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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작업은 대체로 갓 대학을 졸업한 감독들이 하는 경우가 많고 감독, 스탭, 배우 대다수가 20대다. 그들과 어울려 수십편을 쉬지 않고 작업하는 마음이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세상에는 의외로 어른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나는 그들을 존중하고, 함께하고 싶다.
-중년이 되어서야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권리를 스스로 재건하는 과정이 있었겠다.
=중졸로 살아왔으니 배움에 대한 갈증이 심했는데 결혼해서 아이 키우고 연극을 하면서 공부까지 하는 게 참 쉽지는 않더라. 검정고시를 패스한 것이 30대 중반 즈음이었다. 이후 곧장 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에 들어가서 역사, 세계사, 철학, 예술사, 인류학 등을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그전까지 내 안의 우물만 파다가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중년이 되어 눈을 뜬 거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집 근처 학교를 알아보다가 2010년에 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도 들어갔다.
-전주국제영화제 배우상 수상자로
[기획] 중년 여성 배우③ 오민애 배우가 꼽은 '윤시내가 사라졌다' 속 빛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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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연기부문에 호명된 단편영화 <나의 새라씨>(2019) 이후 전주국제영화제 배우상을 수상한 <윤시내가 사라졌다>(2022)까지, 배우 오민애는 28편의 작품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고 대부분이 주연이었다. 공개된 작품만 계산한 기자의 서투른 셈법에 오민애는 “다 합하면 50편도 훨씬 넘을걸요. 지난해에만 24편을 찍어서…”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1965년생 배우 오민애는 언제부턴가 영화제 단편 섹션을 찾으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배우였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만 보아도 <윤시내가 사라졌다>와 단편 <그렇고 그런 사이> <심장의 벌레> <오 즐거운 나의 집> <현수막>까지 5편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그중 6월8일 개봉한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23년 만에 처음 주연한 장편영화다. 도대체 무엇이 이 낯선 배우를 마지막 배수진을 치고 일하는 사람처럼 절박하고 열렬하게 만든 것일까.
[기획] 중년 여성 배우② ‘윤시내가 사라졌다’ 오민애, “힘들 때에도 배우의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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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선 중년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가수 윤시내를 동경하며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로 활동하는 <윤시내가 사라졌다>의 순이(오민애), 딸 연수의 유출된 영상을 보고 충격에 빠진 <경아의 딸>의 경아(김정영), 애인 영수가 유포한 내밀한 영상으로 인해 집 안으로 숨어버린 <정순>의 정순(김금순)은 고난에 바스라지는 대신 각자의 속도대로 마주한 역경을 천천히 돌파한다. 여성감독, 여성배우, 여성 캐릭터의 약진은 비단 올해에만 읽히는 경향은 아니다. 그러나 중년 여성 캐릭터의 서사가 좀더 세밀해지고, 디지털 성폭력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직접적으로 끌고 들어왔다는 점에서 새롭게 주목할 만하다. 중년 여성들의 활약은 수상이라는 성과로도 이어졌다. <정순>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의 영예를 안은 데 이어 <경아의 딸>은 CGV아트하우스-배급지원상, 왓챠가 주목한 장편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올랐다. &
[기획] 중년 여성 배우① 오민애, 김정영, 김금순 배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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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SNS에서 나폴리탄 괴담이 유행했다. 나폴리탄 괴담은 사건의 전말을 정확히 해설하지 않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만 묘사하는, 기승전결 중 기승 구간이 강조되고 전결은 생략된 형태의 짧은 괴담이다. 한국에서는 나폴리탄 괴담이 매뉴얼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에 실린 ‘궁녀 규칙 조례’의 항목 역시 그렇다.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이런 식이다. “궁궐 내에 설치된 우물은 어떠한 것이라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사용 중인 우물을 발견했다면 그 안을 들여다보지 마십시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경위가 어찌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오싹하다. 그런 이야기와 괴담이 잔뜩 실린 책이 바로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이다.
