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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과 개요
본안은 (1) 연중 생산량의 80% 이상이 하절기에 집중되는 특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공포영화들의 과당경쟁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고 (2) 지난 98년 <링>의 등장 이래, 그 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작품들만 반복 양산됨으로써 거의 제자리에 묶여 있는 공포영화 관객을, 고통 분담의 차원에서 공포영화계 전체가 공평하게 분배해, 공존공생의 도를 실현하고 (3) 최근 개봉된 공포영화들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듯, 갈수록 그게 그거화(化)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공포영화들을 아예 표준화·규격화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 내년 하절기부터 월 10편 이상의 대량생산 체계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위한 기초 인프라 구축을 위해 마련되었다.
내용
앞으로 제작되는 모든 공포영화들은, 다음과 같은 제작 지침들을 따르도록 한다.
1. 스토리가 지루해진다 싶을 경우, 당황하지 말고, 전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아예 없애버린 뒤, 갑자기 ‘쾅!’ 하는 소리를 낸다. 이 경우
[투덜군 투덜양] 지루한 스토리는 효과음으로 대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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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567호에 김소희 기자가 쓴 ‘간밤에 고마웠다’라는 칼럼을 읽고, 한참 웃다가, 한참 머리가 띵했다(칼럼 문패가 ‘김소희의 오 마이 섹스’다. 이거 필독요함이다!). 나, 드디어, 가는구나. 내가 아무리 우리 세대에 하늘로 날아간 헬륨 풍선처럼 현실에 발 안 딛고 둥둥 떠서 살았어도, 나는 가는 세대로구나.
비슷한 경험 하나 더. <GQ>라는 아주 발칙한 남성잡지의 지난 6월호에 ‘쓰리썸’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에디터의 체험담을 옮긴 이 기사는, 음란하지도 음습하지도 않고 쿨했으며 철학적 성찰까지 담겨 있는, 그 자체로 훌륭한 글쓰기이며 읽을 거리였다. 친구가 키득거리며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서, 읽다가 나도 엄청 키득거렸다. 섹스를 양명한 햇살 아래 꺼내놓으니 이렇게 해맑아지기도 하는구나.
그러면서 억울했다. 우리 땐 왜 섹스와 결부되는 단어가 오럴이 아니라 모럴이었지? 우리는 왜 섹스라는 단어를, 늘 축축한 죄의식에 차서, 비밀스럽게 발
[숏컷] 쓰리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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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가게 되면 무언가 교훈을 얻어오곤 했다. 외부자의 눈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데서 비롯되는 일종의 ‘반성효과’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하여튼 1996년 유럽에 다녀와서는 파란불로 바뀐 전방 50m의 횡단보도로 황급히 달려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유유자적 유럽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며 ‘한번 사는 인생 조급히 살아 뭐하나’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99년 미국에 다녀온 뒤로는 얼굴 근육의 힘을 풀기로 마음먹었다. 본심인지 알 순 없지만, 타인에게 항상 생긋 미소를 던지며 말을 하는 그들의 태도가 훌륭해 보였던 것이다. 그해던가, 일본을 다녀온 뒤로는, 음, 돈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겠다고 각오했다. 그건 도쿄에서 사흘 정도 지내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럼 <나의 결혼원정기>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 다녀온 우즈베키스탄에선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싼 물가에 감탄하며 이것저것 사다보니 정작 공항 면세점에서 P모 담배(한국에선 최근 단종됐다)를 구입할 수 없
[오픈칼럼] 수박 한통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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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들어갔다가 나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를 보았다. “진중권 읽기, 그의 커밍아웃을 환영한다.” <브레이크 뉴스>라는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실린 기사다.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이 기사가 1면 톱에 올라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성 취향은 이성애에 가깝고, 일반적으로 이성애자는 남들에게 “저는 이성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을 하지 않는다. 대체 무슨 일일까?
호기심에 기사를 열어보았다. 진중권이 ‘반(反) 김대중주의자’ 커밍아웃을 했단다. 내가 <한겨레>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는 것이다. “박정희보다 훨씬 국민들을 많이 괴롭힌 김정일에게 협력한 김대중과 같은 사람이야말로 훨씬 더 나쁘다고 느껴질 수 있어야만 지성을 갖춘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나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없고, 그러니 당연히 <한겨레>에 실릴 리도 없다.
