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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 봉봉
사람 좋은 중년 남자 후안 ‘코코’는 이십년 동안 일했던 주유소가 팔리는 바람에 실직자가 된다. 그는 나무로 나이프 손잡이를 깎아 팔아보지만 신통치 않고, 직장을 구하려 해도 경기침체 때문에 자리가 없다. 막막한 심정을 헛웃음으로 감추는 코코. 그는 도로변에 고장난 차를 세워두고 있던 여자를 도와주었다가 죽은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도고 아르젠티노종 개 한 마리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의 삶이 변한다. <나의 개 봉봉>은 별다른 사건이 없는 영화다. 초라한 남자의 일상이 계속되다가 크고 하얀 개 한 마리가 나타나고 그 둘이 동무가 되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코코와 봉봉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한 사람과 한 마리는 그들 나름대로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딱 한 가지가 부족했던 봉봉이 마침내 완벽한 개로 태어나는 순간, 코코의 조용한 환희는 잔물결처럼 공기를 흔들며 이상하도록 선명한 아르헨티나의 햇빛을 받아 반사광을 내뿜는다. 자신의 이름 그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3] - 강추! 리스트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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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과 막스 오필스의 동명영화로 익숙한 이야기다. 생일마다 낯선 사람으로부터 하얀 장미를 선물받아온 남자가 어느 해 장미 대신 편지를 받는다. 그 편지엔, 18년 동안 그를 사랑했고, 이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여인의 목소리가 실려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옆집에 이사온 남자를 처음 보았던 순간부터 사랑을 시작해서 언제나 그의 곁을 맴돌았고 하룻밤 사랑 끝에 그의 아이까지 낳았다. 그러나 그 남자는 끝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주연과 감독을 겸한 쉬징레이는 1900년대 비엔나를 1930, 40년대 베이징으로 옮겨 귀부인의 밀실처럼 우아한 향기를 불어넣었다. 남자가 건넨 흰장미, 전후 베이징의 퇴폐적인 댄스홀, 응고된 사랑이 새겨진 여인의 표정은 단순한 스토리를 애틋하고 섬세한 손길로 매만진 흔적. <귀신이 온다>의 장원이 무심한 플레이보이를 연기했다.
퀼
옆구리에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2] - 강추! 리스트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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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가 벌써 여섯 번째 해를 맞았다. 메가박스를 주요 상영관으로 삼아 공간의 집중도를 높인 전주영화제는 디지털과 대안영화라는 컨셉을 유지하면서도 대중과 격차를 좁히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 때문에 상영하는 영화의 편수도 100여편 가까이 줄었다. 정성 들여 고른 영화를 여러 번 상영해 관객과 좀더 자주 만나겠다는 것이다. 올해 전주를 찾는 영화는 170여편. 지난해 신설된 비디오 아트 섹션 ‘영화보다 낯선’ 또한 20여편만을 상영하는 대신 강의와 세미나를 보완해 관객이 수월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눈에 띄는 프로그램은 <바람꽃> <세라복과 기관총>으로 유명한 일본 독립영화감독 소마이 신지의 회고전과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마그렙(모로코와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가 있는 아프리카 북서부 지역의 총칭) 영화를 소개하는 특별전이다. 이 밖에도 가장 대중적이라 할 수 있는 ‘영화궁전’과 낯익은 작가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시네마스케이프’가 비
2005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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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는 제작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르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기획이 구체화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나리오 작업에만 3년 가까운 시간을 들인 <혈의 누>는 지난해 6월28일 고대하던 첫 촬영을 개시했지만, 북상한 장마전선 때문에 크랭크인을 한 뒤 곧바로 한달 가까이 쉬어야 했다. 이후에는 찌는 듯한 무더위와 싸워야 했고, 이들의 고난의 사투는 올해 2월이 되어서야 끝을 봤다. 제작진의 대장정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 어디 변덕스런 기상뿐이었을까. 남도의 바닷가를 돌며 피를 뿌리고, 눈물을 뿌리던 제작진의 하소연을, 여기 모아 담았다.
“양반 되기는 글렀군”
예를 갖추려면 몸가짐부터 바로 해야 한다 했겠다. 차승원, 윤세아, 박용우, 3인의 배우 또한 촬영 전 한달 동안 삼청각(三淸閣)을 드나들며 절하고 차 마시는 기본 예법을 숙지해야 했다. “옛 양반들의 놀이문화라는 게 상놈들이 따라하지 못하도록 비틀고 비튼 것이더군.” 차승원
<혈의 누> [3] -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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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없는 자들의 지옥을 보여주고 싶었다”
새벽까지 믹싱 작업을 하고 왔다지만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프린트 나오면 감독이 할 수 있는 건 없잖아요.” 개봉을 3주 앞두고 막바지 후반작업에 진력하고 있는 김대승 감독은 겉은 몰라도 요즘 “피가 마를 지경”이라고 말한다. 2년 가깝게 <혈의 누>와 씨름했던 그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자신의 영화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복기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편집본을 보니 촬영장소 헌팅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전봇대야 어디든 꽂혀 있을 거라 예상했었지만 대부분의 바다에 양식장이 있어서 힘들었다. 포구마을 세트 부지도 알아봤는데 오목하게 들어간 적당한 곳은 이미 현대식 건물들이 다 들어서 있었다. 발품 팔아서 찾아낸 공간들을 영화의 전체 톤에 맞게 통일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마와 배우 스케줄 때문에 한달 정도 촬영이 멈춘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까지도 쫓기는 심정으로 헌팅했다.
