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에서 발만 떼도 하늘이 뱅뱅 도는 어지럼증을 앓고 있는 엄마(고두심)는 수십년째 해남 땅을 벗어난 적이 없다. 막내딸(채정안)의 결혼날짜가 다가오자, 엄마의 한숨은 깊어간다. 목포 시내에서 열릴 결혼식에 무슨 수로 참석한단 말인가. 젊어서 사별한 남편은 아내의 꿈길에 찾아와 능청맞게 등을 긁어달라 하고는, 걸어서라도 막내 결혼식에 꼭 가라는 당부를 전한다. “밥 있제? 밥 좀 도라.” 잠에서 깬 엄마는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며칠은 족히 걸릴 긴 여정에 몸을 싣는다.
몇해 전 <인간극장>에 소개된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다는 <엄마>는 ‘엄마가 가는 길’이 주인공인 영화다. 치명적인 어지럼증을 극복하고, 엄마는 어떻게든 딸의 결혼식장에 당도할 것이다. 설령 그 길이 악명 높은 월출산 구름다리로 이어져 출렁거리고, 비바람이 몰아쳐 시야가 막히고 걸음을 내딛기 힘들어도, 걱정된답시고 따라나선 자식들이 저희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꼴을 보는 일이 있어도
정서적으로 다가가는 길 위의 드라마, <엄마>
-
[정훈이 만화] <마파도> 외딴 섬으로 피난을 간 남기남
[정훈이 만화] <마파도> 외딴 섬으로 피난을 간 남기남
-
오래된 영화를 기억하는 건 길게 객차를 매달고 한밤중을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오래된 기억들이 모두 그러하듯, 오래된 영화의 기억도 작게 분절되어 있다. 시퀀스들은 사라지고 스틸사진들만 느슨하게 연결되어 흘러간다. 캄캄한 밤을 달리는 긴 객차마다 차창에 한 여배우의 얼굴이 떠 있다. 나스타샤 킨스키. 내가 사랑했던 단 한 명의 여배우라고 조금도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배우. 그녀가 내게 손짓한다. 멀리서 바라보지만 말고 이 기차에 올라타세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기차에 올라탄다.
대학 1학년 시절. 1979년. 동숭동 낙산자락 달동네의 작고 허술한 방. 앉은뱅이 책상, 철제 책꽂이, 아버지가 대학 입학 선물로 사주신 전축. 둘이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이었다. 앉은뱅이 책상 위에 언제나 펼쳐진 채로 놓여진 책이 있다. <테스>. 300원짜리 삼중당 문고 한 권을 사면서도 새가슴이 되어야 했던 시절, 그 크라운 판형에 올 컬러 책을 사기 위해 내가 써
[스크린 속 나의 연인] <테스>의 나스타샤 킨스키
-
어느 날 갑자기 유언도 마지막 인사도 나눌 겨를 없이 사고를 당하게 된다면. 게다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그 중간상태에 놓여 십여 년 간을 식물처럼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기약 없는 시간들을 견뎌내야 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잔인한 테스트일 것이다. 굳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가정해 보는 것조차 끔찍한.
지난 3월 31일 테리 시아보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15년 전 뇌사상태에 빠져 식물 인간이 되어야 했던 그녀는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테리의 경우는 단순히 한 여자가 삶을 선택하느냐, 죽음을 선택하느냐 하는 개인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사이보 케이스’라고 불리 울 만큼, 그녀의 생명은 돈과 이해관계를 둘러싼 부모와 남편 사이의 지리한 법적 논쟁으로 진흙탕 속을 허우적댔다. 만약 테리가
[백은하의 애버뉴C] 20th street / 어느 날 갑자기 삶과 죽음의 중간에 선다면
-
-
미국에서 개봉한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한해 인구에 회자되었던 <올드보이>를 다시 불러낸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는 하다. 다만, 외지인들의 반응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비평의 논리가 흥미로워서라면 한번만 더 곱씹어보자. 지난 3월25일, LA와 뉴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예상했던 대로 칸영화제에서의 비평 논쟁을 재연하고 있다.
