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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신념은 저마다 진실이라는 뿌리를 갖고 있고, 세상 모든 갈등은 그 진실의 뿌리들이 얽히면서 벌어진다. 한편의 실험극 공연을 앞둔 한 극단을 통해 <좋은 배우>는 그 과정을 흡사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보여준다. 공연이 다가오면서 극단 배우들은 매일 연습을 강행하지만, 본질에 다가서라는 말만 반복하는 연출가 아래에서, 배우들은 서로 반목하고 제 잇속 차리기에 급급하다. 고시를 준비하던 수영은 “모든 것을 버리겠다”면서 여자친구와의 관계도 정리하고 극단에 뛰어들지만, 그의 의지 또한 이내 혼란에 빠진다.
연기 수련을 위해 산속으로 수행을 떠났던 지환이 합류하면서 이들의 갈등은 더욱 커져가고,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저마다의 안간힘은 끝내 각본 없는 핏빛 리허설을 빚고야 만다. 타인에 대한 충고와 위로가 실은 불안에 떠는 자신을 감추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인물들의 고백을 듣기까지 영화는 추적을 멈추지 않는다. 욕망이 불안을 낳고, 불안이 신념을 세우고, 신념이 진실을
예술창작이 어떻게 이뤄지는가, <좋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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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핏차퐁 위라세타쿤, 펜엑 라타나루앙 등과 함께 타이영화에 새로운 기운을 수혈하고 있는 위시트 사사나티앙의 신작. 대략의 줄거리만 놓고 보면, 판타지로 버무린 타이판 <첨밀밀> 같다. 촌뜨기 폿은 가족의 성화에 밀려 일자리를 구하러 방콕에 간다. 통조림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 그는 경비원으로 직업을 바꾸지만 이번엔 폐소공포증 때문에 고생이다. 질식할 것 같은 도시 방콕에서 폿이 숨쉴 수 있는 건 같은 건물 청소부인 진 때문이다. 그는 하늘에서 어느날 떨어진 흰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들고 다니는 강박증환자 진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진은 폿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꿈이 없는 남자 폿과 꿈 많은 여자 진의 러브스토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시티즌 독>은 엉뚱한 캐릭터들과 기발한 상황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잘려나가 통조림에 담겨진 손가락은 주인을 알아보고, 죽은 할머니가 도마뱀으로 환생해 의기소침한 폿에게
판타지로 버무린 타이판 <첨밀밀>, <시티즌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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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배연석 감독은 아르헨티나 교민 1.5세다. “지금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는 그는 가지고 있던 카메라로 초저예산 영화 <아르헨티나, 나를 위해 울어주나요?>를 만들었다. 등장하는 배우들은 모두 실제 교민들. 1.5세 세명과 2세 한명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한국인의 집만 전문적으로 터는 강도와 살인사건이 모티브가 됐다.
그러나 그는 이 영화가 희망을 찾는다고 말한다. “이민 1.5세는 실패했다. 그들은 교민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국인만 만나며 산다. 그러나 2세는 다를 것이다.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티나가 연주를 끝마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나는 건 그때문이다”. 배 감독 또한 1.5세다. 86년에 이민갔던 그는 5년 뒤 적응하지 못한 가족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열일곱살 나이로 아르헨티나에 혼자 남았고 방송일을 하며 교민과 현지사회 모두를 관찰할 수 있었다. 이민 이야기를 영화로 만
<아르헨티나, 나를 위해 울어주나요?>의 배연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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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 된 영화평론가. 크리틱스 초이스 부문에서 상영된 <보이지 않는 사랑>의 티에리 주스 감독은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평론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이었다. 에릭 로메르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랑>은 작곡에 쓸 소리를 찾아 폰섹스를 하다가 상대 여성에게 집요하게 파고드는 한 남자가 경험하는 창작의 과정을 그렸다. 주스 감독은 “영상만 강조하는 현대사회에서 영상과 소리의 균형을 찾고 싶어서 소리를 찾아다니는 남자 이야기를 선택했다.” 이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컨버세이션>과 브라이언 드 팔마의 <필사의 추적>에서 영향을 받았다”며, 영화감독이라는 일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글(시나리오)을 쓴 뒤 그것이 영상화될 때의 감격이라고 설명한 그에게 창작이란,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끌어올리는 일로, 그리스 신화의 인물에 비유하자면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작업이다.” 관객
<보이지 않는 사랑>의 티에리 주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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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거장의 영혼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안치됐다. 9일 오후 2시, PIFF 광장 야외무대에서 열린 고 이만희 감독 핸드프린팅 행사는 1960년대부터 유현목, 김기영, 신상옥, 김수용 등과 함께 한국영화의 첫 번째 황금기를 일구었던 고인에 대한 뒤늦은 헌사의 자리. 30년 전, 유작 <삼포가는 길> 편집 중에 세상을 뜬 이만희 감독을 대신해 딸이자 영화배우인 이혜영 씨가 참석했다. 무대에 오른 이혜영 씨는 “너무 기쁩니다. 어릴적 배우를 꿈꾸면서 언젠가 할리우드에 가서 세계적인 여배우가 되어 (손 뿐만 아니라) 얼굴도 찍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는데.(웃음) 아직 충무로에 있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 부산영화제에서 핸드프린팅을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백결, 서정민 등 이만희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의 숨결을 곁에서 느꼈던 영화 동지들도 이날 행사를 도왔다. 회고전 GV 게스트로 나서기도 했던 이들은 이날 짧은 시간이지만 젊은 관객들에게 추천
