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저녁 KBS-1TV가 방송한 ‘KBS스페셜-고위 공직자, 그들의 재산을 검증한다’는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킨 프로그램이었다. 박희태 국회부의장, 이해찬 국무총리 등 고위공직자들의 불법 변칙 재산증식 과정을 추적한 이 프로그램이 내게 던진 가장 큰 의문은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객관적으로 충분한 것 이상의 재산축적과 증식의 필요를 느끼는가?’였다.
최고의 학벌과 현기증 나는 사회적 지위, 이왕에 갖고 있던, 먹고 살기에 충분한 재산이 이들에게 가져다 주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특감 기간 도중 국회의원들과 피감기관인 검찰 관계자들이 ‘광란의 밤’을 연출한 사건을 보면서도, 이같은 본원적 의문을 느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적과의 동침’을 해야만 하는가? 서로 생각이 다르다면, 왜 헤어지지 못하는가? 왜 술폭탄의 힘을 빌려 뇌세포를 초토화시키면서까지 서로 알아두고 친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같은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추론을 해본다.
재산과 인맥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불안한 영혼의 바리케이드
-
여느 직장인처럼 나도 종종 사표를 꿈꾼다. 직장생활을 너무 일찍 시작해서 서른도 채 되기 전에 6년차가 되었는데, 1년에 (최소) 50일씩 밤을 새우다보니 시쳇말로 ‘몸은 점점 커지고(?) 얼굴은 썩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던지는 대신 열심을 다하(려)는 이유는, “회사님은 돈을 주시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면 천성이 게으른 나 같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 구실을 하려면 돈의 압박이 필요하다. 나는, 통장 잔고가 따뜻하고, 집안 사정이 아름답다면 당장이라도 집에서 놀고 먹는 편이 낫다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이 재미있을 때도 많지만, 돈이 있으면 일을 절대 거들떠보지 않는 스스로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아는 나는, 적금이나 저금에 취미를 붙이지 않는다. 이게 내가 직장생활을 6년이나 하면서 성냥팔이 소녀처럼 슬픈 얼굴로 매일의 밥값을 고민하는 이유다.
그럼 월급은 다 어디에 쓰냐고? 그게 문제다. 귀신이 들렸다, 는 식의 의미로 나는 ‘지름신이 들렸다
[오픈칼럼] 지름신에게 경배를
-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대학가요제에서 멈췄다. 아, 아직도 대학가요제를 하고 있구나, 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뭔가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정말 오랜만에 대학가요제를 봤다. 꽤 재미있었다. 참가자들의 새로운 노래와 기성 가수들의 무대까지 연이어 보다가 윤도현이 심사위원장 배철수를 불러 함께 <탈춤>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아득한 추억까지 밀려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 대학가요제의 노래들은 꽤 좋았다. 대학가요제에서 듣는 노래가 좋았다는 것은, 정말 오래된 기억이었다.
한동안 대학가요제를 보지 않았다. 아니 대학가요제란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꼭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대학가요제는 진부해졌다. 행사 자체가 아니라, 대학가요제에서 나오는 노래가 기성 가요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기성 가요를 흉내낸, 기성 가요를 의식하고 만든 것 같은 노래들을 대학가요제에서 듣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 대학생들의 지상목표가 취
[B딱하게 보기] 대학생의 노래라는 것, 2005 대학가요제
-
전국에 문예창작과가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목소리 큰 선생과 분필만 있으면 돼서 그랬을까. 하여튼 많이 생겼다. 이 문예창작과는 말할 것도 없이 문예물을 창작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학생들은 매 학기 소설이나 시를 써야 한다. 선생들은 학생들이 작품을 쓰도록 독려한다. “써라, 써라, 써라.” 계속되는 독려에 많은 학생들이 오히려 문학에 흥미를 잃는다. 잘 하던 짓도 누가 시키면 그때부터 하기 싫어지는 게 인간이다. 반대로, 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예로부터 금서처럼 인기있는 책은 없었다. 읽지 말라면 더 읽고 싶고, 쓰지 말라면 더 쓰고 싶다. 그렇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겐 권장이 아니라 금지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혹, 이런 방식은 어떨까.
우선 문창과 학생들을 모두 기숙사에 집어넣는다. 학년에 따라 쓸 수 있는 글의 종류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예를 들어 1학년은 절대로 단편소설을 쓰면 안 된다. 만약 단편소설을 쓰다 적발되면 바로 집
[이창]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
1. 과거 침술원, 지압원, 체내림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의료계를 지탱해오던 큰 축이었던 ‘접골원’. 세월의 격랑 속에 완전히 망각될 위험에 놓여 있던 이 접골원의 각종 비술들을 전부 숙지한 뒤 그것을 모조리 역순으로 암기, 이를 인체 내 각종 고관절 꺾기에 응용, 마침내 ‘골절권’이라는 신개념의 무예를 탄생시킴으로써 주먹무비계를 새로이 쟁패한 자 있으니, 그의 성명 다름 아닌 토니 쟈다.
