머리칼. 뿐이랴, 한때 곧고 강직했으며 오만하게 머리를 들고 다녔으나 지금은 어깨를 웅크리고 한없이 작아진 그 친구까지(그 친구 참 겸손하다). 일찍이 우디 앨런이 25년 전 <애니홀>에서 고백한 대로, 맛도 없는데다가 양도 적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기분이다. 나이를 먹으면 현명해지기라도 해야 하는데 좋은 게 하나도 없다.
동거하는 세대주는 맑시스트다(<브로드웨이를 쏴라>의 대사를 떠올려보시라). 횟수가 늘어나면 행복의 질도 커진다는 그의 기대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어 이틀을 연속 무리했더니 진이 다 빠졌다. 양이 질을 결정한다는 양질전화는 내가 보건대 진리가 아니다. 용불용설도 시대착오적이다. 축 처진 채로
[오픈칼럼] 서러워라, 나이든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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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영상학과 유지나 교수(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가 국제문화다양성 보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7일 프랑스 대사관에서 교육공로훈장 기사장을 받았다. 유 교수는 90년대 말부터 스크린쿼터문제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문화적다양성 보호를 위해 노력해왔다. 2002년부터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을 맡아 국제연대사업에 뛰어들어 2003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문화다양성 기구대회에서 아시아 대표로 연설하는 등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해 미국식 문화표준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유 교수는 “문화적으로 소외된 약자들의 인권운동에 평생 헌신하겠다고 서약한 뒤 밤낮 없이 일해온 기억들이 새삼 떠오른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문화다양성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교육공로훈장은 1808년 제정된 프랑스 4대 장관급 훈장 가운데 하나로 예술과 과학 등의 분야에서 창조적인 재능을 가졌거나 문화발전을 위해 공헌한 이들에게 수여됐다. 영화계 인사로는 지난 2000년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프랑스 공로훈장 받은 유지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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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를 몇년째 듣는지 모르겠다. 가끔 좋은 시절이 있기는 있는 모양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항상 그 시절이 지난 다음에야 그것을 알게 된다. 경제가 잘 돌아가는 동안에는 아무도 내게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는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여유가 있는 사람들마저 돈을 쓰지 않아서 문제라는 것이다. 경기가 회복되려면 있는 사람들부터 돈을 써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처방이 정말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사람이 돈을 쓰는 것은 자신에게 부재하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려면 우선 소유의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제공하는 가치가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하며, 그 결여를 채우려는 절실한 욕망이 있어야 한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있고, 그것을 구입하면 생활이 편해지고 사랑받고 젊어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러
[이창]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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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부산은 2월18일부터 3월6일까지 할리우드 고전기에 흥행에 성공했던 대작 뮤지컬 16편을 상영하는 음악과 로맨스의 오케스트라-뮤지컬 영화제를 연다. 국내 관객들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의 영화로 남아있는 <오즈의 마법사>(1939)를 비롯해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1944), <밴드 웨건>(1953), 조지 쿠커 감독의 <스타 탄생>(1954), 자크 드미 감독, 미셸 르그랑 음악 콤비의 <로슈포르의 여인들>(1967), <쉘부르의 우산> 등을 상영한다. (051)742-5377, http://cinema.piff.org
지난 2년 동안 전세계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들 가운데 완성도 뛰어난 작품 30편을 선정해 2월10일부터 28일까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14일 밤의 다큐멘터리전에 한국 작품으로 김동원 감독의 <송환>과 이창재 감독(중앙대 영화과 교수)의 &
[국내단신] 시네마테크 부산, 오케스트라-뮤지컬 영화제 개최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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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카메라맨 이주림씨 사망계기
“촬영 중 스태프 쓰러지는 일 흔해”
지난 4일 한국방송 드라마영상팀 이주림(48)씨가 과로 끝에 숨졌다.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이 가장 큰 원인이며 언제든 재발될 사고라는 지적이다. 또 이씨의 과로사를 계기로 드라마 관련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한국방송 공채 10기 카메라맨인 이씨는 드라마 <바람꽃>과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스튜디오 촬영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달 31일 <바람꽃> 촬영 중 두통을 호소했지만 진통제로 버텨냈고, 2일 <퀴즈 대한민국> 녹화가 새벽까지 이어져 두통이 재발하자 다음날 휴가를 내고 광주 집으로 내려갔다. 4일 새벽 집에서 정신을 잃은 그는 병원 응급실로 옮겼으나 이미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뒤였다. 한국방송 노동조합이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해보니, 이씨는 숨지기 직전 한달 동안 144시간33분 초과 근무를 한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 목소리 봇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