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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은 ‘가족’이다. 가장 편안하고 감미로운 축복의 비가 내리는 곳, 그곳에 머무는 우리는 행복하다. 그래서 멈출 줄 모르는 삶의 환희와 생의 활기가 꿈틀대는 ‘가족이란 그 섬’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조승환의 조각은 ‘가족’이 중심이다. 나뉜 듯, 다시 한 덩어리로 어우러진 한 무리의 군상은 마치 개체이면서 단일한 소속감을 지닌 가족의 모습 그대로이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있거나 의지하며, 하나의 덩어리로 통합돼 전체적으론 ‘안정된 가정과도 같은 분위기’를 상징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최대한 절제된 양감 표현으로 일체감이 돋보이고 있는 조승환만의 조형언어. 독립된 개체의 개별성은 존중하면서도 최소한의 경계조차 허물어, 끝내 하나의 덩어리 속에 그 모든 요소를 함축하고 단순화한다. 바로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다, 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에게 가족은 예술의 출발점이다.
조승환의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족이란 섬, <조승환 조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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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에 의한 억압은 계급 억압 등에 비해 훨씬 미시적이고 일상적이고 개인적으로 작동한다. 개인을 그리는 영역인 문학, 예술은 가부장적 억압을 내재하고 있는데, ‘남성-작가’ 와 ‘여성-뮤즈/모델’의 짝이 그것이다. 남성이 발화 주체이고, 여성이 대상이라는 도그마를 허무는 것은 여성 작가의 존재이다. 버지니아 울프, 카미유 클로델, 프리다 칼로, 실비아 플라스 같은 여성 작가들은 ‘스스로 말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녀들은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극심한 고통 속에 살다 갔다. 한마디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였던 그녀들의 생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그녀들을 둘러싼 의식적/무의식적 현실에 대한 해명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이들을 다룬 <디 아워스> <까미유 끌로델> <프리다> <실비아> 같은 영화가 여성주의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디 아워스>의 그녀는 유일하게, 남편 때문에 죽거나 미치지 않
여성 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왜곡된 시선,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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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의 <주먹이 운다>는 그의 전작 <아라한 장풍대작전>처럼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게 하는 영화였다. 두 영화를 전적으로 지지하진 않지만, 한국 땅에 태어나 소년기에 자신을 매혹시킨 어떤 장르를 붙들고 그 장르의 매혹을 보존하면서 오늘의 관객과 만나려는 젊은 감독의 고집과 고민이 그 영화들에서 짙게 느껴졌다. 그의 고집과 고민이라고 내가 느끼는 것이 정확히 그의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하나의 이야깃거리는 될 거라는 짐작으로 이 글을 쓴다.
승리 아닌 피흘림을 위한 권투
<주먹이 운다>의 대단원은 최민식과 류승범의 피투성이 권투 시합이다.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제대로 싸우는 것이다. 제대로 싸움으로써, 류승범은 할머니로부터, 최민식은 아들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승인받는 것이다. 류승범이 판정승을 거두지만 제대로 싸웠으므로 둘 다 승리한다. 할머니와 아들은 감격적 포옹으로 그들의 승리를 확인한다.
그들의
충무로 액션키드가 우는 까닭은? <주먹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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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의 남동쪽에 위치한 섬 마다가스카(Madagascar).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섬의 이름은 드림웍스가 내놓을 새로운 3D애니메이션의 제목이다. 그러나 <마다가스카>를 보기 위해 마다가스카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4월8일(현지시각)에 ‘일부’ 공개된 <마다가스카>를 보기 위해서는 LA에서 털털거리는 작은 비행기로 갈아타고 1시간여를 더 날아야만 했다. “여러분, 우리는 곧 산호세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눈밑으로 펼쳐지는 것은 첨단공학의 세계인 실리콘 밸리. 드림웍스의 PDI 스튜디오는 숲과 강과 오피스 빌딩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미래 도시에 비밀처럼 숨겨져 있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에서 만들어진 아프리카의 어느 섬 이야기는, 뜻밖에도 뉴욕으로부터 시작된다. 풍족한 먹을거리와 세심한 배려로 여유로운 도회지 생활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센트럴 파크의 동물원. 사자 알렉스(벤 스틸러), 얼룩말 마티(크리
[현지보고] 3D애니메이션, 드림웍스의 <마다가스카>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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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매트릭스> 메투리스 민속촌의 구원자
[정훈이 만화] <매트릭스> 메투리스 민속촌의 구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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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브룩하이머, 브라이언 그레이저와 더불어 할리우드에서 가장 미더운 프로듀서로 꼽히는 스콧 루딘(46)이 파라마운트와의 15년 동반을 끝내고 디즈니와 손잡는다고 <LA타임스>와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루딘은 지난 4월18일 디즈니와 5년 프로덕션 계약을 맺을 계획이 있다고 언론에 밝혔으며 파라마운트 대변인도 이 사실을 확인했다. 문학 작품을 각색한 아트하우스영화에 강한 제작자 스콧 루딘은, 지난 3월 미라맥스의 공동대표 하비 와인스타인, 밥 와인스타인과 결별하며 생긴 디즈니의 공백을 메울 것으로 보인다.