<혈의 누> [2] - 김대승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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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근대, 그 핏빛 미궁 속으로
숨기려 들면 더 궁금한 법이다. 조선시대 역사 추리극 <혈의 누>는 제작기간이 3년이나 되지만, 제작진이 약속하고 입을 봉한 탓에 좀처럼 얼개가 드러나지 않았던 영화.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이를 과학적인 수사방법으로 뒤쫓는 조선시대 수사관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저 <장미의 이름> 같은 모양새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할 뿐이었다. 하지만 5월4일 개봉을 앞두고, 슬쩍 들여다본 <혈의 누> 판본은 그런 추측이 완전히 틀렸음을 말해줬다. CG, 믹싱, 색보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게다가 VHS로 본 불완전한 판본이었지만, 피 묻은 칼자루를 쥔 자가 누구인지 묻는 데만 영화가 진력하지 않았음을 눈치채기란 어렵지 않았다. 봉건의 썰물과 근대의 밀물이 빠르게 교차하는 시대를 상상으로 불러들인 제작진은 피비린내 진동하는 연쇄살인극 아래 무엇을 숨겨둔 것일까.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하는 것이 호기심을 달랠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그
<혈의 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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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제인 폰다는 ‘하노이의 제인’을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그건 1972년 <렉스프레스>지에 실렸던 자신의 사진만 부정한 게 아니라,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부정된 자신을 다시 부정하고, 아울러 <만사형통>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다르가 말했던 배우의 얼굴을 걷어내고 자신만의 표정을 드러낸 것일까?
<제인에게…> 같이 작은 에세이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고다르의 모든 작품은 관객이 질문과 대답을 ‘사유’하길 원한다. <장 뤽 고다르 컬렉션>에 들어 있는 네 작품의 스펙트럼은 넓다. 할리우드 장르영화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즐겁고 낭만적인 소품 <국외자들>, 68혁명 직전에 만들어진 부르주아 부부의 끝나지 않는 악몽 <주말>, ‘지가 베르토프 집단’ 시절에 장 피에르 고랭과 만든 <만사형통>, <영화사>를 만들던 1990년대를 마감하는 극영화 <포에버 모차르트>
<장 뤽 고다르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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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 영화의 바이블로 손꼽히는 존 밀리어스 감독의 <코난 더 바바리안>. 애초 007처럼 장기 시리지물로 기획이 되었다가 2편까지만 제작이 되고 중단이 되었다. 한창때의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우람한 근육질 몸매가 일품으로, 한 소년이 고난과 역경을 거쳐 왕이 되는 장대한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특히 이 영화는 바질 폴두리스가 작곡한 음악이 영화 음악의 불후의 명곡으로 손꼽히고 있다. DVD 타이틀은 2장의 디스크로 구성이 되며, 존 밀리어스 감독과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음성 해설, 삭제 장면, 프로덕션 노트 등을 제공한다.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를 멋지게 사용한 작품이어서 작품의 매력을 100% 누리고 싶다면, 반드시 오리지널 화면비를 통해 감상을 해야 되는 타이틀이다.
<코난 더 바바리안 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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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부에서 활약하는 꽃미남 소년들의 활약상을 그려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테니스의 왕자> 극장판이 오는 6월 29일 일본에서 DVD로 발매된다.
<테니스의 왕자>는 같은 원작을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 동시 개봉시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관행상 두 편의 극장판으로 제작되었는데, DVD 역시 두 편을 함께 담은 ‘메모리얼 에디션’과 따로 패키지화시킨 단품판으로 각각 발매된다.
메모리얼 에디션과 단품판 모두 1.85: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과 돌비 서라운드를 지원하지만 부록 구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메모리얼 에디션의 경우 화려한 패키지 구성과 함께 성우들의 음성해설 추가 등 부록이 훨씬 풍성하다는 점에서 단품판 두 개를 합친 것보다 고가인 9,240엔으로 책정되었다. 단품판 역시 메모리얼 에디션에는 없는 부록이 포함되어 있어, 팬들의 이중구매를 부채질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DVD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테니스의 왕자>
<테니스의 왕자> 극장판 6월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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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을 통한 역사만화 해보고 싶다
-종이만화 외에 멀티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만화가로 안다. 잠시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는데.
=‘도나스’라는 이름의 회사였는데 인터넷 사업 기획에 뛰어들지 않으면 뭔가 큰 기회를 놓치는 것처럼 생각하는 골드러시의 시기였다. 24시간 365일 열려 있는 남기남의 사이버 마을 같은 것을 꿈꾸었다. 밖에서 비가 오면 그 마을에도 비가 내리고, 꽃가게에 들어가면 기남이가 주문을 받고 극장에 가면 영화를 볼 수 있는 <트루먼쇼> 같은 세계를 신나게 구상했는데, 유기적으로 관리할 통제시스템 비용이 수익성에 맞지 않았다. 지금도 아이디어는 많다. 영화의 세트처럼 3D 세상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만화를 그리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어울리는 친구들이 궁금하다.
