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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나무라는 빈틈을 찾아낸 것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한국의 재개발 다큐멘터리는 그동안 무엇을 담아왔을까? 재개발 지역으로 선포되고 자신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상실감과 주거권을 위한 투쟁의 장을 먼저 담아내왔다. 그런데도 그곳에 가장 먼저 지워지는 존재는 사람이었다. 재개발 지역은 건물 벽면에 스프레이로 적힌 단어대로 ‘공가’가 된다. 카메라는 아직 떠나지 못한 존재들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영역성 동물인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움직이지 않는 사물에도 관심을 보였다. 아파트 내부나 곧 철거될 건물의 불안감을 담아내는 재치도 보였다. 그러는 와중에 감독의 모습도 다양해졌다. 한때 감독은 주민들과 함께 투쟁하는 카메라를 든 액티비스트의 면모를 보였다. 그러다 어느새 카메라 앞에서 뒤로 물러나며 최근엔 비인칭적인 시선으로 재개발 지역을 담아내며 현대미술 작가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화 제목은 비워뒀다. 수많은 영화가 스쳐 지나갔
오진우 평론가의 '봉명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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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실내영상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 영상산업팀은 제주에서 이뤄지는 영화영상 제작을 활성화해 제주의 진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라고 있다. 이봉설 팀장, 이윤성 책임연구원, 김영민 선임연구원, 이은규·채상균 주임연구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제주 영화산업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있다. 영화영상 제작진이 촬영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 한다는 인상이다.
이윤성 제주에서 직접 수배해야 하는 촬영 장비라든가 인프라가 있다. 예를 들어 레커차나 살수차를 구해야 할 때 네트워크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런 정보를 일원화해서 제공한다면 제작진은 제주실내영상스튜디오와 소통만 해도 원스톱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장비 마련에 공을 들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영상 제작자들의 의견을 들어 해상도 4K 이상의 RAW 데이터-Rog 촬영 장비나 대용량 V-mount 배터리, 18K 대용량 HMI 조명 등을 구비했는데, 크고 무거운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 영상산업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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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연가>(1998), <인어공주>(2004), <각설탕>(2006), <늑대소년>(2012),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2), <계춘할망>(2016)과 드라마 <탐나는도다>(2009), <맨도롱 또똣>(2015), <우리들의 블루스>(2022)…. 제주는 오랫동안 무수히 많은 작품의 배경이 되어 관객에게 다가왔다. 어떤 영화는 제주의 슬픈 역사를, 또 어떤 드라마는 제주 도민의 애환을 담아내면서 제주를 지역적 배경에 국한하지 않고 이야기가 생생히 살아 숨 쉬는 근원지로서 비추기도 했다. 영화영상 창작자들이 섬 안에서 부지런히 생성되고 사라지는 문화를 콘텐츠 소재로 발굴하고 조명하는 과정에 효율성과 편리성, 경제적 지원까지 도모하는 곳이 있다. 영화인에게 제주가 자유로운 창작의 터전이 되길 바라는 곳, 바로 ‘제주실내영상스튜디오’다.
제주시 한경면에 자리한 제주실내영상스
제주 로케이션 촬영 지원하는 제주실내영상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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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 <헤어질 결심>이 현지 시각으로 5월 23일 오후 6시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다. 박찬욱 감독은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올드보이>(제57회), 심사위원상을 받은 <박쥐>(제62회), 그리고 전작 <아가씨>(제69회)에 이어 네 번째로 칸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박찬욱 감독과 주연 배우 탕웨이, 박해일은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리는 월드 프리미어 및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헤어질 결심>은 6월 29일 국내 개봉 또한 앞두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 영화 <헤어질 결심>과 만나기 전, 작품에 대해 알려진 몇 가지 사실들을 정리했다. 지난 해 9월, 첫 사진전 <너의 표정> 개최와 함께 <씨네21>을 만난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전한 힌트도 덧붙인다.
박찬욱 감독 영상 인터뷰 URL
https://youtu.be/9
칸 공개 앞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대해 알려진 몇 가지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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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아는 관객이라면 올해 칸영화제 개막작 <파이널 컷> 첫 장면에서 이미 이 작품의 태도를 눈치챌 수 있다. <파이널 컷>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거의 모든 요소를 그대로 번안한 리메이크영화다. 좀비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2019년 짐 자무시의 <데드 돈 다이>와 같은 전례가 있긴 하지만, 오리지널리티를 의도적으로 포기한 작품을 영화제에 초청한 것을 두고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을 테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을 연출한 사람이 <아티스트>를 만든 미셸 하자나비시우스라는 점이다. 그는 <아티스트>에서 무성영화의,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에서 누벨바그와 장뤼크 고다르의 스타일을 모사에 가까운 태도로 오마주했던 감독이다. 미셸 하자나비시우스에겐 이미 전세계적으로 컬트적 인기를 누렸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그대로
개막작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파이널 컷', 오마주의 경계는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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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두편의 한국영화를 진출시킨 CJ ENM은 영화제가 열리는 메인 거리 크루아제트에 대형 광고판을 걸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는 축제 현장을 찾은 영화인들과 전세계 프레스, 영화 애호가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에 자리를 잡고 적극적인 마케팅에 들어갔다. 아시아 회사가 경쟁부문에 두편의 작품을 올린 것은 1950년대 중반 이후 처음이며, 한국 기업으로서는 최초다.
