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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의 탓인지 모르겠으나 오늘의 프랑스에서는 시(詩)도 시인도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에 읽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지금에는 텔레비전, 영화, 컴퓨터 등이 토해내는 화면의 홍수 속에서 보고 즐기는 사람들로 바뀐 것인지 모른다. 이른바 ‘흥행 사회’에서 시인들이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남의 땅에 있지만 아내와 나는 ‘창작과 비평사’가 고맙게도 꾸준히 보내주고 있는 시집들을 읽고 있다. 한국사회에 아직 시인들과 시들이 꿈틀대며 살아 있음은 실로 놀라우면서도 다행스런 일이다. 그 시들이 가벼운 언어의 조합이나 유희들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수들이라면 말이다. 인간의 소박한 꿈과 이상은 현대에 올수록 더욱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다. 그래서 시인을 일컬어 ‘현실로부터 스스로 추방된 사람’이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현실로부터 추방되고 물질이 가난한 시인들만이 이 팍팍한 시기에 인간성의 풍요로움과 깊이를 보여줄 것이다.
또 하나의 영화,
시의 죽음을 슬퍼하며, <일 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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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날다>는 키아로스타미 영화를 연상케 하는 가난하고 간결하며 착한 영화다. 러시아 국립영화대학에서 만난 민병훈과 잠셋 우스마노프 두 감독이 공동연출한 이 영화는 토리노 국제영화제 대상, 비평가상, 관객상,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 은상 등 해외 평단의 지지를 얻어 개봉기회를 잡은 드문 예다.
<벌이 날다>는 아주 고집스런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법을 빙자해 가난한 자의 권리를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남자는 아주 독특한 보복을 준비하는데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다. 전 재산을 털어 검사네 옆집을 사고 화장실로 쓸 구덩이를 파기 시작하자 검사는 남자의 아들을 경찰서에 잡아다놓고 협박을 한다. 아들을 구하려면 당장 화장실 파는 걸 중단하라는 검사의 요구에 그는 맘대로 해보라며 경찰서 문을 박차고 나온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 같은 분위기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돈과 권력에 대한 사내의 우직한 저항이 전적으로 개인의 성격에 기인하며 해결책도 엉뚱한 곳에서
가난하고 간결하며 착한 영화, <벌이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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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들이 있었다. “네가 없었다면 벌써 자살했을 거야”라는 말을 서슴없이 던지던 때가. 자라서는 연인에게조차 입 밖에 못 낼 대담한 고백을 수백번 속삭이고도 성에 차지 않아 온종일 붙어다닌 단짝에게 다시 편지를 쓰던 시절이.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소녀가 소녀를 만난 첫사랑의 비극적 기록이다. 난청으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육상부원 시은과 가끔 이상한 소리를 듣는 중창반 반주자 효신. 또래들의 명랑한 공기를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그들은 둘만의 방을 짓고 빗장을 지른다. 하지만 서로의 다리를 묶고 고요한 물 속에 잠겨 있던 두 소녀 중 하나가 짝을 뿌리치고 수면으로 떠오르는 영화 도입부대로, 언약은 깨어진다. 효신의 지독한 애정으로 봉인된 ‘밀실’에서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시은은 “뭇사람 앞에서 연인에게 등돌리지 말라”는 사랑의 첫 번째 계율을 어긴다.
우리 스크린에서 소외되어 온 10대 소녀들의 공간을 매혹적인 영화 소재로 발견한 전편에 이어, 속편은
소녀가 소녀를 만난 첫사랑의 비극적 기록,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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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다운 마케팅이 시작되다_1990년대
긴 겨울 지나 바야흐로 봄이 오는 것일까. 싹이 트기 전에 누군가는 밟힐 것이라 했고, 활공하기 전에 누군가는 떨어진다고 했는데, 견디고 또 견디니 볕이 드는구나.