<클루리스> <트루먼 쇼> <디 아워스> 등을 제작한 스콧 루딘은 파라마운트에 <슬리피 할로우> <야망의 함정> 같은 히트작을 안겨주었지만 최근 <스텝포드 와이프> <맨츄리안 켄디데이트> 같은 비싼 리메이크가 실패해 경영진의 불만을 샀다. 게다가 루딘이 12년간 긴밀한 파트너
디즈니의 새 카드, 스콧 루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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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황금연휴인 골든위크를 한주 앞둔 일본극장가는 기존작과 신작이 어우러진 풍성한 한주였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은 . 2주연속 1위를 차지하며 신작들의 거센 공격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이주까지의 토탈 흥행 수입은 20억엔 이상이고 연휴 중 30억까지의 흥행수입이 가능해 보인다.
26일 일본 에이가닷컴(www.eiga.com)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예매율을 기록해 큰 기대를 모았던 은 9위로 첫 진입. 전국 126개의 스크린에서 동시개봉한 은 스크린당 관객수로 54만엔으로 4위를 차지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의 주요 관객은 일본에서 한류붐을 일으키고 있는 주부층이 대다수이지만 남성관객들이나 20대 커플들의 관람도 점차 늘고있어 골든위크의 흥행전망이 밝아지고 있다.
과 동시에 개봉한 (일본제목:)는 8위를 차지했다. 전작 의 지명도를 바탕으로 258개 와이드 릴리즈한 것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다. ‘금지된 놀이’로도 불리우는 ‘분신사
일본 개봉 <분신사바>는 8위, <달콤한 인생>은 9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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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부문 라인업이 지난 19일 발표됐다. 28개국에서 총 53편의 영화가 초청됐다. 20편의 경쟁부문 초청작은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 라스 폰 트리에의 <맨덜레이>,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 짐 자무쉬의 <망가진 꽃들>, 허우샤오시엔의 <최호적시광>, 다르덴 형제의 <차일드>, 아톰 에고얀의 <진실이 있는 곳>, 아모스 지타이의 <프리존>, 빔 벤더스의 <두드리지 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 등이다.
단연 거장들의 집결이 눈에 띈다. 작년 57회 영화제 경쟁부문이 <열대병> <슈렉2> <화씨 9/11> 등 아시아 영화를 축으로 하여 대중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끌어안으면서 다양성을 꾀한 형세였던 것에 비하면 한층 무거워진 라인업이다. 예술감독 티에리 프레모도 올해 라인업의 특징을 “작년이
[칸 2005] 공식 부문 라인업 발표, 개막작은 도미니크 몰의 <레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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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SE> DVD에는 정말 기가막힌 부록이 수록되어 있다. 2번째 디스크에 있는 ‘캐롯블랑카’를 재생하면 컬러풀한 워너브라더스 로고가 튀어나오면서 귀에 익은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바로 어린시절 동심을 사로잡았던 루니툰즈 캐릭터들의 <카사블랑카> 패러디 애니메이션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사막의 도시 캐롯블랑카에 위치한 주스바 ‘카페오레 아메리캥’. 오너인 벅스 버니에게 어느날 중요한 서류가 넘어온다. 악랄한 팬더모니엄 장군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하는 가운데, 벅스의 옛 연인 키티가 남편인 실베스터를 위해 서류를 달라고 애원한다. 과연 벅스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동물 캐릭터들의 황당한 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전형적인 루니툰즈 애니메이션이지만, 10분도 안되는 짧은 러닝타임 가운데 <카사블랑카>의 명장면과 명대사는 물론 오리지널 연기자들의 표정까지 완벽히 패러디하는 연출이 압권이다. 영화 속에서 연인을 떠나보내는 험프리 보가
영화 <캐롯블랑카>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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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뉴욕에만 틀어박혀 영화를 만들었던 우디 앨런 감독이 최근 연달아 영화 두 편을 런던에서 촬영한다. 앨런의 첫 번째 ‘런던영화’<매치 포인트>(Match Point)는 이제 막 완성돼 칸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질 예정이다. 원래 이 영화 역시 뉴욕 맨해튼에서 촬영할 계획이었으나 유럽의 투자자로부터 제작비를 조달받게 되자 런던으로 촬영지를 바꿨던 것. 그의 영화가 미국보다는 해외에서 더 호응을 얻는 전례로 볼 때 해외 투자자가 나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올여름에도 역시 해외 자본을 가지고 런던에서 신작을 찍겠다고 발표했다.