때는 태종 6년(1406), 아직 고려의 사람들이 살아 있는 조선 초가 배경이다. 경복궁 내명부에서 일하는 궁녀들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규칙이 있는데, 실제로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모은 금기
씨네21 추천도서 -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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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가을 2022>에선 세편의 단편소설을 만난다. 위수정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노년의 삶이 생동감을 느끼는 지점을 짚어낸다. 2020년대 대중문화를 말하는 동시에 나이 드는 몸을 돌아보게 한다. 열정이 마음만큼이나 몸의 일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60대인 원희는 친구를 따라 간 연주회에서 만난 젊은 피아니스트 고주완에게 끌림을 느낀다. 원희는 오랜 시간 잊고 지낸 감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한다. 심지어 고주완이 즐겨 연주하는 버르토크나 프로코피예프 같은 20세기 작곡가는 원희가 좋아하지 않는 불협화음이다. 그리고 고주완을 경유해 삶의 불협화음을 끌어안는 방향으로 생각이 흐른다. 이서수의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인간관계를 다룬다. 모임을 가진 뒤 한 사람이 코로나19에 걸리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2020년대의 응급실 풍경부터 결혼식 참석을 거부할 빌미로서의 코로나19, 그리고 도시에서의 가난을 두루 훑어간다
씨네21 추천도서 - <소설 보다: 가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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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인간>의 주인공 나쓰키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두살 터울인 언니가 있는데, 가족으로부터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나쓰키는 자신이 마법소녀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고, 사촌인 유우와는 연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유우는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생각한다. 설정만 보면 기묘하지만, 읽어가면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나쓰키가 마법소녀가 된 뒤 익힌 마법으로는 ‘사라지기’라는 것이 있다. 진짜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숨을 죽이고 기척을 숨긴다는 뜻이다. ‘사라지기’를 쓰면 부모와 언니는 단란한 3인 가족이 되어 시간을 보낸다는 식이다. 유일하게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나쓰키와 유우는 몰래 부부가 되기로 한다. 둘이 만든 규칙 중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것.” 하지만 그 생존이라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서 나쓰키를 특별히 잘 돌봐주는 이가사키 선생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지만, 나쓰키를 대상으로 한 성추행의 강도를
씨네21 추천도서 - <지구별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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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통일신라 시대의 장군 장보고의 사망에서 시작한다. 장보고를 따르다 일이 없어진 장희는 우연히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멀끔한 얼굴의 서생 한수생을 구해주고, 청해진의 해체 이후 난장판이 되어버린 바다 위 해적의 세계로 휘말리고 만다. 이들은 돌덩이를 날려보내는 장치를 배에 싣고 다니는 서해 해적 대포고래에 잡히기도 하고, 신라를 무찌른 다음 멸망한 지 200년이 지난 백제를 다시 세우자는 허황된 꿈 아래 공주를 모시고 섬에 터를 잡은 해적을 만나기도 한다. 장희와 한수생은 잘 어울리는 콤비다. 평생 농사를 짓고 글만 읽으며 살아온 데다 임기응변과는 거리가 멀어도 신의를 지키는 우직한 한수생과, 돈이 우선이고 나만 살면 된다는 꾀 많은 생존주의자이면서도 ‘세상의 온 바다를 치마폭에’ 담던 포부가 있어 이기적이지만은 않은 장희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모험을 겪는다. 이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욕망과 사람간의 연대가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장희가 특유의 화술로 적의 허점
씨네21 추천도서 - <신라 공주 해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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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페기 구겐하임은 광산업과 제련업으로 부를 축적한 구겐하임 집안 출신으로, 일찍부터 서점 아르바이트를 자처하는 등 상류층 여성의 모범적 인생을 거부한다. 유럽으로 떠난 페기는 초현실주의를 비롯하여 21세기 초반 격동의 시대와 어우러진 수많은 예술 운동을 접하고 작가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 한때 예술가 남편 곁에서 자신 없는 모습으로 폭력을 견디며 순종적인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나 점차 자신만의 안목으로 미술 작품을 하나둘 사들이며 컬렉터로서의 인생을 개척한다. 페기의 인생이 가장 극적인 순간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파리로 닥치는 와중에 열심히 작품을 사들인 때일 것이다. 대다수 시민이 피난을 떠난 가운데 미국인이라 해도 유대인이면 잡혀갈 수 있는 아찔한 상황 속에서, 페기는 열정적으로 모은 작품을 가구로 포장해서 미국으로 보내는 데 성공한다. 페기는 뉴욕에서 ‘금세기 예술 갤러리’를 열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유럽 예술과 미국 예술을 혼합한 현
씨네21 추천도서 - <페기 구겐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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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_메리 V. 디어본 지음
신라 공주 해적전_곽재식 지음
지구별 인간_무라타 사야카 지음
소설 보다: 가을 2022_김기태, 위수정, 이서수 지음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_현찬양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0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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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티빙 <환승연애2>
관찰 카메라를 통해 출연진의 솔직한 행동은 물론 내밀한 속마음도 알 수 있다. 다양한 갈등과 선택, 진솔한 감정과 드라마를 한데 볼 수 있어 어떤 인물의 감정선을 연기할 때 도움을 얻는다.
여행 브이로그
평소 ‘가고 싶은 나라 + Vlog’ 검색어를 조합하여 자주 찾아본다.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을 대리 만족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가 살지 않는 낯선 나라의 이야기를 편히 들을 수 있다.
오르세 미술관
최근 파리 여행을 가서 다양한 미술 전시를 오랫동안 봤다. 작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그렸을지 상상하다 보면 하루 종일 미술관에 있어도 지치지 않는다.