각 언론 매체들은 이른바 예술영화와 컬트영화, 작품성과 대중성, 내용과 스타일의 양분법에 입각한 자신들의 오랜 소신을 바탕으로 <올드보이>의 위치를 규정하느라 바쁘다. 예를 들면, “산낙지를 먹고, 망치로 사람 머리를 부수는 사내와 ‘아트’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라는 <뉴욕타임스>의 비평문 서두는 일찌감치 폭력 묘사, 선정적인 내용, 현란한 스타일로 가득한, 이라는 문구가 이어질 것임을 예상케 한다. 데이비드 린치식의 스타일지향주의적 B급영화가 일부 시네필의 지지를
[현지보고] 미국 개봉한 <올드보이>, 혹평과 호평의 격전 벌어져
-
오달수 없으면 한국영화도 없다. 웬 ‘오버’냐 싶겠지만 사실 최근 화제작에는 오달수(37)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입소문을 타고 관객 200만명을 동원한 <마파도>를 비롯해 1일 나란히 개봉한 <달콤한 인생>과 <주먹이 운다>에 출연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비열한 조폭으로, 어설픈 무기밀매상으로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는 그를 보면 배우에 별관심없는 관객이라도 “저 사람 누구야?”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나고 자란 부산과 대학로에서 10년 넘게 연극을 해온 오달수는 <올드 보이>에서 감금된 오대수(최민식)를 괴롭히는 깡패 역으로 영화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연극하면서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연기자에게 연기 알바만큼 좋은 게 없잖아요. 오디션 보러갔을 때 대학로 대선배들이 이름표 달고 줄서 있는 거 마주치면 서글프기도 하지만….” 이제는 오디션 보는 단계를 넘어 김지운, 류승완, 그리고 출연을 마친 <친절
나, 오달수 아시죠
-
극장 개봉영화의 DVD 출시일이 앞당겨지는 추세를 놓고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미국 극장업주들간에 신경전이 거세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된 영화는 <레이>. 이 영화는 극장 개봉 3개월3일 만에 DVD로 출시됐다. 할리우드의 최근 DVD 출시일은 극장 개봉일로부터 평균 4개월10일 정도. 극장주들은 <레이>의 오스카 주요 부문 노미네이션과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오스카 효과’에 따른 추가 입장수익을 기대했으나, 제작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같은 이유로 DVD 출시를 앞당긴 셈이다.
미국 극장주협회장인 존 피시언은 “와이드릴리즈가 보편화되면서 이같은 추세는 가속화되고 있다”고 <LA타임스>를 통해 말했다. 그는 “DVD 출시일이 빨라지면 소규모로 개봉한 영화가 입소문에 힘입어 스크린 수를 늘려가는 일도 어려워진다”며 또 다른 부작용도 지적하고 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부회장 마크 슈머거는 “극장 개봉의 중요성을 안다”면서도 “시장의
미국, 개봉영화의 DVD 출시일 앞당겨져 논란
-
올해 홍콩 금상장영화제는 주성치와 왕가위의 무대였다. 지난 3월27일 열린 영화제 시상식에서 주성치의 <쿵푸 허슬>과 왕가위의 <2046>이 주요 6개 부문의 상을 각각 나눠가졌다. 작품상, 남우조연상, 액션연출상, 특수효과상, 편집상, 사운드디자인상을 <쿵푸 허슬>이 가져가고, <2046>은 두 주연배우 양조위와 장쯔이가 남녀주연상을 거머쥔 것을 포함하여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을 차지했다.
주성치가 감독·주연한 액션코미디영화 <쿵푸 허슬>은 무술의 달인들이 사는 마을에 갱단이 들이닥치면서 생기는 해프닝을 그려낸다. 두 영화 모두 최근 한국에서 개봉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주요 부문 중 감독상과 각본상은 <몽콕에서의 하룻밤>을 만든 데릭 리에게, 신인 감독상은 <지앙후>의 왕칭포에게 돌아갔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최고 아시아 영화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쿵후 영화의 전설적
홍콩 금상장영화제, <쿵푸 허슬> <2046>이 주요 부문 싹쓸이
-
<반지의 제왕>의 감독 피터 잭슨이 만우절에 감쪽같은 거짓말을 팬들에게 선사했다. 현재 <킹콩>을 제작중인 피터 잭슨은 4월1일 팬사이트www.kongisking.com에 올린 123일째 제작일기 동영상에서 <킹콩>의 속편으로 <콩의 아들>(Son of Kong)과 <킹콩: 늑대의 소굴로>(King Kong: into the Wolf's Lair)을 만든다고 ‘깜짝 발표’를 했다. 5분가량 되는 이 동영상에는 <콩의 아들>대본 표지와 함께 아트 디렉터와 유니버설 픽처스의 마케팅 대표에다가 나오미 와츠, 잭 블랙 등 <킹콩>의 제작진들이 등장해 그동안 비밀리에 속편 제작을 진행해왔다고 흥분해서 이야기한다. 속편의 내용을 언급하고 <콩의 아들>의 컴퓨터 그래픽 장면도 일부 공개했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는 두 편의 개봉시기까지 자막으로 뜬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스탭들이 치밀하게 꾸며낸 것이었다
<킹콩>감독 피터 잭슨의 만우절 거짓말
-
<용서받지 못한 자 SE>는 지금까지 DVD로 출시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감독작 가운데 오디오 코멘터리가 들어 있는 유일한 타이틀이다. 그나마 이스트우드 대신 전문가의 해설을 담고 있는데, 코멘터리를 담당한 리처드 시켈은 타임 매거진의 저명한 영화 평론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그는 이 영화의 메이킹 다큐를 찍었고 이스트우드의 전기를 집필하는 등, 감독을 제외하면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해설자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켈의 코멘터리는 캐릭터의 발전 과정을 짚어가면서 그것들이 영화의 주제와 어떻게 연관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둔다. 여기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폭력과 도덕성의 문제로, 이스트우드가 분한 퇴물 총잡이와 진 해크먼의 사악한 보안관과의 극명한 대조를 통해 그 주제가 작품에서 성공적으로 표현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절제된 대사와 음악, 내러티브 그 자체인 이미지만으로 전개되는 영화이니만큼 시켈의 친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해설은 관객
<용서받지 못한 자 SE> 타임 평론가 리처드 시켈의 영화 해설
-
글자 없이 그림만으로 이루어진 레이먼드 브릭스의 1978년 원작 <스노우맨>은 지금까지 영국에서만 650만권이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출판과 동시에 고전이 된 책처럼 다이앤 잭슨이 연출한 애니메이션도 첫 방송과 동시에 고전이 된 작품이다. 선배격 애니메이션인 <루돌프 사슴>이나 <눈의 여왕>과 함께 <스노우맨>은 언제부턴가 이 작품을 보지 않으면 성탄절을 제대로 보내지 않은 듯한 느낌을 갖게 할 정도로 성탄절과 동의어가 되고 있다.