허나, 마치 이삿짐센터 아저씨 사다리 접듯 그 자리에서 108명의 나쁜놈들의 고관절들을 거침없이 차례로 접어나가던 그의 궁극의 골절권은 안타깝게도 ‘무에타이’의 일개 분파로만 알려졌고, 이는 결국 권법의 완성에 큰 기여를 했던 108명의 골절자들의 존재를 깨끗이 지워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으니, 과연 이 아니 슬플쏜가….
허나, 이러한 엄혹한 현실도 골절권 관람시 필자의 머리에 항시 떠오르는 생각마저 지우지는 못한다.
‘패는 넘보다 맞는 넘들이 더 대단하네.’
2. 어디 ‘골절권’뿐이겠는
[투덜군 투덜양] 무릇 타산지석이라 했느니, <트랜스포터 엑스트림>
-
오랫동안 일본영화를 볼 수 없었던 탓에 우리에게 쇼치쿠는 그리 친숙한 이름이 아니다. 일본영화 개방 이후 오즈 야스지로와 쇼치쿠 누벨바그가 널리 알려졌지만 쇼치쿠는 국내에선 홍콩의 쇼브러더스(장철과 호금전의 무협영화)만한 인지도도 없는 영화사이다. 그건 지금의 일본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쇼치쿠의 전성기는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씨네21>이 쇼치쿠 110년을 특집기사로 다루는 것을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다. 왜 쇼치쿠인가? 간단히 답하자면 쇼치쿠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사이고 기라성 같은 감독들을 배출하고 수많은 걸작을 만든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그건 1990년대 한국영화가 꿈꿨던 어떤 이상을 쇼치쿠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쇼치쿠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 가운데 기도 시로라는 제작자가 있다. 1922년에 쇼치쿠에 입사한 그는 1924년 가마다 촬영소 소장이 됐고 능력있는 감독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인물이
[편집장이 독자에게] 쇼치쿠 110년
-
여리고 예쁜 녀석이 군에 갈 때 우리는 꽤 걱정했다. 다행히 험한 꼴 안 보고 높은 분 관사에서 그 집 딸내미를 가르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근데 휴가나온 녀석은 “(그 딸내미가) 얼굴도 못생기고 머리도 빈 것이 틈만 나면 나를 하인처럼 부려먹는다”고 울먹였다. 자기보다 더 불쌍한 애는 개밥 주는 공관병인데 그는 결국 군 생활을 다 못 채웠단다. 어느 날 개밥을 비벼서 갖다줬는데 ‘싸모’가 참기름 넣고 제대로 비빈 거 맞냐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네가 먹어보라고 했단다. 그런 일들이 반복돼 공관병은 정신이 오락가락해졌다고 한다. 차라리 삽질하고 얼차려 받는 게 낫다는 게 녀석의 주장이었다. 간부들 논문을 대신 써주는 논문병, 간부가 치기 편한 곳에 공을 서브하는 테니스병, 목욕탕 관리하며 마사지도 겸하는 때밀이병 등 온갖 기기묘묘한 병들의 세계는 지금도 그대로다.
운전병이나 당번병같이 공식적으로 인가된 병사들 외에 편법으로 병사들을 데려다 몸종처럼 써먹고, 학대까지 하는 짓이야말
[이슈] 장군님의 웰빙 생활
-
린제이 로한과 제레드 레토가 존 레넌 암살 사건을 다루는 영화<27장>(Chapter 27)에 캐스팅됐다. 11월2일 <버라이어티>의 보도에 따르면, 제레드 레토는 존 레넌의 열성팬이자 암살범인 마크 채프먼을 연기한다. 린제이 로한은 헌신적인 레넌의 팬으로서 암살사건이 일어났을 때 마크 채프먼의 곁을 지키는 친구로 분한다. 이 영화로 데뷔하는 감독 자렛 셰퍼(Jarrett Schaeffer)가 각본도 썼다.
<레퀴엠>에서 인상적인 마약중독자 연기를 펼친 바 있는 제레드 레토는 <알렉산더>와 <로드 오브 워> 등에 출연했다. 최근 린제이 로한은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프레리 홈 컴패니언>과 로맨틱 코미디<Just My Luck>의 촬영을 마쳤다.
존 레넌은 1980년 12월8일 밤 뉴욕에서 귀가하던 중 총을 맞고 사망했다. 이 사건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만큼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당시 범인 마크 채프먼
린제이 로한, 존 레넌 암살 다룬 영화에 캐스팅
-
“불륜을 다룬 통속 드라마를 밤 시간대에 누가 보겠나?” “불륜의 사랑을 지켜보긴 하겠지만 연서와 윤재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지 마라” 요즘 MBC의 <가을 소나기> 홈페이지는 이런 종류의 시청자 의견들이 줄을 잇는다. 둘도 없는 친구 규은(김소연)과 그 친구의 남자 윤재(오지호)를 사랑하는 여자 연서(정려원)에 대한 이야기다.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이 사랑을”이라는 카피에서도 짐작 가듯이, 눈물 꽤나 뽑기로 작정한 드라마고 실제로 나를 포함해 많이 울고 불고 하는 모양이다.