“윗선배들을 배제하려는 건 아니었고, 각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의욕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네트워크 정도였다. 매일 만나다시피했던 것 같은데, 충무로에서 삼겹살 먹고 강남이나 이태원에 있는 나이트클럽에도 가고 그랬다. (웃음) 그러다 모임 내에서 스터디를 하게 됐는데 제작, 배급, 상영 등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해 발제하는 식이었다. 내 경우에는 <광고학개론>이라든가 <카피라이팅의 기술> 같은 이론서를 구해서 읽기도 했지만 김정률, 이황림 같은 선배들이 내놓은 광고물을 보면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심재명)
1990년대 초에 결성된 영화사기획실모임은 그저 단순한 친목도모에서 끝나지 않았다. 신철, 이춘연, 채윤희, 이준익, 석명홍, 권영락,
한국영화 마케팅 30년사 [3] -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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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영화광고 시대, 튀어야 산다_1980년대
바야흐로 벗어야 사는 시대인가. 애마부인이 그러하고, 람보가 그러하다. 사용무기는 다르지만, 살색유혹 앞에 당할 자 있으리요. 통금해제와 함께 달려온 애마부인을 영접하고자 유리창을 박살내는 관객의 이 극성을 보라! 태평양 건너 날아온 람보를 염탐하고자 새벽 행렬도 마다않는 관객의 저 아우성을 들으라! 여기에 더해 어우동과 코만도는, 변강쇠와 엠마뉴엘은 또 어떠한가. 불황의 터널을 벗진 못했지만, 극장가는 잠시나마 웃음을 되찾는구나.
“1980년 초인가. 극장 앞에 금성 19인치 TV를 놓고서 외화 수입사들로부터 받은 예고편을 비디오로 받아서 틀었어요. 반응이 꽤 좋아서 정식영업증을 내고는 청계천 등지의 TV 파는 가게 등에도 돌리면서 전시용으로 좀 틀어달라고 했다고. 그러다 <람보> 때인가. 불법복사 하는 놈들이 걸려들어갔는데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갖고 있어서, 어느 날인가 경찰서에 잡혀간 적이 있어. 영화사에서 받
한국영화 마케팅 30년사 [2] - 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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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인기 배우 세토 아사카가 26일 도쿄 시내에서 열린 <Mr. 히치 -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 DVD 발매기념 이벤트에 참석했다.
그녀는 극 중 데이트 코치 ‘히치’(윌 스미스 분)와 사랑에 빠지는 여기자 ‘사라’(에바 멘데스 분) 역의 일본어 더빙을 맡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성우로 첫 도전한 소감에 대한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말한 세토 아사카는 “마치 윌 스미스와 함께 공연한 것 같았다”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세토 아사카의 목소리가 포함된 <Mr. 히치...> DVD는 일본에서 28일 발매 예정. 오리지널 영어 음성과 마찬가지로 일본어 더빙 역시 돌비 디지털 5.1 채널로 수록됐으며, 메이킹과 삭제 장면 등의 부가영상이 포함된다. 한편 국내판 <Mr. 히치...> DVD는 일본보다 앞서 지난 6월 출시된 바 있다.
日 배우 세토 아사카, DVD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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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없는 자는 구해야 합니다. 극장 문 열면 손님 쏟아지던 한국영화의 황금광 시대는 1960년대로 막을 내립니다. 배우들이 뿜어내는 광채에 기대어 더이상 영화를 편하게 선전할 수 없게 된 1970년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국영화의 처절한 호객행위는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지난 30년, 항상 정도만 고집할 순 없었습니다. 문지기 노릇하던 험악한 기도 아저씨들이 나서 “자, 아가씨 막회 보고 가요!”라며 윽박도 질러야 했습니다. 편법도 곧잘 썼습니다. 내용과 다른 포장으로 관객을 현혹해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으로 보도자료를 보내고, 배우들의 싸이 홈피를 마련하고, 대규모 현장공개와 시사회를 진행하는 2005년 추석. 지난 30년을 버텨낸 충무로의 상술 일부를 공개합니다.