영국의 <채널4>를 통해 첫 방송을 탄 지 20년 만에 <스노우맨>이 새 단장을 하고서 국내에 DVD로 발매되었다. 20년 전의 영상을 담은 북미판 DVD 버전과 비교할 때 가장 크게 바뀐 점은 데이비드 보위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실사영상의 오프닝이 <산타 할아버지의 휴가>에서의 산타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오프닝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북미 버전의 오프닝은 메이킹 다큐에서 볼 수
<스노우맨> 20년 만에 밝혀진 스노우맨의 탄생 비밀
-
일본의 컨텐츠 해외유통 촉진기구(CODA)는 지난 3월 하순 경, 홍콩 세관이 일본 애니메이션 DVD 해적판 판매업자들을 적발해, 모두 18명을 체포하고 20만 장이 넘는 해적판 DVD를 압수했다고 발표했다.
구룡섬 몽콕지구에 위치한 유명 상점가 신화중심(信和中心) 내 점포 등, 22개 업소와 두 군데 창고를 수색한 결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 <기동전사 건담> <사이버 포뮬러> <강철이 연금술사> 등 100여 타이틀이 넘는 해적판 DVD가 발견되었다고.
또한 이 조사는 일본 애니메이션 저작권자들이 저작권 침해 사실을 제기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며, 홍콩 세관이 실시한 첫 단속으로서 세관 직원만 100명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조사라고 보고했다. CODA 측은 앞으로도 현지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해적판 문제에 지속적으로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 일본 애니 해적판 20만장 압수
-
문화방송 예능프로그램들의 잇따른 조기종영이 결정됐다. 지난 2월18일과 1월29일 각각 첫 전파를 탄 <이문세의 오아시스>와 <퀴즈의 힘>이 일찍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오아시스>는 지난 1일 마지막 방송을 했고, <퀴즈의 힘>은 오는 16일 종영된다. 연예인 잡담 위주의 기존 토크쇼 경향에서 벗어나 정통 토크쇼를 표방한 <오아시스>나, 고교 동문끼리 팀을 꾸려 퀴즈 대항전에 나선 <퀴즈의 힘>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아오던 터라, 아쉽다는 반응과 함께 시청률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도 봇물을 이뤘다.
문화방송이 이처럼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조기종영에 나선 표면적인 이유는 낮은 시청률이지만, 이면에는 프로그램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한 대대적인 개편을 앞두고 편성 시간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까닭이 있다. 특히 주말 프로그램의 경쟁력 확보가 관건이라 주말 저녁 시간대 정리에 나서면서, 금요일 밤과 토요일 저녁 시간에
잇단 조기종영 MBC 예능프로 어떻게 바뀌나?
-
예측도 힘들었지만 결과도 박빙의 승부였다.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달콤한 인생>과 <주먹이 운다>는 첫주 박스오피스에서 무승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 우선 씨네21의 박스오피스 집계 기준인 서울주말 이틀 관객은 <달콤한 인생>이 9만8천7백여명, <주먹이 운다>가 9만7천2백여명으로 <달콤한 인생>이 한뼘정도 앞섰다. 전국스코어는 좀 차이가 나는데 <주먹이 운다>가 45만여명, <달콤한 인생>이 39만여명으로 <주먹이 운다>가 실속을 차렸다. 스크린 수는 <달콤한 인생>이 <주먹이 운다> 보다 22개 많은 340개로 우위를 점했지만, 아무래도 관람등급에서 유리한 <주먹이 운다>가 두 영화의 전국 스코어를 벌려 놓았다.
조금 더 파헤쳐보면 <주먹이 운다> 쪽으로 손가락이 올라간다. 금토일 서울 3일을 기준으로 할 경우는 &
<달콤한 인생> 장군에 <주먹이 운다> 멍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