PIFF 광장에서 고 이만희 감독 핸드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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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여덟번째 개막식을 가진 부산프로모션플랜(이하 PPP)은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위용을 높여가고 있다. 아시아 최대의 영화 프리마켓으로 자리잡은 PPP는 다양한 색채를 가진 영화들의 탄생지로 자리잡았고, 마켓과 인더스트리 스크리닝 규모를 확장하면서 이미 완성된 한국과 아시아 영화들이 해외 바이어를 만날 수 있는 길목 노릇도 겸하게 됐다. 12일까지 진행되는 올해 PPP는 특별한 의미도 가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내년부터 필름마켓을 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강성규 PPP 수석운영위원은 “성황을 이루는 홍콩 필름마트가 홍콩영화제와 일정을 맞추면서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지만,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최대의 영화제이기 때문에, 그 시너지를 따라오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낙관적인 예측을 전했다.
역대 최대 규모인 27편의 프로젝트를 선정한 올해 PPP는 젊은 재능의 진출과 건재한 중견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첫 번째 장편 <천상의 소녀>(부산국제영화제 상영제목 &l
제8회 PPP 역대 최대규모, 극장 마켓 스크리닝, LJ필름 어워드 신설(+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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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한가해 보이는 곳은 PPP(부산프로모션플랜) 현장이다. 비명이 절로 터져 나오는 매표구나 아무리 발돋움해도 무대 위 상황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야외무대와 달리, PPP 현장은 고즈넉하기 짝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PPP는 시나리오 단계, 또는 그 즈음에 있는 영화가 해외 투자자와 배급자를 만나는 자리인만큼, 드러나는 ‘액션’은 테이블 위의 대화 뿐이다. 뭔가 ‘건수’를 건져야 하는 기자 입장에서 여기만큼 난감하고 지루한 곳은 없다.
2002년의 PPP 현장도 다르지 않았다. 홍콩의 진가신, 중국의 왕차오, 한국의 민규동 감독 등이 참여했지만, 그들은 미팅룸에서 조용히 대화만을 나누고 있었을 뿐, 기사거리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난감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호텔 로비가 내려다 보이는 2층 난간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무렵, 서성이는 귀여운 타이풍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나이며 외모며, 감독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리하여 타이 감독의 매니저 쯤으로 여기게
[잊지 못할 게스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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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토론토국제영화제는 토머스 클레이 감독에게 <로버트 카마이클의 엑스터시>를 상영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프로그래머가 서신에 적어놓은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만약 이 영화를 상영한다면 토론토 시민들이 영화제측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산 시민들은 부산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을 너그럽게 용서할 것이다. 살륙을 행하는 소년들의 이야기 <로버트 카마이클...>는 올해 부산영화제의 가장 소름끼치는 영화적 경험이지만, 인간의 황폐한 마음을 대담한 방식으로 해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26살 젊은 감독 토마스 클레이는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프리미어를 하기에는 최고의 장소라고 생각한다”며 관객들의 격렬한 반응을 고대하고 있다.
어제 GV를 한 것으로 알고있다. 스캔들을 얻었던 칸과 에딘버러영화제와 비교한다면.
흥미로운 질문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특히 칸과 에딘버러와는 달리 마지막 장면에만 신경쓰지 않고 전체적인 영화에 흥미를 가져준 것 같았다. 20
<로버트 카마이클의 엑스터시>의 토머스 클레이 감독(+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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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 브로카의 이름을 처음 듣는다면 당신은 1970년대 아시아 영화에 거의 관심이 없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그 시대의 시네아스트 중의 위대한 한 사람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리노 브로카는 1970년대 아시아 영화에서 (홍콩의) 호금전, (일본의) 오가와 신스케와 함께 가장 중요한 이름이다. (그런데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걸작선에 오가와 신스케가 빠진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리노 브로카는 1970년에 그의 첫 번째 영화 <구인광고; 완전한 유모>를 만들었고, 그 이후 (리노 브로카의 필모그래피는 자료마다 다른데) 5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필리핀에서 1970년에 데뷔했다는 말은 그가 독재자 마르코정권하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리노 브로카는 아시아에서 서구제국주의 식민지의 경험아래 정권을 장악한 군부독재로부터 민중의 해방을 위해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치적 의식을 가진 최초의 ‘제 3 영화’ 시네아스트였으며, 또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최초의 게이 시
아시아의 파스빈더, 리노 브로카의 <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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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의 새 영화 <더 차일드>는 주요 전작 <약속>, <로제타>, <아들>에서 보여줬던 태도를 고스란히 수렴하는 ‘인간 구제 연작’ 중 하나다. 그 구제의 방식이란 섣불리 인간에 대한 희망을 끌어안지는 않아도, 쉽게 그 희망을 포기하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 그 희망의 부재와 염원 사이에서 다르덴 형제의 인물들은 묵묵히 살아간다. 부주의하고 미숙한 인간 군상들의 오판으로 얽힌 삶, 운명처럼 엮여 있는 불운과 불행의 질긴 연속, 화해와 복수가 종이 한 장차이로 놓여 있는 모순의 관계가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부동의 조건이다.