우디 앨런의 여동생이자 제작자인 레티 애론슨은 앨런이 2년 연속 머무를 정도로 런던을 마음에 들어 했다면서 “그래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영국 축구팀)의 경기에서 앨런을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뉴욕 닉스(농구팀) 경기 티켓이나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유럽은 스튜디오 시스템이 없고 감독을 더 존중해 준다는
우디 앨런, 뉴욕 떠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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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마그렙’(Maghreb)이라는 지명은 굉장히 낯설게 여겨진다. ‘마그렙’은 아랍어로 ‘해가 지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로서, 통상 ‘마그렙 영화’라 하면 알제리, 튀니지, 그리고 모로코 등지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지칭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마그렙 영화들은 총 8편이 준비되어 있다. 낯선 지역의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을 넘어, 이 영화들은 우리에게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황홀한 이미지의 영토가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 아프리카 북부지역의 영화들이면서도 지중해 북쪽, 특히 프랑스 영화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탓에 시네필적 감수성과 영화형식에 대한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영화들도 적지 않다.
이슬람의 대표적인 문화적 산물 가운데 하나로서 <천일야화>를 떠올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데, 이것은 모로코 출신의 소설가 타하르 벤 젤룬이 적절히 표현했듯이 이슬람의 예술가들에겐 “거대한 집, 모든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7] - 마그렙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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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러셀의 밤
이단아 켄 러셀의 작품들은 정치적으로 도발적이고, 도덕적으로 부조리하며, 시각적으로 불편하다. 그는 어떠한 영화적 사조와도 관계를 맺지 않은 채 영국 영화계가 낳은 가장 독창적이고 논쟁적인 작가로 지속적인 행보를 해왔다. D. H. 로렌스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사랑하는 여인들>은 켄 러셀과 여배우 글렌다 잭슨을 세계 무대에 소개한 작품. 남성의 전면 누드가 등장한 본격적인 (거의 최초의) 상업영화로 악명이 높다. <악령들>은 컨 러셀의 악마적인 비주얼 감각이 절정에 달한 작품으로, 성적으로 뒤틀린 곱사등이 수녀를 중심으로 성직자들간의 권력다툼과 마녀사냥의 피비린내나는 잔혹극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데릭 저먼이 참여한 미술과 주연배우들(올리버 리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광적인 연기는 세월이 지날수록 힘을 얻는다. <토미>는 켄 러셀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 69년에 발매된 록밴드 더 후의 음반을 토대로 한 이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6] - 불면의 3일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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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 원컷. 소마이 신지의 영화세계는 이 한마디로 설명된다. 영화평론가 요모타 이누히코의 말을 빌리자면 “한 장면을 촬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컷을 넣지 않고 카메라를 여기저기 이동시키면서, 불투명한 소음으로 가득 찬 상상조차 못할 공간의 변화를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일본 영화계는 이런 폭력적이고 아나키스트적인 방법 속에 앙드레 바쟁이 30년 전에 정착시킨 ‘공간적 깊이에 의한 데쿠파주’라는 테제를 초월하는 새로운 원리가 구현되었다고 믿고, 그의 영화를 광신적으로 숭배했다.”
원신 원컷의 원칙
1980년 만화 원작을 각색한 <꿈꾸는 열다섯>으로 데뷔한 소마이 신지는, 첫 작품부터 일관된 원신 원컷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가장 실험적인 영화 <숀벤 라이더>의 7분40초간 지속되는 첫 장면은, 3대의 크레인을 이용하여 컷을 나누지 않고 수영장에서 운동장으로, 다시 교문으로 이어지는 긴 시공간을 하나의 호흡으로 끌어들여 전설이 되었다. 소마이 신지는 자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5] - 소마이 신지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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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를 찾아서
피델 카스트로에 관한 첫 번째 다큐멘터리 <지휘관>(Comandante, 2002)에 이은 올리버 스톤의 두 번째 쿠바 잠입기. 2003년, 일단의 쿠바인들이 선박과 비행기를 납치해 미국으로의 불법적인 이민을 시도하려다 실패한다. 쿠바 정부는 이들에게 전례없이 가혹한 처벌을 내렸고, 미국을 위시한 서구세계는 쿠바의 인권문제를 또다시 도마 위에 올렸다. 올리버 스톤은 다시 한번 쿠바로 날아가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고, 그와 처벌당한 수감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짚어낸다. 논쟁적인 감독은 공격적이고 객관적인 질문을 수시로 퍼붓고, 여기에 고집스레 대항하는 피델 카스트로의 거만한 제스처는 금방이라도 관객의 눈앞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63분의 짧은 시간 동안 올리버 스톤은 과거의 다큐멘터리들로부터 가져온 자료화면과 현재의 쿠바, 피델 카스트로의 노쇠한 카리스마를 기가 막힌 편집으로 섞어서 흔든다.
세계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4] - 거장의 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