영화선전, 신문만이 내 세상_1970년대
바야흐로 TV시대가 도래하였도다. 연인하고 약속하고 퇴근시간 재촉하던 샐러리맨 어딨으며, 마누라와 외식하고 오랜만에 손 맞잡던 중년 부부 어딨는고. 극장
한국영화 마케팅 30년사 [1] -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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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미국 뉴욕에서 <올드보이> DVD 사인회를 갖는다. 박 감독은 9월 29일 뉴욕의 타워 비디오 매장에서 열리는 팬 미팅에 참석할 예정이며, 팬들은 <올드보이> DVD나 포스터에 사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한국의 영화 감독이 영화제 이외의 팬 대상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박 감독의 미국에서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특히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해외의 발빠른 영화광들의 주목을 받아왔던 박찬욱 감독은, 지난 해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전 세계적인 유명 감독 대열에 들어섰다. 현재 <올드보이>는 인터넷 데이터베이스(IMDb) 사용자들이 매긴 최고 평점 영화 250편 가운데 100위에 랭크되어 있다.
<올드보이>는 미국에서 지난 8월 DVD와 PSP용 UMD로 출시되었으며, 11월에는 전작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감독 뉴욕서 <올드보이> DVD 팬 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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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일본 도시바의 합작기업인 ‘도시바 삼성 스토리지 테크놀러지’에서 노트북 PC용 HD DVD 드라이브를 업계 최초로 제품화하여 2005년 중 시제품을 출하한다고 발표했다.
‘TS-L802A’라는 명칭의 이 제품은 이르면 내년 초 시중에 출시될 예정. 가격은 기존 노트북 PC용 DVD롬 보다 비쌀 전망이다.
HD DVD롬의 재생(1배속)은 물론 DVD와 CD를 기록하고 재생시킬 수 있는 이 제품은 모든 기능을 하나의 대물렌즈에 집약시킴으로써 12.7mm 두께의 소형화가 가능했다고. 또한 경량 소재와 최적화된 설계로 중량도 160g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사는 일반 데스크탑 PC용으로 기록형 HD DVD 드라이브를 개발 중에 있으며 2006년 후반에 출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어 관련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도시바 삼성, 노트북용 HD DVD 드라이브 상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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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유머 감각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보글보글 스폰지밥>(JEI, 원제 <The SpongeBob SquarePants>, EBS에서는 <네모네모 스펀지송>으로 방영)을 9월30일부터 CGV에서 만난다. 기괴한 느낌이 들 정도로 단순하게 반복되는 개그, 자신의 몸으로 설거지는 물론 화장실 변기까지 청소하는 정체 모를 스펀지와 해산물(?)들의 관계. 우정인지 적의인지 알 수 없는 이들의 기묘한 관계와 비키니 보톰시티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들은 결국 보는 이의 폭소를 터뜨린다. 보고 있자면 웃을 수밖에 없는 <보글보글…>의 멋진 유머 센스와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정신없이 넘나드는 연출 방식은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고, 국내에서도 많은 어린이들과 성인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극장용 작품으로 만나는 <보글보글…>은 TV시리즈와 달리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다. 수많은 TV애니메이션들이 극장용으
재미는 사라지고, 기괴함만 남다, <보글보글 스폰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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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우영구 형사는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하고 용서는 목사가 하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 거야”라고 용의자의 애인에게 자신의 직업윤리를 고백한다. 상기 네 가지 직업 중 유일하게 ‘일하는’ 사(事)자를 쓰는 업종이 바로 형사(刑事)다. <강력3반>은 그런 형사라는 ‘직업’의 고단함을 이야기한다. 다행히 범인을 ‘무조건 잡더라도’ 수많은 서류를 구비하느라 밤을 지새다보면 여자친구, 자식들, 아내는 이미 그들을 떠나간 지 오래다. 경찰헌장의 문구처럼 ‘사회의 안녕과 질서는 유지’되지만, 정작 형사 개인과 가정은 파탄나기 십상이다.
