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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봉사단(Peace Corp)이라는 조직이 있다. 저개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자들을 파견하는 미국의 정부기관이다.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날 때까지 남한에도 적잖은 인력이 평화봉사단의 이름으로 파견되어 활동한 바 있어 우리에게도 귀에 익은 이름이다. 1961년 설립 이후 반세기에 가까운 동안 평화봉사단은 온갖 추문에 시달려왔다. 그중 가장 교과서적인 것이 미 중앙정보국(CIA)의 끄나풀이라는 것이었다.
1973년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정권을 붕괴시킨 쿠데타의 전야에 가장 악명을 떨친 파시스트 그룹 중의 하나였던 ‘조국과 자유’(Patria y Libertad)는 CIA의 반아옌데 조직 중 하나였고 이 조직을 직접 이끌었던 인물이 전직 평화봉사단원이었던 마이클 타운리였다. CIA의 아옌데 정권 붕괴작전에는 전직뿐 아니라 칠레 전역에서 봉사(?)하고 있던 현직 평화봉사단원 중 일부도 동원되었다. 평화봉사단의 이같은 활약은 칠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진정 더 나은 세계를 위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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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나는 고양이이고 싶다. “슛 들어갑니다!” “조용!” 어떤 촬영현장에서건 슛 사인이 난 뒤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로 멈춰야 한다는 불문율은 동일하다. 좁은 세트장에서 고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상황이라면,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다. 물론 각 파트의 감독들이 수정이 필요하다면, 배우가 아직 액션에 들어갈 준비가 안 됐다면, 갑작스런 ‘타임’은 가능하다. 그러나 치열한 현장 한구석에서 펜대만 굴리고 있는 기자에겐 어림도 없는 일. 잘 보이는 좋은 자리를 미리 잡아놓을걸 후회해도 소용없다. 까치발로 자리 옮기다가 녹음기사에게 들키는 날엔 대략 낭패다. 목에 방울을 달고도 소리없이 온 집안을 활보하는 우리집 야옹이가 부럽다.
그곳에서 절실한 것은 내 몸을 조그맣게 만들어줄, 앨리스의 물약. 컷 사인이 떨어지면 마법이 풀린 것처럼 스탭들은 일제히 움직인다. 카메라가 세팅을 바꾸기라도 할 참이면, 분주함은 배가된다. 그 현장이 촉박한 개봉일정에 쫓기듯 진행되고 있다면, 육
[오픈칼럼] 그곳에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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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영화의 계절이 돌아왔다. 여름만 되면 한국 공포영화 3, 4편 개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제는 주류 장르가 되었다고 선뜻 말하기는 힘들어도, 공포영화가 자기 자리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대형 스타가 필요하지 않고, 제작비가 많이 들지도 않고, 해외시장도 있는 공포영화는, 영화산업에서 꽤 의미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한국의 공포영화가 계속 발전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작품으로만 따지면 한국 공포영화는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소름>과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고, <여고괴담>과 <장화, 홍련>은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4인용 식탁>은 찬반이 무성했지만 의미있는 시도였고, <아카시아>와 <알포인트>도 독특한 소재로 인정받았다. <여고괴담> 이후 6년간 이룬 성과로는 부족하지 않다.
이번에 개봉한 <여고괴담4: 목소리> 역시 주목할 만하다
[숏컷] Go, Go! <여고괴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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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황당무계한 상상 같은 건 좀처럼 하지 않게 되지만 <아일랜드>를 보고 나서 오랜만에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나의 복제인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넘어서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당위성까지 부여하게 됐다. 그렇지만 간 빼먹기 위해 토끼를 꼬셔서 용왕님에게 데려가는 별주부처럼 파렴치한 인간으로 보지 마시라. 내가 마신 술로 망가진 나의 간은 내가 감당하겠다는 독립심과 책임감 정도는 있는 인간이다.
<멀티플리시티>에서 이미 다 나온 이야기지만 내가 주인이라면 나는 메릭 박사를 설득해서 복제인간을 데려와 부려먹겠다. 그렇게 해서 한번 짜본 나의 하루 일과. 아침 6시: 복제인간- 운동(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한 날씬한 몸매!). 나- 잔다. 7시: 복제인간- 느지막이 내가 먹을 7첩반상 아침상을 차린다. 나- 잔다. 8시 출근: 복제인간- 가열차게 기사 마감을 한다. 나- 아직까지 침대에서 뒹굴뒹굴. 12시: 복제인간- 천원짜
[투덜군 투덜양] 나도 클론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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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드라마 <제5공화국>을 본다. 대단한 완성도를 지닌 드라마는 아니지만 나의 정치의식이 자랐던 80년대를 다루고 있기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그동안 이 드라마는 전두환 일당의 악행을 하나하나 들춰냈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기 직전 전두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그때를 경험 못한 세대라면 그냥 즐기며 볼 수도 있겠지만 나로선 이 드라마를 보며 오래전 아물었던 상처를 헤집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구가 되었던가. 20살 무렵 그런 사실을 처음 접하고 울분을 터트렸던 순간이 떠오른다. 지금 드라마를 보며 느끼는 감정과 차원이 다른 분노가, 그때는 있었다.