올해 칸영화제에서는 총 5편의 한국영화를 만날 수 있다. 경쟁부문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가 5월23일과 26일(현지 시각)에 각각 최초로 공개된다.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고 <아가씨>로 류성희 미술감독이 벌컨상(본상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기술 스탭에게 주어지는 번외 특별상)을 받는 등 칸영화제와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는 한국영화들: '기생충'의 영광 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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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가 5월17일 개막했다. 프랑스에선 현재 실내외를 막론하고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돼 사실상 칸영화제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씨네21>도 2019년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3년 만에 칸을 찾았다. 개막작인 미셸 하자나비시우스의 <파이널 컷>을 시작으로 총 21편의 경쟁부문 상영작을 보고 화제작들의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올해 한국영화의 칸 진출 소식도 풍년인데,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배우들과 한국에서 찍은 <브로커>가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오징어 게임>의 스타 이정재 배우의 감독 데뷔작 <헌트>가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섹션에 초대받았다. 더불어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 문수진 감독의 단편애니메이션 <각질>도 칸에서 상영된다. 우선 1357호에선 칸영화제 초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개막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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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각국의 창작자들이 모여 창작자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시청각물창작자국제연맹(AVACI)의 첫 세계 총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어떤 배경이 있었나.
= OTT 플랫폼의 대두로 저작권의 이해관계가 한층 복잡해지고 있지만 감독, 작가들이 원하는 내용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공정한 보상(Fair Remuneration)이다. 극장이든 넷플릭스든 TV든, 법에 창작자들의 저작권과 경제적 이익이 명시되어 있으면 누구도 재판에 가지 않고 협의를 볼 수 있다. 한국은 지금 전세계적으로 콘텐츠가 활발히 유통되는 문화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봉준호, 박찬욱 같은 유명 감독들조차 이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보다 산업 규모가 작은 국가의 창작자들이 정당한 요구를 하려면 한국 저작권 인식과 법 제도의 개선이 중요하다.
- 아르헨티나감독조합(DAC) 사무국장으로 2004년 국내 저작권법 개정을 이끌어 창작자 보호 법제화에 성공한 선례를 만들었다. 이 움직임에 콜롬비아, 칠레, 우루과이 등이
호라시오 말도나도 시청각물창작자국제연맹 회장·아르헨티나감독조합 사무총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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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정체성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많지만 <XX+XY>의 설정은 남다르다. 이 세계에는 남녀 성별을 모두 가진 이들이 있다. XXXY로 불리는 이들은 남녀 한몸인 상태로 살다가 고등학생 때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한다. XXXY로 태어난 정재이(안현호)는 이해심 넓은 양부모 밑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유롭게 자랐다. 못하는 것 없는 팔방미인 재이는 다가올 그날 어떤 성별을 선택할지가 유일한 고민이다. 평범한 아이들과 생활하다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재이는 일반 남녀고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XX+XY>는 독특한 상상에서 출발하지만 장르적으로는 학원 청춘 로맨스물에 가깝다. 사랑이라고 말하면 달아나버릴 것 같은 그 시절의 애매모호한 감정들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매우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재이 역의 안현호 배우는 촬영 현장도 진짜 학교를 다니는 것처럼 즐겁고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중성적인 역할에 대한 부담이 없지 않
속 깊은 친구, 'XX+XY' 안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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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연극 <집으로> 데뷔 후 연극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온 장지수 배우는 <오피스에서 뭐하Share?>를 통해 처음으로 영상 연기에 발을 디뎠다. “목표를 정하기보다는 매일 충실하게 보내려 한다.” <오피스에서 뭐하Share?>는 도시형 공유오피스에 모인 여러 남녀의 전쟁 같은 썸을 그린 19금 로맨스다. 청춘 남녀를 한 공간에 모아놓으니 자연스레 ‘거대한 연애 양식어장’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복잡미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장지수는 성인 매거진 ‘체조’의 대표 박성희 역을 맡았다. 자유로운 연애와 섹스를 즐기는 성희의 레이더망에 승범(문유강)이 계속 들어온다. 브랜딩 에이전시의 마케터인 승범은 운동을 좋아하고 승부욕이 강한 시원스런 남자지만 성적인 부분에서 남모를 고민이 있다. “다인과 현우, 진석의 삼각관계가 중심이지만 서브 캐릭터들의 에피소드도 풍성하다. 성희와 승범의 관계는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워낙에 호흡이 잘