잠든 사이에 내 영혼이 몸을 빠져나와 유령판 <한겨레>에 기고한 걸까? 알 수 없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나도 몰랐던 나의 커밍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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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감독은 기자들에게 악명 높다. 대부분의 질문을 단답으로 끊어내서다. 확인을 해줄 뿐 설명은 좀처럼 해주지 않는다. 언제였던가. 인터뷰에 떠밀려 나섰다가 술만 진탕 마시고 돌아와 구시렁대던 H 선배가 있었다. 부산까지 내려갔다 전화를 걸어 봉변이라도 당한 듯한 음성으로 어떻게 기사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칭얼대던 K 후배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엔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조금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장편영화 연출은 <이재수의 난>(1999)이 마지막. 또 2003년까지 준비했던 <방아쇠>가 중단됐다. 6년 만에 신작 <컨테이너의 남자>(가제) 촬영을 앞두고 박 감독은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둔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착각이었다. 침묵을 곱씹으며 다음 질문 고르느라 애먹었던 이는 결국 “질문이 다 떨어졌는데요”라고 말끝을 흐리며 항복 선언을 했고, 그는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할까요? 인사부터”라고 면박을 줬다. 알쏭달쏭
6년 만의 신작 <컨테이너의 남자>(가제) 준비 중인 박광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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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카데미상 수상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이번 주 미국 홈 비디오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진지한 드라마인 이 영화가 1위를 차지한 것은 통상적으로 화려한 블록버스터나 가족 대상 영화가 강세를 보이는 홈 비디오 시장에서는 상당히 예외적인 결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에 지난 주 1위 작품이었던 <숨바꼭질>은 3위로 밀려났으며, <패시파이어>는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2위를 고수하고 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대여 시장에서만 1,540만달러의 수익을 거두어 최근 출시된 코미디나 블록버스터 영화가 거둔 첫 주 성적 이상의 선전을 보여주었다.
<밀리언...>의 선전은 판매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특히 미국에서는 일반판인 2 디스크 버전과 사운드트랙 CD가 추가된 3 디스크 특별판이 함께 발매되어 소비자들의 선택 폭을 넓혀준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한편, 지난 16일 발매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신
<밀리언 달러...> 미국 DVD 순위 1위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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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아니라 <북21>이 어울리겠는걸.” 이번주 <씨네21>을 보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이번호엔 유난히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특집으로 작가와 감독의 대화를 실은 것에서 시작해서 최근 일본에서 개봉한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원작자 가네시로 가즈키의 인터뷰를 거쳐 포커스 지면엔 올 여름에 읽을 만한 신작 추리소설들이 선보인다. 갑자기 소설 이야기가 많아진 것은, 한국영화의 위기에 출구가 없는지 되짚어보자는 제안이다, 한국영화가 잃어버린 서사의 즐거움을 되찾자는 선언이다, 지난 6개월간 극비리에 추진해온 <씨네21>의 안중근 계획이다, 라고 말하면 좋겠는데, 사실 그렇게 굉장한 의도를 갖고 추진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하다보니 우연히 그렇게 됐다. 각각의 특집과 기획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들어가게 될 줄은 예상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
[편집장이 독자에게] 문학아, 말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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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공동 제작해 공동으로 개봉(국내 8월 12일, 북한 8월 15일)하는 작품인 <왕후심청>이 ‘캐나다 오타와 애니메이션 페스티발’ 본선에 진출했다. 오타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격년제로 짝수해에 열리는 아메리카 지역 유일의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로 프랑스의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일본의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과 함께 세계 3대 애니메이션 축제로 손꼽힌다. <왕후심청>은 이미 안시에서 프로젝트 경쟁부문 특별상을 수상했고 히로시마에도 초청 상영된 적이 있어, 이번 오타와 본선 진출로 세계 3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문을 모두 두드리게 됐다.
<왕후심청> 오타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본선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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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 개봉 예정인 <판타스틱4>가 독특한 마케팅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영화의 투자/배급사인 20세기폭스는 “MSN과 제휴해 8월 13일까지 전세계 20개국(아시아 10개국) 네티즌 1억2천만명을 대상으로 <판타스틱4> MSN 메신저 7.0 테마 패키지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MSN 7.0 버전 <판타스틱4> 테마 패키지는 스킨(대화창 배경화면), 이모티콘, 윙크, 공개사진 등을 <판타스틱4> 주인공 4명의 캐릭터를 활용해 꾸밀수 있는 서비스다.