=만화와 전혀 관련없는 일을 하고 내 만화를 열심히 읽지도 않는 친구들이다. 만화가끼리는 어쩌다 만나면 모임을 발족하자고 말만 해놓고 다시 각자
만화가 정훈이를 만나다 [2] - 정훈이가 뽑은 만화 BES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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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최종편인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의 공개를 앞두고 있는 <스타 워즈> 시리즈의 새로운 DVD 박스 세트가 기획중이라는 소식이다.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미국 인디아나폴리스주에서 열린 <스타 워즈> 공식 컨벤션 '스타 워즈 셀레브레이션 3'에 참석한 조지 루카스는 에피소드 1부터 6까지를 모두 수록한 새로운 DVD 박스 세트를 준비중이며, 오리지널 3부작의 삭제 장면 등이 담긴 보너스 디스크를 포함하여 총 7장의 디스크로 구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 자리에서 2007년에 나올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HD DVD 버전은 사실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한편 루카스는 에피소드 3이 끝나면 에피소드 7~9를 만드는 대신 <스타 워즈>와 관련된 2편의 TV 시리즈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해 화제를 모았는데, 하나는 카툰 네크워크에서 방영되어 인기를 모았던 애니메이션 <클론 워즈>의 후속편이 될 것이며, 다른 하나는
<스타 워즈> 새 DVD 박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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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한결같이, <씨네21>의 골키퍼, 정훈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는 제목의 노래도 있고 소설도 있지만, 바람 잦은 인생에서 마지막 춤 따위를 감히 누구와 기약할 수 있으랴. 그래도 <씨네21> 열살 생일 축하파티의 첫 번째 춤만큼은 꼭 이 남자와 추고 싶었다. 편집장이 네번 바뀌는 동안에도 두 페이지의 텃밭을 한결같이 장악해온 행복한 영주, 그의 만화 때문에 잡지를 산다는 독자들의 쇄도하는 고백에 어느 감독이나 평론가보다 <씨네21> 기자들이 질투하는 만화가 정훈이가 그 사람이다. 1995년 <영챔프>가 주관하는 제2회 신인만화 공모전에서 수상해 <씨네21> 제9호에 인터뷰가 실린 것을 인연으로, 정훈이 작가는 <씨네21>에 기고하기 시작했고 1996년 초 본격적인 매주 연재에 돌입해 500호를 눈앞에 두고 있다. 24장의 프레임으로 1초를 이루는 영화를 닮았는지, 스물세칸 내지 스물다섯칸에 걸쳐
만화가 정훈이를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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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공간에서 도덕적 타락이 일어난다”
심영섭 | 당신의 영화에서 아르헨티나 북부 지역이 갖는 의미가 궁금하다. 계급이나 인종문제도 포괄하고 있는데.
루크레시아 마르텔 | 내가 태어나서 19년 동안 산 곳이고, 아르헨티나 문화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지역이다. 문화적으로도, 인종적으로도, 상당히 보수적이고, 가톨릭 색채가 강하다. 계급 격차라는 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빈민층은 지역 원주민이고, 부유층은 유럽 이주민들이라는 구분도 유사하다. 미국을 잘 아는 사람들은 아르헨티나 북부가 미국 남부와 비슷하다고들 한다.
심영섭 | 두 작품에 모두 백인 부르주아에 대한 비판이 섞여 있고, 그것이 가족문제로 환원되는 경향을 보인다.
루크레시아 마르텔 | 내가 보기에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하는 모든 악의 근원은 중산층에 있다. 물론 중산층보다 도덕적으로 더 많이 타락한 고위층들이 있지만, 중산층은 정치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점에서 많은 심각한 문제들을 낳고 있다.
루크레시아 마르텔 [2]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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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나요? 당신의 삶이 부식되는 소리가
루크레시아 마르텔이라는 이름은 아직 생소하다. 지구 정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 이제 두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놓았을 뿐인 이 여성감독은 그러나, 칸영화제를 비롯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앞다퉈 초청장을 보내는 유력한 감독이 되었다. 데뷔작 <늪>에 이어, 고향인 아르헨티나 북부에서 촬영한 두 번째 영화 <홀리 걸>은 사회와 가정, 소통과 욕망의 문제를 차갑고 건조한 영상에 담아낸 수작이다. 서울여성영화제에서 <홀리 걸>을 개막작으로 선보이며 방한한 루크레시아 마르텔을 영화평론가 심영섭씨가 만났다. 남아메리카영화와 여성영화에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둬왔던 심영섭씨는 이 둘의 교집합격인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영화세계를 주목했고, 지난해 가을 <씨네21>의 특집 기사 ‘거장 예감, 세계의 신성 감독’ 편에 마르텔을 추천하며 열렬한 지지의 변을 전한 바 있다. 1966년 말띠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이들은 ‘여성
루크레시아 마르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