<더 차일드>의 주인공 브루노는 그 혼란의 구렁텅이에서 기필코 구제되어야 할 어느 인간 중 하나다. 훔친 물건을 팔아 겨우 살아가고 있는 소년 브루노. 그는 아직 청년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어리다. 하지만, 그에게 여자 친구 소니아는 갑작스런 임신 소식을 알린다. 그러나 브루노는 소니아가 낳은 자기 아이조
다르덴 형제의 새 영화 <더 차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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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다이어리>는 살륙의 현장 보스니아로 찾아간 한 남자의 다이어리다. 포르투갈 감독 조아킴 사피뇨는 데이튼 협정으로 내전이 종료된 1996년의 보스니아를 방문했다. 학살의 혈흔이 가득한 보스니아는 무덤처럼 싸늘한 장소였고, 포르투칼로 되돌아온 그는 “도저히 지난 기억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 2년만에 다시 보스니아로 잡입했다. 단 한명의 카메라맨이 동행한 두 번째 여정에서 그는 “쌓인 눈 아래 어디에 지뢰가 있는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쓴 채” 카메라를 돌리며 텅빈 도시와 내전의 흔적들을 담았다. 하지만 <보스니아 다이어리>는 죽어 자빠진 고통과 울부짖음을 직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포탄을 맞아 부서진 박물관의 내부로 들어가 박제된 짐승들을 조용히 응시한다. “설명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더욱 잘 봉합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2년전 <여경찰>이라는 영화로 부산을 찾은 적이 있는 조아킴 사피뇨는
<보스니아 다이어리>의 조아킴 사피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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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태규와 이청아는 같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만난 적이 거의 없다. <썬데이 서울>은 세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지는데, 두 배우는 서로 다른 에피소드에 출연했기 때문이다. 봉태규는 늑대소년, 이청아는 무협소녀. 그러나 언제가 첫만남이었는지 곰곰이 따져보거나 정담을 주고받는 모습은 남매처럼 다정하다. “나 <광식이 동생 광태> 팬싸인회하는데 사람이 너무 없으면 어떡하지?” “그럼 내가 가서 싸인받을께”. 이 귀여운 한쌍은 부산국제영화제 첫 번째 GV를 막 마치고 나온 참이었다.
봉태규는 <눈물> <바람난 가족>으로 두번이나 부산에 왔지만, 이청아는 그동안 관객으로만 부산을 찾았었다. “대학교 1학년때 부산에 왔는데 새벽에 표사려고 식당에서 수건덮고 잤어요. 머리는 화장실에서 감고. 오늘 GV하려고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가는데 참 감개무량하더라구요”. <썬데이 서울> 촬영현장에서 와이어 한번 달아보는게 소원이라고 했던 이청아는 몇달이 지난
<썬데이 서울>의 봉태규와 이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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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다니….” 지난 7월18일 <새드무비>의 포스터와 <씨네21> 표지 촬영장인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차태현은 중얼거렸다. 단지 같은 소속사의 스타들이 한데 모인 게 신기해서가 아니었다. 이날은 처음으로 <새드무비>에 출연한 여덟 배우가 함께 자리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새드무비>는 네 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얽혀 있는 영화인 탓에 이들은 자신의 상대 외엔 거의 촬영장에서 접할 수 없었다. 임수정은 “각자의 몫을 잘 해나가면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다면 아름다운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모인 풍경을 보니 아름다운 영화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탁 트인 공원에 나오는 게 오랜만인데, 이렇게 다 함께 있으니까 소풍 나온 것 같다”는 이기우의 말처럼, 이날 촬영장 분위기는 영화의 제목과 반대로 밝고 활기찬 느낌이었다.
반면, 촬영을 맡은 이전호 작가의 마음은 심란했다. “여덟명의 모습을 한꺼
<새드무비> 포스터 촬영현장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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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의 생생한 현장 스케치
-김희선,성룡,강동원,하지원,류승범,공효진,황정민,박중훈,앙드레김등
-최고의 스타들이 참여한 개막식 레드카펫현장
[모바일 씨네21] PIFF Hot Cl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