엉뚱하지만 <친절한 금자씨>를 보면서 <제5공화국>이 떠올랐다. 최민식이 연기한 백 선생이라는 인물이 전두환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인에게 불행을 몰고온 악인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편집장이 독자에게] <친절한 금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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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 호크, 로렌스 피시번 주연의 범죄 액션 <어썰트 13>이 8월 중 DVD로 출시된다.
<어썰트 13>은 B급 영화의 거장 존 카펜터 감독의 1976년도 영화를 신예 장 프랑소와 리셰가 리메이크한 작품. 디트로이트의 폐쇄된 13구역 경찰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범죄자와 경찰들의 숨 막히는 대치상황을 통해 긴박감을 자아내는 액션 영화다. <네고시에이터>에서 탄탄한 시나리오를 선보였던 제임스 드모나코의 각본과 한정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리셰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며 존 레귀자모, 가브리엘 번 등 연기파 조역들의 열연 또한 눈부신 작품이다.
<어썰트 13> DVD는 8월 10일 아이비젼을 통해 출시될 예정으로 DTS 음향이 지원되는 본편 외에 음성해설, 제작과정 등 여러 부록들이 수록된다. 그 중 영화 속에 쓰인 각종 총기류에 관해 무기전문가의 해설과 사실적인 액션에 관한 스턴트 감독의 견해를 담은 부가영상은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해줄 것으
범죄 스릴러의 리메이크 <어썰트 13>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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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지를 쓱 벗는다. 멀쩡한 탈의실을 놔두고, 기자가 보는 앞에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본의 아니게 그의 팬티 색깔을 보고 만다. 몸매 근사한 거 세상이 다 아는데 꼭 저렇게 뽐을 내야겠냐, 싶어 얄밉지만 이미 봐버린 장면의 잔상이 가시질 않는다. 며칠 전 베니스에서 촬영하고 온 고추장 CF 얘기를 하다가 “처음엔 싫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너무 좋아. 내가 옷을 고추장스럽게 입고 다니는 건 아니잖아”라는 말의 뜻이 분명해진다. 슈트를 갖춰입고 새파란 넥타이까지 매고 나더니 전신 거울에 자기 모습을 지그시 비춰보고 표정없이 말을 잇는다. “음, 됐어, 좋아.” 옷입는 일만 10년을 해온 차승원은, 스크린 밖에 있을 때만큼은 누가 봐도 그 일만 죽을 때까지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혈의 누>가 개봉하기 직전에 온라인 팬페이지에 이런 글귀를 남겼다. “죽을 때까지 분투하면서 연기만 하겠다.”
차승원의 시나리오 선택 기준은 “장르가 뭐건 간에 재미있는
멋과 코미디의 이중주, <박수칠 때 떠나라>의 차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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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I 스튜디오(드림웍스)와 픽사의 3D애니메이션 양강시대에 블루스카이 스튜디오가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라고 허풍을 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누구도 빛나는 앞날을 장담하지 못했던 자그마한 스튜디오는 2002년작 <아이스 에이지>의 성공을 시작으로, 올해 초 개봉한 <로봇>으로 북미에서만 1억3천만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며 단단한 입지를 다져두었다. 이제 3D 화면 속 파란 하늘 같은 미래를 보장받은 블루스카이 스튜디오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로봇>의 감독 크리스 웻지는 기술의 혁신보다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이야기 만들기’(Storytelling)가 3D애니메이션과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의 미래라고 확신하고 있다. 로봇세계의 조물주로부터 날아온 서면 인터뷰.