한편 국내에서는 20세기폭스코리아가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 <판타스틱4>와 <로봇>의 래핑 광고를 실시해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지하철 전면 래핑광고는 <판타스틱4>가 처음이다. 마블 코믹스 원작의 <판타스틱4>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능력을 가진 ‘인비져블’, 1mm의 틈도 파고드는 ‘판타스틱’, 불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
<판타스틱4> 마케팅 ‘눈에 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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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는 한없이 즐겁고,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는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가 바그너를 불렀을 리 없고, 셰익스피어를 알았을 리 만무하다. 중요한 건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이었다. 노래와 이야기 속에서 시인이자 건축가였던 그들은 때론 난봉꾼이 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속사포 같은 대사가 사라진 자리를 낭만적인 순간의 정적으로 채색하곤 했다.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 그리고 에른스트 루비치는 그런 이야기하기의 방법을 알았던 사람들이다. 비극 속에 삶의 기쁨을 숨겨놓았던 그들은 희극 속에서도 잔잔한 슬픔을 잊지 않았다. 진 티어니와 데보라 카를 누구보다 사랑스럽게 보여준 반면 작은 인물에 대한 이해 또한 모자람이 없었던 그들이다. 그들의 영화엔 진실과 품위가 있다.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의 미국판 DVD엔 파웰이 생전에 남긴 음성해설이 들어 있다. 노감독은 주제곡의 선율을 들으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며 허밍으로 따라 부른다. 전력을
[DVD vs DVD] 진정한 이야기꾼 파웰, 프레스버거, 루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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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과 연결. <플란다스의 개>라는 영화의 핵심은 이렇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디테일인 이유는 이 영화가 일상의 자질구레하고,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일 정도로 작은 단위로부터 뽑아낸 드라마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결인 이유는 그렇게 사소하고 평범한 조각들을 이어나가 하나의 큰 의미를 이루는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봉준호 감독은 음성해설 전체를 통해 의미를 가진 디테일의 집합체로서의 영화를 위해 각 요소 사이사이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투입되어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감독은 아파트 경비원이 빗자루로 골프치기 흉내를 내는 광경을, TV에 나온 보일러 수리공의 감동적인 일화를, 어렸을 때 들었던 음담패설을, 할 일이 없으니 쓰레기 분리수거라도 철저히 해야 덜 심심한 백수들의 일상을 꼼꼼히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관객이 <플란다스의 개>의 캐릭터와 자신들을 동일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집요한 관찰에서 비롯된 일상에 대한 디테일과 완벽한 연
[코멘터리] ‘봉테일’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오, <플란다스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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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베이가 설립한 플래티넘 듄의 첫 번째 공포영화. 1974년 탄생한 토브 후퍼 감독의 기념비적 영화의 리메이크로, 오리지널이 지닌 극한의 공포 체험과 달리 순수한 오락영화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때문에 작품의 깊이는 없지만, <데드 캠프>와 함께 시각적인 볼거리가 뛰어나다. 일부 삭제가 된 채 개봉이 되었던 극장과 달리 DVD 타이틀은 무삭제로 피범벅의 순간을 좀더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화질과 음향 또한 매우 뛰어난데, 특히 레더페이스가 휘두르는 전기톱의 위협적인 효과음이 살벌하다.
무삭제 전기톱의 공포,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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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추억의 쿵후액션영화로 자리잡은 <예스마담> 시리즈. <황가전사>는 그 두 번째 이야기로, 양자경을 비롯해 <링> <라스트 사무라이>의 사나다 히로유키가 가세해 전편의 영광을 이어간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테러범에 맞서는 양자경의 액션 연기가 일품이며, 당시 기준으로 제법 과격한 폭력 묘사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와호장룡>의 수련으로 양자경의 이미지를 간직한 팬이라면, 젊은 시절의 몸을 사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탄복할 듯. 부록으로 포토 갤러리와 극장용 예고편을 제공한다.
양자경의 파워 액션, <황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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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클랜시의 레드스톰에서 제작한 최고의 잠입 액션비디오게임 <스프린트 쉘>. 화려한 동영상 제작에 참여하며 주목을 받은 플로랑 에밀리오 시리. 그는 자신의 전력을 숨길 수 없었는지 <호스티지>를 연출하며 비디오 게임 상황을 연상케 한 장면 연출이 눈길을 끈다. 기대감을 낮춘다면 킬링타임용으로 적절하지만, 가족 인질범과 마주한 최고의 협상전문가 제프를 연기한 브루스 윌리스는 <다이 하드>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모습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화질과 음향은 전반적으로 꽤 우수하다.
브루스 윌리스와 인질 협상 게임, <호스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