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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두근두근 체인지>(이하 <두두체> - 나도 이런 거 한번 해보고 싶었다)의 본방을 앞두고 주연배우들과 스탭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식을 했다.
술잔이 여러 번 돌고 우리는 기분 좋은 아사리 난장판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테이블 위에 올라가 체리필터의 <오리 날다>를 부르다 천장에 머리를 받았다.
그때, 매니저 한분이 살짝꿍∼ 긴장된 표정을 하고선 손님이 한분 오셨다고 했다.
‘손님? 누구? 근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고현정이라도 왔나?… ㅋㅋㅋ’
문이 열리며 고현정이 들어왔다.
방 안엔 3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청바지에 하얀 셔츠를 입고 나타난 그녀의 머리칼은 젖어 있었다.
<두두체>의 파일럿을 보고 너무 행복하게 웃었다고 했다.
그걸 만든 사람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머리카락을 말리는 시간도 아까웠다고 했다.
한마디로 버선발로 달려왔다는 소리였다.
내 가슴이 갑자기 뜨거워
[이창] 고현정에게 강 같은 사랑이 넘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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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하다. 본의 아니게 노무현에 대해 “왕이기를 거부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찬사와 “국민은 젖달라고 하는데 대통령은 책 읽어준다”는 비판 사이에서 오래 헷갈렸었다. 다 내 머리를 믿지 않고, 그놈의 정치권이니 언론이니 하는 구닥다리 ‘게이트 키퍼’들을 의지한 탓이다.
대연정 발언 시리즈 와중에 문득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하나도 불안하지 않다는 사실, 협박당한다는 느낌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 잡는 자세로 머릿속을 뒤졌더니 다음과 같은 통찰의 사리가 수확되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불온하다. 그 어떤 진보적인 발언도 존재를 위협하는 불이익을 받지 않는 시대에, 그래서 그 발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진보’라는 단어 자체의 스릴과 매력이 없어져버린 시대에, 불이익을 자청하는 그의 정치철학은 불온하다. 대통령 자리와 여당과 이른바 국민여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그의 태도를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다 선뜻 못 받아들이고 황당해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으리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진심은 최고의 정치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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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영화기자로서 밥 벌어먹고 살게 된 것은 아주 사소한 단신기사에서 시작됐다. 1991년 초로 기억되는데, 당시 <한겨레>의 문화면 귀퉁이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히치콕 영화 상영회 개최.’ 생전 들어보지 못한 어떤 단체에서 앨프리드 히치콕의 대표작 10여편을 보여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그 기사가 내 눈에 들어온 건, 지금 생각해봐도 이상한 일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네 재재개봉관을 제집처럼 들락거린 시네키드도 아니었고, 성룡과 할리우드영화, 그리고 홍콩 누아르 외에 한눈을 팔아본 일도 거의 없던 터였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 말년 시절 학점을 좋게 준다는 소문을 듣고 ‘영상미학’과 ‘영상론’이라는 엇비슷한 과목을 동시에 수강했던 경험이 여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두 과목 모두 수업엔 거의 들어가본 적이 없었기에 후배의 노트를 달달 외워서 시험을 치르긴 했지만. 아마도 그 기사를 유심히 보고 기사에 적힌 전화번호를 누르게
[오픈칼럼] 열혈 단신을 수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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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길거리에서 실제로 모모코를 봤다면 나는 <불량공주 모모코>를 봤을 때보다 훨씬 큰소리로 웃었을 거다. 진짜 깬다 깨. 쟤 미친 거 아냐? 정신병자인가봐. 키득거리기는커녕 그녀에게 들리라고 큰소리로 떠들며 푸하하하 비웃었을 것이다. 그렇게 큰소리로 웃을 것까지야… 이건 웃음이 아니라 비난이고 공격이다. 왜. 모모코는 내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포기했던 꿈을 실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실은 배알이 뒤틀리는 것이다.