시청률이 한자리수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져있는 이 드라마의 ‘부진’은 오히려 드라마의 ‘히트’보다 더욱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현상까지 생겼다. 딴은 그렇기도 하다. 정려원이라는 인기절정 히로인이, 눈만 뜨면 왕방울만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캐스팅 몰이를 했으나, 이 방송사에게는 경악스러울 만한 사상 최저의 시청률이라는 결말을 내고 있
[드라마 칼럼] 시청률 3%대 드라마에 대한 몇 가지 변명
-
DVD의 장점은 영화 공개시의 선전문구나 해설 등이 진짜인지를 부록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여름 국내 개봉 당시 ‘영화가 재미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환불 소동까지 벌어진 바 있는 <오픈 워터>는 홍보의 초점과 관객의 기대치 사이의 접점이 때로는 심각하게 어긋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물론 <오픈 워터>는 <죠스>나 <딥 블루 시>와 같은 상어의 공포를 전면적으로 다룬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치 상어와의 처절한 대결을 과장된 수법으로 그린 영화인 양 포장된 것은 앞서 말한 관객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DVD를 통해 이 영화가 어떠한 의도를 갖고 있었고, 그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사정을 알고 나면 마냥 ‘사기극’이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고 있는 부부가 느끼는 절망적인 공포라는 단순하면서도 참신한 아이
<오픈 워터> 적어도 영화 속 공포감은 과장이 아냐
-
[헌즈다이어리] <월래스와 그로밋> 월래스씨가 솔로인 이유는?
[헌즈다이어리] <월래스와 그로밋> 월래스씨가 솔로인 이유는?
-
29일 저녁 시작된 인터뷰가 30일 새벽으로 치닫고 있을 무렵, <러브토크>(11일 개봉)의 이윤기 감독은 말했다. “아픔을 많이 아는 사람들은 절망도 쉽게 하지 않는다”라고. 보일듯말듯한 희망을 암시하는 것처럼 알듯말듯한 정혜의 미소로 첫 영화 <여자, 정혜>를 끝마쳤던 이 감독이 또다시 아프고 고독한 세 사람의 더 쓸쓸한 <러브토크>로 관객들을 찾은 것은 그래서인 것 같았다. 감독이 “사람들 속에 있으면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정말 외로운 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 느껴보고, 쉽게 절망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서.
<러브토크>에는 상처를 간직한 채 서울을 떠나온 세 사람 써니(배종옥), 영신(박진희), 지석(박희순)이 등장한다. “마사지숍을 운영하는 써니는 성공이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미국으로 가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러브토크’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러브토크> 이윤기 감독 인터뷰
-
배우 임현식은 경기도 송추에 산다. 한때 젖소도 길렀던 터에서 지금은 개 여남은 마리와 훤칠한 나무들을 키우며 산다. 아니, 주인의 표현에 따르면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니 어찌할 수 없이 자라는 것이다. “어젯밤에 말이지, 서리가 내렸어요.” 생면부지의 기자를 대문 밖에 마중 나온 임현식은 자신이나 객의 안부 대신 첫 서리 소식을 인사말로 건넸다. 서리 내린 것이 대견한 듯 서글픈 듯 말투가 오묘하다. 가느다란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길가의 고춧잎들이 찬 기운에 풀이 죽어 수긋하다.
연기생활 35년째인 임현식은 아버지보다 아저씨나 양아버지에 가까운 이미지를 지닌 배우다. 요즘 출연 중인 <서동요>에서도 임현식이 분하는 기와장인 맥도수는 주인공 장이(조현재)가 사랑하는 장남의 죽음을 초래했음에도, 이 고독한 고아로부터 정을 거두지 못한다. 하긴 <올인>과 <대장금>에서도 임현식은 일종의 의붓아버지였다. 장이에게 친부 위덕왕이 유명무실한 허
카덴차의 고수 <올드 미스 다이어리>, <서동요>의 임현식
-
이른 아침 창문을 열고 숨을 들이쉬면, 차갑고 쓸쓸한 냉기가 가슴 깊은 곳까지 퍼진다. 늦가을. 나는 이 때가 가장 좋다. 계절의 변화란 ‘매직’과도 같아서, 가슴에 담아두었던 기억들을 불러낸다. 기억은 쓰디쓸수록 짜릿하다. 그 쓴맛이 선명하게 남긴 흉터가 우리들의 현실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차가운 공기가 거리에 내려앉은 늦가을 이 즈음.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 학교 앞 동시상영 극장으로 숨어들었다. 내 도피행각엔 나름 이유가 있었다. 3년간 놓고 지내던 ‘보캐뷸러리(Vocabulary)’ 책을 다시 끄집어 낸 것도 갑갑했지만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함께 통과했던 한 여자를 먼 곳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극장의 간판엔 저우룬파(주윤발)과 중추훙(종초홍)이 있었다. 어줍은 솜씨로 그린 것이었지만 이들의 표정엔 쓸쓸한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답답했던 시절. <가을날의 동화>는 내 가슴을 절절히 파고들었다.
결혼을 약속한
[스크린 속 나의 연인] <가을날의 동화> 종초홍