-<로봇>의 성공으로 이제 블루스카이 스튜디오는 3대애니메이션 스튜디오라 불릴 만한 위치에 올랐다.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의 시작은 어땠으
<로봇> 만든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의 크리스 웻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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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쯤 만났을 때 정두홍 무술감독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그는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의 액션을 만들어낸 뒤 3개월째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있다고 했다. “뭐 안 좋은 일 있으세요?”라고 묻기도 전에 그는 무술연기자, 감독, 제작자 등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잘 안 풀리는 가정사까지. 우리는 우울하게 헤어졌고, 그뒤로도 한동안 그가 어떤 작품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보드로프 감독이 연출하는 초대형 영화 <몽골>의 무술감독으로 그가 선발됐다는 이야기였다.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그리는 삼부작 중 첫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로서는 큰 의미가 있다. 무술감독으로서 할리우드, 그리고 세계로 나가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던 그에게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영화시장인 러시아의 대작에 참여한다는 일은 최종목표를 향한 첫발을 뗀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
러시아 영화 <몽골> 무술감독 맡은 정두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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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다툼에 이웃이 끼어들어 아버지를 내친다면 난감해진다. 게다가 이웃이란 자가 가슴 털이 숭숭 난 야만인이라면 공포가 따로 없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럽 땅을 밟은 뒤 수많은 국가의 분쟁에 발벗고 나섰다. 60년 경력을 자랑하는 미국은 세계 곳곳의 문제에 책임감을 느끼는 기특한 나라였다지만, 아뿔싸, 그들 덕에 죽어나간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사랑의 찬가>에서 장 뤽 고다르는, 미국이 주연합국가 중 자신을 ‘US’로 불러달라고 말하는 유일한 나라이며, 아메리카 대륙의 수많은 국가 가운데서도 유독 자기들만 ‘아메리카’로 불리길 원하는 웃기는 나라라고 비웃었다. 개념없는 나라인 것이다. <맨츄리안 켄디데이트>라는 제목의 소설은 1962년에 한번, 그리고 2004년에 다시 한번 영화화됐다. 두 영화는 한국전과 걸프전에 참전한 군인의 악몽을 각각 다루고 있는데, 영화와 시대의 분위기가 사뭇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흥미롭다. 적과의 구분이 명확한 냉전시
[DVD vs DVD] 미국이 수십년간 꾸어온 악몽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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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로봇>의 진짜 주인공인 로봇 ‘써니’랍니다. 전 감정을 가진 완벽한 로봇이죠. 하지만 21세기 초의 과학자들이 저 써니 정도의 로봇을 만들려면 아직은 먼 것 같아요. 2035년 사람들은 써니를 모두 한대씩 갖고 있지만, 2005년엔 아직 청소 로봇 정도가 가장 대중적인 제품이니 말이에요. 하지만 제가 탄생하게 된 과정은 꽤 복잡하면서도 흥미롭군요. 오리 모양의 장난감 같은 제품에서 시작하여 점차 스스로 판단하여 길을 찾고, 외부의 환경에 따라 표정을 짓고, 사람들에게 로봇과의 유대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멋진 친구로 발전하고 있거든요. 과학자들은 로봇에 발성 센서를 붙이기보다는 직접 성대를 만들어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어요. 센서는 입력된 목소리만 낼 수 있지만, 성대는 아직 ‘어, 어’ 정도의 소리밖에는 못 내도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니까요. 이렇게 현실에서의 로봇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창작 작품 속에서의 로봇은 그보다 훨씬 자유롭군요. <아이, 로봇>
[서플먼트] 로봇 ‘써니’의 탄생비밀, <아이,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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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B급영화의 영역에 머물던 범죄·형사영화가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얻기 시작한 건 1970년 전후다. 범죄·형사영화가 대중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액션 장르였다. 형사들은 더이상 음침한 뒷골목을 헤매지 않고 차 위에 올라 질주하고 추적하며 충돌했으니, 관객은 사건의 해결에 앞서 그런 장면을 보며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곤 했다. 물론 인물들도 새로운 성격을 부여받았다. 험프리 보가트, 글렌 포드, 로버트 미첨, 스털링 헤이든이 대표하는 낭만적인 얼굴의 형사와 갱들은 일과 돈에 냉정한 인물로 바뀌었으며 화면 속에 머무르기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로 뛰어들기를 원했다. 그리고 현실과 쉽게 타협하지 않고 심지어 상관의 명령을 거스르는 형사들은 영화 속 거친 캐릭터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할리우드산 새로운 범죄·형사영화의 전조로 불리는 <블리트>는 <프렌치 커넥션>과 <더티 하리>를 예견했다는 점만으로도 그 중요성을 무시할 수
[명예의 전당] 거칠고 통쾌한 범죄·형사영화의 전조, <블리트 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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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 이후 마법을 배우는 학교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애니메이션과 책으로 출판되어 주목을 끄는 이 작품은 마법사를 꿈꾸는 소녀 유메가 겪는 여러 해프닝을 그린 코믹판타지. 마법사에게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임을 강조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총 12화 3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박스 세트로 발매 예정인 작품으로, 밝고 화사한 느낌의 영상이 눈길을 끈다. 부록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보유한 성우 미야자키 아오이의 인터뷰 영상 수록.
마법에도 사랑이 묘약? <마법사에게 소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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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리브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는 영원히 슈퍼맨으로 기억될 배우다. 오락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1, 2편과 달리 이번에 소개되는 3, 4편은 완성도가 많이 떨어진다. 특히 4편은 앞에 나온 영화들보다 기술적 퀄리티가 오히려 떨어짐으로써 관객의 의아함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3편은 늘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슈퍼맨의 빗나간 모습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고, 4편은 단지 크리스토퍼 리브의 마지막 슈퍼맨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두편 모두 화질과 음향은 평균 수준이며 부록으로 예고편을 제공한다.
크리스토퍼 리브를 추억하며, <슈퍼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