자유분방함이 닮았다, '오피스에서 뭐하Share?' 장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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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업 전성시대, <저승라이더>는 죽음도 배달할 수 있는 세계를 가정한다. 하지만 음식도 잘못 배달될 수 있는 것처럼 엉뚱한 사람에게 죽음이 배달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진영은 좋은 간호사가 되어 누군가를 살리는 게 꿈이었지만 정작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죽고 싶어 하는 간호사다. 정다은 배우는 죽음배달부 민석(성유빈)의 실수로 빼앗긴 자신의 죽음을 되찾기 위해 여정에 함께하는 진영을 연기한다. 그는 감독과 만나는 첫 미팅에서 “연기를 시키지 않고 수다만 엄청 떨었다”고 기억한다. “아무래도 <저승라이더>가 인간을 다루는 작품이라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삶과 죽음의 의미 같은 내용을 중점적으로 대화를 이끌어주셨다.” 제작진은 드라마가 다루는 주제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정다은에게서 작품에 대한 진심을, 그간 어두운 면을 연기한 필모그래피가 많았지만 실제 성격은 밝은 그에게서 진영을 연기할 수 있는 양면성을 발견했다. 자살을 앞둔 인물들은 매체에서 대체로
삶과 죽음을 고민하며, '저승라이더' 정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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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신드롬>의 시나리오를 읽는 추영우의 머릿속엔 곧바로 영화 한편이 재생됐다. “<인 타임>을 정말 좋아하는데 몇몇 장면들이 딱 떠오르더라. 너무 재밌겠다는 생각에 작품 들어가기 전부터 떨렸다.” <바벨 신드롬>은 바이러스로 사람들의 언어 중추가 손상되고 침묵이 일상이 된 2031년이 배경이다. 항체가 개발되긴 했으나 가격별로 레벨이 나뉘고, 레벨에 따라 사용 가능한 언어가 정해져 있다. 하늘(추영우)은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언어만 사용할 수 있다. 그는 연희에게 ‘사랑해’라고 고백하기 위해 더 높은 레벨의 항체를 구하려 한다. “감독님의 말을 빌리자면 ‘하늘이는 커다란 강아지처럼 순수하고, 좋아하는 것에 정말 바보처럼 몰두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10년간 연희를 좋아해왔고 자신의 마음을 전할지 말지 오랜 기간 고민해왔으니, 큰돈을 투자해서라도 고백하겠다는 그 선택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 하늘은 거울 앞
청춘의 단상, '바벨 신드롬' 추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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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부터 아파트로 계급을 나누고 명품 잡화와 화장품을 갖지 못하면 따돌림도 당할 수 있는 세대.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서 주식 열풍이 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주식과 코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결국 계급 문제와 분리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형인은 장세만 잘 읽으면 돈을 벌 수 있는 주식 세계에 일찍이 눈뜬 고등학생이다. 급기야 부모의 반대로 주식계좌를 만들 수 없는 학교 친구들의 의뢰까지 받아 대대적인 투자일임업을 시작한다. 형인을 연기한 이레 배우는 “어른들은 학생들이 마냥 해맑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2022년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또래 친구들의 SNS에 들어가보면 그들이 얼마나 일찍 성이나 미의 개념에 눈뜨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경제관념이다. 사회가 부여한 인식 때문에 경제관념에 눈을 뜨면서 누구보다 꿈과 돈에 대한 갈망이 크다. 다만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식을 모를 뿐이다.” 10대이기에 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청춘의 코인을 찾아서, 'Stock of high school'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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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이 워낙 잘돼서 밝은 이미지로 기울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도 <첫 눈길>을 만났다.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해볼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니, 너무 감사한 작품이었다.” <술꾼도시여자들>의 지연처럼, 분위기를 주도하는 한선화 배우의 환한 웃음은 <첫 눈길>에선 만나보기 어렵다. 그가 연기한 진아가 남자 친구의 죽음으로 완전히 멈춰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탓이다. “감독님과도 얘기를 나눴다. 정말 안됐고, 안타까운 인물이라고.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 하나로 버티며 살아온 그 속내가 어땠겠나.” 생기를 잃은 진아의 감정선을 위해 한선화는 카메라 밖에서도 감정을 절제했다. “촬영하면서 웃은 적이 거의 없다. 워낙 처연하고 감정 표현이 복잡한 인물이다 보니 촬영 전에 웃다가 자칫 감정이 무너질까 두렵더라. 그래서 계속 스스로를 가라앉히며 감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남자 친구가 죽은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남자
고통이 주는 만족감, '첫 눈길' 한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