<나를 위로하는 그림>
미술 전시를 즐겁게 본 경험에서 읽기 시작한 책. 일상과 미술 작품을 연결해 해석해
[LIST] 배우 최예빈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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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저녁의 파리. 비를 피하러 잠깐 들어간 음식점에서 미아(비르지니 에피라)는 무차별 총격에 휘말린다. 3개월 뒤, 아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미아는 무의식적으로 지워버린 그날 저녁의 일을 회상하기 위해 우연히 알게 된 다른 생존자들과 만남을 이어간다.
<어거스틴>(2012), <매릴랜드>(2015), <프록시마>(2019)에 이은 앨리스 위노커 감독의 네 번째 장편 <파리 메모리즈>(2021)는 2015년 11월13일, 파리와 인근 외곽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난 연쇄 테러의 아픈 기억을 소환한다. 이 사건으로 130명의 사망자와 350여명의 부상자가 나왔으며 위노커 감독의 오빠는 이날 100명 이상 사망자를 낸 파리 바타클랑 극장 총격 사건의 인질 중 한명이었고, 감독은 그날 밤 현장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오빠와 간간이 문자로 상황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이후 오빠를 통해 발을 들이게 된 피해자 모임에서 그녀는 그날 잃어버린
[파리] 파리 연쇄 테러의 상황을 소환하는 ‘파리 메모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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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미>
넷플릭스
<노팅 힐> 같은 영화를 찾아 OTT를 헤매는 독자가 무난히 즐길 만한 로맨틱 코미디다. <메리 미>에서는 여성 팝 스타 캣(제니퍼 로페즈)과 평범한 남성 수학 교사 찰리(오언 윌슨)가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노팅 힐>보다 훨씬 급작스럽고 규모도 크다. 결혼식을 겸한 콘서트에서 정혼자가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게 된 캣이 관객으로 온 찰리에게 충동적으로 청혼한다. 찰리가 청혼을 받아들이면서 둘은 일단 결혼부터 하고 상대를 알아간다. 예상대로 서로 너무 달라서 호감을 느끼고 그래서 시련을 겪는다. 두 주연배우의 안정적인 연기로 온기를 얻은 남녀 캐릭터와 인생 전반을 소재로 한 풍부한 대사가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의 지루함을 상쇄한다. 무엇보다 영화의 주제곡 <Marry Me>가 <노팅 힐>의 <She> 못지않게 강력하다.
<미래를 향한 10 카운트>
[OTT 추천작] '메리 미' '미래를 향한 10 카운트' '유니콘을 타고' '지상 최대 맥주 배달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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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가 제일 잘하는 거 해볼라고요.” 지역 전통시장과 노포를 찾아가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 콘텐츠에 백종원만 한 적임자가 또 있을까. 자신을 ‘마트 아저씨’로 착각했던 곡성 콩국숫집 사장님을 놀렸다 띄웠다 하며 묵은지에 대한 자부심을 술술 털어놓게 만드는 화법, 원산지 표시를 깜박해 과태료 낼 걱정이 태산 같은 동해 게 찌갯집 사장님에게 “우리가 벌금만치 먹어줄게요”라며 지폐 몇장을 얼른 내미는 센스는 요식업계에서 잔뼈가 굵어온 사람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감각이다.
흥미롭게도 ‘님아, 그 시장을 가오’는 단순한 맛집 탐방이 아니라 지역 관광자원 발굴과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콘텐츠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심각한 지역에 사람이 북적이고 돈이 돈다면 다행일 것이다. 게다가 황홀할 만큼 푸짐한 굴김치와 두부 부침, 놀랍도록 저렴한 국밥과 수육, 직접 기른 채소와 손수 담근 장, 돈 버는 데 ‘욕심’ 내지 않고 손님을 제 식구처럼 여기며 좋은 걸 먹이겠다는 사장님들의 마인드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유튜브 백종원의 요리비책 ‘님아, 그 시장을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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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감독 앤드루 도미닉 / 출연 아나 데 아르마스, 줄리앤 니컬슨, 에이드리언 브로디 / 플레이지수 ▶▶
선택한 실존 인물의 일생을 일직선으로 펼쳐놓고 어느 시기에 핀셋을 꽂아 보여줄 것인가. 이것이 전기영화의 첫 번째 고민일 테다. 마릴린 먼로를 주인공으로 한 <블론드>는 그가 어떤 남자들을 거쳐왔는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가 압축한 바에 따르면 마릴린 먼로는 유명 배우의 아들들을 동시에 만났으며 전직 운동선수, 극작가와 결혼하고 이혼한 여자이자 평생 한명의 남자, 만난 적 없는 아버지에 집착한 리틀 걸이다. 널리 알려진 인물의 이면에 주목하고자 한 도전이 아니다. 연기력과 흥행력을 고루 인정받은 배우이자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서 그가 쌓은 이력을 지우고 그를 헤픈 여자란 협소한 틀에 가두어 얄팍하게 축소한 결과다. 강간당하는 장면과 섹스 신, 성적 대상이 되는 장면을 포함하기로 한 영화가 그를 어떤 인물로 정의내리고 그릴 작정이었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OTT 리뷰] 넷플릭스 '블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