사실 내가 그 꿈을 포기한 건 불과 몇년 되지 않는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내 마음대로 내가 입을 옷을 고를 수 있었던 이십대 시절 내내 나는 공주옷을 향한 열망을 버리지 못했다. 물론 모모코처럼 극단적인 옷차림은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레이스와 꽃무늬, 분홍색과 앙증맞은 프린트, 자수 등 귀여운 스타일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사실 지난해에도 분홍색 스웨터와 분홍색 코듀로이 바지를 입고 모임에 나갔다가 사람들의 경악하는 표정을 보고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투덜군 투덜양] 아! 그녀의 공주 드레스여, <불량공주 모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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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미래의 관객에겐 <링>이 하나도 안 무서운 영화가 될지 모른다. 집집마다 비디오데크가 있어서 비디오 빌려보는 일이 일상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면 말이다. <링>의 공포가 강력했던 이유는 저주의 비디오테이프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전염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비디오로 보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 온다면 <링>의 귀신은 얼마나 억울할까? 기술발전에 뒤떨어진 원귀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른 자신을 업그레이드해서 인터넷 환경에 적응하는 길뿐이리라.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는 비디오테이프가 죽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VHS 대여총액은 2003년 들어 DVD에 추월당했고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무게중심도 VHS에서 DVD로 옮겨갔다. 사태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는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가 DVD로만 출시된다는 보도다. 아예 비디오 출시를 하지 않는 영화가 생긴다면 VHS의 생산과 소
[편집장이 독자에게] 비디오 시대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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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우 맨> 이전에도 투명인간 영화는 많았지만, 이 영화의 사실성은 사상 최고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각막 이야기는 그만 좀 하자! 어디까지나 화면에 보이는 사실성이 중요하니까). 더욱이 <할로우 맨>에는 장기와 근육, 힘줄, 혈관을 질릴 정도로 보여주면서도 정작 투명인간에게는 조잡한 고무 마스크를 씌우는 애교 넘치는 유머도 존재한다. 이같은 효과를 위해 제작진은 배우 케빈 베이컨의 전신을 스캔한 뒤, 철저한 해부학적 검증을 거쳐 완벽한 CG 복제인간을 만들었다. 또한 투명인간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모션 컨트롤 카메라로 배우와 배경을 따로 찍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합성을 위해 배우를 지우면 없어지는 배경을 따로 찍은 부분으로 채우는 것이다. 이같은 시각효과의 전 과정을 주요 장면별로 세분화한 메이킹 다큐멘터리는 쉬운 해설과 풍부한 자료 화면을 통해 복잡한 작업 과정을 잘 요약해놓았다. CG 소스 영상이나 합성 전후의 영상 비교 등을 따로 감상하는 것도
[서플먼트] 케빈 베이컨의 몸뚱이를 스캔한 이유, <할로우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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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를 처음 보았을 때 누군가의 그림이 머리 속에서 가물거렸다. 몇 년 뒤, 생폴의 식당에서 벽화를 본 순간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페르낭 레제는 그렇게 기억 속에 남게 됐다. 둥근 육체의 온화함과 무표정한 얼굴의 싸늘함이 조합될 때 나오는 기이함과 소외감. 레제의 그림과 영화 <권태>는 그런 느낌이었다.
소외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던 1960년대 전후, 이탈리아의 대표적 작가 두 사람은 권태와 소외를 화두로 삼아 책을 쓴다. 이탈로 칼비노는 <나무 위의 남작>의 서두에서 ‘명상에 잠겨봐야 결국은 무시무시한 권태와 무기력에 도달할 뿐’이라고 말하며,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권태>의 프롤로그에 ‘권태는 소통 부재,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무기력함’이라고 쓴다. 세드릭 칸이 모라비아의 <권태>를 영화화한 동명의 작품에는 그런 느낌, 그런 생각이 박혀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가에서 철학강사로, 이웃 화가는 우
<권태> 소외감을 느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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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의 해양사고 <타이타닉>의 비극을 영화화한 뒤 제임스 카메론의 관심은 현재까지도 바다에 머물러 있다. 그는 <어비스>를 통해 바다 밑 심해의 세계에 한 차례 도전을 했었지만, <에이리언 오브 더 딮>은 영화가 아닌 실제 심해를 탐사하며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배경으로 많은 해양 전문가들과 함께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카메론의 집념이 본편보다 더 감동적으로 와닿는다. DVD 타이틀의 좋은 화질로 생생하게 포착된 자연의 모습은 분명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다.
카메론의 심해 다큐멘터리, <에이리언 오브 더 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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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 가운데 독특한 색깔을 자랑했던 <릴로&스티치> 그 두 번째 이야기. 전작이 광포하기 짝이 없는 스티치가 릴로에게 사랑과 오하나의 정신을 배우며 유순해지는 과정을 그렸다면, 속편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스티치 살리기가 핵심. 전편처럼 짜임새 있는 구성이 돋보이며, 할리우드 최고의 아역 스타 다코타 패닝이 릴로의 목소리 연기로 참여했다. DVD 타이틀의 화질과 음향이 우수하며, 수록된 부가영상도 꽤 재미있다. 특히 단편애니메이션 <스티치의 조상>을 놓치지 말 것.