수사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형사 홍주(김민준)는 여자친구 태희 때문에 경찰복을 벗으려 한다. 그러던 중 대형 마약사건이 배후를 드러내고, 고과점수 올리기에 급급하던 강력3반은 본격적인 수사 체제로 돌입한다. 그들은 재철(김태욱)이 부상당하는 어려움 끝에 마약밀매단의 핵심인 서태두(윤태영)를 포착한다
형사라는 ‘직업’의 고단함, <강력3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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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과 더불어 TV 퀴즈쇼는 자본주의가 인색하게나마 베푸는 이상한 소득 재분배 방식이다. TV는 보통 사람이 영웅이 될 수도 있다는 환상을 부풀리고, 보통 사람은 퀴즈쇼로 ‘누구나 일생에 15분쯤은 유명해질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 환상에 동참한다. TV가 부풀린 이런 환상의 무대 뒤편을 조명하는 <퀴즈쇼>, 또는 퀴즈쇼에 매달리는 보통 사람의 집착을 보여준 <매그놀리아>의 에피소드는 퀴즈쇼가 갖는 두 얼굴에 대한 예리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미스터주부퀴즈왕>은 퀴즈쇼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여/남의 역할 교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더한 영화다. 남편 한석규는 전업주부가 되고 TV 리포터인 아내 신은경은 가정도 잊은 채 일에 몰두한다.
퀴즈쇼에 대한 성찰이 없다고 해서 나쁜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남녀의 역할 교체에 대한 시대상의 반영이 날카롭지 못하다고 해서 재미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퀴즈쇼에 대해서도 설렁설렁 넘어가고, 성역
최상의 재료로 만든 매력없는 음식, <미스터 주부퀴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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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매우 염세적인 인생관을 가졌어요. 우리가 함께 다니려면 당신이 알아두는 게 좋을 겁니다. 난 인생은 끔찍한 삶과 비참한 삶으로 나뉘어 있다고 느낍니다. 그 두 범주로 말입니다. 끔찍한 삶이란 말하자면, 모르겠어요, 막다른 지점에 도달한 경우랄까요…. 장님이거나 불구이거나….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견뎌나가는지 모르겠어요. 나에겐 놀라울 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비참한 삶에 속합니다. 그게 전부죠. 그러니까 살아가면서 당신이 비참한 쪽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당신이… 비참하다는 건 운이 좋다는 거거든요….” 우디 앨런이 몸의 우스꽝스러운 전시를 뒤로 하고 철학적 억견의 세계로 들어섰을 때 거기에는 <애니홀>(1977)이 있었다. 그 자신조차 전환점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주인공 앨비는 이렇게 삶을 불운하거나 덜 불운한 양편으로 나누는 것 이외에는 몰랐다.
25년이 지난 뒤(<헐리우드 엔딩>은 2002년 제작된 영
순진한 희망으로의 역전, <헐리우드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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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비슷한 외모나 느낌을 주는 상대하고만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경우, 그 외모 또는 느낌의 원형은 대개 첫사랑에서 비롯된다. 잘 나가는 대입학원 수학강사 조인영(김정은)이 수강생인 이석(이태성)을 사랑하게 된 상황 또한 비슷하다. 인영은 이석이 자신의 첫사랑과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열세살 터울인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주위의 시선은 따가워지지만, 인영은 “누구랑 키스하고 싶은 게 나쁜 일이야?”라며 당당하게 사랑을 지켜나가려 한다.
<사랑니>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이 같은 여러 인물들과 독특한 시간배열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있어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한다. 서른살 조인영과 열일곱 이석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와중, 우리는 간간이 끼어드는 열일곱 조인영(정유미)과 열일곱 이석의 에피소드를 보게 된다. 명백히 서른살 조인영의 회상으로 보이던 이 대목은 열일곱 조인영이 이석을 만나기 위해 서른살 조인영의
영화라는 매체가 품고 있는 환상성의 실체, <사랑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