다코타 패닝의 하와이소녀 목소리, <릴로&스티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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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지>로 재미를 톡톡히 본 샘 레이미 제작의 두 번째 공포영화. 벽장 속 괴물에 대한 존재감보다는 어둠 그 자체를 공포의 소재로 가져간 <다크니스>와 유사한 면이 많다. 정통적인 할리우드 공포 스타일이 아니라, 아시아권 영화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 특징. 특히 최근 일본 심령 공포영화들을 노골적이다시피 차용하고 있다. 영화 자체는 다소 심심하지만, DTS ES 6.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이 대단히 뛰어나다. 부가영상으로 제작과정과 인터뷰로 구성된 메이킹필름과 삭제장면 모음 등을 제공한다.
어둠의 문이 열린다, <부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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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의 아침, 누군가가 숲길을 걷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수영복 차림의 네드(버트 랭커스터). 친구 집에 들러 수영하던 네드는 이웃의 풀장을 하나씩 건너며 자기 집으로 간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를 낯설게 대하고, 과거의 기억 뒤로 아픈 상처들이 스쳐지나가며, 결국 그는 가려졌던 사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존 치버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애증의 세월>은 일종의 알레고리다. 소비와 향락에 빠진 부르주아 혹은 기나긴 인생의 모험 끝에 초라한 자신을 돌아보는 영웅의 비극 말이다. 그리고 <애증의 세월>의 비극성은 영화의 스타일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이미 데뷔작 <데이비드와 리사>에서 유럽 뉴웨이브영화의 경향을 따른 프랭크 페리는 <애증의 세월>도 할리우드와 동떨어진 작품으로 만든다(일부 장면은 시드니 폴락이 연출했다). 리얼리즘과 아방가르드, 멜로드라마가 마빈 햄리시의 첫 영화음악과 맞물리는 가운데, 네드는 점점 비현실적인 인물로
서글픈 당신의 삶을 위하여, <애증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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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마’는 스와힐리어로 ‘치타’란 뜻이며, <듀마>를 연출한 사람은 캐럴 발라드다. 이 정도 정보만 가지고도 <듀마>에 대해 짐작이 가능할 듯하다. 남아프리카에 사는 소년과 아버지는 어미를 잃고 헤매던 새끼 치타를 데려다 키우게 되고, 외딴 목장에 살던 소년은 ‘듀마’란 이름의 치타와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야생동물을 계속 곁에 둘 수는 없는 법. 소년은 듀마를 태어난 곳으로 보내기 위해 칼라하리 사막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모험을 시작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대뜸 하품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발라드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듀마>는 지루한 가족용 드라마나 아동용 영화를 넘어선다. 발라드는 이번에도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고독한 땅을 가로지르는 아이와 야생동물의 모험담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듀마>의 감동은 배가된다. <듀마>가 발라드의 전작과 다르다면, 그것은 영화가 소년의 내면에
치타와 소년의 우정과 모험, <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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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플란다스의 개> 마지막 회를 보게 됐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보다가 어느새 엉엉 소리 내가며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란 일이 있다. ‘이 나이에 추억의 만화를 보며 대성통곡이라니! 아니 눈 쌓인 거리를 맨발로 걸을 건 또 뭐야. 울리고 말겠다는 의도가 너무 뻔하잖아!’ 머리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눈에서는 눈물이, 코에서는 콧물이 흘러내렸다. 아, 그때의 그 당황스러움이란. (나중에 학교 선배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자신은 울지 않으려고 그날 일부러 나가 놀았다고 하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장밋빛 인생>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네로’가 맨발로 눈발을 헤치며 걸었듯이, 최진실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다리를 절며 걸었다. 게다가 남편의 발길질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니 '이 지경이 되도록 뭐하셨습니까' 라는 예의 그 반응.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캐릭터'를 만들어보겠다고
[드라마 칼럼] 최진실이 포기하지 못한 캐릭터 맹순, <장밋빛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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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영화제, 광주국제영화제, 세네프, EBS다큐멘터리영화제, 환경영화제, 고양어린이영화제, 제천음악영화제, 속초호러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서울국제실험영화제. 이 모든 영화제들이 8월 초에서 9월 중순 사이 개최된 것들이다. 같은 기간에 서울아트시네마, 필름포럼, 한국영상자료원, 하이퍼텍 나다, 시네큐브에서도 다른 회고전들이 열렸다. 이 모든 것들 사이사이에 몇몇 용기 있는 배급업자들이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어떤 나라> <피오릴레> 등과 같은 예술영화를 개봉시키기도 했다.
한명의 관객으로서 요즘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외국영화들과 고전영화들이 대대적으로 포진해 있다는 것에 신이 나기도 하고 또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런 모든 영화들을 보려면 전적으로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할 판이다. 그래서 제한된 시간을 가진 열혈 시네필들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6시 반에 상영하는 차이밍량 영화를
[외신기자클럽] 영화제보다 기관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